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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님은 우리의 평화 (엡 2: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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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우리의 평화 (엡 2:11-18)


며칠 전 건국대학교 3학년 학생 한 명이 지하철에서 묻지 마 폭행을 당했습니다. 피해자는 11시 40분이 넘은 늦은 시각에 2호선 건대입구역에서 지하철을 탔다가 취객 두 명에게 아무 이유도 없이 매를 맞고 코뼈가 함몰되는 피해를 입었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가 하면 아이리스의 보컬 이은미가 지난 19일 새벽 2시 경 시흥시 한 길가에서 귀가하던 중 남자 친구인 조 모씨가 휘두른 흉기에 65차례나 찔려 사망했습니다. 경찰 조사에서 피의자 조 모씨는 이은미가 헤어지자는 것에 격분해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했습니다.

왜 사람들이 이렇게 난폭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여기저기서 폭력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어린 학생이 교사를 폭행하는 일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세계 평화도 물론 좋지만 무엇보다 먼저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참 평화를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부활하신 우리 주님도 바로 그 점을 가장 먼저 언급하시지 않았습니까?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 20:19, 21)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이 임하심으로 말미암아 시작된 초대 교회는 그 후 매우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빨리 성장하면서 교회 안에 어려운 문제도 발생했습니다. 그 문제란 바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의 불화였습니다. 사도행전 6장에도 비슷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행 6:1) 같은 유대인임에도 불구하고 헬라파와 히브리파가 서로 화목하게 지내지 못했던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또 어디서나  반목과 대립은 정말 풀기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에베소 교회 성도들은 주로 이방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교회 안에서 주류였기 때문에 문제가 더욱 심각했던 것 같습니다. 때문에 사도 바울은 교회 안의 반목과 대립이라는 문제를 풀기 위해서 이 편지를 썼습니다. 그는 먼저 복음을 믿기 전에 그들이 과연 어떤 존재였는가 하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몹시 경멸했습니다. 사람으로 취급하지도 않았습니다. 또한 이방인들은 희망이 없었습니다. 

그리스도 밖에 있었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메시야에 대한 희망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방인들은 나라 밖에 있었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통치를 모르고 있었고 또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도 곱다.’는 우리 속담처럼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을 그렇게 생각하는데 이방인들이라고 해서 유대인들을 좋게 생각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들은 만나면 서로 으르렁거렸을 것입니다. 비록 교회 안에서도...

그런데 교회는 어떤 특정한 사람들만의 모임이 아닙니다. 모든 계층, 모든 부류의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 교회입니다. 교회의 특징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모임이든지 먼저 하나가 되어야 모임이 든든하게 세워질 수 있고 또 그 목적하는 바를 이룰 수 있습니다. 하나가 되지 못할 것 같으면 그 안에 갈등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생산적인 모임이 되지 못하고 목적하는 바도 이룰 수 없습니다. 

때문에 심지어 독재자들도 총화 단결이나 국론 통일을 부르짖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초대 교회 당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의 담은 오늘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높았던 것 같습니다. 물론 이 세상 어디에나 담은 있습니다. 가정에도, 일터에도 보이지 않는 담은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그리스도 예수가 계신 곳에는 그 어떤 형태의 담도 있어서는 아니 된다는 사실입니다. 만일 교회 안에 담이 있을 것 같으면 그 담은 반드시 허물어야 합니다.

그 옛날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갈라 놓았던 율법이라는 담은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로 폐기되었습니다. 십자가로 말미암아 이방인을 정죄하는 율법의 힘이 사라졌습니다. 때문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더 이상 그 어떤 형태의 차별이나 분리가 있어서는 아니 됩니다. 만일 어떤 이유로든지 분리를 꾀하는 자가 있으면 그는 십자가를 헛되게 만드는 큰 죄를 범하는 자가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 십자가는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더불어 화목하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화목도 가져왔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수평적인 관계도 아울러 회복시켰다는 말입니다.

교회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모두 포용하는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비록 유대인들로부터 시작되었지만 다만 그들에게만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전하신 것은 온 인류를 위한 복음이지 다만 유대인들만을 위한 복음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주님의 지상 명령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마 28:19) 그렇습니다! 교회는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야 합니다. 그 누구도 배척하거나 제외시켜서는 아니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가 하나 되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누군가 양보하고 희생해야 합니다. 어느 모임이든 그 안에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다양한 의견이 있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자기 의견만 옳다고 주장할 것 같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배가 산으로 갈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교회가 하나 되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활짝 열린 생명의 길을 함께 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입니다. 때문에 그 십자가 앞에서 모두 자기를 부인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교회가 하나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에베소서 4장의 말씀을 볼 것 같으면 사도 바울은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권면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엡 4:4~6) 교회 안에서 하나 되는 것은 바로 성령이 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교회 안에도 갈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성도들 간에도 의견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주님을 믿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교회가 하나 될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겠습니까? 

올바른 믿음을 가지고 있는 교회는 늘 위기에 처하게 마련입니다. 왜냐 하면 교회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추구하는 것은 이 세상을 초월한 것입니다. 물론 이 세상에서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편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교회는 인간적인 방법으로 뭔가를 하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엡 2:13) 참 평화는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았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엡 2:14) 그 평화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았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십자가로 우리를 하나님과 더불어 화목하게 하셨고 또한 그 십자가로 원수 된 것을 소멸하셨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인류는 예나 지금이나 평화를 원하고 있습니다. 역사가 증언하고 있지 않습니까? 로마의 평화(팍스 로마나), 대영 제국의 평화(팍스 브리태니카), 그리고 미국이 주도한 평화(팍스 아메리카나)가 그 뚜렷한 증거가 아닙니까?  처음부터 분열과 대립과 전쟁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평화의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전쟁의 소식만이 우리를 우울하게 만들고 있지 않습니까? 왜 인류는 실패했습니까? 인간적인 방법으로 평화를 이루려고 했기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답은 오직 주님의 평화입니다. 십자가로 화목하게 하신 주님의 평화가 유일한 해답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십자가의 도가 멸망당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십자가에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있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사람들은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것을 더 편한 것처럼 생각합니다. 때문에 교회 안에서도 주저하지 않고 세상적인 방법을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삶의 현장에서 평화를 누리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막힌 담을 허시는 주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기 바랍니다. 그 주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새롭게 변화될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과 더불어 화목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이웃과 더불어 화목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화평이신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그 뒤를 따름으로 말미암아 이 어지러운 세상에서도 하늘의 평화를 마음껏 누리는 참으로 복된 주님의 제자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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