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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을 영접하십시오 (마 10:4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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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영접하십시오 (마 10:40-42)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을 전해주는 사건과 이야기가 우리를 변화시켜줍니다.  잭 캔필드 라는 미국의 전문 연설가이고 저술가이며 카운슬러입니다.  그가 쓴 책 중에 ‘영혼을 위한 닭고기 스프’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이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선정되었는데, 잔잔한 감동을 전해주는 책입니다.  

100편의 이야기를 엮은 책으로, 살아가면서 꿈과 행복을 어떻게 지키며 살아가야 하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우리도 가슴에 따뜻한 마음을 가지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거기 나오는 짤막한 이야기 한 토막, 아주 감동을 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작은 관심”이라는 글입니다.  

중학생 마크는 어느 날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앞서 가던 한 학생이 발을 헛디뎌 넘어지는 것은 목격했습니다. 그 바람에 그 친구가 들고 있던 물건들이 길바닥에 흩어졌습니다.  책과 두벌의 스웨터, 야구 글로부와 방망이, 작은 카세트 녹음기 등이 바닥에 다 떨어졌습니다.  마크는 달려가서 무릎을 꿇고 그 친구가 물건을 줍는 걸 도와주었습니다. 

마침 집으로 가는 방향이 같았기 때문에 마크는 그 친구의 짐을 나눠 들었습니다.  함께 걸어가면서 마크는 그 친구의 이름이 빌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빌이 비디오 게임과 야구와 역사과목을 좋아하며, 다른 과목들은 점수가 형편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 여자 친구와 헤어져 심한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는 사실까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둘은 먼저 빌의 집에 들렀습니다.  빌은 마크에게 음료수를 대접하고 둘이 함께 텔레비전을 시청하였습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기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오후 시간을 즐겁게 보낸 뒤 마크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뒤 그 둘은 학교에서 곧잘 마주쳤습니다.  둘은 이따금 점심을 함께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한 두 사람은 우연히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그 후에도 몇 차례 개인적인 만남을 가졌습니다.  

졸업을 한 달 앞둔 어느 날 빌이 마크의 교실로 찾아왔습니다.  빌은 여러 해 전 그들이 처음 만났던 때를 상기시키면서 마크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였습니다.“그날 내가 왜 그 많은 물건들을 집으로 갖고 갔는지 넌 궁금하지 않았니?  그 때 난 학교 사물함에 있는 물건들을 전부 갖고 갔던 거야.  내 잡동사니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남겨두고 싶지 않았거든. 어머니가 복용하는 수면제를 훔쳐 한 움큼 모아 놓았었고, 그 날 집으로 돌아가면 자살을 할 결심이었어.  그런데 너와 함께 웃고 대화하는 사이에 생각이 달라졌어.  만일 자살했다면 이런 소중한 순간을 갖지 못했을 것이고, 앞으로도 다른 순간들을 갖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어.  마크 그 날 네가 길바닥에 떨어진 내 책들을 주어주었을 때, 넌 정말 잘한 거야,  넌 나의 생명을 구했어” 라는 글입니다.우리의 조그만 사랑이 한 생명을 구원할 수도 있습니다.  

마틴루터 킹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누구나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누구나 남에게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으니까. 대학을 가고 학위를 따야만 남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는 건 아니다.  사랑할 줄 아는 가슴만 있으면 된다.  영혼은 사랑으로 성장하는 것이니까.  그리고 이것은 진실이니까”라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을 영접하십시오”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1.  제자를 영접하는 자 (40)

40절 말씀을 봅니다.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영접하다는 말은 그리스어로 ‘데코마이’라고 하는데, 이 말은 “받아들이다, 환영하다, 환대하다, 맞아들이다”라는 뜻입니다.  영어성경에는 “welcome”이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이 말은 “환영하다, 기쁘게 기꺼이 받아들이다”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0장에서 12제자들을 선택하시고, 파송하면서 “이스라엘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고 선포하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의 힘써야 하는 사역이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제자들이 복음전파와 함께 힘써야 하는 사역에는 “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마10:8)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나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할 때에 사람들은 제자들을 몰라보고 공회에 넘겨줄 것이며, 제자들은 주님으로 인하여 총독들과 임금들에게 끌려가고 모든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주의 종들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마10:28에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사람들은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주의 사역에 부름 받은 사람들은 자기에게 맡겨진 십자가를 져야 하고, 목숨을 내어놓고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마10:38-39입니다.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일사각오의 신앙이 아니라면, 주님을 제대로 따라갈 수 없습니다.  우리 예수님 한 분만으로 충분하며, 감격하며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죽어도 주님을 살아가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지금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제자들과 주님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12:44-45에서 주님과 그의 아버지 하나님은 확실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예수께서 외쳐 이르시되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신 그 분, 하나님을 믿는 것이며, 자신을 보는 사람은 자기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제자들에게도 적용하여 보장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단순히 대리인으로 파송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한 지체로서 예수님의 이름을 가지고 세상에 보내심을 받고 있었습니다.  마치 예수 그리스도 안에 아버지 하나님이 계셔서 하나님은 아들을 그리스도 통하여 당신의 영원하신 구속의 사역을 행하시는 것처럼, 지금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의 메시지를 가지고 예수님의 보내심을 받아 활동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제자들과 주님, 주님은 당신을 이 세상에 보내신 아버지와 하나님과 한 줄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주의 제자들을 영접한다면 제자들을 보내신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요, 주님을 영접한다는 것은 주님을 보내신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 됩니다.  이것은 제자들에게 주신 엄청난 보장이요, 힘이 되고 있습니다.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복음전파에 힘쓰는 주의 제자들과 함께 역사하시고 있습니다. 

옛날 다윗이 암몬의 왕 나하스와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었기에 암몬의 왕 나하스가 죽었을 때에 암몬의 국상을 맞아 다윗은 사신들을 보내었습니다. 나하스가 죽고 그의 아들 하눈이 대신하여 왕이 되었으니, 위로할 겸 새로운 왕에 대하여 축하의 성격도 있었습니다.암몬의 관리들이 왕에게 하는 말이 부정적이었습니다. 

“왕은 다윗이 조객을 당신에게 보낸 것이 왕의 아버지를 공경함인 줄로 여기시나이까 다윗이 그의 신하들을 당신에게 보내 이 성을 엿보고 탐지하여 함락시키고자 함이 아니니이까?”(삼하10:3) 

이래서 암몬왕은 관리들의 말을 듣고 다윗왕이 보낸 신하들을 잡아 그들의 수염 절반을 깎고 그들의 의복의 중동볼기까지 자르고 조문도 못하게 하고 돌려보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다윗이 보낸 사절을 돌려보내는데, 절반의 수염을 깎아버리고 긴 겉옷을 싹둑 잘라내어 엉덩이가 보이게 하였으니, 다윗의 신하들을 능멸한 처사입니다. 

그러면 신하들만 능멸한 것입니까?  아니면 그 신하들을 조문객으로 보낸 다윗을 업신여긴 것입니까?  신하들이 당했으나 그들을 보낸 다윗을 업신여긴 것이 됩니다. 그래서 암몬 자손들이 다윗이 쳐들어올 것을 대비하여 아람 사람, 마아가 사람, 돕 사람들을 용병으로 사서 전쟁을 대비하는데, 다윗의 군대가 암몬과 용병들을 다 물리치고 말았습니다. 보내심을 받은 자와 보내신 자는 한 줄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보내심을 받은 자는 보낸 자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2.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 (41 상)

주님은 계속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마10:41절입니다.“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라고 하셨습니다. 선지자가 누구입니까?  히브리어 “말하는 자-나비”를 번역한 말로서 선지자라는 말은 그리스어로 “프로페테스”라고 합니다.  

‘프로페테스’는 ‘ 선지자’, ‘예언자’‘선포자’라는 말인데, ‘앞서 말하고 미리 선포하는 자’라는 뜻이지만, 하나님의 대변인,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선포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미리 깨닫고 전해 듣고 백성들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대변인으로 외치는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구약의 많은 선지자들이 환영을 받거나 환대를 받은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다 핍박을 받았고, 죽임을 당한 선지자들도 많았습니다.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였습니다. 단순하게 인간적인 동정이나 연민의 차원에서 영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자요, 선지자로서의 지위에 합당하게 대우하면서 하나님의 사역에 협력한다는 마음으로 선지자를 영접하고 협력하였는데, 그런 사람을 선지자의 상급으로 갚아주십니다.  

세상의 모든 성도들이 다 선지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선지자를 영접하고 이해하고 협력할 때에, 그 선지자의 거룩한 사업에 동참한 것으로 선지자가 받을 은혜와 보상을 나누어 받게 됩니다.  


3.  의인을 영접하는 자 (41하)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41하)라고 하셨습니다. 의인이라는 사람은 옳은 사람이요, 신앙과 행위가 일치하는 사람이요, 하나님으로부터 옳다 인정함을 받은 사람입니다.  여기 의인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이요, 우리 주님의 가르침을 받아 선하고 바르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라고 하셨습니다.  


4.  작은 자를 영접하는 자 (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42)고 하셨습니다.  

여기 예수님의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한 사람도 예수님과 연결되어 있고 상급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작은 자 중의 한 사람이 다름 아닌 예수님의 제자들일 수도 있고, 이 세상에 힘들게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 모두가 이 작은 자 중의 한 사람입니다. 

선지자들이나, 사도들, 그리고 의인들은 세상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핍박을 받고 철저히 무시당하고 조롱당하고 멸시 천대를 받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런 하나님의 종들은 아주 작은 자 중의 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복음 전파하는 사람들을 잘 영접하셔야 합니다.우리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다 잘 되고 복을 받고 상을 받고,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게 해야지, 하나님으로부터 책망 받는 자리에 세우는 종들이 있다고 하면, 그는 불의한 종이라고 책망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철저히 천국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이 세상의 잣대를 가지고 살지 말아야 합니다.세상에서는 대단히 알아주는 사람이라고 해도 하나님 앞에 가보니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항상 섬기는 사람, 낮아져 보이지도 않던 사람인데, 하나님 앞에 가보니 그가 하나님의 아시는 바가 되고, 금면류관, 생명의 면류관, 의의면류관을 쓰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더욱 인정받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요한3서에는, 교회와 지역사회에서 으뜸이 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는 복음을 전하면서 수고하는 종들이 국가와 사회로부터 핍박을 받고 피신하여 도움을 받으려고 찾아오면 영접하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종들이 교회에 찾아오면 무위도식하는 사람이라고 비방을 서슴지 않습니다.  비방하는 것도 부족하여 형제들을 맞아들이지도 않고 신실한 성도들이 복음전도자들을 맞아들이면 다시는 영접하지 못하게 하고 자기 말을 듣지 않다고 교회에서 좇아내고 있었습니다.  

요한3서 1:1에서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디오드레베는 악을 행하는 자라고 하십니다.

냉수 한 그릇을 주는 것은 선행의 가장 초보이며 그렇게 대단한 선행도 아닙니다.  물론 환경에 따라서 무더운 팔레스타인의 기후로 보면 냉수 한 그릇의 봉사는 생명력 넘치는 환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도움을 주는 사람 편에서 보면 대단한 것은 아닌데, 복음전도자로서는 귀중한 도움이 됩니다.  

우리 주변에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외국인근로자들이 있습니다.외국인 노동자들이 배우는 어떤 한국어 교본 첫 문장이 "때리지 마세요"라고 합니다. 이 말을 외우라고 공부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반성할 것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우리는 희망이 없는 자, 어려운 소자들의 설 땅이 되어주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예수님이 오시면 정말 지극 정성을 다하여 영접하고 환대할 생각입니다.  우리 주변에 힘들게 살아가는 작은 자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마25:34-40을 보면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42절을 새번역을 읽어드립니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작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에게, 내 제자라고 해서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사람은, 절대로 자기가 받을 상을 잃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자기가 받을 상”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싶습니다.  나아가 하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싶습니다.  이 작은 자 중 하나, 너희라고 하신 주의 제자들과 종들, 그리고 보내시는 예수님, 예수님을 보내신 아버지 하나님, 다 연결되고 있습니다.  전권대사에게 주어지는 영예와 멸시는 그를 보내신 이에 대한 영예가 될 수 있고, 멸시 될 수 있습니다.  이왕이면, 주의 종들과 잘 협력하면서 같은 상급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리하면서 예를 든다면 부지 중에 천사를 대접하신 분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히13:2에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지나가는 사람이라도 소홀히 대접한 적이 없습니다. 지나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달려가 영접합니다.  몸을 땅에 굽혀 절하면서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종을 떠나지나가지 마시옵고,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에서 쉬소서. 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의 마음을 상쾌하게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창18:3-5) 아브라함은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지극정성을 다합니다.  이래서 부지 중에 천사를 대접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바울이 동역자들에게 부탁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빌4:2-3에서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교회와 사회에 나가서 항상  좋은 인간관계를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나를 이 세상에 두심은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시는 사람을 섬기라고 두셨다는 섬김의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야겠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우리 주변에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하여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나의 말 한 마디가, 나의 작은 사랑의 행동이 한 사람의 운명을 바꾸어 놓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에 대신 죽으시는 그 놀라운 사랑이 우리를 변화시켜주었습니다.  이제는 우리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사랑할 사람밖에는 없습니다.  사랑하면서 살아도 살아가기 힘든데, 미워할 시간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서야하는 날이 오늘이 될지 내일이 되지 모릅니다.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하여 천국문에 들어갈 때에, 세상의 미움, 원망, 시기, 질투, 욕심, 그런 것 가지고 갈 수 있습니까? 다 필요 없는 헌신짝처럼 내어던지고, 오직 주님의 사랑, 하나님의 은혜만 간직하면서 주님 앞에 서야할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무슨 상을 받기 위해서 무슨 새로운 일을 시작할 필요는 없습니다.현재 내가 성도로서 살아가는 모든 일이 다 상급의 대상임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 일만이 상급의 대상이 아닙니다. 전도하는 일만 상 받는 일은 아닙니다.가정생활도 상 받을 일이요, 직장 생활도 상 받을 일이요, 사회생활, 학교생활이 모두다 상 받을 일들입니다.우리는 우리가 사는 모든 현장에서 우리는 주님이 보내신 사람들을 대접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잃지 않아야 할 상이 있습니다.그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에 들어가 받아야 할 상급입니다.이왕이면 제자의 이름으로 제자의 상급과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의 상급과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의 상급, 소소한 것까지도 챙겨주시는 작은 자의 상급까지 모두다 받아누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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