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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떤 대가를 치루더라도 (롬 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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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대가를 치루더라도 (롬 9:1-5)

조울증이란 질병이 있습니다. 조증과 울증이 교대로 나타납니다. 조증일 때는 기분이 너무좋습니다. 울증일 때는 기분이 바닥까지 떨어집니다. 이 감정 사이에서 고생이 큽니다. 
오늘 말씀에 이런 감정의 급격한 변화를 겪는 사람이 나옵니다. 바울 사도입니다. 

바울 사도의 끊임없는 고통 

롬8장에는 기쁨과 확신으로 기분이 최고입니다. 9장으로 오자마자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롬9-11장에는 이스라엘의 구원문제가 나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어떻게 다루시는지를 말씀합니다. 바울 사도가 자기민족을 바라보면서 견디기 어려운 슬픔을 겪고 있는 겁니다. 

그 슬픔을 이렇게 말합니다. 1-2절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 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바울 사도의 개인적인 슬픔일까요? 개인적인 고통도 많았지요. 그런데 크게 슬퍼하지는 않습니다. 건강으로 고생할 때 이렇게 말합니다. 고후12:9-10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강함이라.” 자기가 약할 때 강함되시는 주님을 만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기뻐합니다. 
감옥에서 갇혀 고생할 때도 이렇게 말합니다. 빌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감옥에 갇혀 있지만 주님 안에 갇혀 있습니다. 그래서 기뻐합니다. 

자기 민족을 바울 사도의 향한 마음 

그런 바울 사도가 왜 이렇게 슬퍼하고 있을까요? 누구 때문에 이렇게 슬퍼하고 있을까요? 
3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바울의 가족입니까? 아닙니다. 4절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 자기 민족 유대인입니다. 

유대인들이 바울 사도를 좋아할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바울 사도가 가는 선교지 마다 쫓아와서 훼방을 놓습니다. 사람들을 선동해서 쫓아냅니다. 그게 안 되면 고소해서 감옥에 가게 합니다. 때로는 직접 죽이려고 돌을 들어 칩니다. 

얼마나 미울까요? 형제가 아니라 웬수입니다. 그런데도 새로운 선교지로 가면 맨 먼저 어디로 갑니까? 회당으로 갑니다. 거기에는 유대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맨 먼저 복음을 전합니다. 또 욕먹고, 무시당하고, 쫓겨나고... 다음 선교지로 가면 또 회당으로 먼저 가고... 

바울 사도는 그런 자기 민족을 남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형제라고 생각합니다. 가까운 친척이라고 말합니다. 
그 형제를 위하여 머리를 싸매고 근심합니다. 하루도 한시도 근심이 떠나질 않습니다. 
나를 위한 고민이 아닙니다. 자기 민족을 형제로 마음에 품고 근심하는 겁니다. 
훌륭한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모범적인 그리스도인의 민족의식입니다. 

왜 이스라엘 사람들을 그렇게 생각할까요? 4-5절.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들에게는 양자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창조 이후로 오랜 세월 동안 하나님의 구원계획 속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언약을 주셨습니다.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이루어오셨습니다. 그들을 통해서 구원자 메시야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포기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품고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출4:22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호11:1 “이스라엘의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었거늘.” 

바울사도가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겁니다. 하나님이 품으시니 자기도 품는 겁니다. 하나님이 포기하지 않으시니 나도 포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니 나도 같은 마음으로 사랑합니다. 형제로 사랑하고 가족으로 사랑합니다. 

어떤 대가를 지불해서라도!!! 

내 형제, 내 가족인 이스라엘을 바라보면서 근심합니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면, 그들은 기뻐하며 예수님을 믿습니다. 구원을 받습니다. 삶이 변합니다. 회복됩니다. 가족을 구원합니다. 이웃을 회복시킵니다. 그들이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전합니다. 자기 도시를 변화시켜 나갑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소수만 예수님을 믿습니다. 대부분은 싫어합니다. 무시합니다. 적극적으로 거부합니다. 그런 자기 민족을 보면서 마음속에 간절한 소원이 생깁니다. 
이렇게라도 할 수만 있다면 좋겠다! 이렇게라도 할 수만 있다면 하고 싶다! 어떻게죠? 

3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 지라도 원하는 바로다.” 

내가 지옥에 떨어져서라도 내 민족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면, 나는 그렇게 하고 싶다는 겁니다. 바울 사도는 진심으로 자기 민족을 내 형제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아니 형제 가족 그 이상입니다. 자기 자신보다 더 생각하는 겁니다. 
어떤 대가를 지불해서라도 구원을 받을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은 겁니다. 

물론 실제로 일어날 수는 없는 일이지요. 만약 이렇다면 실제로 할까요? 
만일 팔을 하나 잘라 버려서 내 형제가 구원을 얻을 수 있다면? 만일 내 눈을 하나 빼서 가족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면? 지옥은 아니고 내가 1년 내로 죽어서 민족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면?? 그렇다면 바울사도가 했을까요? 했겠지요! 여러분은 어떻게 할 것 같습니까? 

비슷한 기도를 한 분이 있습니다. 자기 민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 이렇게 기도합니다. 

출32:31-32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 신을 만들었나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 

누구입니까? 모세입니다. 모세도 자기 백성이 용서를 받을 수 있다면 어떤 대가라도 치루겠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사람의 기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를 그 백성의 지도자로 세우신 것입니다. 

우리나라 지도자 중에 이런 기도를 하신 분이 있습니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나님이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독립이오’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오’ 할 것이요.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셋째번 불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 라고 할 것이다. 

동포 여러분! 나의 소원은 이것 하나 밖에는 없다. 내 과거의 70평생을 이 소원을 위해서 살아왔고, 현재에도 이 소원 때문에 살고 있고 미래에도 나는 이 소원을 달하려고 살 것이다.> 백범 김구 선생님의 평생소원입니다. 여러분의 소원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사람들은 자기 민족을 위하는 애국자들이었습니다. 진정한 애국자들입니다. 
오늘 우리가 꼭 배워야할 애국입니다. 한국교회가 꼭 감당해야 할 애국입니다. 

민족 이전에, 우리 가족의 구원에 의하여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 있습니까? 
이웃에게 전도하면 알파코스에 오고, 예수님 믿고 변화되는데, 내 남편은, 아내는, 부모는... 
다른 집 아이는 부모가 반대해도 신앙생활 잘하는데, 모태신앙인 우리아이는... 
남편, 아내의 구원을 위하여, 부모 형제를 위하여는 어떤 대가를 치루고 있습니까? 
자녀의 구원을 위하여 어떤 대가를 치루고 있습니까? 얼마나 오랫동안 포기하지 않고 대가를 치루고 있습니까? 

어떤 아버지의 자식을 위한 통곡입니다. 삼하18:33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 위층으로 올라가서 우니라 그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 
자식이 살았을 때 아버지가 그렇게 통곡하며 기도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VIP를 위하여 어떤 대가를 치루고 있습니까? 무관심, 무대가 신앙생활은 아닙니까? 
나라를 위해서는, 우리 민족의 구원을 위해서는 어떤 대가를 치룰 마음이 있습니까? 
어제가 6.25 전쟁 61주년 되는 날입니다. 민족끼리 싸운 가장 비극적인 전쟁입니다. 

몇 년 전에 천국가신 김준곤 목사님의 민족 복음화의 꿈이란 시입니다. 

<어머니처럼 하나밖에 없는 내 조국, 어디를 찔러도 내 몸같이 아픈 내 조국. 
이 민족 마음마다 가정마다 교회마다 사회의 구석구석, 금수강산 자연환경에도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하시고, 뜻이 하늘에서처럼 이 땅에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이 땅에 태어나는 어린이마다, 어머니의 신앙의 탯줄 기도의 젖줄 말씀의 핏줄에서 자라게 하시고, 집집마다 이 집은 주인은 예수님이라고 고백하게 하시고, 기업주들은 이 회사의 사장님은 예수님이고, 나는 관리인이라고 고백하는 민족...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삼으며, 신구약 성경을 신앙과 행위의 표준으로 삼는 민족, 민족의식과 예수의식이 하나 된 지상 최초의 민족. 
그리하여 수십만의 젊은이들이, 예수의 꿈을 꾸고 인류 구원의 환상을 보며, 한 손에는 복음을 다른 한 손에는 사랑을 들고, 지구촌 구석구석을 누비는 거룩한 민족이 되게 하소서.> 

내일부터 2-5주간 15명의 우리 청년들이 단기 선교를 위해서 출발합니다. 우리를 대신해서 시화에서 땅 끝까지 나아갑니다. 우리를 대신해서 시간과 물질의 대가를 기꺼이 지불해서 나아갑니다. 

왜 이런 대가를 치루면서 신앙생활하라는 겁니까?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님을 죽게 하시는 대가를 치루셨습니다. 나를 위해서 예수님을 포기하시는 대가를 치루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마음을 품었습니다. 내 형제, 내 가족인 민족을 위해서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어떤 대가라도 지불하고 싶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모세도 자기 민족의 구원을 위해서라면 어떤 대가라도 치루겠다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신 김준곤 목사님도 민족 복음화를 위해서 평생을 드리는 대가를 치루며 사시다가 가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믿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동일한 믿음으로 신앙생활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맺는 말 

‘히말라야 슈바이처’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30년째 네팔,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에디오피아...에서 의료선교사역을 하시는 78세 강원희 장로님이야기입니다. 
연대 의대를 졸업하신 의사입니다. 간성에서 무의촌 의료사역을 하시다가 속초에서 병원을 개업하여 번창하는 중에 선교사로 헌신을 하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사람은 얼마나 연약하고 무지하고 불쌍한가? 게다가 병이 들어 신음하는 사람을 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실까? 그 생각을 하면 속에서 울컥하고 무언가가 올라온다.” 

가족도, 교회도, 주변 지인들도 다 반대를 합니다. 그런데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삶의 꼬리가 가운데 토막을 하나님께 드리고 싶다>고. 

우리는 어떤 대가를 치루면서 신앙생활 하십니까? 우리 가족과 이웃과 민족과 열방을 위해서 무엇을 드리려고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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