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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도응답 감사 (느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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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응답 감사 (느 2:1-10)
  

어느 날 우리 교회의 고등부 회원 중의 하나인 ‘최은혜’라는 학생이 저의 사무실에 찾아왔습니다.
‘학생이 무슨 심각한 고민이 있어 담당전도사님, 교육목사님과 상담하지 않고, 이렇게 직접 담임목사를 찾아왔을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학생의 얼굴을 쳐다봤습니다. 
그 학생은 자주색 고무밴드 한 세트와 ‘불평 없이 살아보기’라는 책을 내밀었습니다. 
이 책은 ‘윌 보웬’이 쓴 것으로서 ‘삶의 기적을 이루는 21일 간의 도전’이란 부제가 붙어있었습니다.
이 책을 이번 ‘감리사 연수 여행’에 가지고 다니면서 시간이 있을 때마다 읽었습니다.

책의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이 자주색 밴드를 한 손목에 차고 있다가 남을 험담하거나, 비난하거나, 불평하면 다른 손목에 옮겨 차는 것입니다.
어떤 날에는 열두 번도 더 옮겨 찰 수 있습니다.
어떤 날에는 한 번도 옮겨 차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21일간만 지속적으로 옮겨 차지 말아보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삶에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자주색 밴드를 차고 불평 없이 살아보려고 시도해보면, 우리는 너무나 자주, 그리고 많이 남을 비난하고, 험담하고, 불평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라.'고 배웠지만 실상은 너무나 자주, 그리고 많이 불평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태도를 고치려고 작심하고 노력하면 평균 7개월이 지나야 21일간 불평 없이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자주색 밴드의 색이 하얗게 바랠 정도가 돼야 입에서 불평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정도로 불평 투성이의 사람들이라는 거지요.
여러분은 어떨 것 같습니까?
그 책은 ‘우리 인생을 단숨에 바꿀 어떤 비결이 있는가?’ 라는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놀라지 말라. 그 비결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비결은 우리의 삶에 불평을 없애고 감사를 회복할 때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왜 하나님께서 절기를 지키라고 했을까요?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 감사제를 드리라고 했을까요?
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맥추절 감사절, 추수감사절을 지키라고 했을까요?
그것들은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우리 손목에 채워준 자주색 밴드입니다. 
이제 불평 그만하고 살아보라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삶의 기적을 이루려면 감사하라고, 
늘 잊고 사는 ‘감사'라는 단어를 회복하라고, 
우리의 손목에 채워준 자주색 밴드입니다. 

저는 오늘 본문을 통하여 우리가 감사할 일이 많지만 특별히 기도응답을 받게 됨을 감사하자는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는 이 세상 사람들과는 다르게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권세가 있고, 기도하면 응답 받는 축복이 있음을 믿으시길 축원합니다.

기도는 기다림
느헤미야 2장의 주제는 기도입니다. 
느헤미야 2장 1절을 보십시오.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니산 월에…….” 
언뜻 보면 별것 아닌 짧은 구절입니다.
그런데 느헤미야 1장 1절에 보면 또 하나의 날짜가 나옵니다.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기슬르 월에…….” 
느헤미야 1장 1절은 기슬르 월이고, 2장 1절은 니산 월입니다. 
해는 같은데 달이 다릅니다. 
이 기간이 어느 정도인가 하면 기슬르 월은 12월이고, 니산 월은 4월경에 해당합니다. 

1장과 2장의 시간적 차이가 약 4개월쯤 된다는 얘기이지요.
이 말은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의 비참한 상황을 들은 시점과 그것을 가지고 왕에게 나아간 시점 사이의 시간적 차이입니다. 
느헤미야는 기도했습니다. 
느헤미야 1장 11절입니다.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들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그때가 아닥사스다 왕 20년 기슬르 월이었습니다. 
12월입니다. 
그런데 그 문제를 해결할 단초를 얻은 것은 4개월 후였습니다. 
니산 월이었습니다.
왜 하나님은 당장 느헤미야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고, 넉 달이라는 시간을 기다리게 하셨을까요?

기도에서 언제나 중요한 것이 기다림입니다. 
기도가 기다림이라는 것은, 기도는 하나님과의 거래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거래는 주고받는 것입니다. 
주고받는 것은 빠를수록 좋습니다. 
그러나 관계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한없는 신뢰, 하나님을 향한 비밀스런 사랑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런 것은 단숨에 이뤄지지 않습니다. 

시간이 필요합니다.
사람과의 관계도 깊어지려면 시간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기다림이라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할 때 응답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십니다.
하나님께 있어서 응답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눈썹 하나 까딱하는 순간 하나님은 우주 전체를 없애기도 하시고, 다시 만들기도 하십니다.
일본의 쓰나미를 보셨잖아요? 

하나님의 관심은 관계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들 하나 주시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25년이 걸렸습니다. 
아브라함의 관심은 아들이었으나 하나님의 관심은 아브라함과의 관계였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지 않았더라면 아들 하나 얻고 하나님을 떠났을지도 모릅니다.
애걸복걸하여 기도 응답받고 교회를 떠난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족장들의 부인들은 다 아이를 낳지 못한 석녀들이었음을 기억하십시오. 

사라가 그랬고, 리브가가 그랬고, 라헬이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이들에게 아들 하나 주시는 것, 무엇이 그리 어렵겠습니까? 
아들이 문제가 아니라 관계가 문제였습니다. 
하나님과 내밀한 관계가 형성된 뒤에 하나님은 사라, 리브가, 라헬에게 자녀의 복을 허락하셨습니다.
결국 이들이 모두 아들을 얻었다는 사실을 아시지요?
하나님은 사라에게 이삭을 주셨고, 리브가에게 야곱을 주셨고, 라헬에게는 요셉을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의 기도에 금방 응답이 없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문제는 응답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좋은 관계가 형성되지 못한 것입니다. 
응답이 없을 때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신 것이 아니라 우리와 좋은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하나님의 열망을 알아채야 합니다. 
기도의 본질은 기다림입니다. 
맡기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응답의 때와 방법은 하나님께서 결정하십니다.

하늘의 하나님
기도한 지 4개월 후 아닥사스다 왕이 수심에 잠긴 느헤미야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4절입니다.
“왕이 내게 이르시되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시기로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여러분, 느헤미야 1장에서 2장까지 느헤미야가 기도할 때마다 공통되게 사용하는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늘의 하나님’입니다. 

모두 세 번 나옵니다. 
느1:4절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오늘의 말씀인 2장 4절에도 나옵니다. 
그리고 느헤미야 2장 20절에도 나옵니다. 
“내가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리니........”
‘하늘의 하나님’이란 단순히 ‘하나님이 하늘(sky)에 계신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늘의 하나님’이란 하나님이 온 세상 만물의 주관자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높이기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기도 하시고, 죽이기도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하게도 하시고, 가난하게도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귀하게도 하시고, 천하게도 하십니다.
그분이 움직이면 모든 것이 움직입니다. 
그분이 움직이면 아닥사스다 왕도 움직이고, 그분이 움직이면 예루살렘도 움직이고, 그분이 움직이면 역사가 움직입니다.
모든 능력의 시작, 모든 변화의 출발이 하나님입니다. 

6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네가 몇 날에 다녀올 길이며 어느 때에 돌아오겠느냐 하고 왕이 나를 보내기를 좋게 여기시기로 내가 기한을 정하고.” 
결국 허락이 떨어졌습니다. 
아닥사스다 왕은 느헤미야로 하여금 예루살렘에 가도록 조치했습니다. 
누가 왕의 마음을 바꿨습니까?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의 마음을 바꾸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쏙 드는 것입니다.
“이제야 네가 나를 사랑하는 줄 알았노라.”
“이제야 네가 나를 신뢰하는 줄 알았노라.”
“이제야 네가 나를 경외하는 줄 알았노라.”
이렇게 되면 모든 것은 끝납니다. 할렐루야.
기도는 하늘의 조서
왕의 허락을 받은 느헤미야는 왕에게 한 가지를 더 요청했습니다. 

7절입니다. 
이 말씀이 중요합니다. (같이 읽자)
“내가 또 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거든 강 서쪽 총독들에게 내리시는 조서를 내게 주사 그들이 나를 용납하여 유다에 들어가기까지 통과하게 하시고” 
느헤미야는 지금 왕에게 ‘조서’를 달라고 부탁하고 있는 것입니다.
조서가 무엇입니까? 
느헤미야가 살았던 페르시아는 지금까지 세계에 나타났던 제국 중에서 가장 넓은 제국 중의 하나였습니다. 

지금의 그리스에서부터 인도까지 모두 127도에 이르렀습니다. 
그 모든 도는 각자 자치의 정치체제를 가졌습니다.
그래서 황제의 조서가 필요했습니다.
왕은 느헤미야의 요청대로 그에게 조서를 주었고, 그 조서는 느헤미야를 보호했습니다. 
어떤 때 그 조서는 가는 길의 통행 증명서가 되었습니다. 
어떤 때 그 조서는 이유 없이 체포되거나 구금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신변 보호서가 되었습니다. 

어떤 때 그 조서는 어떤 지역의 관리들에게 환영을 받는 고급 공무원신분증명서가 되었습니다.  
어떤 때 그 조서는 느헤미야를 예루살렘 총독으로 임명한다는 임명장이 되기도 했습니다. 
어떤 때 그 조서는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할 수 있는 건축 허가서가 되기도 했습니다. 
글자 그대로 왕의 조서는 느헤미야에게 만능의 열쇠였습니다. 
갖다 대면 대는 대로 열리는 열쇠였습니다. 

여러분, 기도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기도는 하늘의 조서입니다. 
기도는 전 세계를 통치하시는 하늘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땅에 사는 우리에게 내리신 권세 있는 영적 조서입니다.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창조의 권능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능력과 성령님의 변화시키시는 권세가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 기도의 조서를 내밀면 안 되는 일이 없습니다. 
기도는 우리가 가는 길을 안내하는 영적 통행 증명서입니다. 
기도는 세상의 죄와 악으로부터 보호받는 하나님의 신변보호서입니다.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명하는 자녀 증명서입니다. 
기도는 사탄을 물리치는 영적 권세입니다. 

요한복음 16장 24절 말씀입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내 이름으로”
‘예수 이름’은 성경에 100번이나 나옵니다. 
모든 문제는 예수 이름의 열쇠로 풀립니다.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면 육체의 질병이 낫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면 마음의 상처가 치유됩니다.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면 귀신이 물러갑니다. 
예수 이름으로 축복하면 축복을 받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용서를 구하면 용서를 받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면 자녀들이 복을 받습니다. 
예수 이름의 기도는 만능입니다. 
우리는 이런 기도의 권세를 누리면서 살아왔습니다.

복음성가 -날 구원하신 주 감사

다음 주일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는 맥추감사절의 메시지는 ‘잃어버린 단어인 감사를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감사 중에서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기도 응답에 대한 감사를 회복해야 합니다.
이제까지 우리는 너무도 많은 기도 응답을 받고 살아왔습니다.
하나님의 기도응답이 아니면 어떻게 이런 축복된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지난 부흥성회 때 우리는 강사님으로부터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진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100세에 낳은 아들, 이삭을 바치라고 한 것도 아브라함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반복하여 물으신 것도 베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사탕 한 봉지를 사주고, “할아버지에게도 하나 줘야지.”하고 입을 벌리는 것은 손자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 절기를 통해 우리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 하십니다.
정성스럽게 여러분의 사랑을 준비하십시오.
그것은 영적인 자주색 밴드가 될 것입니다.
마음이 담긴 감사예물을 준비하여, “주님, 저가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는 줄 알죠?”라는 고백을 드리는 교우들이 되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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