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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6.25] 전쟁의 주관자 (삼상 17:4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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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주관자 (삼상 17:45-49)


올해는 6.25 동란이 발발한지 61년째 되는 해입니다. 6.25 전쟁은 우리민족에게 엄청난 상처를 남겼습니다. 6.25동란으로 인해 불에 탄 교회가 2,122개, 총살을 당하거나 납치된 목사가 523명이나 됩니다. 불에 탄 가옥이 60만 채, 미망인이 20만 명, 전쟁고아가 10만 명, 국군전사자 149,005명, 국군실종자 132,256명, 유엔군 전사자 37,936명, 인민군 전사자 294,000명, 중공군 전사자 184,000명이 희생되었습니다. 전사자 합계가 797,197명이나 됩니다. 무고한 대한민국 민간인 사망 및 학살이 373,589명이나 됩니다. 

60년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전쟁의 상처는 아물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비무장 지대의 넓이는 여의도의 334배로 2억 9,760만평이나 됩니다. 그곳에 매설된 지뢰가 100여만 개로 성인의 열다섯 걸음마다 한 개씩 매설돼 있는 셈입니다. 1개당 값이 25달러이며, 그 지뢰를 제거하는 비용만도 1개당 300~1,000달러가 소요된다고 합니다. 통일 후 지뢰 제거 비용만도 무려 100억 달러가 예상된다고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로버트 슐러(Robert Schuller) 목사는 말하기를“깊은 고난의 상처가 없이 위대한 인물이 되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개인에게 깊은 상처가 있을수록 위대한 인물이 되는 것처럼, 민족과 국가도 억압과 박해와 고통이 있을수록 강한 민족이 되는 것을 역사를 통해서 잘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는 거의 전쟁의 연속입니다. 그들은 지금도 전쟁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전쟁의 상처 속에서 이스라엘의 영광을 찾는 민족이 되고 있습니다. 

네덜란드에는 콘크리트로 든든히 쌓은 제방을 볼 수 있습니다. 한때 그곳의 제방이 무너져 수십만 명이 희생을 당한 적이 있었는데, 그 후 다시는 그런 희생이 나지 않도록 그 제방을 콘크리트로 튼튼하게 쌓아올렸다고 합니다. 

6.25 전쟁의 상처를 상기(想起)하면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에 대해 생각하고자 합니다. 
一. 힘의 소중함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민족이 왜 일본에게 침략을 당했습니까? 우리가 왜 북한 공산주의자(共훌主義)들에게 침략을 당해 비극을 겪어야만 했습니까? 그것은 우리에 게 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민족이 이만큼이라도 평화와 번영을 누리며 살아가게 되는 것은 그동안 힘을 길렀기 때문입니다.

인류 역사를 파국으로 몰아넣는 데에는 세 가지 요인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 사회의 종교적, 도덕적 타락이요, 둘째, 끊임없는 전쟁이요, 셋째, 계속되는 천재지변이라고 합니다. 

구약성경에 나타난 이스라엘 백성의 전쟁기사를 볼 때 그들이 전쟁에서 패했던 원인은 언제나 하나님을 섬기던 신앙의 타락이요, 도덕의 타락이요, 인격의 타락 때문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9세기, 러시아에는 약 9천만 명의 크리스천이 있었습니다. 신부들의 수만 해도 6만 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4만 5천명 밖에 되지 않는 공산주의자들에게 패하고 말았습니다. 그 까닭은 그들의 종교가 형식만 남아 신앙적인 생명을 잃어버리고 무기력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영국(英國)이 도덕적, 종교적으로 타락했을 때에 감리교의 존 웨슬리 목사가 신앙과 교회의 갱신운동을 통하여 영국을 구출해냈습니다. 영적인 힘을 길렀기 때문에 무혈혁명(無血華命)으로 영국을 구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민족 공통체가 유지 되려면 세 가지 요소가 꼭 필요한데, 첫째는, 그 나라의 군사력이 강해야 하고, 둘째는, 군사력에 부응하는 경제력이 있어야 하고, 셋째는, 통치자와 국민간의 신뢰하는 힘이 강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라의 안정을 위해 국방력, 경제력, 민족의 단결력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어느 정도의 군사력도 확보하고, 경제적인 기적도 일으켰습니다. 문제는 서로의 신뢰성을 상실한 것입니다. 하나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월드컵 경기 때와 같이, IMF때 금모으기에 동참했을 때와 같이 단결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지금의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을 함락시킬 때에, 그들은 돌 하나 던지지 아니하고 단결된 신앙의 힘으로 성 주위를 돌기만 했습니다. 순결한 마음으로 하나가 되었을 때 그 성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오늘 본문인 사무엘상 17장 47절의“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는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나라는 지정학적으로 세계열강들의 틈바구니에 있어서 국방이나, 경제적인 측면을 볼 때 외세의 영향에 매우 취약합니다. 우리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또 다른 힘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의 힘입니다. 

어린소년 양치기 목동 다윗이 블레셋의 골리앗 장군을 물맷돌로 하나로 죽이고 나라를 건졌습니다. 그 힘은 사람의 지식이나, 군사력이나, 경제력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순수한 믿음의 힘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신 힘을 의지한 다윗은 시편 18편 1절~3절에 고백하기를“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내편에 계셔서 내 힘이 되시면 누구도 해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사람의 힘이 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의 힘이 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의 힘이 되십니다. 전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이러한 사람에게 힘이 되셔서 승리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二. 역사의식의 소중함을 알 수 있습니다. 

유태인들은 3천 년 전에 행해졌던 유월절을 오늘날도 철저히 지키고 있습니다. 애굽에서 해방된 날을 기념하는 유월절이 되면 그들은 쓴 나물을 먹으며 광야에 나가 스스로 고생을 경험하면서 3천 년 전 출애굽 때 조상들의 고난을 지금도 생생하게 체험하고 있습니다. 해외여행 중에 있는 유대인이 유월절을 맞게 되면 호텔베란다에 초막을 짓고 거기에서 잠을 자며 유월절을 지킵니다. 바다를 항해하는 유대인이 유월절을 맞게 되면 배 갑판에 초막을 짓고 거기에서 기거하며 유월절을 지킵니다. 이것이 바로 유대인의 종교 교육이요, 유태 민족이 신앙을 계승해 나가는 역사의식입니다. 

미국 하와이의 진주만에는 제2차 세계대전 때에 일본군의 폭격으로 격침당한 전함 아리조나호의 굴뚝 위에“진주만을 기억하라(Remember the Pearl Harbor)”라는 문구(文句)가 써놓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곳에 기념관을 세워서, 1천 5백 명의 전사자의 이름을 새겨 놓고 역사적 교훈을 얻고 있습니다. 

독일의 뭔헨 근처에 있는 다카오 유태인 수용소에는, 6백만 명이라는 엄청난 수의 유태인이 학살당했던 치욕의 수용소가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 곳에는 독일의 청년들이 연일 줄을 지어 자기 조상들의 수치를 보면서, 그런 일이 다시는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역사적 교훈을 얻고 있습니다. 

또한 독일의 베를린 중심가에 2차 세계 대전 때 폭격을 당해 부서진 흉물스러운 카이젤 빌헬름 1세 추모예배당이 있습니다. 그들은 이 건물을 헐지 않고 보존하면서 옆에 새로운 예배당을 지었습니다. 그러면서 전쟁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일본의 동경대학은 60년대 후반 좌익 학생들의 데모로 말미암아 본관이 불타 버렸습니다. 그 때문에 2년 동안이나 학생을 모집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불타 버린 건물을 수리하지 않고 그대로 보존하여 역사의 교훈을 삼고 있습니다. 역사의 교훈을 얻지 못하는 백성은 비극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요즘 우리사회에는 지나친 민족주의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통일에 미국이 걸림돌이 된다고 하며 미군철수를 외치고 있습니다. 6.25 동란 때 유엔군 4만여 명이 이 땅에서 피를 흘리며 죽었습니다. 그들이 흘린 피의 거름위에 오늘 우리들이 자유와 번영을 누리고 있습니다. 이토록 고마운 사람들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그들 때문에 통일이 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맥아더만 아니었다면 이 나라는 6.25때 통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맥아더 장군의 동상까지 끌어내리려하고 있습니다. 
공산주의를 경험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공산주의에 대해 치를 떨고 있습니다. 그 많은 탈북자들이 왜 생명을 걸고 국경을 넘었겠습니까? 공산주의의 몰락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제 이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분단국가가 우리나라입니다. 통일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적화통일은 안 되지 않습니까? 공산주의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의 사상입니다. 그들은 다 패망하고 이제 마지막 남아 발악하고 있는 곳이 북한입니다. 

역사를 잊으면 안 됩니다. 역사를 통해 나아갈 삶의 방향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계속하여 출애굽의 역사를 잊지 말라고 권고하셨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유대인들은 유월절을 잊지 않고 철저히 지키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나치로부터 600만 명이 학살을 당한 참혹한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텔아비브까지 도로 양편에 600만 구루의 종려나무를 심어놓았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예루살렘에“육백만 학살 추모관(Yad Vashem)”을 세워두고 유치원 어린이들 때부터 이곳을 찾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결코 6.25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공산주의의 국가들의 패망을 잊어서도 안 됩니다. 

三. 전쟁은 신앙의 교훈을 줍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살펴보면 구약 시대에는 전쟁의 교훈을 반드시 신앙의 교훈으로 삼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왜 전쟁을 치러야만 했고, 왜 포로가 되어 70년 동안 노예생활을 해야 했느냐를 깊이 깨달아 신앙의 교훈으로 삼은 것입니다. 
6.25 전쟁이 일어나자 수백만 명의 북한 형제들이 오직 자유만을 찾아서 남쪽으로 내려왔습니다. 비록 굶어 죽을지언정 사람대접을 받고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며 살기를 원해 월남한 모든 사람들의 신앙의 교훈을 잊으면 아니 됩니다. 역사의 교훈, 신앙의 교훈을 분명히 볼 줄 아는 지혜가 절실히 요청되는 때입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 천황이 연합군에 대한 항복문서에 조인할 때 맥아더 원수는 이렇게 얘기했습니다.“이 사실은 정치적 문제도, 경제적 문제도, 군사적인 문제도 아니다. 이것이야 말로 신학적인 문제이다.”이 말은 일본 패전의 배후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고 신앙적인 교훈이 있었다는 사실을 지적한 말입니다. 일본 천황이 자신을 신(神)이라고 말할 때에 맥아더 원수는, 자기는 신과 대화할 자격이 없다고 했습니다. 결국 그는 천황이 스스로 신이 아니 라고 확증하는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천황과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세2차 세계대전 중에 프랑스군이 독일군에게 참패를 당하자 29만 명의 영국 지원군이 도버 해협을 건너 유럽 대륙에 상륙 작전을 개시했습니다. 그러나 히틀러의 독일군이 강력하게 저항을 하는 바람에 영국군은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위기일발의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이 소식을 들은 영국의 조야(朝野)는 마음과 뜻을 합해서 하나님께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영국 국민은 하나가 되어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독일군이 작전을 개시하려던 바로 그 곳에 큰 폭풍우가 일어나서 독일군은 작전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 사이에 영국군은 무사히 도버 해협을 건너 전세를 가다듬어서 다시 독일군을 무찔렀습니다. 

이는 모두 오늘 본문인 사무엘상 17장 47절의“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예나 지금이나 동일한 능력을 나타내는 증거입니다.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과의 6일 전쟁 때에 이스라엘은 3차에 걸친 전쟁을 모두 승리로 이끌었지만 마지막 4차 전쟁에서 패하고 말았습니다. 미국의 전 국무장관 키신저는 이것을 두고 말하기를 이스라엘이 패한 원인은 교만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경제적인 성장을 이룩했다고 해서 교만해서는 아니 됩니다. 겸손하게 역사의 교훈을 깨달아 하나님을 더욱 잘 섬겨야 하겠습니다. 

중동(中東)의 어떤 나라에서 왕궁을 짓기 위해 프랑스에서 아주 큰 유리를 수입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운반도중 깨져 쓸모없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 때 한 지혜로운 사람이 유리를 모두 주워 모으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깨어진 유리 조각들을 모자이크해서 불이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완성되었을 때, 태양이 떠올라 그 모자이크 유리에 비취니까 왕궁의 문이 다이아몬드처럼 더욱 찬란하게 빛났다고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전쟁과 혼란의 상처를 거울삼아 신앙과 자유와 평화를 굳게 지켜야 하겠습니다. 이를 해치려는 악한 세력들의 위협이 상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본문에 말씀하시기를 평화와 승리는 여호와께 속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영적 가정인 교회의 평안과 부흥을 위해 더욱 하나님을 잘 섬겨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가정과 자녀들을 위해 우리는 하나님을 더 잘 섬겨야 하겠습니다. 
이 나라의 평안과 번영을 위해 더욱 하나님을 잘 섬겨야 하겠습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편에 계셔서 이 나라와 우리 가정에 넘치는 은혜와 복을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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