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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의 소문이 퍼지는 교회(2) (살전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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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님 계세요? 어느 목사님이 집사님댁에 심방을 갔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문을 여러 번 두드리면서 집사님을 불렀는데도 아무 대답이 없는 겁니다. 귀를 대고 들어보니 물소리도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사람이 있는 것 같은데 집사님이 나오지 않자, 조금 기다리다 말씀 한 구절을 적어 두고 왔습니다. 
무슨 말씀을 적어두었을까요? 계3:20절 말씀을 적어놓고 왔습니다. 
볼찌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고 주일이 되어 그 집사님이 오셨습니다. 예배 후에 목사님이 집사님 며칠전에 제가 집사님 댁에 갔었는데 그때 집에 안 계셨나요? 묻자 그 집사님이 말합니다. 그때 집에 있었습니다. 아니 그런데 왜 나오시지 않으셨나요? 묻자 그 집사님이 대답합니다. 창3:10절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창3:10절을 다함께 찾아볼까요?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알고 보니 그 집사님이 샤워중이라 목사님을 맞이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계3:20절 말씀을 붙여놓고 오신 목사님이나 창3:10절로 재치 있게 대답한 집사님에게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삶에 녹아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가까이 했으면 대화중에 대답을 말로 하는 게 아니라 성경 본문을 대면서 할 수 있을까요?

뭐 좀 우스운 이야기입니다만 적어도 우리 모두가 늘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됩니다. 

우리는 지난 5월27일에 그렇게 말씀을 사모하였던 교회가 데살로니가 교회였음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 우리는 믿음의 좋은 소문을 각처에 퍼트렸던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어떻게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트리는 훌륭한 믿음의 교회를 이룰 수 있었다고 했습니까?
첫째, 6절 말씀처럼 많은 환란가운데서도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는 교회였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말씀을 기쁨으로 받는 것이 우리의 믿음 생활에 있어 가장 기초가 되는 중요한 것임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사모함으로 참여할 때 하나님께서 믿음의 좋은 소문이 퍼질 수 있는 교회로 만들어 가신다는 사실을 말씀드렸습니다.  

둘째, 데살로니가 교회는 말씀을 받는 교회 였을 뿐만 아니라 그 말씀의 씨앗이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로 열매를 맺는 교회였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말씀을 듣는데서 멈추었다면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의 좋은 소문을 퍼뜨리는 교회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훌륭한 믿음의 교회는 말씀을 듣는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말씀의 열매를 맺는 교회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나요?
3절 말씀에서 말씀하는 것처럼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열매를 맺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지난 시간 믿음의 역사에 대하여 말씀을 드렸습니다. 
진정한 믿음은 주여 믿습니다라고 고백하는데서 끝나는 믿음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은 거기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백하는 그대로 움직이고 역사할 때 그 믿음이 의미 있는 믿음임을 말씀드렸습니다. 

여러분, 자동차는 가만히 있을 때는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아무리 수 천만원을 호가하는 고급 승용차도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어서는 자동차로서의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자동차는 전진해 나갈 때 의미가 있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정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전진하며 움직이는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은 두 번째 사랑의 수고와 세 번째 소망의 인내에 대하여 함께 살펴보기 원합니다. 3절을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바울은 믿음에 있어 역사가 중요한 것임을 말하면서 동시에 사랑에 있어 수고가 중요한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믿음이 주여 믿습니다라고 하는 고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진정한 사랑 역시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는 그 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에게 강조하여 말씀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은 사랑하는다는 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며 진정한 사랑에는 땀 흘리며 애를 쓰는 수고가 필요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날 일기예보에도 없던 갑작스런 비가 쏟아졌습니다. 
갑작스런 비를 피하기 위해 사람들이 처마 밑으로 몰려들었습니다. 
빗방울이 더 굵어지자 청년 한명이 그리고 할아버지 한 분이 처마 밑으로 들어왔고 중년의 아저씨가 들어왔습니다. 한 아주머니가 비좁은 틈새를 삐집고 들어왔습니다. 처마 밑은 낯선 사람들로 금새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서로를 멀뚱멀뚱 쳐다보며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는데 비가 금새 그칠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뚱뚱한 아줌마 한명이 처마 밑으로 뛰어들어왔습니다. 큼직한 엉덩이로 밀어대자 제일 처음에 왔던 한 청년이 얼떨결에 빗속으로 튕겨져 나갔습니다. 사람들은 모두들 모른척 그 청년을 외면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한 할아버지가 한 마디 했습니다. 젊은이 세상은 다 그런거라네.. 그 청년은 물끄러미 그 할아버지를 쳐다보더니 길 저쪽으로 비를 맞으며 뛰어갔습니다. 

한 사오분 지났을까? 아까 그 청년이 비에 흠뻑 젖은 채로 비닐 우산 다섯 개를 옆구리에 끼고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하나씩 건네주며 말했습니다. 
세상은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그 청년은 다시 비를 맞으며 저쪽으로 사라졌습니다. 사람들은 청년이 준 우산을 들고 각기 제 갈길로 총총히 갔지만 세상은 다 그런거라며 청년에게 말한 할아버지만은 차마 그 우산을 들고 갈 수 없었습니다. 내가 청년보다 나은 것은 나이밖에 없네 그려 그리고는 우산을 바닥에 놓고 장대비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그 마지막 우산은 자기 것이 아니라 아까 그 청년의 것이기에... 

감동적인 일화가 아닙니까? 여러분, 자기밖에 모르고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 앞에서 세상은 그런게 아니라고 자신 있게 보여줄 수 있는 저와 여러분으로 살아가야 그것이 사랑의 수고가 있는 우리의 삶이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수고가 따르지 않는 사랑이 어떻게 사랑이 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동시에 이웃을 섬기는 것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동시에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마태복음 22장에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이 두 가지가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 다시 말해 말씀이 가르치는 모든 것이요 핵심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안디옥 교회 성도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하나님을 위해 수고하는 일에 게으르지 않는 복된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주님의 몸 되신 교회를 사랑하는 것이며 몸된 교회 각 지체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바꾸어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장로교의 창시자 칼빈은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라고 한다면 교회는 우리의 어머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믿음의 소문이 퍼졌던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몸 된 교회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교회였습니다. 그랬기에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지는 훌륭한 교회를 이룰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안디옥 교회를 누가 사랑해주겠습니까? 이 교회는 다른 사람의 교회가 아니라 우리 교회 바로 내 교회가 아닙니까? 내가 내 교회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누가 우리 교회를 와서 사랑해줄 수 있겠습니까? 누가 우리 교회를 위해 와서 사랑의 수고를 해줄 수 있겠습니까? 
또한 누가 우리 교회 성도들을 누가 사랑해주며 누가 우리 교회 목사님을 사랑해주며 누가 우리 장로님을 사랑해주며 누가 우리 교회 집사님들을 사랑해주겠습니까? 우리가 우리 교회를 사랑하지 않으면 우리가 우리 교회를 위해 사랑의 수고를 하지 않는다면 어느 누구도 우리 교회를 사랑해주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교회를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우리가 교회를 위해 사랑의 수고를 아끼지 않는 만큼 우리 교회는 믿음의 소문이 퍼지는 주님 앞에 칭찬받는 훌륭한 믿음의 교회를 이루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올 한 해 주님께서 여러분 각자에게 주신 직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여러분을 믿고 교회를 사랑함으로 수고하라고 맡겨주신 천사도 흠모하는 거룩한 직분입니다. 우리 각자가 맡겨주신 각각의 직분에 맞도록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면 우리교회는 분명 믿음의 좋은 소문을 퍼뜨리는 복된 교회가 될 것입니다. 때로는 힘들고 때로는 지칠 때가 있겠지만 몸 된 교회를 위해 사랑의 수고를 더욱 아끼지 않는 신실한 믿음의 일꾼들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울러 우리 안디옥 교회 성도들은 두 번째로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이웃을 사랑하여서 이웃을 위해서 사랑의 수고를 아끼지 않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길 바랍니다. 이 이웃이라는 말속에는 가깝게는 우리의 가족으로부터 시작하여 우리의 친척들과 이웃 사람들 그리고 이 지역사회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포함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가족을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에이.. 목사님 세상에 가족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도 있나요? 예.. 다들 각자의 가족들을 사랑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보다 더욱 사랑해주어야 할 사람들이 바로 우리의 가족들입니다. 
이것은 제 말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딤전5:8절입니다. 
우리는 많은 순간 가장 사랑해주어야 하고 당연히 사랑해주어야 할 가족들을 사랑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믿음의 좋은 소문이 퍼지는 교회가 되기 위하여 각 가정이 서로 사랑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행복하고 아름다운 가정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내는 남편을 사랑하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자식은 부모를 사랑하고 부모는 자식을 사랑할 때 그 가정이 바로 사랑의 가정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서로를 사랑함으로 각 가정이 바르게 서게 된다면 우리 교회가 바로 든든히 설 수 있는 기초가 마련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건강한 교회는 바로 건강한 가정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좋은 소문이 퍼지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믿음의 좋은 소문이 퍼지는 가정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안디옥 교회 각 가정마다 좋은 소문이 퍼지는 모든 사람들이 다 부러워하는 행복하고 아름다운 가정들이 될 수 있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처럼 서로를 사랑하는 가정에서부터 시작하여 우리 안디옥 교회는 이제는 가까이에 있는 이웃으로부터 저 멀리 세계 모든 민족까지도 사랑을 품고 사랑하기 위해 수고하는 교회로 발전되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사랑의 수고를 나누는 만큼 교회는 부흥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전 교회적으로 일일 일선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엄청나고 위대한 일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그저 하루에 한 가지 우리 가정과 이웃과 교회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선행을 실천해보자는 것입니다. 

띠끌모아 태산입니다. 우리의 그런 작은 선행들이 사랑의 수고가 모여 반드시 큰 사랑의 산을 이룰 것입니다. 우리 가족들이 변화되기 시작하고 우리 이웃들에게 칭찬받게 될 것이며, 우리 교회는 이 죽전과 광교 더 나아가 이 대한민국에서 소문난 교회가 될 것입니다. 

우리 매일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하루에 한 가지의 선한 일을 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의 그 선행을 통하여 누군가가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만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선행과 사랑의 나눔속에서 분명 여러분의 가정이 우리 안디옥교회가 좋은 소문을 퍼뜨리는 복된 믿음의 교회가 될줄로 믿습니다.  

다음으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소망의 인내가 있는 교회였습니다. 
늘 말씀드리지만 신앙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단거리 달리기가 아닙니다. 10초안에 1.2등이 결판나는 100미터 달리기가 아닙니다. 인간의 한계에 도전할 만큼의 긴 거리를 뛰어야 하는 마라톤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 무엇보다 인내가 필요한 것입니다. 

히10:36절을 보면 우리에게 인내가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한 것을 받기 위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에게 인내가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축복과 은혜와 상급과 면류관을 받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죽을 힘을 다해 마라톤을 뛰어서 일등으로 들어왔는데 수고했어.. 그렇게 말하면서 어깨나 툭 쳐준다고 한다면 어떤 사람이 죽을힘을 다해 마라톤을 하겠습니까? 죽을 힘을 다해 42.195km를 뛰는 이유는 그저 땀 흘리고 고생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 마라톤을 끝내고 나면 받게 될 상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에 인내가 필요한 것은 그냥 참고 견디는 것으로 끝나기 위함이 아닙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고통스럽고 눈물 나고 답답하고 한숨 나도 우리가 이 신앙의 경주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그것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인 줄로 믿습니다. 
그러하기에 지금 우리가 당하는 고난은 장차 우리가 누리게 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견뎌낼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없는 세상 사람들도 쥐 구명에도 볕들날이 있다고 말하며 삽니다. 하물며 세상 모든 만물을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며 사는 우리가 영원히 망하겠습니까? 영원히 안되겠습니까? 영원히 실패이겠습니까? 
절대 그럴리 없습니다. 

제임스 와트라는 사람이 그린 소망이라는 유명한 그림이 있습니다. 이 그림의 내용을 보면 지구가 있는데 그 지구 위에 어떤 남루한 옷을 입은 한 소녀가 앉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소녀가 거기서 바이올린을 켜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바이올린 줄을 가만히 보면 그 줄들이 가닥가닥 끊어져 있습니다. 오직 하나의 줄만이 남아있는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는 것입니다. 
줄이 정상적으로 모두 있어도 바이올린을 연주하기 어려울텐데 가닥가닥 끊어지고 단 한 개의 줄밖에 남지 않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게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그러나 그 하나 남아있는 줄을 가지고도 그 남루한 소녀는 포기 하지 않고 계속하여 열심히 바이올린을 켭니다. 그것이 소망이라는 이름의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화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것이 다 끊어져버렸다고 생각되는 순간이 있으십니까? 그래서 나 혼자라고 생각되는 순간이 있으십니까? 
모든 줄이 다 끊어져 버린 것 같아 아무 소망없어 보이는 때라 할지라도 우리에게 영원히 끊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은혜의 줄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줄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소망입니다. 
아무리 암담하고 답답한 최악의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의 줄이 끊어지지 않았기에 또 다시 인생의 바이올린 연주를 시작할 수 있는 그것이 바로 우리의 소망이며 행복인줄로 믿습니다. 
오늘도 그 하나님이 끊을 수 없는 사랑의 줄로 우리를 붙들고 계심을 기억하시고 용기와 소망을 얻을 수 있는 복된 성도들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 사람들은 미래를 생각지 않고 지금을 위해 삽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을 위해 사는 자가 아니라 미래를 위해 사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지금이 나의 전부라고 생각지 말기 바랍니다. 지금은 나의 미래를 위한 하나의 과정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의 나를 통해 반드시 하나님이 원하시는 미래의 나를 만들어 가실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없이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소망을 가진 우리의 특권이며 행복입니다. 

얼마 전 신문에 대서특필된 기사입니다. 
연세의대 강남 세브란스병원 암센터 이희대 소장입니다. 
그 분은 우리나라 최고의 암 전문가입니다. 이 분이 금년 56세이신데, 암에 걸렸습니다. 대장암입니다. 6년 전에 걸렸습니다. 남의 암을 고치는데 유명한 분이 정작 자신이 암에 걸린 것을 몰랐습니다. 결국 암 4기가 되었습니다. 
6년 동안 11번이나 재발되어 5번이나 대수술을 하고 뼈도 깎아내고, 
간과 골반뼈까지 이미 암이 전이되어 버렸습니다. 
방사선 치료도 여러 번 받고, 몇 개월씩이나 수많은 암환자들이 당했던 고통을 
이제 자기 자신이 그 고통을 다 당했습니다. 

그래도 이 분은 지금 끄덕 없다고 말씀합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의학적으로는 살 수 없다고, 한 달도 살기가 어려운데 
이 분은 암을 가지고도 날마다 암을 치료하고 있습니다. 
매일 수술을 해주고 있습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전국에 소문이 났습니다. 
암환자가 암을 고친다고 해서 전부 찾아온다고 합니다. 
암환자들이 여기만 오면 맥을 못춘다고 합니다. 
어떤 환자들이 와서, ‘전 암에 걸려서 네 번 재발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나는 열한 번 재발했습니다. 열한 번!’ 이러니까 다른 사람들이 오히려 용기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이 분은 어떻게 이런 삶을 살 수 있었을까요? 
이 분은 항상 예배하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신앙이 있다는 것이 신앙이 없다는 것과 무슨 차이를 보일 수 있는 것입니까? 
신앙이 있으면 절대로 암에 걸리지도 않고 사업에 손만대면 대박이 나고 공부만 했다하면 서울대에 들어가는 것을 보장 받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우리에게 신앙이 있다고 하는 것은 모든 고난으로부터 면제받는 특권, 뭐 든지 손만대면 대박나는 특권을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왜 신앙을 가져야 합니까? 왜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까? 그것은 그 최악의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우리는 소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버티어 낼 수 있는 인내를 선물로 받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소망의 인내를 통해 수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믿는 것은 어떤 고통도 고난도 질병도 실패도 절망도 뚫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놀라운 특권이요 행복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잘 믿을 수 있을때 잘 믿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사업이 잘 되고 애들이 승승장구하고 늘 건강할 때 하나님을 믿는 것은 잘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정말로 잘 믿는 것은 잘 믿을 수 없을때 잘 믿는 것입니다. 
욥을 보십시오. 욥은 가진 것을 다 잃어버리고 생떼같은 자식들이 다 죽고 온 몸에 피부병이 들어 기왓장으로 진물나는 몸을 긁으면서도 하나님을 향하여 정금과 같은 인생, 보석과 같은 인생으로 인도해주실 것을 믿는 믿음의 고백, 소망의 고백을 드리면서 인내했습니다. 결국 그의 소망의 인내는 그의 인생의 말년 갑절의 축복을 가져오고야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잘 믿을 수 없는 순간, 절망의 순간, 좌절의 순간 낙심의 순간이 찾아오거든 그때 바로 하나님을 잘 믿을 수 있음을 하나님과 사람들앞에 보여주십시오. 하나님은 그 모습을 보시고 반드시 여러분의 생애에 그 소망의 인내가 갑절의 축복, 보석과 같은 인생으로 빛나도록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시간과 이번 시간 두 주에 걸쳐 믿음의 좋은 소문을 퍼뜨렸던 데살로니가 교회를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어떤 교회였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태도가 남달랐습니다. 많은 환란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는 교회였습니다. 
우리 안디옥 교회가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예배를 사모하는 복된 믿음의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두 번째 이 교회는 말씀을 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말씀의 씨앗이 열매를 맺는 교회였습니다. 어떤 열매를 맺었습니까? 
믿음, 사랑, 소망의 열매를 맺는 교회였습니다. 
그 열매는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가 나타나는 신실한 믿음의 교회였습니다. 우리 안디옥 교회 저와 여러분의 삶 속에 모든 성도들의 삶 속에 모든 가정 가정 속에서 사업장에서 이 믿음의 역사가 나타나길,  사랑의 수고가 나타나길 소망의 인내가 나타나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이로 말미암아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족들 그리고 우리 안디옥 교회가 이 악하고 어두운 시대속에 믿음의 좋은 소문을 퍼뜨리는 복된 성도요, 가정, 우리 교회가 될 수있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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