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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물 위를 걸어오신 예수님 (막 6:4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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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위를 걸어오신 예수님 (막 6:45-56)

오늘 설교의 주제는 물 위를 걸어오신 예수님입니다. 폭풍을 잠잠케 하신 예수님이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 5천 명을 비롯해 어린아이와 여자 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배부르게 먹이고도 12바구니가 남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자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세우자고 이야기하는 사람들까지 생겼습니다. 그만큼 예수님의 인기가 절정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인기가 절정에 오른 예수님의 행동이 특이했습니다. 제자들을 배에 태워 호수 건너편으로 보내고 자신을 만나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려보낸 후 본인은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예수님의 초점은 오직 하나님

예수님은 결코 자신의 인기와 사람들이 보내는 환호성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인기와 칭찬이 사람에게 가장 큰 약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누구든지 자신의 인기와 누군가에게 받는 칭찬에만 관심을 갖게 되면 목표를 잃어버립니다. 목표를 잃어버리고 오직 자신의 인기와 사람들의 칭찬에만 초점을 맞추는 순간 위기는 찾아옵니다. 예수님은 누구보다 이러한 상황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받으면 받을수록 하나님께 집중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곧 제자들을 배에 태워 호수 건너편 벳새다로 먼저 가게 하시고 사람들을 돌려보내셨습니다. 그들을 보내신 뒤 예수께서는 기도하려고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45~46절). 
마태복음 14장에서도 오늘 본문처럼 사람들로부터 예수님이 관심을 받게 되었을 때 날이 저물 때까지 혼자 계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행동을 보면서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세 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사람들의 인기와 환호성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의 관심은 오직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집중하는 방법은 바로 기도와 묵상입니다. 예수님이 사람들을 피해 홀로 산에 오르신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대중 속에서 살고 있지만 가끔은 대중을 피해 홀로 기도하고 묵상하는 기회를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갑자기 찾아온 위기 

셋째, 홀로 산에 올라 기도하고 묵상하고 계시는 동안 예수님의 관심은 무엇이었습니까. 배를 타고 호수 건너편으로 가고 있는 제자들이었습니다.

“밤이 되자 배는 호수 한가운데 있었고 예수께서는 혼자 뭍에 계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강한 바람 때문에 노 젓느라 안간힘을 쓰는 것을 보셨습니다. 이른 새벽에 예수께서 물 위를 걸어 그들에게 나아가시다 그들 곁을 지나가려고 하셨습니다”(47~48절).

제자들이 탄 배가 호수 한복판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돌풍이 불었습니다. 이스라엘을 방문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은 갈릴리 바다에는 걷잡을 수 없는 돌풍이 자주 분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지금이 바로 그 상황입니다. 갑자기 불어온 돌풍에 배가 방향을 잃고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산에서 기도하시던 예수님이 돌풍을 만나 우왕좌왕하는 제자들의 모습을 봤습니다. 제자들은 해질 무렵부터 이른 새벽까지 돌풍과 맞서 사투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힘이 들고 당황했을지 짐작이 됩니다.

순항하는 배가 갑자기 돌풍을 만나듯이 평탄하게 잘 살던 인생에 어느 날 갑자기 예기치 못한 위기가 찾아와서 그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갑자기 찾아온 위기 상황에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고 당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 위 걸어오신 예수님

우리에게 갑자기 불어 닥친 위기상황에 당황하고 힘들어하고 있을 때 예수님은 우리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사람들은 갑자기 위기가 찾아오면 착각을 합니다. ‘나는 혼자다’, ‘하나님은 나를 보고 계시지 않는다’ 등의 생각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자신이 혼자라고 생각하면 외롭고, 무섭고, 두려운 마음이 더 커집니다. 아마도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런 생각에 사로잡혔을 것입니다. 우리가 결정적인 위기에 빠지면 예수님은 그분의 강한 팔로 우리를 건져 주십니다.

제자들에게 갑자기 폭풍이 불어 닥쳐 배가 파선할 것 같은 위기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때가 새벽 3~4시경이었습니다. 산에서 기도하고 계시던 예수님이 위기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바닷가로 물위를 걸어서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왜 물 위를 걸어서 오셨을까요. 기적을 의도적으로 보여주시기 위해 그러셨을까요. 아닙니다. 그만큼 위기 상황에 놓여 있는 제자들을 구하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큰사랑을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물 위를 걸어오신 예수님을 본 제자들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예수님이 오셨다’라면서 반기는 반응이 아니었습니다. 물 위를 걸어오신 예수님을 보고 ‘유령이 아닌가’라고 생각할 정도로 굉장히 놀랐습니다. 제자들의 이러한 반응은 아마도 평소 그들이 가지고 있던 세계관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물 위를 걸어오신 예수님의 모습이 충격적이고 겁에 질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물 위를 걸어오시는 것을 본 제자들은 유령인 줄 알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들 모두 예수를 보고 겁에 질렸습니다. 그러자 곧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심하라! 나다. 두려워하지 말라.’ 그리고 예수께서 제자들이 탄 배에 오르시자 바람이 잔잔해졌습니다. 제자들은 몹시 놀랐습니다”(49~51절).

예수님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제자들에게 ‘안심하라! 나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얼마나 고마운 말씀입니까. 배가 파도에 휩싸일 만큼 큰 위기상황이 금세 해결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하신 말씀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51절에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의 배에 오르자 바람이 잔잔해졌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폭풍을 잔잔하게 하십니다. 제자들의 마음속에 있는 두려움과 공포와 위기도 한 순간에 날려버리셨습니다.

축복과 기적을 잊지 마십시오

제자들은 물 위를 걸어오신 예수님을 보고 놀랐고, 폭풍을 잔잔케 하시는 모습을 보고 또 놀랐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 5천 명을 비롯해 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배부르게 먹이고도 12바구니가 남은 기적을 본지 하루도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또 한 번 기적을 일으키자 제자들은 마치 기적을 처음 본 것처럼 깜짝 놀랐습니다. 왜 그럴까요.
아마 그것은 제자들의 믿음의 크기가 작아서 아닐까요. 이러한 모습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부어 주신 축복과 기적을 너무 쉽게 잊어버립니다. 당장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없거나 위기에 부딪히면 하나님이 나를 버렸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고 아우성입니다. 외롭다고 소리를 지릅니다. 자신은 혼자라고 말합니다. 머든지 이렇게 쉽게 생각하고 포기하려고 합니다.

영적 감각을 회복하십시오

“그것은 제자들이 예수께서 빵을 먹이신 기적을 보고도 아직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마음이 둔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52절).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을 방금 봤는데도 제자들은 왜 처음 본 것 마냥 놀랄까요.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다시 오셨는데도 왜 믿지 못할까요. 정말 이상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건너고 3일 정도 시간이 흐르자 그 일을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물이 없다고 아우성을 치면서 홍해 기적은 다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40일이 지나고 나서 먹을 것이 없다고 아우성을 쳤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시험에 드는 까닭은 하나님이 기적을 베푸시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그 기적을 쉽게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쉽게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지나온 과거를 돌이켜 보십시오.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컸습니까. 그 풍성한 은혜를 누리시지 않으셨습니까. 예수님이 우리를 절망과 위기 그리고 죽음에서 구원해 주신 큰 사랑을 쉽게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52절을 보면 제자들이 놀라는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말씀을 깨닫지 못한 까닭이요, 둘째는 영적 감각이 둔해졌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는 까닭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요, 영적 감각이 둔해졌기 때문입니다.

구름떼처럼 몰려든 사람들

예수님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게네사렛으로 오셨습니다. 그곳에 도착하니 엄청난 사람들이 예수님에게로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이 왔다는 소문에 그를 한번만 이라도 보기위해 또한 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병을 치유하기 위해 몰려 들렀습니다. 그렇게 몰려든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던지 마치 구름떼와 같았습니다.

“그들은 호수를 건너 게네사렛에 도착해 배를 대었습니다. 그들이 배에서 내리자 사람들은 예수를 즉시 알아보았습니다. 사람들은 온 지역을 뛰어다니며 예수께서 계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아픈 사람들을 자리에 눕힌 채 짊어지고 오기 시작했습니다”(53~55절).

여러분, 게네사렛에서 있었던 일을 상상해 보십시오. 얼마나 놀랍고 흥분되고 긴장되는 장면입니까. 예수님이 가신 곳마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도시든 농촌이든 할 것 없이 아픈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몰려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아프다고 호소하는 병의 종류도 정말 다양했습니다. 마음이 외로운 사람, 삶이 힘겨운 사람, 몸이 아픈 사람 등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증상을 호소하며 예수님에게 몰려들었고 예수님과 제자들을 따랐습니다.

간절함 되찾으십시오

예수님을 찾아 온 사람들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그들은 예수님의 옷자락이라도 만지고 싶어서, 그 얼굴이라도 한번 보고 싶어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찾아왔습니다. 예수님을 한번 만나기 위해 찾아 온 당시 사람들의 간절함이 우리에게도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에 와서도 오만가지 생각을 다하느라 예수님에게 집중하기가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직장 문제, 가정 문제 등으로 고민하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갈릴리 호수에 모인 사람들은 혼이 나간 사람처럼 예수님에게만 집중을 했습니다. 우리의 모습도 그들처럼 회복되어야합니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기적

제가 예수님을 처음 만난 1965년 경에 가장 많이 부른 찬송이 <나 어느 날 꿈속을 헤매며>입니다. 이 찬송을 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감격해 밤을 새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는 모든 생각을 잠시 멈추고 갈릴리에서 오신 그분,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봉사의 눈을 뜨게 하고, 귀머거리의 귀를 여시고, 문둥병자를 고치시고, 병든 자와 마음이 상한 자, 간음을 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을 위로하시는 예수님을 집중해서 바라볼 수는 없을까요. 오직 그분만을 바라봐야 합니다. 오늘도 그분은 여러분을 찾아오셔서 위로하시고, 여러분 안에서 기적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마을이든 도시든 농촌 할 것 없이 사람들은 아픈 사람들을 시장에 데려다 두고 예수의 옷자락이라도 만질 수 있도록 간청했습니다. 그리고 손을 댄 사람들은 모두 병에서 나았습니다”(56절).

할렐루야! 저는 여러분의 모든 병이 낫기를 축원합니다. 또한 새 능력을 가게 되길 바랍니다. 그렇게 새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지난주에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만 2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배부르게 먹이고도 12바구니가 남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위기에 빠진 제자들을 구하기 위해 물위로 걸어오셔서 파도를 잔잔케 하신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늘 주시기 원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은 지금도 영원히 변하지 않는 기적을 베풀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믿음 없이는 경험하지 못하는 기적

여러분,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기적을 경험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기적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자신이 행하는 기적을 알아차릴 수 있는 말씀과 영적 감각을 갖게 되길 원하십니다. 기적은 이성과 상식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오직 말씀의 지식과 영적 감각이 있어야만 기적을 볼 수 있습니다.

영적 원리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영적 원리는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게 할 뿐만 아니라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2마리로 2만 명을 먹이고도 12바구니가 남는 오병이어의 기적과 같이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기적들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복음이 들어온지 긴 역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예수님을 잘 믿는 민족으로 변한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전쟁을 겪으면서 밑바닥에 있던 우리나라가 지금은 어떠한 민족이 되었습니까.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 자체도 기적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실 것입니다

저는 2만 명이 넘는 사람을 먹이신 예수님, 물위로 걸어오신 예수님, 파도를 잔잔케 하신 예수님만이 우리 조국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새로운 민족으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세상은 어둡고 혼란스럽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성결한 민족, 깨끗한 민족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거짓말 하지 않는 민족, 성숙한 민족, 사랑하고 용서하는 민족, 예의바른 민족, 남을 도울 줄 아는 민족으로 변화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우리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시켜주실 것입니다. 이성과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지만 영적 감각의 시야로 보면 통일은 옵니다. 예수님은 우리 민족을 전쟁과 편 가름 없이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면서 폭풍 같은 38선을 아름다운 호수를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독수리처럼 비상할 것입니다

또한 저에게는 온누리교회에 청년들이 10만 명이 모이는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교회에 청년 10만 명을 보내주실 것입니다.

봄에 나무가 물이 올라 잘 자라듯이 청년들은 다음 세대의 우리 민족을 책임질 것입니다. 여러분 세계 선교가 가능할까요. 또한 세계 평화가 가능할까요. 가능합니다. 온누리교회가 아시아의 영혼들을 책임지고 구원해 낼 수 있을까요. 중국 13억, 인도 11억, 인도네시아 2억5천, 파키스탄이 1억8천, 방글라데시가 1억5천, 일본이 1억2천, 필리핀이 1억, 베트남이 9천만입니다. 이 엄청난 아시아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나서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가 그곳에 가서 복음을 전하기만 하면 됩니다. 아시아는 변할 수 있습니다. 아시아가 변하면 세계가 변합니다.

마지막으로 저에게는 온누리교회 성도들이 헌신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이것저것 따져보고 어딘가에 억눌려 두더지처럼 사는 인생에서 벗어나면 독수리처럼 하늘을 날며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이 날마다 베풀어 주시는 기적을 깨닫는 영적 감각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하용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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