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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으로부터 칭찬받는 성도 (고전 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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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으로부터 칭찬받는 성도 (고전 4:1-5)

모든 사람들은 칭찬을 받고 인정받는 것을 원합니다. 누군가로부터 칭찬을 받는다는 것은 정말 기분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욕을 먹거나 인정을 받지 못하면 아주 속상해 하고 낙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회에서 땀 흘리며 열심히 일할 때 잘한다고 칭찬해 주면 즐겁게 더 열심히 일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했는데 교인들이 괜히 트집 잡고 비난을 하면 그때는 정말 일하고 싶은 마음이 싹 달아나 버립니다.  

이처럼 우리는 신앙생활 속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느냐가 관심이 아니라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에 더 관심을 두고 일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람들에게 칭찬과 인정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칭찬과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성도 간에 자신들이 추종하는 지도자들이 최고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자신들이 추종하는 지도자들을 자랑하는 우월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자신이 추종하는 지도자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과 칭찬받는 것에 더 예민한 반응을 보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잘못된 생각이 결국 파당을 더욱 부추기며 교회분쟁의 원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이러한 잘못된 생각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5절 후반절 말씀에 보시면 이렇게 말합니다. “그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이 말은 곧 사람들에게 칭찬받기 보다는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 교회 모든 성도님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은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칭찬받는 삶이 될 수 있습니까? 

1. 하나님으로부터 칭찬 받는 성도는 자신의 정체성이 분명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1절에 보시면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여길지어다’는 말은 ‘자기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간주한다,  결론짓다, 결정한다.’는 말로서 이미 우리는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결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서 “우리”라는 복수형을 사용하여 자신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리스도의 일꾼이며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라고 강조하였습니다. 여기에서 표현된 우리 속에는 당시 분파의 추종자가 되는 아볼로나 베드로, 그리고 자기 자신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어떤 존재냐’ 라는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우리 모두가 다 같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라고 강조하는 것은 성도들에 의해 추종을 받고 인정과 칭찬을 받으며 지도자로서의 인간적인 권위를 내세우며 높임을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님께로부터 받은 사명, 하나님의 비밀을 전하는 복음전도자의 위치를 벗어나지 말고 자신의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한다는 권면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그리스도의 일꾼입니다. 이 정체성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일꾼”은 어떤 의미의 말입니까? 

우리말 성경은 여기서 “일꾼”이라는 말로 다소 점잖게 번역을 했습니다. 그러나 본래 원문의 “후페레테스”라는 단어로 배 밑바닥에서 노를 젓는 노예를 뜻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노예선의 가장 밑바닥에서 노를 젓는 노예가 무엇을 내세우며 무엇을 자랑할 수 있겠습니까? 자기의 의사와는 상관이 없이 "저어라" 하면 무조건 젓습니다. "멈춰라" 하면 멈춰야 합니다. 배가 지금 어디로 가는지는 모릅니다. 알 필요도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노를 저어서 내게 주어질 보상이 무엇일까? 얼마나 될까?"라는 생각은 꿈에도 가질 수 없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이야기 하는 일꾼의 의미입니다. 

결국 이 말은 그리스도의 일꾼된 우리는 우리 마음대로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고, 주인 되신 그리스도께서 하라는 대로 살아야 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나를 주장하시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높임을 받는 존재가 아니라 섬기는 존재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맡은 자’란 ‘청지기’의 의미입니다. 청지기는 그 집의 모든 것을 맡아서 세밀하게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비밀을 관리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이란 바로 ‘복음’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자녀가 되는 권세이며,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놀라운 권세와 열쇠를 관리하는 청지기들입니다. 

비행기를 타면 스튜어디스가 있습니다. 스튜어디스라는 단어가 바로 청지기라는 단어에서 나왔습니다. 스튜어디스는 잠시도 쉬지 않고 손님들을 위해 시중을 듭니다. 음식을 제공하기도 하고, 책이나 담요도 갖다 줍니다. 그렇다고 해서 스튜어디스가 자랑할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손님들에게 제공하는 것은 자기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스튜어디스는 그저 자기가 맡은 것을 전달해줄 뿐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사역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맡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저 그대로 전할뿐입니다. 따라서 말씀을 전한다고 해서 그들이 높아질 이유는 전연 없습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고전 9:16절에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배 밑에서 노를 젓는 노예의 신분이 무엇 자랑스럽겠습니까? 그러나 그리스도의 일꾼, 그리스도의 노예는 다릅니다. 사도 바울은 ‘나는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라 일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노예, 우주의 주인 되시고 구세주 되시는 주님의 노예’라는 것을 긍지로 삼았습니다. 이보다 더 자랑스러운 직분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사도의 직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편지를 쓸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이라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예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의 비밀을 맡았음에 대해 그는 긍지를 가졌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비밀, 그것은 곧 복음입니다. 생명의 역사, 구원의 역사입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맡았습니다.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자로 여기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를 이 일에 부르셨다는 사명감과 긍지를 가지고 일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일꾼, 곧 그리스도의 노예입니다. 그리스도의 일꾼이라는 정체성을 가지십시오. 그리고 그리스도의 노예 됨에 긍지를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으로부터 칭찬 받는 성도는 맡은 일에 충성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2절에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일꾼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일꾼은 자신의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해 충성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성도들이 추종하고 인정하고 존경한다고 해서 그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일꾼의 본연의 자세인 맡겨진 일에만 최선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즉 사도이며, 교회의 영적인 지도자라면, 그리고 성도라면 복음을 전하는 일에만 관심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충성’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피스토스’라고 하는데 비슷한 단어로 ‘피스티스’라는 단어가 있는데 이것은 '신뢰한다' '믿는다' '확신한다'는 뜻으로 ‘믿음’이라는 말입니다.  

‘피스토스’라는 ‘충성’이라는 말과 ‘피스티스’라는 ‘믿음’이라는 단어는 같은 데서부터 나온 말로  두 단어는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그 의미를 생각해 보면 충성이란 믿음에서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주인을 믿고, 또한 주인이 나를 믿을 수 있을 때에 충성이라는 행동이 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교회에서 교회를 새로 짓기 위해 기초 공사를 하는데 하루 종일 걸려서 축대를 쌓아 올렸습니다. 그런데 일을 마칠 무렵이 되니까 하늘에 시커먼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금방이라도 소나기가 세차게 쏟아질 것만 같았습니다. 현장에 나와 있던 목사님과 여러 성도들은 걱정이 태산 같았습니다. 비가 내리게 되면 하루 종일 쌓아올렸던 축대가 무너질지도 모를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교회 장로님 한 분이 슬며시 현장에서 사라지더니 잠시 후 이부자리를 가지고 건축 현장에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더니 장로님은 다른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금방 쌓아올린 축대 밑에 이부자리를 펴고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시더니 그 자리에 이불을 덮고 누워버리시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날 밤에 비는 내리지 않았고 축대도 무너지지 않았으며 따라서 장로님의 생명에도 아무 이상이 없었습니다. 장로님의 뱃심 좋은 데모에 놀란 분은 바로 하나님이셨습니다. 교인의 대표로 기름부음을 받은 장로가 죽음을 각오하고 축대 밑에 자리를 펴고 누웠는데 하나님께서 그 장로님의 믿음을 보시고 비를 멈추게 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충성은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 것입니다. 

미국의 강철왕 카네기가 늙어서 죽을 날이 가까웠을 때 사람들은 그의 후계자 문제로 관심이 집중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그가 그의 후계자를 지목했을 때 전 미국과 세계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쉬브’라고 하는 무명의 사람을 후계자로 지목하였기 때문입니다. 

쉬브는 초등학교 학력밖에 없었고 청소부로 회사에 입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처음 맡은 일은 공장의 청소와 정원관리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한 부분의 정원 관리뿐 아니라 공장의 여러 구석진 곳까지 청소하였습니다. 이를 인정받아 정식 사원으로 채용되었습니다. 

그리고 정식직원이 되고서도 모든 일에 얼마나 땀 흘려 충성했는지 나중에는 카네기의 비서로 발탁이 되었습니다. 그가 카네기의 비서가 된 후, 바로 그의 눈과 손과 발이 되고 입이 되었습니다. 카네기가 움직이는 곳에는 쉬브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초등학교 학력으로 어떻게 그런 거대한 회사의 사장이 되었습니까?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 변함없이 충성했기 때문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고 불변하십니다. 우리도 변함없이 충성하는 일꾼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무엇인가 대가를 바라면 그것은 충성이 아닙니다. 칭찬을 바라거나 상급을 바란다면 그것은 진정한 충성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구원받은 성도로서 당연히 충성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칭찬 받는 성도는 일의 결과를 판단하지 않는 것입니다. 

본문 3절에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라고 하였습니다. 일군은 판단하지 않습니다. 일군이 일하다보면 사람들의 여론이 들려오고, 사람들의 평판과 평가가 들려옵니다. 잘했다느니 못했다느니, 사랑이 있다느니 사랑이 없다느니 여러 가지 긍정과 부정의 소리가 들려옵니다. 

여기에 신경을 쓰면 자기를 상실하고, 사명을 상실하고, 직분을 상실하고, 일의 의욕을 상실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일꾼된 우리는 일의 보람과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는 남의 말에 너무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곤고한 삶을 살아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꾼이었기에 그가 얻게 되는 유익도 많았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흥미롭게도 자기가 다른 사람들에게서 어떠한 평가를 받고 있는가를 설명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서 영광을 받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 반대로 욕을 들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여기에 대해서 어떠한 태도를 취했습니까?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긍정적인 평가에도, 부정적인 평가에도 그다지 큰 비중을 두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평가는 주관적이기 때문에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의 판단은 철저히 자신과의 관계에서 평가됩니다. 따라서 사람의 판다은 온전한 판단이 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4절 말씀에서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를 판단하실 뿐은 오직 주님뿐입니다. 마지막 날 나를 심판하실 그 분, 그 분이야말로 가장 완벽하게, 그리고 가장 정확하게, 그리고 가장 공정하게 나를 판단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말없이 묵묵히 맡은 일에 긍지를 가지고 감당할 것뿐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청지기입니다. 다시 한 번 여러분 하시는 일들을 돌아보십시오. 교회에서 하는 일이든, 세상에서 하는 일이든, 일은 다 귀하고 소중한 것입니다. 

하나님 맡겨주신 사명인줄 알고 긍지를 가지고 겸손하게 각자가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하십시다. 사람을 의식하지 마시고 주님 앞에 충성을 다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평가하시면서 “잘하였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칭찬하실 때, 우리의 기쁨과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이와 같은 칭찬을 받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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