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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강림]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롬 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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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롬 8:8-9)

세계복싱 챔피언으로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겠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 무하마드 알리는 현역 시절에 링위에서 챔피언 벨트를 두 손으로 치켜들고 "내가 세상에서 최고로 힘이 세다. 내 주먹이 제일 강하다."고 큰소리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애틀란타 올림픽 성화를 점화할 때에 파킨슨병으로 몸을 떨면서 불편한 몸으로 성화를 점화하였습니다. 그렇게 강력하던 힘도 없어지고 자기 손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올림픽 성화점화를 마치고 현장에서 기자회견을 할 때 "사람보다 하나님이 더 강하시다는 것을 입증하려고 제가 병들었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마이크로소프트사를 창업하여 세계적인 부자가 된 빌 게이츠는 자신이 쓴 ‘생각의 속도’라는 책에서 ‘정보가 곧 힘’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이나 교회의 힘은 세상의 이러한 힘이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처럼 세상적인 힘을 가지고 살 수는 없습니다. 교회는 성령이 역사하는 교회가 힘 있는 교회이며,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사용하는 성도가 힘 있는 성도입니다.  

오늘은 교회력으로 성령강림절입니다. 성령강림절은 오순절에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던 제자들에게 불같이, 바람같이 임하신 성령을 기억하는 절기입니다. 

오늘 이 예배가 단순히 성령이 임했던 그날을 회상하며 그때의 일을 기념하는 날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오늘 이 자리 이 순간에도 성령이 임하심을 믿고 성령 충만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삶에는 두 영역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영적인 삶이 있습니다. 이 삶은 하나님 편에 서 있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존중하며 순종하고 따르는 삶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그 반대인 육신을 따라 살아가는 삶이 있습니다. 이 육신의 삶은 내 중심의 삶입니다. 하나님과 반대되는 삶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육신의 삶에서 떠나라고 강권하십니다. 

오늘 본문 9절에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성령의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령의 사람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비록 우리들이 육신을 가지고 살지만 하나님의 영에 지배를 받는 영의 사람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영이 우리 가운데 거하시면 어떻게 됩니까?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을 통해서 이 부분에 대한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할 때입니다. 서재에서 기도하고 있는 루터에게 마귀가 나타나서 한 장의 종이를 보여주는데, 그 종이에는 루터가 범한 죄의 목록이 샅샅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마귀는 이렇게 조롱합니다. "이렇게 죄가 많은 네가 무슨 종교개혁을 한다고? 너나 바르게 살아라. 이 많은 죄를 다 어떻게 할래?" 

그 순간 루터에게 죄책감이 몰려 왔습니다.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과거의 부끄러운 죄까지 모두 적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때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루터야! 너의 모든 죄는 나의 피로 모두 깨끗이 씻었다. 그러므로 너를 정죄할 자는 아무도 없느니라" 

루터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리고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 라는 본문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는 마귀를 향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 누가 나를 정죄하겠느냐?"라고 크게 소리치자 순간 마귀는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합니다. 

1-2절 말씀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고 했습니다. ‘정죄’라는 말은 법정에서 사용하는 말로 유죄 판정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죄는 죽음이요, 파멸이요, 심판입니다. 그런데 ‘정죄함이 없나니’라고 했으니 ‘무죄’라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우리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까? 우리가 착하게 살아서 그렇습니까? 절대 아닙니다. 이유는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사자가 애굽 땅을 지나갔습니다. 애굽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에는 죽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고 있는 집에는 아무런 일이 없었습니다. 죽음의 사자가 피해 갔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는 집에는 어린 양의 피가 칠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밖에 있으면 그 사람은 정죄함에 이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의 심판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미치지 않습니까?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대신 하나님의 심판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죄의 모든 형벌을 대신 담당하셨습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정죄 받았으므로 우리의 모든 죄가 소멸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하심으로 장차 임할 파멸과 죽음이 면제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에게 그리스도의 영 안에 거하는 이유로 무죄를 선언한 것입니다. 

세상에서 이보다 더 큰 기쁨은 없습니다. 사형 선고가 내려진 죄인에게 무죄가 선언되고 풀려난다면 이보다 더한 행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받은 감격을 회복해야 합니다. 예수를 통하여 정죄 받지 않고 구원받았음을 확신하시고 구원의 기쁨으로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2.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육신의 생각과 일을 버리고 영의 일을 생각하게 됩니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는 유모차를 타고 다닐 때부터 아버지가 골프 치는 것을 보면서 자랐다고 합니다. 그리고 생후 10개월이 될 때 짧은 골프채를 잡고 첫 스윙을 보여줄 때 부모가 놀랐다고 합니다. 그 후 스물한 살 나이에 마스터 대회에서 최연소 우승자가 되었습니다. 

최고의 스타가 된 우즈가 조언을 듣고 싶어서 농구 황제인 마이클 조던을 찾아간 일이 있었습니다. 마이클 조던은 몸으로 뛰면서 연습하고, 쉴 때는 머릿속에서 농구 연습을 한다는 사람입니다. 

새벽까지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질 때 조던이 중요한 말 한마디를 합니다. "모든 사람이 너를 보고 골프 천재다, 백년에 한 사람 나올까 말까한 사람이라고 찬사를 보낼 때 바로 연습장으로 달려가 훈련에 열중하라." 

아마 이 말은 사람들의 칭찬과 찬사가 쏟아질대 교만하지 말고 더 훌륭한 선수가 되도록 노력하라는 말이며, 명예나 부나 찬사로 운동선수의 본질을 잃어버리지 말라는 충고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위대한 선수는 오직 자신의 운동만 생각합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자기가 할 일만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 5절 말씀에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생각한다.'라는 말은 헬라어로 '마음에 두다, 지배를 받다, 어떤 편에 선다."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육신을 좇아 사는 사람은 육신의 일만 마음에 두게 됩니다. 그런데 육신의 생각은 죽음을 가져오게 할 뿐입니다. 자기중심적이며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합니다. 자연히 하나님과 원수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에 따라 사는 사람들은 마음을 성령이 원하는 일에 둡니다. 성령님이 원하는 일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생활입니다. 그러므로 영의 일을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을 가장 중요한 가치기준으로 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본문 8절에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육신의 욕심을 좇아 사는지 성령의 뜻에 따라 사는지 판별하는 기준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의 여부를 보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은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곧 그의 기쁨이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살아 계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느끼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이 거하는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언제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3.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부활의 신앙을 갖고 살게 됩니다. 

10-11절 말씀을 보세요.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 가운데 “살아 있다, 살리신다, 살아나리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것은 앞으로 살아난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부활 속에 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 죽은 신앙이 아니라 살아있는 신앙으로 감격을 누리는 것입니다. 성령 안에 거하는 사람은 지금 육신에 거하고 있지만, 우리의 영은 우리 주님의 부활에 참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활신앙은 우리가 죽은 후에 예수님의 재림 때 다시 살아나는 것을 의미하지만, 바울은 부활의 영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현재적인 부활의 기쁨을 누리는 삶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성령은 살리시는 영이십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는 만나는 사람마다 살려 놓으셨습니다. 병든 자를 살리셨습니다. 죄인들을 의롭게 살리셨습니다. 쓸모없는 사람들을 부르셔서 쓸모 있는 인간으로 살려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령 안에 거하면 인격도 살아나고, 육신도 살아나고, 생활도 살아나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40년 간 누워 지낸 윤석인 수녀가 쓰신 ‘동행’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자신을 "난 축복 받은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3세에 류머티스 관절염에 걸려 40년 동안 누워 지낸 한 여인에게 축복이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분은 "진정한 장애는 자기 자신 밖에 모르는 마음의 장애"라고 말합니다. 이 분은 하나님은 자신의 몸을 통하여 진정한 축복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기 위해 자신을 선택하였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운데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우리는 생명의 기쁨을 누리고 살 수 있습니다. 어떠한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좌절하거나 쓰러지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인생의 어려움과 고통으로 죽음의 그늘에 헤매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까? 성령의 사람으로 살아가시면 죽은 것 같지만 살아있습니다. 실패한 것 같지만 생명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은 다음 주님이 부활하실 때에 가서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지금도 살아 계신 우리 주님과 함께 부활의 확신 속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이 땅에 살고 있지만, 하늘나라를 살고 있는 축복의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4.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하나님을 아빠아버지라 부릅니다. 

14-16절에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 곧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을 아빠아버지라고 부른다고 했습니다. 아빠는 아버지를 가장 친근하게 부를 때 사용하는 말로 아빠라고 부르는 관계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가까운 사이입니다. 

여러분, 거룩하시고 지존하신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원래 우리는 감히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는 자들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죄의 종, 마귀의 종노릇을 했습니다. 

요 8:34절에서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고 말씀하십니다. 엡 2:3절에는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라고 하신 것처럼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요 죽을 수밖에 없는 자들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 할 존재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자녀 삼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내 인생의 구세주로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요 1: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엡 2:19절에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고 하시면서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 나라의 권속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영, 즉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는 자들은 누구나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들은 무서운 종의 영이 아니라 양자의 영을 받았습니다. 비록 고아라 할지라도 누군가가 양자를 삼아 자기 호적에 올리면 법적 아들이 됩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받는 후사가 됩니다. 

폭군으로 유명한 네로 황제는 원래 노예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양자가 되었기 때문에 당당하게 왕위도 물려받을 수 있었습니다. 비록 친아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양자가 된 이상 아들과 똑같은 신분을 갖게 되어 상속권까지 갖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양자로 삼으시고 하늘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공동의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권리입니다. 이 엄청난 권리를 주신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오늘 성령 강림절을 맞이하여 성령 충만한 삶, 하나님의 영이 임한 영의 사람으로 하나님이 주신 특권을 누리고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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