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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먼저 가서 화목 하라 (마 5: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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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가서 화목 하라 (마 5:22-24)

아주 의좋기로 소문 난 형제가 어느 날 함께 길을 가다가 동생이 금덩어리를 하나 주었습니다. 형제는 무척 기뻤습니다. 형이 그 금덩어리를 이리 저리 만져보면서“우리 이제고생은 끝이다. 이거면 우리 둘이 평생 먹고 살만한 재산이 될 수 있을 것 같다.”형제는 정말 좋아하면서 서로 경쟁적으로 번갈아 가면서 금덩어리를 구경했습니다. 그러다가 강을 만났습니다.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가다가 형이 갑자기 그 금덩어리를 물속에 던져버리고 말았습니다. 동생이 펄쩍 뛰면서“내가 주운 것을 왜 형이 물에다 던지느냐!”고 발을 동동 구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형이 말했습니다.“그 금덩어리가 내 손에 있을 때에는 욕심이 생기고, 네 손에 있을 때에는 미움이 생기더라. 지금까지 우리는 서로 생각해주고 서로 사랑했는데, 그 금덩어리가 우리 사이를 이렇게 만드는 것 같아서 물에 던져버렸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화목이 좋은 줄은 압니다. 그래서 화목하기를 원하고 사랑하기를 원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화목을 깨뜨리는 원인이 무엇인지는 잘 모릅니다. 무엇 때문에 서로 미워하고 싸워야 하는지 그 원인을 안다면 그래서 그 원인을 과감하게 던져버릴 수 있다면 화목을 쉽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끊어야만 비로소 참 화해가 이루어질 수 있다면 끊을 수 있어야합니다. 그것이 욕심이든지, 시기, 질투이든지 그 원인을 분명히 제거해야 화목이 이루어집니다. 

6.25전쟁이 일어난 지 61주년이 되었습니다. 61년 전 주일 새벽에 군인들이 외출하는 날을 택해서 기습적으로 북한이 남침을 감행했습니다. 아름다운 우리 조국 강산은 삽시간에 불바다가 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의 피가 이 땅에 뿌려지는 비극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후로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결의도 하고, 다짐도 합니다만 사실은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니라 휴전상황일 뿐이라는 여전한 전쟁의 불씨로 인해서 불안해야하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분쟁의 불씨,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 원인을 알고 인정하고 양보하면 해결 될 문제입니다. 그런데 억지를 부리거나, 빼앗으려고 할 때 문제가 됩니다. 우리는 일본을 이웃나라라고 하면서 친근하게 대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일본은 우리의 영토인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지겹게도 우겨댑니다. 사실 겉으로는 이웃나라라고 하지만 역사적인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 분쟁의 불씨를 가지고 있는 한은 언제까지나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비단 한반도의 문제뿐이겠습니까? 지금도 세계적으로 곳곳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은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으로 유명합니다. 이삭의 후손과 이스마엘의 후손 간에 형제간의 싸움이라느니, 유대교와 이슬람간의 종교전쟁이라느니 하면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전쟁입니다만 결국은 서로 자기들 땅이라고 우기며 땅을 차지하려 하고 자기 땅에서 상대를 완전히 몰아내려고 하는 욕심들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들이 남아 있는 한 언제 끝이 나겠습니까? 

세상에는 화목이 필요합니다. 겉으로만이 아니라 진정한 화목이 있어야합니다. 잠 17:1절에 보면 유명한 말씀이 있습니다.“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 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여러분, 부자로 사는 것보다 화목하게 사는 것이 먼저입니다. 잠언 말씀은 이것을 명확하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우리가 착각하는 여러 가지 중에 으뜸이 무엇이냐 하면“돈만 있으면 다 된다.”혹은“부자로 살아야 큰소리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세상에서는 통할 수 있는 논리일지는 모르지만 영적으로는 가장 위험한 생각이며 사탄이 쓰는 최고의 위력적인 무기입니다. 

욕심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는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끝을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욕심이란 먼저는 다른 사람을 죽이는 무기이고 동시에 자신을 죽이는 독약입니다. 자신이 죽어가면서도 죽는 줄 모르게 하는 것이 욕심이란 말입니다.

어항 속에 금붕어 두 마리가 있습니다. 한 마리는 크고 다른 한 마리는 작은 놈이었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주는 먹이는 항상 똑 같은 양이었습니다. 언제나 큰 붕어에게는 먹이가 부족했습니다. 어느 날 몹시 배가 고팠던 큰 금붕어가 생각을 합니다.‘저 작은 금붕어 녀석이 없으면 내가 배부르게 먹을 수 있을 텐데 저 놈과 나눠 먹으니 내가 배고파서 못살겠다.’그래서 어느 날 큰 금붕어가 작은 금붕어를 물어 죽여서 돌 밑에다 숨겨 두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주인이 주는 먹이를 자기 혼자서 다 먹을 것이라고 기뻐했는데 얼마 되지 않아서 죽은 붕어가 썩기 시작했습니다. 금방 냄새가 진동하더니 급기야 물에 독이 퍼졌습니다. 그 물을 먹은 큰 붕어도 죽고 말았습니다. 이런 어리석음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보통‘저가 죽으면, 나도 죽는다.’는 것을 생각은 하지 않고 삽니다. 우리의 착각이 여기에 있습니다. 때로 남을 끌어내리면 내가 높아지는 것으로 어리석은 생각을 하면서 삽니다. 그래서 싸우고, 빼앗고, 짓눌러서라도 저는 죽고 나는 살아야한다고 합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간다.”혼자 빨리가기 위해서 남을 죽인 데서야 되겠습니까? 또 빨리 간다는 것은 빨리 끝난다는 이야기입니다. 성공이 빠른 만큼 실패도 빠르다는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화목하면서 오래도록 함께 행복한 것이 더 낫지 않습니까? 

그래서 오늘 본문말씀에도 보면“화목 하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런데“먼저 화목 하라.”고합니다. 여기에 쓰인“먼저”라고 하는 말은 헬라어 원문으로<프로토스>라고 하는 말인데 영어로는 First라는 말, 첫째입니다. 이 말을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시간적인 순서로써 첫 번째라는 의미가 아니라 그 속성 적으로, 가치적으로 근본이라는 말입니다. 다른 어떤 것보다 최우선이라는 의미에서의 첫째입니다. 

그러니까 바꾸어 말하면 화목이 이루어지지 않는 그 뒤의 일들은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을 잘 보십시오. 그 화목의 정도가 어느 정도냐 하면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는 것보다 먼저요, 기도하는 것 보다 먼저 해야 할 것이 화목이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가십니까? 놀라운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화목이 없는 예배, 화목 없는 제사, 화목이 없는 기도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 가운데 형제지간에, 부모자식 간에 의외로 화목을 이루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심지어는 부부간에도 남처럼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특별히 성도들 간에도 그렇습니다. 일일이 무슨 이유인지는 다 모르지만 웬만하면 화목을 이루십시오. 화목이 먼저입니다.
 
자, 그런데 이 화목을 이루는 데도 문제가 있습니다. 사실 화목이라는 것을 거창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화목 하는 일이 큰일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용서하고 화목하기로 작정했다고 해서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했다고 생색낼 것 없다는 말입니다. 실컷 화목을 잘 이루어 놓고는“그래 내가 너를 용서하고 화해를 받아들였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한 것인지 똑바로 알아라!”고 할 일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왠지 아십니까? 화목이란 무슨 대단한 덕목이 아니라 기본입니다. 당연한 것을 대단한 것처럼 여기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입니까? 적어도 믿는 사람들이라면 이 기본정도는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특별히 믿는 이들에게 화목할 것을 강조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본문을 보면“형제”라는 대상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에서는 예수 믿는 사람의 별명이 형제입니다. 예수를 믿는 순간부터 다 형제요, 자매입니다. 우리한국교회 안에도 아직 형제, 자매라는 말이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이 교회를 보고 하는 말이“아니, 예수쟁이들은 위아래도 없는 것들이다!”라는 오해를 받기도 했습니다. 남자 여자도 없이 모두 형제, 자매라고 하니까 그러는 것입니다. 

자,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의 형제란 무엇입니까?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기에 똑같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형제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무슨 이권이 있어서도 안 되고, 좋고 나쁜 것을 따져서도 안 됩니다. 기쁨도 하나요, 슬픔도 하나요, 저가 살면 나도 살고, 저가 기쁘면 나도 기쁩니다. 저가 아프면 나도 아픕니다. 이게 형제입니다. 이 관계는 근본적으로 화목해야하는 관계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형제를 이간질 하거나, 믿는 이들을 사이에 두고 나쁜 말로 유혹하는 사람은 정말 나쁜 사람입니다. 신앙의 기본이 없는 사람입니다.

얼마 전에 한 후배 목사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정말 힘들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목회를 하다보면 간혹 피치 못하게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자기의 신앙관과 맞지 않거나, 혹은 어떤 인간관계의 잘못으로 인해서 교회를 떠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떠나서도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신앙을 찾아서 정착하고 신앙생활 잘하고 있는 사람은 기본이 되어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 중에는 꼭 떠난 교회에 대해서, 목회자에 대해서, 성도들에 대해서 말이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 저 사람을 붙들고 별의 별 이야기를 다하면서 떠난 교회에 대해서 이간질까지 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이야기의 대부분은 사실이 아닌 결국 자기합리화를 위한 거짓말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들을 가치가 없는 이야기들입니다. 이런 사람은 처음부터 기본적으로 신앙이 잘못된 사람입니다. 가장 기본인 화목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은 어디가도 그러고 언제나 그럴 사람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아름다운 화해의 모습이 어디에 나옵니까? 창세기에 야곱이 형 에서를 만나는 장면입니다. 20년 동안 헤어져 원수로 지내다가 압복강변에서 기도하고, 압복강변을 건너가서 자기 형님과 20년 만에 만납니다. 이제는 원수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형제로 만납니다. 끌어안고 입을 맞출 때 그는 이렇게 고백하기를“형님의 얼굴을 보니 내가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 같습니다.”화목이란 이런 것입니다. 먼저하고, 적극적으로 할 때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히12:14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우리는 화평을 기다릴 때가 많습니다.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먼저 가서 화목해야합니다. 

예수님께서 막14:50절에서“소금을 두고 화목 하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이 말은 뻣뻣함이 수그러들듯이 겸손 하라는 말입니다. 소금처럼 녹아 부드러워지라는 것입니다. 내가 적극적으로 화목을 먼저 이루는 모습이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이루어야 할 화목은 무엇입니까? 먼저 가서 화목 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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