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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라 (잠 24:1-2;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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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라 (잠 24:1-2; 19-20)

“빛 좋은 개살구”라는 말을 아실 것입니다. 이 말이 왜 생겨 난 것입니까? 개살구는 보기에는 정말 예쁘고 맛이 있어 보이는데 실제로 먹어보면 떫어서 먹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겉만 보고 판단했다가 실속이 없을 때를 일러서 이렇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해서 그 존재 가치를 높이기도 합니다만 한편으로 인간은 굉장히 어리석은 존재이기도 합니다. 또 능력이 무한하지도 않은 존재가 인간입니다. 

그 인간의 어리석음이 어디에 있느냐 하면 바로 겉은 보고 속을 못 본다는 사실입니다. 사실은 겉모양에 마음을 빼앗겨서 속은 생각조차 못하는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한때는 젊은 남녀가 서로에게 끌리는 첫 번째 조건이 얼굴 내지는 외모였습니다. 잘 생겨야 되고, 예뻐야 된다는 조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얼굴이나 외모만 보고 결혼했다가 가정이 깨어지고 헤어지는 아픔들을 겪으면서 생겨난 말들이“얼굴 값 한다더라.”혹은“결혼은 얼굴 뜯어먹고 사는 게 아니다.”라는 말들입니다. 

이런 시행착오들을 겪거나 아니면 곁에서 지켜봐서인지 몰라도 지금은 그 기준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얼마 전 어느 신문보도에 의하면 결혼할 때 배우자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성격 및 가치관의 공감이 57.2%로 1위를, 이어 서로간의 사랑이 20.5%, 경제적 능력수준이 18.2%, 배우자의 집안 수준이 3.4% 순으로 조사됐다고 합니다. 실제로 외모 보다는 그 사람의 진실, 그 사람의 사람됨, 그 속이 더 중요한데 문제는 도대체 그 속을 알 재간이 없을 때 이것이 답답한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그 능력이 없습니다. 

인간의 어리석음 또 하나는 현재는 보면서도 미래는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압니다만 과거는 지나간 것이요, 현재는 또 과거로 밀려갈 것입니다. 현재라고 하는 것은 길게는 하루만 지나면 지나가고 마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에 붙들려서 다음, 그 다음에 있는 미래를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어리석음입니다. 

우리의 문화 중에 다른 나라 사람들이 흉내 내지 못하는 문화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빨리빨리 문화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급합니다. 알면서도 안 고쳐지는 것이 이것입니다. 서양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즐기는 마음으로 하는데 반해서 우리는 경쟁적으로 해치우듯이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입니다. 심지어는 음식을 먹는 것도 빨리빨리 입니다. 다른 나라와 다르게 우리 음식 문화에는 국물이 있습니다. 예로부터 꼭 밥상에 국물이 같이 차려져야 제대로 된 밥상이라고 인정합니다. 그래서인지 급하면 찬물에라도 말아서 후루룩 마시듯이 식사를 끝냅니다. 이렇게 빨리 끝내버려야 속이 시원하거든요.

그런데 문제는 이 빨리빨리 문화가 망하게 합니다. 빨리 지은 건물이 무너지고, 빨리 놓은 다리가 무너지고, 빨리 출세하려다가 쇠고랑차고 마는 현실을 보면서 우리의 빨리빨리 문화가 망국병임을 느끼게 됩니다. 왜 이러는 겁니까? 뭐 하나 제대로 좀 기다려 주지 못하고 왜 이렇게 서두르느냐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미래를 볼 줄 모르기 때문에 인내가 부족한 탓입니다. 보다 더 먼 미래를 내다보면“이렇게 하면 무너지고, 이렇게 하면 부서지고, 이렇게 하면 망하겠구나!”를 왜 모르겠습니까? 여러분, 진정한 인간이란 내 발은 현재에 있지만은 내 생각은 저 앞에 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또 하나 인간의 어리석음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다른 사람은 보면서 나는 못 본다는 사실입니다. 남의 잘못을 보면 이러쿵저러쿵 얼마나 말이 많습니까?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도 보고 남의 이야기도 참 많이 듣습니다. 그러면서‘나도 그럴 수 있겠구나!’를 생각하지 못합니다. 자신은 언제나 예외시하면서 살아가는 경향이 있습니다.“나는 실수하지 않고, 나는 실패하지 않고, 나는 이러지도 않고, 저러지도 않고....”이것이 결정적인 약점입니다.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십니다.“남의 눈의 티는 보면서 자기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한다.”고....

생각의 방향을 돌리고 남의 얘기 하는 것을 그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제멋대로 남을 평가 하는 일도 자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누군가가 나를 그대로 평가할 수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보면서도 나를 먼저 볼 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결정적인 인간의 어리석음이 무엇이냐 하면 세상을 보고, 역사를 보고, 많은 일들에 부딪치고 도전하면서도 하나님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 결정적인 어리석음입니다. 이 세상을 있게 하시고, 그 역사를 만드시고 그 깊은 곳에 계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손길을 보지 못한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저는 늘 감동적인 모습이 있습니다. 스포츠에서나 무슨 연예시상식에서나 보면 영광된 자리를 차지하고 인터뷰하는 장면에서“이 모든 일을 있게 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립니다.”라는 소감을 들을 때입니다. 세상 사람들은“왜 꼭 종교 색을 드러내야 되느냐!”고 하기도하고 심지어는 믿는 사람들조차도“혼자 믿음 있는 척하냐!”는 둥“식상한 멘트”라는 둥 하지만 사실 저는 그럴 때 마다 감동 받습니다.

그가 지금이 있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해 보십시오. 무명의 시절, 얼마나 눈물 나는 노력과 훈련과 때로는 아픔과 좌절이 있었겠습니까? 그때마다 일어날 수 있는 원동력이 무엇이었겠습니까?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었다는 고백입니다. 이것마저도 하나님의 역사요, 섭리라고 믿으며 그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봤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이렇게 생각하고 보면 당연한 고백입니다. 충분히 감동 받을 만한 멘트입니다. 그 사람의 믿음이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모두의 마음이겠습니다만 예수 믿는 사람들이 세상에서도 좀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무엇에든지 일인자도 되고, 성공자도 되고, 복권도 맞고, 다 부자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만 우리 생각이고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왜인지 아십니까? 우리가 악인이 될까봐서입니다. 사람에게는 성공하거나 일인자가 되면 넘어서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버리는 제어할 수 없는 습성이 있습니다. 이게 마음대로 안 되는 것입니다. 

오죽하면 잠언에서[아굴]은 이런 기도를 드렸겠습니까?“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여기에 보면“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하는 말씀이 나오지 않습니까? 이게 사람의 솔직한 마음입니다. 오늘 우리 그 누구도 이 욕심에서 벗어날 자신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살아가면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참 많습니다만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악한 사람이 잘 되는 모습입니다. 예수도 안 믿고 오히려 믿는 사람을 무시하고 박해하는 사람이 잘되어 가는 모습을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화가 나면서도 그들이 부럽기도 하고 나아가서는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우리의 모습을 오늘 본문은 거울 보듯이 보게 하면서 그 해결의 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라!”고 단언합니다. 그 사람이 잘 되는 것을 보고 화도 내지 말고, 그렇게 해보려고도 하지 말고, 부러워하지도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부러워한다는 것이 이미 관심입니다. 잘못된 것에는 관심도 두지 말아야 합니다. 그가 어떻게 성공했는지, 어떻게 돈을 많이 벌었는지 궁금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악인이라면 관심조차 둘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악인이라는 것은 살인을 했다거나, 누구를 폭행했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없이 살아가면서 온갖 거짓말을 하고, 간계를 꾸미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의 것을 착취하여 소위 세상에서 자기의 힘으로 성공했다고 자랑하며 교만한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결코 성공한 사람이 아닙니다. 실패해도 아주 크게 실패한 사람입니다. 그 실패한 사람을 부러워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본문20절을 보십시오.“대저 행악 자는 장래가 없겠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리라.”

또 시편 37:10절에는“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그랬습니다. 악인들의 마지막이 이 모습입니다. 이걸 보고 누가 성공한 사람의 모습이라고 하겠습니까? 

여러분, 우리인생의 가장 큰 수수께끼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종말입니다. 인생의 마지막이란 말입니다. 모든 것이 변합니다. 모든 것이 흘러갑니다. 모든 것이 사라집니다. 그렇다면 정말 궁금한 것은“인생의 마지막은 어떻게 될 것인가!”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아무리 궁금하지만 악인의 이런 모습처럼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물질, 도대체 돈이 뭡니까? 하나님이 주셔야 내가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또 하나는 하나님이 허락하셔야 누릴 수 있는 것이 물질입니다. 어리석은 부자가 많은 돈을 가지고“먹고 마시고 즐기자”할 때, 하나님께서“이 사람아 오늘 밤 네 생명을 도로 찾아가겠다.”하시면 누구 것이 되겠습니까? 

그래서 유명한[앤드류 카네기]는 말합니다.“자기 돈을 다 쓰지 못하고 죽는 사람은 세상에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다.”다 쓰지도 못할 돈을 번다고 악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없는 사람처럼 불 신앙적으로 돈을 벌었습니다. 그러다가 한 푼도 제대로 못 써보고 죽었습니다. 옳은 일, 선한 일에 한 푼도 써보지 못했습니다. 어찌합니까? 

여러분, 돈을 벌었으면 써야 합니다. 악한 자가되지 않으려면 그것도 제대로, 잘 써야 합니다. 종말이 있습니다. 인생의 마지막이 있단 말입니다. 건강도 갑니다. 명예도 갑니다. 권세도 갑니다. 급기야는 종말이 옵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열흘 붉은 꽃이 없습니다. 아무리 성한 것도 얼마 못 가서 반드시 쇠하여지게 마련입니다. 고로 마지막을 생각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자는 오늘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사는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보리를 거두며 한해의 절반을 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절기입니다. 오늘 우리가 보리농사를 짓지 않기 때문에 대신에 마음도 드리고, 특별히 그 감사의 마음을 물질로도 표현하며 드리는 것입니다. 반년 동안도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보살핌이 있었기에 오늘이 있고 남은 날도 이렇게 살겠다는 만족감으로 하나님 앞에 나와서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절기입니다. 그래서 빈손으로 나오지 않고 감사의 물질을 분명히 그리고 고백적으로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맥추감사주일을 맞이하면서 얼마나 만족한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까?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는 어리석은 자의 삶에서 벗어나서 오히려 일용할 양식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믿음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만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아야 할 합당한 이유를 알고 세상을 보면서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감사할 수 있는 법을 배우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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