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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창 29: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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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창 29:1-20)

사람은 무엇으로 살까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물질주의자들은 돈과 물질이 있어야 산다고 대답할 것이고, 철학자나 사상가들은 올바른 이성과 지성이 있어야 산다고 대답할 것 입니다. 

그러나 이런 대답들은 완전하지 못합니다. 사람은 믿음이 있어야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믿음으로 산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만이 대답할 수 있는 말입니다. 

1. 인간은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삽니다. 

본문의 야곱처럼 파란만장한 인생을 산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야곱은 일평생동안 극에서 극을 넘나들었습니다. 야곱은 장막에 머물며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조용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야망을 품어 형 에서의 장자 명분을 팥죽 한 그룻에 샀으며 아버지를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가로챘습니다. 이 일로 인해서 그는 고난과 고통의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도저히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지 않던 모든 순간에 바로 하나님의 개입과 동행이 있었던 것을 야곱의 일생을 통해 살필 수 있습니다. 

이런 야곱의 삶을 통해 사람은 진정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은 어리석고 무모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형 에서보다 생각이 깊고 행동이 주도면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자신이 가진 장점으로 인해 성공하는 삶을 살았던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은혜의 힘으로 고난을 극복 할 수 있었습니다. 


2. 고난과 역경을 이길 수 있는 믿음으로 삽니다. 

그렇다면 야곱은 어떠한 은혜를 체험했는지 본문을 통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장자의 축복을 빼앗은 야곱은 에서의 칼날을 피하여 외삼촌의 집이 있는 밧단 아람으로 가던 중 루스 들판에서 돌베개를 베고 자다가 천사가 하늘까지 닿은 사닥다리를 오르락내리락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찌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창 28:13, 15)

하나님은 꿈을 통해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물질의 복과 자손의 복, 그리고 임마누엘의 복을 약속 하셨습니다. 야곱은 하늘 하나님의 세계를 본 것입니다. 

야곱이 꿈속에 본 사닥다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동일한 의미를 갖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의 사역과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이 있으며 임마누엘의 약속이 들어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야곱이 외삼촌 라반과 함께 있던 20년간 외삼촌은 번번히 야곱을 속였습니다. 라헬을 주기로 약속한 날 레아를 주었고 품삯을 열번이나 변경하였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31장에서 야곱은 "하나님이 그를 막으사 나를 해치지 못하게 하셨으며 하나님이 그대들의 아버지의 짐승을 빼앗아 내게 주셨느니라"(7절, 9절)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 은혜의 계시를 받고 지시하신 대로 행함으로써 하나님의 축복과 보호하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딸인 디나가 세겜 추장에게 강간을 당하고 이 일로 인해 자신의 아들들이 세겜을 노략한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나타나셔서 벧엘의 약속을 상기시키시며 벧엘로 올라가라고 지시하셨습니다. 

또 사랑하는 아들 요셉을 잃고 절망 가운데 체념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다시 나타나셔서 브엘세바로 가도록 지시하셨습니다. 

이처럼 야곱이 가장 힘들고 외로웠을 때, 가장 무기력하고 고통스러워할 때 하나님은 나나나셔서 야곱의 삶에 계시하시고 간섭하셨습니다. 

요즘과 같은 위기야말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좋은 기회입니다. 

창세기 8장을 보면 "노아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더라"라고 말씀합니다. 노아의 시대는 매우 패역한 시대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경건한 노아를 싫어하고 비난했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은혜를 주셨고 그는 그 은혜로 시대를 이어가는 유일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또한 시편 5편 12절에는 "여호와여 주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로 함 같이 은혜로 그를 호위하시리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그 백성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신다는 약속을 분명히 보여주고 계십니다. 이 시대가 아무리 앞이 보이지 않는 시대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성도 여러분을 보호하시고 지키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위기상황이야말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기회입니다.


3. 또한 사람은 사랑의 힘으로 삽니다. 

본문 20절의 말씀에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사랑'은 구번역에는 '연애'라고 했는데 열정적인 육체적, 정신적 사랑을 아우르는 말입니다. 

본문 17절에서는 라헬에 대해 '곱고 아리따우니'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라헬은 아버지의 양떼를 쳤으며 야곱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재빨리 아비에게 달려가 소식을 전한 순발력과 진취적인 성격을 지닌 여인이었습니다. 참으로 매력있는 여성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라헬을 연애하는 까닭에 야곱에게는 칠년 동안의 고된 노동도, 외삼촌의 잦은 속임수도 문제될 것이 없었던 것입니다. 야곱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인해 칠년을 수일같이 여기며 살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사람은 사랑하는 힘으로 인해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랑의 힘은 생명과 같습니다. 아무리 고된 생활을 살아간다 할지라도 사랑은 인간으로 하여금 살아갈 수 있게 합니다. 사랑할 대상만 있으면, 사랑할 힘만 있으면 이 세상은 살아갈 수 있는 곳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 19세기 영국에서 청교도였던 크롬웰은 체포되어 사형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교회의 종소리와 함께 사형이 집행되기로 한 날, 종지기는 종을 쳤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종소리가 나지 않았습니다. 

종탑 위에 올라가보니 한 여자가 종 안에 매달려 피를 흘리며 죽어 있었습니다. 그 여자는 크롬웰의 연인이었고 사랑하는 사람의 사형을 막기 위해 자신의 죽음도 불사한 것이었습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메리 여왕은 크게 감동하여 크롬웰을 풀어주었다고 합니다. 

'칠 년을 수일같이'

야곱은 성경을 통해서 아는 대로 그의 인생은 고난의 길이였고, 부모 없는 외로운 고아의 삶이었고, 사방으로 위험과 어려움과 그를 도와줄 이는 한사람도 없는 모두가 다 이용하여 속이고 야곱의 젊음과 인생을 해치는 이 어려움 속에서 그는 기어이 승리하고 모든 어려움을 딛고 이기고 하나님 앞에 만가지 축복을 받는 귀한 삶으로 나아갔습니다. 없는데서 있게 하고 가난한 그의 삶이 부유함으로 그의 모든 저주가 한량없는 하나님의 복으로 바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그는 라헬이라고 하는 한 여인을 사랑하게 된 연유입니다. 이 여인을 사랑하면서 양을 치면서 밤에 오는 추위와 낮에 오는 더위와 환난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이길 수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언제나 라헬을 생각하면서 라헬을 사모하면서 참을 수가 있었습니다. 20년이라는 긴 노예와 같은 종의 생활, 머슴 생활을 그는 훌륭하게 마치고 수많은 양떼와 소떼를 이끌고 12형제를 거느리고 고향으로 금의환향하는 야곱의 모습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성경은 야곱이 라헬을 사랑하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세상을 살아가는 야곱같이 어려움 많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주님을 사랑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기 위해서 이 말씀이 기록된 것입니다. 성경은 신약이나 구약이나 주님에게로 안내하는 책이고 주님에게 우리를 안도하고 주님을 보여주는 거울이기 때문에 우리는 야곱을 통하여 주님을 사랑하게 되고 야곱의 심령으로 이 세상을 살아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든 사랑하는 성도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야곱처럼 언제나 변함없이 사랑하고 항상 사랑하고 주님 사랑하는 마음을 가슴에 품으면 우리도 광야도, 밤에 추위도, 낮에 더위도, 이 험하고 힘든 일도, 누가 우리를 속이고 이용하고 어떤 어려움이 올지라도 바울이 말한 대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다 이겨낼 수 있을 줄 믿습니다. 

우리는 하나하나 만들어야 합니다. 기독교는 만드는 종교예요.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이 없고 오히려 저주를 물려받고 가난을 물려받고 아무 것도 없는 비참한 삶일지라도 하나님 앞에 나와서 우리 주님 사랑하고 야곱이 라헬을 사랑하듯이 주님을 사랑하면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지요. 삶은 바뀌어지는 것이지요. 야곱이 라헬을 사랑함같이 언제나 주님만을 사랑하면서 칠 년을 하루같이 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야곱의 삶은 기쁨의 삶이예요. 야곱의 삶은 행복한 삶이예요. 라헬이 있기 때문이예요. 오늘도 우리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주님 사랑하는 마음을 가슴에 품고 살면 어느 곳에 있던지 그의 삶은 긍정적인 삶, 생산적인 삶, 창조의 삶, 부지런한 삶, 감사의 삶, 기쁨이 충만한 삶이 될 줄 믿습니다. 예수 믿고 주님이 내 안에 거하시고 내가 주님을 사랑하면 우리는 언제나 새로운 생각 새로운 소망을 가지고 이 삶을 긍정적으로 기쁨으로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을 줄로 믿습니다. 

야곱은 없는데서 출발하여 기적을 가져왔습니다. 그의 손이 가는 곳마다 새로운 창조가 일어나고 하룻밤 자고 나면 언제나 야곱의 발걸음에는 좋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야곱은 기도의 사람 아닙니까? 야곱은 신앙의 사람 아닙니까? 

하나님의 뜻을 쫒아 살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길은 반드시 승리하게 되어져 있습니다. 맹자도 순천자는 흥하고 역천자는 망한다고 말했습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뜻을 쫒아 그를 사랑하고, 그를 믿고, 그를 의지하고 나아가면 흥하게 되어 있어요. 

하나님의 뜻을 쫒는 나라는 흥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개인이나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인간의 정욕을 쫒아가는 민족은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이 험한 세상, 이 어려운 세상을 우리가 살아갈 때 주님 사랑만이 이 세상을 다 이기고 어려움도 이기고 우리를 승리하게 할 줄 믿습니다. 

주님 사랑하는 사랑의 힘입니다. 라헬을 사랑하는 힘도 그렇게 큰데 만군의 여호와 나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신 영원하신 참 사랑, 우리 주님을 사랑하면 무엇을 못 이겨내겠어요. 우리는 어디에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압니다. 누구하고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사랑이 중요합니다. 

아이들 결혼시킬 때 한 가지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집이 잘 사느냐 못 사느냐 누구냐, 이런 것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잘 경외하고 둘이 서로 좋아하는가? 서로 좋아하면 결혼해도 됩니다. 둘이 좋아하면 이 세상을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이 사랑의 힘입니다. 사랑의 힘은 위대합니다. 

예) 웃어라 동해야!에서 도진이와 세화는 호텔과 돈 때문에 결혼한 것 같은데 불행합니다. 그러나 동해와 봉이는 진정한 사랑으로 교제하기에 반드시 웃을 날이 올 것 같습니다.

예) 행인의 외투를 벗게 한 것은 강풍이 아니라 따뜻한 햇살이었다는 동화를 여러분은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이처럼 사랑의 힘은 그 어떤 강제력보다도 강하다는 것을 알 수 그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힘으로, 서로 사랑하는 사랑의 힘으로 사람은 살 수 있습니다. 어려운 시기를 사랑으로 힘있게 극복하시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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