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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자(9) (욘 4: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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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자(9) (욘 4:6-11)

: 6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넝쿨을 예비하사 요나를 가리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니, : 7 하나님이 벌레를 예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시매 시드니라. : 8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쪼이매 요나가 혼미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니라. : 9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하니라. :1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하나님을 믿음으로 누리는 참 행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있으시기를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데 어떤 사람에게는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던 것을 보는 사람은 위대한 사람입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위대한 일입니다. 하지만 보이는 것을 통하여 보이지 않는 것을 깨닫는 것도 위대한 정신입니다.

우리가 어려움 속에서 살아가면서도 그래도 웃을 수 있는 것은 우리의 곁에 행복이 있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시름에 잠겼다가도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소리에 우리 곁에 있는 행복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용기를 가집니다. 우리의 삶에서 발견하는 작은 행복은 삶의 활력소가 됩니다. 우리의 삶에서 깨달음은 인생의 깊이를 더해 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깨닫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깨닫게 하시기 위하여 준비하여 놓은 것을 ‘예비’라고 합니다.

  
I. 예비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것을 보여 줍니다. 여기에서 ‘예비하다[hn:m/마나]’는 말은 본래 ‘달아서 나누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정확하게 달아서 나누어 꼭 필요한 자리에 있게 계산해 놓은 것입니다. 거기에는 그렇게 하신 목적이 있습니다.

‘성룡식 영화’라는 일종의 액션코미디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가 가지는 유치함이자 매력은 성룡이라는 배우의 운동 신경과 주변에 있는 소품들을 짜 맞춰 척척 사용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손에 잡히는 것을 잘 사용할까 하며 넋을 놓고 본적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이 모든 것이 연출이라는 생각을 하며 피식 웃었습니다. 모든 것을 각본에 의하여 치밀하게 준비하여 놓고 그것을 활용하는 것처럼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람이 준비하여 놓은 것을 연출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말씀하시기 위하여 준비하여 놓은 것을 예비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요나를 위하여 예비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6절 말씀입니다.
: 6a하나님 여호와께서 박 넝쿨을 예비하사 요나를 가리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 

하나님께서 박 넝쿨을, 그 때, 바로 거기에 있게 하셨습니다. 박 넝쿨이 자라 올라 요나의 머리 위에 그늘을 지게 하셨습니다. 지금 요나는 뜨거운 햇볕 아래 초막을 짓고 그 안에 앉아 있는 중이었습니다. 얼기설기 지은 초막 위로 박 넝쿨의 그림자가 드리운 것은 정말로 기분 좋은 일입니다.

1. 좋은 일을 예비하십니다.

지금 요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중이었습니까? 요나는 어쩔 수 없이 니느웨라는 도시로 갔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으로 니느웨가 곧 멸망할 것이라고 심판을 선포하였습니다. 니느웨 백성들은 왕으로부터 시작하여 온 백성이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회개를 보고 그들에게 내리려던 심판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이 때 요나는 불같이 화를 내고 성질을 부렸습니다. 요나가 원하였던 것은 니느웨가 하나님께 심판받는 것이었습니다. 니느웨는 요나의 조국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원수의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지금, 요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니느웨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리지 않으시겠다는 심판을 기다리는 요나에게 좋은 일이 생겼다는 것은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 일입니다. 그가 심지도 않은 박 넝쿨이 자라서 그늘을 드리웠다는 것은 마냥 좋아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받을 만한 것보다 훨씬 좋은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 깨달아야 합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치밀한 계획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싶어 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좋은 일이 있을 때, 내 능력 밖의 성과를 거둘 때, 생각하여야 합니다. 우리들이 노력한 것보다 훨씬 더 좋은 일이 있을 때 단지 ‘재수가 좋다’고 좋아할 일은 아닙니다. 거기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싶어 하시는 무엇인가 있습니다.
  
또 하나님은 요나를 위하여 무엇을 예비하셨습니까?

7절 말씀입니다.
: 7 하나님이 벌레를 예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시매 시드니라. 

요나를 위하여 햇빛 가리개로 박 넝쿨을 예비하신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벌레를 예비하셨습니다. 다음날 동이 틀 무렵, 하나님이 벌레를 한 마리 마련하셨습니다. 벌레가 박 넝쿨을 쏠아 버리자 박 넝쿨은 시들고 말았습니다.

오래 전, 예배당 주택 옆에 박을 심었습니다. 제법 자라서 지붕까지 올라갔습니다. 뽀얀 솜털이 덮이긴 하였어도 표주박이 여러 개 열렸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시들더니 말라버렸습니다. 무슨 일인가 하고 자세히 보았더니 아침에 신문을 돌리는 아이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면서 자전거 페달로 박 넝쿨 줄기를 끊어 놓았습니다. 자전거 바퀴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었습니다. 그 때 제가 진짜로 요나의 마음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요나에게 사라진 박 넝쿨은 우리가 아까워하는 정도 그 이상입니다. 그곳은 뜨거운 바람이 부는 사막이었습니다. 이런 기후에서 박 넝쿨이 있다는 것은 시원한 팥빙수를 먹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잃는 것은 아주 중요한 것을 잃는 것입니다. 그 후에 이어진 요나의 탄식을 보면 이 박 넝쿨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거기에서 중요한 것을 잃게 하셨습니다.

2. 잃는 일을 예비하십니다.

우리의 삶에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인 것이 아니라 아주 중요하고 요긴 것을 잃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물건일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중요하게 여기던 일일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소중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가 중요하게 여기던 것을 잃는 것은 고통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하나님의 계획이라면 거기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려는 것이 분명히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끼던 것을 거두어 가심으로 단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려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믿는다면 잃어버리는 것을 통하여도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요나를 위하여 예비하신 것이 또 있습니다.

8절 전반절 말씀입니다.
: 8a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쪼이매 요나가 혼미하여 

하나님께서 이번에 예비하신 것은 찌는 듯이 뜨거운 동풍이었습니다. 이미 박 넝쿨이 사라졌기에 햇볕은 사정없이 요나의 머리 위로 내리쬐었습니다. 요나에게 정말로 견디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3. 힘든 일을 예비하십니다.

우리의 삶에는 정말 견디기 힘든 일들이 있습니다. 그런 일을 겪어보지 않는 사람이 어찌 그 고통을 알겠습니까? 우리는 다른 사람이 겪는 고통을 어떤 것이라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겪는 힘든 일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겪는 어려움이라면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런 일을 겪을 만한 잘못은 없는지 반성해보아야 합니다. 그런 일을 겪을 만한 잘못이 없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힘든 일을 예비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좋으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힘든 일에도 반드시 좋은 일이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 의미 없는 일은 없습니다. 그것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얻는 것이든 잃는 것이든, 기쁜 일이든 고통스러운 일이든 하나님의 계획 밖에 있는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신 일은 그것이 어떤 일이든 좋은 일입니다. 장차 좋은 일을 이룰 것입니다. 그것을 믿고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좋으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좋은 일을 여러분의 삶에서 보시기를 축복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어리석습니다.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는 무지합니다.

  
II. 무지
  
요나는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어떻게 받아들였습니까?

6절 후반절 말씀입니다.
: 6b요나가 박 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니, 

하나님께서 박 넝쿨을 거기에 있게 하심으로 요나에게 말씀하시고 싶은 것이 있었습니다. 요나를 위하여 박 넝쿨을 예비하신 것은 단지 요나의 머리 위에 그늘이 지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그를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한가하게 박 넝쿨을 키우고 있을 때가 아니었습니다. 남의 멸망을 기다리는 요나에게 좋은 일이 생겼다는 것은 사실 좋지 않은 일이 생긴 것입니다. 그런데도 요나는 그 박 넝쿨 덕분에 아주 기분이 좋았습니다. 요나는 단지 눈앞에 보이는 것만을 보았습니다.

1. 눈앞의 이익을 기뻐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작은 행복을 즐기는 것이 잘못은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작은 행복을 감사하며 사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눈으로 보이는 이해관계에 따라서 울고 웃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지금 당장 좋은 것이 장차 좋은 것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당장 나쁜 것이라도 그것이 장차 좋은 것을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보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눈은 내일을 넘어 영원을 바라봅니다. 눈앞에 보이는 이익 때문에 표시 나게 살지는 맙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익이 영원한 경우들이 많습니다. 눈앞의 이익만 보고 기뻐하는 사람은 멀리 있는 것을 보지 못할 수 있습니다.

해맑은 마음으로 보고 느끼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좋은 일이 있어서 기뻐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쉽게 기뻐하고 또 쉽게 슬퍼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8절 후반절 말씀입니다.
: 8b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니라. 

박 넝쿨이 자라는 것을 그렇게 기뻐하였던 요나는 그것이 사라지자 그것을 안타깝게 여겼습니다. 더욱이 그늘막이 사라진 후에 내리 쬐이는 햇볕은 더 뜨겁게 여겨졌습니다. 거기에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뜨거운 동풍까지 불어오니 그야말로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요나는 죽고만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투덜거렸습니다. 요나는 정말로 죽고 싶지는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히 하나님께 스스로 죽기를 구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생명을 걸고 하나님께 대항하였습니다.

2. 쉽게 생명을 내던집니다.

사람들이 점점 더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을 잃어가고 있는 듯합니다. 쉽게 웃습니다. 그런데 쉽게 웁니다. 그리고 쉽게 화를 냅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미워합니다. 오늘날 조울증은 질병의 하나로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심한 감정의 굴곡을 다스리기 위하여 치료받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깊이 생각하여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정서를 건강하게 키워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참고 인내하는 성품을 길러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 경건의 훈련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혼에 관심을 가지고 계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성품에도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 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도 건강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자신의 생명이 얼마나 귀중지를 알아야 합니다. 평소에 지나가는 말이라도 ‘죽겠다’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좋아서 죽겠다’는 말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영원한 죽음에서 건져주신 것을 감사하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을 누려야 합니다.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무지한 사람입니다.
  
인간의 무지는 결정적으로 하나님께 대항합니다.

9절 말씀입니다.
: 9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하니라. 

드디어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박 넝쿨이 죽었다고 네가 이렇게 화를 내는 것이 옳으냐?”

여기에는 요나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마음이 묻어납니다. 요나의 어리석음을 안타까워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하지만 요나의 대답은 무엇이었습니까?
“옳다 뿐이겠습니까? 저는 화가 나서 죽겠습니다.”

하나님께서 타이르시는 말을 귓전으로 듣고 하나님께 화를 냅니다. 하나님께 화를 내는 자신의 행동이 정당하다는 것입니다.

3. 하나님께 화를 냅니다.

인간의 가장 어리석은 모습은 하나님께 화를 내는 것입니다. 더욱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께 화를 내는 것은 인간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어있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믿지도 않는 하나님을 원망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정꾼 아버지 밑에서 자란 두 형제 중 하나는 술주정꾼이 되었습니다. 또 하나는 목사가 되었습니다. 

아버지처럼 술주정꾼이 된 아들에게 “왜 술주정꾼이 되었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주정꾼이 된 아들은 “그럴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하고 대답하였습니다. 술주정꾼 아버지를 보고 배웠으니 술주정꾼이 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대답이었습니다.

목사가 된 아들에게 “왜 당신은 아버지가 술 마시는 것을 보고도 술을 배우지 않았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 아들도 “그럴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하고 대답했습니다. 술주정꾼 아버지를 보고 자랐는데 어떻게 술주정꾼이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인간은 정반대되는 일을 하고도 각각 ‘그럴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그렇게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원망하는 일은 접어두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믿는 사람들은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는 사람입니다. 좋으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자신의 삶에서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을 발견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좋은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는 인간들은 자신의 무지를 드러냅니다. 이런 사람들을 보시며 하나님은 탄식하십니다.

  
III. 탄식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탄식하십니까?

10절 말씀입니다.
:1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하나님은 요나가 그저 하룻밤 사이에 자라났다가 하룻밤 사이에 죽어 버린 박 넝쿨을 그처럼 아까워하는 것을 보시고 탄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수고하지도 않았고 그가 키운 것도 아닌 것을 주심으로 그에게 말씀하시고 싶은 것이 있으셨습니다. 그런데 요나의 생각은 너무나 짧았습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박 넝쿨은 보면서도 니느웨에 있는 수많은 생명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1. 짧은 생각을 탄식하십니다.

우리의 생각은 자신의 생각에 사로잡히면 짧은 생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더욱이 염려나 근심에 사로잡힌 생각은 짧은 생각입니다. 미움이나 질투 때문에 생각이 짧아지기도 합니다. 화가 날 때 하는 생각은 짧은 생각입니다. 화가 나서 내뱉는 모든 말은 짧은 생각에서 나온 것입니다.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생각입니다.

짧은 생각에서 벗어나려면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정말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물어야 합니다.

가끔은 눈을 들어 하늘을 보아야 합니다. 파란 하늘을 바라볼 수 없다면 눈을 감고 마음의 별을 세어야 합니다. 자신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놀라운지를 다시 새겨야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이 사람들을 보시며 탄식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1절 말씀입니다.
: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요나의 눈은 하루살이 박 넝쿨을 바라보며 웃고 울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눈은 니느웨의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눈은 사람들이 죄를 짓고 멸망을 향하여 치닫는 것을 보시며 슬퍼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죄를 회개하고 돌아올 때 웃으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아랑곳하지 않는 요나의 어리석음에 하나님은 탄식하십니다. 

2. 영적 무관심을 탄식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깨닫지 못하고 어두움을 향하여 가는 사람들을 보시며 탄식하십니다. 그런 사람들이 하님께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기다리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빛을 얻었다는 사람을 보시면서도 역시 탄식하십니다. 자신은 빛을 얻었다고 기뻐하면서도 여전히 어두움을 향하여 가는 사람들에게 무관심한 사람들을 보시면서 탄식하십니다. 하나님은 영혼에 대한 무관심에 탄식하십니다. 영적 무관심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요나를 보고 울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요나에게 그늘을 만들어주어 그를 기쁘게 하기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을 통하여 그가 깨닫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사람들을 향하여 울고 계십니다. 그 크신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 아버지의 가슴에 못질을 해대는 어리석은 사람들을 품에 안으시고 아파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영원한 것을 바라보고 영혼에 관심을 갖는 사람으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자신이 겪는 모든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보아야 합니다. 좋으신 하나님을 믿기에 하나님께서 사랑하심을 자신의 삶속에서 경험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깊이 깨닫고 이웃의 영혼에 관심을 가지심으로 영원히 행복한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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