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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맥추감사절]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창 26: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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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창 26:12-25)

오늘은 전반기 동안 지켜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맥추감사주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중요한 세 가지 절기를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것은 유월절과 맥추절, 그리고 장막절입니다. 이 절기는 다 나름대로의 중요한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월이 지나도 이 절기를 지키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하나님 앞에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년 절기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에 대한 감사를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그 감사가 체질화되고 생활화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기대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맥추감사절을 절기를 지키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이 없으면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삽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 앞에 얼마나 감사의 삶을 살고 있습니까? 감사는 벽에 던진 공과 같습니다. 공을 벽에 힘껏 던지면 그 공은 힘차게 되돌아옵니다. 그러나 힘없이 던진 공은 힘없이 돌아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사는 하면 할수록 새로운 감사의 조건이 다시 나에게 찾아와 더 감사하고 더 행복하고 더 풍성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감사를 잊고 살면 우리에게 감사할 조건이 없어지고 맙니다. 

일본의 유명한 신학자인 우찌무라간조는 “감사는 은혜에 대한 마땅한 응답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은혜를 알고, 은혜를 받고, 그 은혜를 누리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에 대한 마땅한 응답으로 감사가 따르는 것입니다. 따라서 항상 감사하는 사람은 은혜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감사하지 못하고 불평불만 하는 사람은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오늘 맥추감사절을 맞이하여 우리의 삶을 돌아보시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하는 삶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삭이 받은 축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2-14절에 보시면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라고 했습니다. 

지금 이삭은 블레셋의 그랄이라는 이방 땅에 머물면서 농사를 지었는데 한해에 백 배의 결실을 수확하였다고 합니다. 농사해서 백 배를 얻었다는 것은 최고의 결실을 거두었다는 뜻입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농사와 함께 가축도 번성했습니다. 이삭이 가지고 있는 양 떼와 소 떼의 가축에 복을 주셔서 가축이 심히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종들도 많아졌습니다.  

결과적으로 이삭은 창대하고 왕성하여 큰 부자가 되어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시기할 정도였습니다. 우리 모든 성도님들아 다 이삭이 받았던 백 배의 축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특별히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12절 후반 절에 보시면 “여호와께서 복을 주심으로” 이삭이 거부가 되었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 말은 이삭이 이처럼 복을 받은 것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이 되는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되는 축복을 받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어느 날 아브라함에게 “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서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말씀에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심지어는 “내 아들 이삭을 내게 제물로 바치라”고 할 때 아브라함은 그것까지 순종했습니다. 누가 봐도 아브라함은 믿음의 사람이요, 순종의 사람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야곱을 보세요. 야곱은 너무나 하나님의 축복을 사모했던 사람입니다. 얼마나 복을 사모했느냐 하면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형의 장자권을 가로챌 정도로 축복을 사모했던 사람입니다. 

야곱이 아버지와 형을 속인 것은 정당화 될 수 없지만 그러나 축복에 대한 사모함, 복을 받고자하는 열정은 인정해야할 부분입니다. 얍복강에서 천사와 씨름할 때 천사를 놓아주지 않습니다. 환도 뼈가 부러져 절뚝거리면서도 복 받기를 원했던 인물이 야곱입니다. 누가 봐도 야곱은 복을 받을만한 사람입니다. 

요셉 또한 그렇습니다. 그는 형들의 미움으로 노예로 팔려갔지만 그 많은 고난의 세월 동안 하나님이 주신 꿈을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였습니다. 사랑받던 아들에서 하루아침에 노예의 신세로, 그리고 죄수로 전락했지만 단 한 번도 불평한 적이 없습니다. 형들을 미워해 본 적도 없습니다. 결국 애굽의 총리가 되는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누가 봐도 요셉은 복을 받을만한 사람입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이나 야곱이나 요셉은 복을 받을만한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삭은 하나님의 복을 받을만한 특별한 조건이 없습니다. 이삭은 너무 평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맥추감사절을 맞이하며 우리가 가장 크게 깨달아야 하는 부분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복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만한 믿음이 있습니까? 아브라함과 같은 순종의 믿음이 있습니까? 야곱처럼 축복을 간절하게 사모합니까? 요셉처럼 고난가운데서도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있습니까? 그럼에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와 복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값없이 주시는 구원을 선물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율법을 잘 지켜서 죄를 용서받게 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행위로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기 위해 사람이 한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엡 2:8절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용서하시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희생시켜야 했습니다. 아들의 목숨과 우리들의 목숨을 바꾸셨습니다. 그런데 어떤 대가도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구원을 주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죄인된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도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게 하시면서 까지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해답은 바로 사 43:5절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너무나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천국의 백성으로 삼아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오늘 맥추감사절을 맞이하여 우리는 구원의 은총을 누릴 자격이 없지만 값없이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이삭이 누리는 백 배의 축복이 이삭 자신의 노력이나 능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복의 결과임을 12절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12절 서두에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삭의 원래 직업은 가축을 키우는 목축업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이삭은 농사를 지어본 경험이 없습니다. 그런데 흉년으로 블레셋의 그랄 지역에 거하면서 목축업을 하는 이삭이 농사를 지어서 백 배의 결실을 거두었습니다. 

목축을 하는 이삭이 농사를 짓게 된 이유는 흉년 때문입니다. 창 26:1-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을 주셨고 그리고 이삭의 때에도 극심한 흉년을 주셨습니다. 흉년이란 쉽게 말하면 기근입니다. 굶주림으로 사람이 살 수 없는 환경이 되는 것입니다. 

이삭은 가나안에 흉년이 들자 애굽으로 내려갈 생각이었습니다. 애굽으로 가겠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입니다. 애굽은 죄악의 가득한 곳입니다. 조상들이 출애굽을 하였는데 이제 와서 애굽으로 간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정반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애굽으로 가려는 이삭을 막았습니다. 그러면서 블레셋 그랄 땅에 머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땅에서 살게 하시면서 농사를 짓게 하셨습니다. 

이 말은 이삭이 열심히 일해서, 또는 땅이 매우 비옥해서, 혹은 좋은 농사방법을 동원하여서 백 배의 축복을 받았다는 말이 아닙니다. 농사를 전혀 알 수 없는 이삭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어떻게 이러한 결실을 거둘 수 있겠습니까?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는 2배의 결실을 얻기도 힘듭니다. 결국 이것은 하나님이 복을 주시므로 백 배의 결실을 거두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베드로는 어부로서 갈릴리 호수에서 평생 동안 고기를 잡았던 제자입니다. 그런데 밤새도록 수고했지만 고기를 잡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깊은 데로 가서 고기를 잡으라‘고 했고, 또 한 번은 ’배오른 편에 던지라‘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고기를 잡는 기술이 없습니까? 열심히 수고하지 않았습니까? 인간적인 방법으로 최선을 다했지만 빈 그물,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이 능력만 가지고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면에서는 능력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기회와 환경을 잘 만나야 합니다. 그것을 주장하시는 분이 누구입니까? 바로 하나님입니다. 사람들은 운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합니다. 

지금 계획하시고 소망하시는 모든 일들이 잘 진행되고 있습니까? 생업이 잘 되시고 물질의 복을 누리십니까? 삶이 형통하십니까? 이럴 때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모든 것을 이루었다는 교만입니다. 

신 8:17-18절 말씀에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부요함은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기에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 물질의 풍요를 누리는 것은 우리의 노력이나 또는 능력이 탁월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 주변에 부자가 되려고 안달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성실히 노력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또 주변에 머리 좋은 사람 또한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런데 어떤 사람은 부요하게 되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오늘 맥추감사절을 맞이하여 이 모든 것이 나의 노력이나 수고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임을 기억하고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삭의 백 배의 복이 하나님이 주셨다는 것을 보여 주는 중요한 내용이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창 26:3-5절 말씀에 보시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미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이삭에게도 그대로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24절에서 분명히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이삭을 보고 축복한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을 보고 축복하셨습니다. 이삭이 받은 축복은 이미 아버지 아브라함에 의해서 약속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의 명령과 계명과 율례와 법도를 지켰기 때문에 이삭에게 복을 주신다는 뜻입니다.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편안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좋은 소문나는 성장하는 교회가 될 수 있는 것도 믿음의 선배들의 눈물의 기도와 헌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교회 개척을 해서 빠른 시간에 부흥을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짧은 시간에 부흥하셨네요?” 하고 칭찬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목사님이 정색하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결코 짧은 게 아닙니다. 저는 3대째 목회자 집안입니다. 저희 아버님은 개척 교회하시며 고생하셨고 금식기도 하시다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신앙으로 양육을 받았습니다. 교회 개척을 위해 오랜 세월 기도했고,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기도하고 있습니다. 결코 빠른 게 아닙니다.” 

시 37:25-26절에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저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정성을 다하여 믿음의 씨를 뿌려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의 터를 잘 다져놓으면 우리 자녀나 우리 자녀 손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언약은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후손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축복을 약속받은 자녀입니다. 

오늘 맥추감사절을 맞이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자녀임을 기억하시고 하나님 앞에 날마다 감사하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오늘 본문의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었다.”라는 말씀은 모든 성도들이 관심을 갖게 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들을 때, 우리는 두 가지의 생각을 하게 됩니다. 먼저는, 참 부럽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과연 나도 이런 축복을 받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입니다. 

여러분, 이삭이 받은 축복을 성경에 기록해 놓으신 것은 단순히 이삭의 축복을 보고 부러워하라고 기록해 놓으신 것은 아닙니다. 이삭의 축복을 우리도 받게 하시려고 기록해 놓으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을 자격이 없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능력과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믿음의 유산을 통하여 이 복이 우리 자녀와 자녀 손들에게도 계속해서 이어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감사를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맥추감사절을 맞이하여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을 경험하는 복된 성도들이 다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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