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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맥추감사절] 즐거움으로 드리는 감사 (신 16: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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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움으로 드리는 감사 (신 16:9-12)  

부모에게 가장 즐거울 때가 있다면 그것은 자식이 즐거워하는 모습에 볼 때라고 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그 자녀된 백성들이 즐겁게 살아가는 것을 무엇보다 기뻐하시고 원하시기에 저와 여러분들이 이 땅에서 기쁘고 즐겁게 살아가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말씀과 그 계명을 주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말씀 속에는 우리로 하여금 더 많은 축복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있음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남녀가 사랑해서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여 이 땅에 태어나게 되면 모두가 함께 기뻐합니다. 

그리고 이 날을 더욱 기뻐하기 위해 기념일을 정하고 그 날이 돌아오면 함께 그 기쁨을 나누듯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놀라운 축복과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이 날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즐거움에 참여시키기 위해 절기를 정하여 주셨습니다.

그 대표적인 이스라엘의 세가지의 절기가 바로 ‘유월절, 맥추절, 수장절’ 이었습니다.

‘유월절’ 이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청산하고 모세를 따라 애굽을 나오는 해방의 날을 기념하여 정하여 주신 절기를 말합니다. 

그런가 하면 ‘칠칠절’ 혹은 ‘맥추절’ 이라고 일컫는 절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첫 열매를 거둘 때에 처음 열매를 거둔다고 해서 초실절이라고도 하고 유월절 후 칠주가 지났다고 해서 칠칠절로 말하기도 합니다. 

또 가을이 오면 농사를 지어서 모든 곡식을 거두어 저장하고 장막에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수장절 혹은 장막절’ 이라고 불리는 절기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오늘은 절기상 맥추절입니다. 
특별히 맥추절을 지키는 중요한 이유가 있다면 성경이 맥추절을 지키라고 명령하였기 때문입니다. 

출23:16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문자 그대로 맥추절이란 보리를 거두는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본래 이스라엘에서는 주로 밀 농사를 지었는데 그 의미는 첫 열매를 거두는 것을 기념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을에 벼를 거두기 이전에 먼저 보리를 거두기 때문에 맥추절이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특별히 이 맥추절은 유월절 둘째 날에 시작하여 50일째에 밀의 첫 이삭을 드리는 절기라고 해서 오십 일째에 지킨다는 의미로 ‘오순절’ 이라도 합니다. 

그런데 신약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더 이상 율법 아래 있지 아니 하다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오늘날 맥추절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특히 이곳에 계신 대부분의 성도님들은 농사와는 무관하신 분들로 알고 있는데 과연 맥추절이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맥추절은 한 해의 절반을 지내며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고 후반기를 시작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절기로 지키고 있습니다.

축구경기나 구기 종목을 보면 대개 전반전과 후반전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휴식시간이 있습니다. 이 시간에는 넋 놓고 그냥 쉬는 것이 아니라 전반전의 경기를 분석하고 후반전에 어떤 작전을 펼것인가를 지시하는 대단히 중요한 시간으로 사용하는 것처럼 맥추절이기도 한 7월의 첫 주일은 한 해의 절반을 지나고 후반절을 시작하는 시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해의 절반을 돌아보며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다시금 우리의 마음을 다잡고 하나님께 주실 은혜를 구하는 시점이 바로 오늘날 맥추절이 주는 귀한 의미인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원하기는 한해의 중간에서 우리의 마음을 다시한번 새롭게 하여 넘치는 감사가 있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절기는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아무나 지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만이 지켰다는 것입니다.
똑같이 출애굽을 하였지만 광야에서 죽은 이스라엘 백성은 이 절기를 지킬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우리에게 깊은 비밀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만이 이 절기를 맛볼 수 있었다는 것은 다시 말해 예수를 믿는다고는 하지만 변화되지 못한 신앙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기쁨의 깊은 은혜를 누리지 못하고 껍데기뿐인 신앙 생활에 머무르다가 결국 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는 뜻이기도 한 것입니다.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크게 세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과 광야에 있는 이스라엘 그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입니다.

똑같은 이스라엘 백성이지만 애굽에 있을 때는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지 못한 채 노예생활을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따라 애굽을 나왔을 때는 광야라는 세계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그러나 믿음을 앞세우지 못한 첫 번째 이스라엘 백성들은 결국 광야에서 다 죽고 여호수아와 갈렙 그리고 이스라엘 2세대들만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들만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와, 절기를 지키는 행복을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세 이스라엘은 마치 이 땅을 살아가는 세 종류의 그리스도인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애굽의 신자가 있습니다. 

이들은 세상 속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지금도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택함을 입었지만 마귀의 종노릇하면서 세상에 묻혀 아무런 능력을 행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두 번째로 광야 신자가 있습니다. 

광야 신자는 세상에서는 나왔습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따라 애굽을 나와서 광야를 지나고 있듯이 교회까지는 나왔지만 교회에 와서 믿음 생활을 한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감사하지 못하고 의심과 원망과 불평을 오가며 힘들게 예수를 믿습니다. 

믿지 않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확실히 믿는 것도 아닌, 세상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교인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하고 어정쩡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세 번째로 가나안 신자가 있습니다. 

이들은 이제 세상을 완전히 등지고 거룩한 삶을 살고자 힘씁니다. 

때로는 치열한 영적인 전쟁을 치루기도 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신령한 신자가 되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누리며 감격하며 지내는 신자입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해당하십니까?

11절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그렇습니다. 맥추절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모두가 온전히 즐거워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즐거워하는 것이 바로 구원받은 사람의 모습이며 이것이 바로 성도의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행복해 지기를 원하는 것은 사실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어디에서 즐거움을 얻을까 헤매지만 인간의 즐거움은 하나님 앞에서 얻기까지는 결코 얻을 수 없습니다.

성 어거스틴은 ‘하나님 안에서만 참된 안식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참된 기쁨과 만족을 얻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세상에는 하나님 앞에서 즐거움을 얻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세상의 것으로 즐거움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다윗은 오로지 하나님 앞에서 즐거움을 얻으려고 하였던 사람인가 하면 솔로몬은 세상에서 즐거움을 얻으려고 하였던 대표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즐거움을 누렸던 다윗은 그의 즐거움이 영원한 것이요, 하늘의 즐거움이요, 환난이나 곤고나 어떤 역경에서도 빼앗기지 않는 즐거움이었지만 이 땅의 것으로 낙을 삼고 즐거움을 누리고자 하였던 솔로몬의 즐거움은 일시적인 것이요, 공허한 것이요, 결국 후회하게 되는 즐거움이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전도서2장에서 ‘내가 이 세상에서 모든 낙을 누리려고 했지만 모든 것이 다 헛되고 헛되다’ 는 말을 남겼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솔로몬과 같이 세상적인 즐거움으로 인생의 낙을 얻으려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가나안에 들어간 자들만이 절기를 지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예수 안에서만이 인생의 참된 기쁨과 즐거움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왕에 예수를 믿고 하나님 앞에서 즐거움을 얻기로 결심하였다면 한시라도 빨리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참으로 복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사55:1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포도주와 젖’ 이 무엇입니까?
포도주는 ‘즐거움’ 이고 젖은 ‘만족’ 입니다. 

사람들은 늘 목마릅니다. 만족함이 없습니다. 
즐거움이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만족을 얻을까, 즐거움을 얻을까’ 해서 참 양식도 아닌 것에 물질을 쓰고 만족할 수 없는 것에 인생을 허비하고 살아갑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돈이 없이도 얼마든지 만족하고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데 너희는 왜 어리석게 헤매고 있느냐?’

하나님의 은혜로 즐거움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만족함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은혜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복 있는 사람은 즐겁게 믿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 즐거움을 주님 안에서 맛보았기에 시51:11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라고 간절히 구하였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기쁨을 잃어버리지 않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맥추절은 축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에게 이 축제를 통해 이 날을 감사하며 즐거워하라고 맥추절의 절기를 주셨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즐거움이 넘치게 하시려고 맥추절을 지키라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맥추절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 참 즐거움을 맛보며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함으로 지금보다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원합니다.
 

두 번째로 맥추절을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해선 이웃과 함께 즐거워하는 절기가 되어야 합니다. 

11절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이 즐거움은 사랑의 즐거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내 이웃과 나눔으로 맛보는 즐거움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즐거움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먼저 즐거움을 나누어야 할 사람들은 자녀를 포함한 가족들입니다. 
가족들과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잠5:18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그리고 ‘노비’ 는 오늘로 치면 직장의 동료나 자신의 지시를 받는 사람을 의미할 것입니다.
이들과도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레위인’ 은 오늘날 목회자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레위인은 오직 하나님을 섬기는 일만 하고 거기에서 나오는 것으로 사는 자들로 이들은 추수할 밭도 기업도 없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마땅히 백성들은 이 절기에 레위인과 함께 이 기쁨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교인들은 주의 종과 즐거움을 서로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또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들과 함께 즐거워하라고 하신 것은 세상에서 소외 되거나 경제적으로 혹은 정신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들은 누군가 돌보아 주지 않으면 절기가 고통스런 시간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위에 고통 당하고 불행한 사람을 찾아 돌아보고 함께 즐거움을 나눌때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복을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여러분 이처럼 하나님께는 절기를 지킬 때에 서로 이것을 함께 나누라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이는 모두 하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누어야 합니다.
나의 즐거움이 다른 사람의 슬픔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나의 즐거움이 모두의 즐거움이 되어야 합니다. 

천국은 공동체의 즐거움을 나누는 세계입니다. 너와 내가 함께 즐거워하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즐거움을 함께 공유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혼자 기뻐하는 것이 아니고 더불어 함께 기뻐하는 것입니다. 
원하기는 오늘의 기쁨이 우리 모두의 기쁨이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맥추절은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으로 즐거워해야 합니다. 

10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하나님께 드림은 언제나 자원함과 즐거움이 있어야 합니다. 

16-17절 ‘너의 중 모든 남자는 일 년 삼차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지니라’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힘대로 드릴지니라’ 고 했습니다. 
다시말해 많고 적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나님께 복을 받았다고 생각한다면 그 복을 따라 힘대로 드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식이 여럿이 있으면 사는 모습과 형편도 다양합니다.
그런데 형편이 어려운 자식은 명절 때에 부모를 찾아 뵐 때에 무언가를 가지고 가면 부모는 형편을 알기에 “아니 그냥 오지 뭐 이런 걸 가지고 왔느냐?”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냥 와도 되는데 뭘 가지고 왔느냐’ 하시지만 어려운 가운데 드리는 선물은 부모님의 마음을 더 감동하게 하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녀의 것을 탐내는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가난한 자녀라도, 어린 자녀라도 진심으로 부모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일 것이며 하나님의 마음일 것입니다.

부모에게 드리는 것을 즐거움으로 아는 자녀는 복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녀에게 최고의 즐거움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으로 즐거움을 얻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절기때 마다 드리는 즐거움을 주셨습니다. 
원하기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절기를 통해 참된 기쁨과 즐거움으로 하나님께 드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여러분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람의 작은 것 하나까지도 잊지 않고 기억하게 되지만 문제는 우리의 마음이 너무나 쉽게 식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복 주심을 너무 빨리 잊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진심으로 사랑하여 아들까지 희생하셔서 잊을 수 없지만 하나님을 위해 희생한 것이 별로 없는 사람은 사랑을 쉽게 잊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은혜에 감사하여 자신의 소중한 것까지 드린 사람은 쉽게 그 사랑이 식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잊는 것과 잊지 않는 것의 차이는 얼마만큼 사랑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원하기는 특별히 한해의 절반을 지나며 맞이하는 맥추절을 맞이하며 하나님께 받은 사랑과 받은 은혜를 깨닫고 다시한번 우리의 감사를 회복하는 복된 시간이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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