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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리 놓기 (엡 2: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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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놓기 (엡 2:11-22)
   
세상에서 가장 경외롭고 성스러운 장소지만 오히려 세상에서 가장  많은 갈등과 분쟁이 있는 곳이 있습니다. 이곳은 유대교, 천주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성지입니다. 이곳이 어디인지 아십니까? 이곳은 예루살렘입니다. 이곳 예루살렘은 기독교를 포함한 여러 종교들에게 성지입니다. 종교적인 갈등으로 인한 분쟁이 있기 전까지는 자비와 평화와 사랑의 흔적이 남아 있던 위대한 성지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예루살렘은 자비와 평화와 사랑을 찾을 수 없는 갈등과 반목이 끊이지 않는 피의 땅이 되었습니다.  이곳은 잠재되어 있는 화약고처럼 틈만 나면 종교간의 갈등으로 테러가 끊이지 않는 곳입니다. 원래 예루살렘은 너무나도 성스럽고 영적인 곳이지 않습니까?  여러 종교가 공존하는 성지이기에 평화만  있을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못한 아픔의 장소, 피의 장소가 되어 버렸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바울의 관심을 많이 받은 교회입니다. 바울이 3년반동안이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다운 교회가 될 수 있도록 피와 같은 땀을 흘린 교회입니다. 그 노력의 결과로 에베소교회는 사랑이 넘치는 좋은 교회로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비록 사도요한이 계시를 받던 A.D90년 경에는 사랑이 없음에 하나님께 책망을 받았지만 바울이 사역하던 초창기에는사랑이 넘치는 교회였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비록 어려움이 있고, 비록 아픔과 부족한 면이 있지만, 모든 것을 사랑이 덮어주고, 사랑으로 이해하며 아름다운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한 번은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붙잡혀 로마로 호송되기 전에 밀레도라는 곳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그곳에서 50Km 정도 떨어진 에베소교회의 장로들을 청하였습니다. 

에베소교회 장로들은 50km를 마다하지 않고 달려와서 바울의 고별설교를 듣습니다.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던 때에 그 먼 거리를 온다는 것은 보통 마음으로는 힘든 일입니다. 그리고 에베소 교회를 위한 바울의 마지막 설교를 듣고 헤어지는 것이 서운하여 함께한 모든 사람들이 크게 울었다고 사동행전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에베소 교인들은 그만큼 사랑이 많았다는 것이죠.
     
바울은 에베소에서 50km 떨어진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을 청하여 교회를 위한 마지막 당부의 말을 전했습니다. 교회가 지금처럼 사랑이 넘치는 교회가 되도록 주의하고 깨어 있으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바울의 이런 당부에도 불구하고 에베소 교회는 얼마 되지 않아 사랑이 점점 식게 되었습니다. 

사랑이 식어지니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허물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사랑의 울타리가 무너지니 바울의 염려대로 어그러진 말을 하는 무리들로 교회가 혼란을 겪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할례를 받은 교인과 할례를 받지 않은 교인들 간의 갈등 점점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할례 받은 에베소교인들은 할례 받지 않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할례를 받아야 유대인들처럼 율법적으로도 약속의 자녀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지니고 있었던 거룩한 흔적인 할례의 피를 높였습니다. 그런데 할례 받지 않은 에베소 교인들은 예수님을 믿는 것만으로도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가 된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두 부류의 의견차이가 너무나도 상이했습니다. 이러한 의견 차이는 이들을 점점 멀어지게 하였습니다.  이들은 마치 끊어져 버린 다리처럼 서로가 소통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무엇이 이들의 끊어진 다리를 다시 연결해 줄 수 있까요? 

오늘 본문에서는 에베소교회 안에 할례받은 성도들과 할례 받지 않은 성도의 화합을 말하고 있습니다. 할례를 받은 유대크리스천들은 자기들이 흘린 피를 알아주기 원했습니다. 자신들의 피흘린 공력을 높여주기 원했습니다. 자신들은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과 비록 교회는 같이 다니긴 하지만 하나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할례 받지 않은 이방 크리스천들을  무시했습니다. 이들의 신앙을 인정해 주지 않았습니다. 에베소 교회의 기득권자로 군림하고자 한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은 아닙니다.
   
교회는 세상과 비교할 때 거룩하고 구별된 곳입니다. 그러나 교회도 흠이 있습니다. 부족합니다. 어려움도 많이 있습니다. 갈등과  다툼으로 인한 상처도 많습니다. 당연합니다. 교인들은 예수님을 믿으러 온 사람들이지 예수님 아닙니다. 그러니 서로의 뜻이 다를 수 있습니다. 서로 마음이 맞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때론 갈등의 관계가  만들어 질 수 있습니다. 이런 갈등의 여파는 당사자들뿐만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력을 끼칩니다. 
   
혹 교회 사역에 깊이 있게 관여하지 않고 주일 예배만 잠깐 참여하는 성도들은 잘 모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사역에 깊이 관여하며 신앙 생활하는 분들은 공감하실 수도 있습니다. 교회 일을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경험하는 부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 그런 것만은 아니죠. 때론 마음이 잘 맞지 않아 힘들어 했던 일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힘든 것은요, 열심히 일했지만 그 마음을  알아주지 않고 도리어 오해 받았던 일일 것입니다. 대부분의 많은 성도들은 최선을 다 해서 봉사합니다. 자신의 시간을 쪼개가며 내 집 일을 하는 것보다도 더 열심히 교회 사역을 감당합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대부분의 성도들은 이렇게 피같은 시간과 피같은 물질과 피같은 헌신을 다 드립니다. 

그런데 때론 이런 헌신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시험에 빠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헌신을 자랑합니다. 이렇게 자신의 공적을 앞세우고, 타인을 질타하는 이러한 의식은 보이지 않게 성도들 간의 마음의 다리가 끊어지게 합니다.  성도들끼리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며 소통하며 함께  화합하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를 만들어 나가야 하는데, 성도들의 마음은 마치 끊어져버린 다리처럼 교류할  수 없게 합니다.       
    
참 안타까운 것은요, 교회의 갈등과 다툼은 교회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교회는 세상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교회다니는 사람들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을 위해 존재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전해야하는 다리의 역할을 해야 하는데 교회가 문제가 많다면 그 다리는 끊어진 다리가 됩니다 그 끊어진 다리로는 세상과 하나님의 뜻이 소통할 수 없습니다. 
   
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너무 시어서 먹지 못하는 자두와 같은 이미지로 비쳐지면 교회는 세상에 아무런 영향력을 끼칠 수 없습니다. 교회 밖에서 교회를 긍정적으로 보던 사람들이 교회의 부정적인 모습을 보면서 크게 실망합니다. 그리고는 “저 교회는 다르겠지” 하면서 또 하나의 먹음직 스러워 보이는 자두를 맛보려는 것처럼 다른 교회에 기대를 해봅니다.  하지만 그 교회   역시 마찬가지로 실망된 모습이 보여진다면 교회 밖의 사람들은 더 이상 교회를  신뢰하지 않을 것입니다. 더 이상 교회에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교회는 세상 사람들이 많이 찾는, 먹기 좋은 참 맛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도 지역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지만, 이렇게 교회당도 크고 넓게  지었으니 지금보다도 더 세상에 선한 영향력일 끼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가 맛좋은 자두와 같은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에베소 교회는 초기에는 맛 좋은 자두와 같이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교회로 소문이 나 있었습니다. 교우들 간의 사랑도 많은 교회였습니다.  사도바울은 에베소교회에 많은 애착을 가지고 목회하였습니다. 그래서   에베소 교회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온전한 교회가 되기를 무척이나  갈망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말씀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에베소 교회는 할례를 받은 유대파 크리스천들이 그렇지 않은 교인들을 무시하고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은 할례를 받은 정통 유대인들이기 때문에 뭔가 특별하다는 차별의식과 우월의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특별의식과 특권의식은 교회를 하나 되게 하지 못하는 갈등의 불씨가 된 것을   많은 사람들은 잘 알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교회는 큰 위기가 다가오게 됩니다. 
   
사도바울은 이러한 이야기를 수감되어 있는 감옥에서 듣게 됩니다.  사도바울은 날카로운 칼로 벤 것처럼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 어느 교회보다도  더 공들이며  애착을 가지고 목회 하였던 에베소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좋지 않은 소문이 들려오니, 감옥에 있는 자신을  한탄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당장이라도 족쇠를 풀고 철창문을 열어 에베소교회로 달려가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에베소 교회는 초대교회입니다. 에베소 지역에 처음 생긴 교회였습니다. 그 지역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달하는 가교의 역할을 해야 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이방 선교의 한 몫도 톡톡히 담당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에베소 교회는 내부의 갈등과 반목으로 빛을 잃고 점점 어두워지고 있습니다. 세상을 향한 영향력을 점점 잃어가고 있습니다. 에베소 교인들도 많이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에베소교회를 보고 바울보다 더 가슴이 찢어지는 분이 계셨습니다. 바로 교회의 주인이신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아픔을 그냥 바라보고만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옥중에 있는 바울에게 성령의 감동으로 편지를 쓰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비록 감옥에 수감되어 있던 바울이었지만 그를 통해서 에베소 교회를 향한 화해와 회복의 메시지를 선포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강단에서 설교하는 심정으로 편지를 씁니다. 이 편지는 마치 에베소교회 강단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설교하는 사도 바울의 애절한 심정이 보여집니다.   에베소교회를 보고 아파하며 흘리시는 하나님의 눈물이 보여집니다. 

“에베소 교인들이여~! 깊이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은 원래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소망도 세상에 대한 소망도 없이 살아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어 소망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여러분들과 우리 유대인들의 마음의 거리가 참으로 멀었습니다. 마치 끊어져 있던 다리처럼 가까워질 수 없는 관계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피로 우리 유대인들과 한 형제가 되었습니다. 멀리있던 여러분과 유대인의 관계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가까워졌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는 막힌 담을 허시고 우리 유대인과 여러분을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이 쓴 이 편지를 통해서 에베소 교인들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시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베소 교회에서 자랑되어지고 있는 할례의 피보다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를 더 높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의 피를 자랑하고 예수님의 피를 높일 때 다시금 화목하며 다시금 사랑이 넘치며 하나가 되는 교회가 될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13절 ~14 말씀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가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둘로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한 사람이 되게 하여 화평하게 하시고..”    

정말 오묘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피를 자랑하고, 예수님의 피를 높이면 갈등이 없어지고, 화평하게 되며 하나가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에베소 교회가 사랑이 식어지고 서로 원수가 된 이유는 유대인들이 받은 할례의 피를 자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피를 자랑하니, 사랑과 은혜가 넘치는 화합하며 평안한 교회가 되더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피는 다리를 놓게 합니다. 성도와 성도의 끊어졌던  다리를 이어줍니다. 세상과 교회 사이에 끊어져 있던 다리를 연결시켜  줍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어떤 교회가 교회일까요?  문제없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가 아닙니다. 비록 문제가 있다하더라도 잘 이겨내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입니다. 서두에도 말씀드렸듯이 우리 모두는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허물이 많습니다. 이런 온전하지 못한 사람들이 교회에 모여 있으니 교회도 당연히 허물과 약점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건강한 교회는 아무리 크고 어려운 문제라도 잘 이겨냅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피로 수혈 받았기 때문에 모든 아픔과 어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건강하지 못한 교회는 비록 작은 일로 주저 앉아버리고 맙니다.  예수님의 피를 자랑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연약함과 병을 물리치시고 건강하게 해주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피를 자랑하면 하나님께서는 갈등의 관계에 있는 교우들의 마음에 사랑의 다리를 놓아 주십니다. 예수님의 피는 치료의 능력이 있고, 예수님의 피는 화목케 하는 재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교회는 지난 주 새예배당 입당 감사 예배를 드렸습니다. 모든 건축의 공정을 마치고 완공된 교회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제가 볼 때 우리 교회는 아직도 건축 중입니다. 아직도 공사 중입니다. 하자를 보수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하자를 다 보수 했다하더라도 그래도 건축 중입니다. 공사 중입니다. 

이는 우리 교회뿐만이 아니라 지상에 있는 모든 교회가 그럴 것입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세상의 모든 교회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만들어져야 합니다. 때문에 계속 건축해야 하며, 계속해서 공사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겉모양은 다 완공했을 찌라도 우리 교회가 시대적인 소명을 이루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지어져야 합니다. 
      
또한 우리교회만 교회가 아닙니다. 이 자리 앉아계신 여러분 모두가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안에 거하실 처소가 됩니다.  오늘 본문 22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때문에 하나님의 교회된 여러분께서 하나님의 교회된 저와 여러분도 함께 지어져 가야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교회가 되기 위해서 말입니다. 

우리 교회는 세상에 그리스도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달해 주는 다리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아름다운 선물들이 이 지역과 세상에 전달되어지는 다리가 되길 기대합니다. 이제 교회도 이렇게 커졌으니 세상을 향해서 공급되어지는하나님의 은혜도 더 큰 다리로 많이 유입되기를 기대합니다.
    
이 귀한 사역에 우리교회가 사용되어지기 위해서 먼저 하나님의 교회된 우리들이 다른 성도의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다리를 놓기 소망합니다. 우리 힘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것을 자랑하면 됩니다. 무엇을 자랑해야 합니까? 예수님의 보혈의 피입니다. 그렇게 될 때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예수님의 보혈의 피는 막힌 담을 헐고, 갈라져 있던 두 마음이 하나가 되게 해주십니다. 세상과 교회와의 끊어져 있던 다리가 이어지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피는 특별한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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