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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불의 응답, 물의 응답 (왕상 18:3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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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응답, 물의 응답 (왕상 18:30-40)

원로 랍비와 교황이 로마에서 만났습니다. 랍비는 교황의 사무실 탁자 위에 놓여있는 황금으로 된 전화기를 눈여겨봤습니다. “주님과의 직통전화입니다” 라면서 교황은 랍비더러 사용해보라고 권했습니다. 랍비는 주님과 한참 통화했습니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그는 요금을 지불하겠다고 우겨댔습니다. 전화기 카운터를 체크한 교황은 ‘50달러’ 한국 돈으로 약 5만원이라고 했습니다. 랍비는 통화료가 좀 비싸다고 생각했습니다. 

몇 달 후 교황이 예루살렘에 갈 일이 있었습니다. 교황은 원로 랍비의 사무실을 방문했습니다. 랍비의 책상 위에는 교황의 책상에 있는 황금전화기와 똑같은 전화기가 놓여 있었는데 그것 역시 주님과의 직통전화였습니다. 랍비는 교황더러 그것을 사용해보라고 졸랐습니다. 통화가 끝나자 교황은 요금지불을 고집했습니다. 랍비는 카운터를 보더니 ‘1세켈’ 우리 돈으로 약 300원이라고 했습니다. “어째서 그렇게 싸죠!?” 라며 교황은 놀라워했습니다. 랍비가 대답했습니다. “시내전화잖아요” 로마는 국제전화고, 예루살렘은 시내전화라는 말은 그만큼 예루살렘이 하나님과 가까이 있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무료 070 전화보다 더 편리하게 무료로 통하는 전화기가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언제나 어디서나 공짜로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전화기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전화기를 오래 사용할수록 좋아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기도의 전화기입니다.
   
본문에는 기도라는 전화기를 잘 사용했던 엘리야가 나옵니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통해서 놀라운 일을 행하셨습니다. 엘리야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도 동일하게 역사하시는 분입니다.
  
성경에 보면 제사를 드리는데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는 놀라운 사건들이 몇 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인과 아벨이 첫 제사를 드리고 난 후 하나님께서는 아벨이 드린 제물에 받으셨다는 증거를 주셨습니다. 제가 아벨의 제물에 하늘에서 불로서 응답하셨다는 기록은 발견하지 못했지만 여러 정황으로 볼 때 하늘에서 불이 내려서 아벨의 제물을 살랐을 것으로 추론할 수 있습니다. 

레 9:24에 보면 성막을 만들고 아론이 첫 번째 제사를 드리니 여호와에게서 불이 나와서 아론의 제물을 살라버렸습니다. 대하 7:1에 보면 솔로몬이 제사를 드리고 기도를 마치니 불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와서 그가 드린 번제물과 제물들을 사르고 여호와의 영광이 그 성전에 가득했습니다. 

행 2장에 보면 120문도가 10일 동안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 받기를 간절히 기도하는데 하늘로부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들이 각 사람 머리 위에 임하였고, 모인 그들은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각기 다른 언어로 말하기를 시작했습니다.
   
본문에 보면 엘리야의 제단에 하나님께서 불로서 응답하십니다. 엘리야가 먼저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열두 개의 돌로 수축합니다. 그리고 제단을 돌아가며 도랑을 만듭니다. 그리고 나무를 벌이고 송아지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습니다. 그리고 통 넷에 물을 채워다가 번제물과 나무 위에 붓습니다. 그렇게 세 번을 하니 물이 제단으로 두르 흐르고 도랑에 가득합니다.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엘리야가 나아가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37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왕상 18:36,37) 

엘리야의 기도가 끝나자 하늘에서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아버립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 이런 불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찬양을 드리다가 불을 받고, 기도를 하다가 불을 받고, 설교를 듣다가 불을 받는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찬양을 드려도 무덤덤하고, 기도를 해도 무덤덤하고, 설교를 들어도 무덤덤한 예배가 아니라 가슴이 뜨거워지는 예배, 회개가 터지는 예배, 참회의 눈물, 기쁨의 눈물, 감격의 눈물이 있는 예배가 드려져야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여호와의 불’입니다. 민 26:61에 보면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여호와의 불이 아닌 다른 불을 여호와 앞에 드리다가 죽었다고 말합니다. 다른 불은 위험합니다. 다른 불은 살리는 불이 아니라 죽이는 불입니다.
   
엘리야 시대의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아합과 이스라엘 백성들도 다른 불이 붙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바알의 불을 받았고 아세라의 불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그 불이 자신들을 죽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그 불을 품고 살아갔던 것입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여호와의 불이 아닌 다른 불을 받고 살아갑니다. 정욕의 불, 세상의 불, 혈기의 불, 욕망의 불, 음란의 불, 물질의 불 붙어서 어쩔 줄 모르며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엘리야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선택한 특별한 민족이었으나 하나님의 불이 아닌 바알과 아세라의 불을 받고 살았던 것처럼 말세의 교인들 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불이 아닌 마귀의 불을 받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늘나라의 불이 아닌 세상 불을 받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내 속을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내 속에 타고 있는 불이 하늘나라의 불인지 세상의 불인지를 봐야 합니다. 내 속에 타고 있는 불이 하나님의 불인지 마귀의 불인지를 봐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숭배로 하나님을 대적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괴롭게 한 시간이 길어지니 하나님은 그들을 돌이키게 하기 위하여 징계의 매를 드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늘의 문을 닫으시고 3년 6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한없는 은혜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악인들에게는 심판하시는 분이시며, 택한 백성들에게는 거룩함을 위하여 징계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무섭습니다. 하나님은 가능하면 경고하시고 참고 기다리시지만 사인으로 안 될 때, 경고로 안 될 때, 말로 안 될 때는 사랑하는 자들의 거룩함을 위하여 무섭게 매를 드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매를 드실 수 있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것입니다. 하나님이 매를 드실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졌다면 매를 치기 전에 경고하실 때 돌이키는 것이 지혜로운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단 매를 드셨다면 속히 깨닫고 속히 돌이켜야 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미련했습니다. 하나님이 경고하시고 비가 오지 않는 매를 드셨지만 3년 6개월이 되도록 돌이키지 못했습니다. 잠 27:22에 보면 “미련한 자를 곡물과 함께 절구에 넣고 공이로 찧을지라도 그의 미련은 벗겨지지 아니하느니라”고 말씀했는데 이스라엘의 모습이 그와 같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왕 아합은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물 근원을 찾기 위해 노력합니다. 아합은 오바댜라는 궁내 대신을 불러서 그와 함께 물을 찾아 나섭니다. 5절에 보니 아합이 오바댜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 땅의 모든 물 근원과 모든 내로 가자 혹시 꼴을 얻으리라” 그는 물을 주시는 분이 누군지 몰랐습니다. 물 근원을 잡고 계시는 분이 누군지 몰랐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의 물 근원을 잡고 계신 분이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문제의 근원을 잡고 계시는 분입니다. 풍선이 하늘을 나느냐 못 나느냐는 풍선을 잡고 있는 손에 달린 것입니다. 그 손이 실을 놓으면 풍선은 하늘을 나는 것이고 실을 놓지 않으면 풍선은 하늘을 날고 싶어도 날 수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문제를 잡고 계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손을 펴시면 문제로부터 자유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손을 쥐고 계시면 우리가 아무리 문제에서 놓여나려고 발버둥을 쳐도 문제에서 해방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아합은 그것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돌아가지 않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모든 문제의 해결자가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열어주시면 모든 것이 열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닫아버리시면 모든 것이 닫히는 것입니다.
   
계 3:7,8에 보면 주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문제의 근원을 잡고 계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사람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와야 합니다. 예수님은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죄로 인하여 파생된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망의 문제, 지옥의 문제, 질병의 문제, 재정의 문제, 관계의 문제, 가정의 문제, 사업의 문제 등 해결 못할 일이 없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3년 6개월 동안 묶여 있던 물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 것처럼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어떤 문제도 해결하실 수 있는 분이신 줄 믿고 그분 앞에 도움을 구하십시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가지고 있는 잘못된 바알과 아세라의 불의 문제와 3년 6개월 동안 묶여 있었던 물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엘리야를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에는 사람이 중요합니다. 다수보다 하나님 편에 선 사람이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편에 서서 하나님을 대신할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은 그를 통해서 위대한 역사를 이루시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가 그 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 한 사람을 통해서 하늘에서 하나님의 불이 떨어지게 하셨습니다. 엘리야 한 사람을 통해서 3년 6개월 동안 묶여있던 물의 문제를 해결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 한 사람을 사용하셔서 하늘의 문을 여시고 단비가 내리게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오늘 설교를 통해서 하늘에서 내리는 불을 받아야 합니다. 그 불이 여러분의 심령에 붙어야 하고, 여러분의 신앙에 붙어야 하고, 여러분의 생활에 붙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오늘 설교를 통해서 닫힌 하늘의 문이 열려야 합니다. 그리고 그 문을 통해서 하늘에서 내리는 은혜의 비, 축복의 비, 능력의 비를 받아야 합니다.
   
설교의 제목은 불의 응답, 물의 응답입니다. 여러분 불의 응답을 받으시고, 물의 응답을 받으십시오.
   
그러면 불의 응답, 물의 응답을 받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1. 때가 되어야 합니다. 
   
왕상 17:1에 보면 하나님은 엘리야를 통해서 아합에게 예언하게 하셨습니다.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은 엘리야를 통해서 하신 말씀대로 하늘을 닫으시고 비도 이슬도 없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차니 엘리야를 아합 왕 앞에 서게 하셨고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과 영적 전쟁을 하게 하셨고 엘리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불의 응답, 물의 응답을 주셨습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습니다. 전 3:1-8에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2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3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4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5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6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7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8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우리 생각에는 옳은 일, 좋은 일은 빨리 이루어졌으면 좋겠지만 하나님은 가장 합당한 때에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류 구원을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인류역사상 예수님이 오시는 일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 좋은 예수님이 오시는 일도 아무 때나 오신 것이 아닙니다. 때가 차서 오신 것입니다. 갈 4:4에 보니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신 비전도 때가 되어야 성취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하여 정도를 걷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도를 걸으면 아무리 환경적으로 어렵고 우리가 가진 비전이 성취되지 않을 것처럼 보여도 결국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다윗이 사무엘에 의해서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그가 왕이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가 왕이 되는 과정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환경적으로는 도저히 왕이 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정도를 걷다보니 때가 차매 왕의 자리에 올라가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조급하지 맙시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받았다면 마음에 조급해 하지 말고 정도를 걸으십시오. 하나님은 모든 환경을 극복하게 하시고 결국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 것입니다. 


2. 무너진 제단을 수축해야 합니다. 
   
30, 31절을 보니 엘리야는 야곱의 아들들의 지파의 수효를 따라서 돌 12개를 취하여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했습니다.
   
무너진 제단을 수축하는 것은 예배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제단의 용도는 제사를 하기 위한 시설입니다. 이는 신약적으로 보면 예배를 위한 시설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세상의 불이 아닌 하늘의 불, 바알과 아세라의 불이 아닌 하나님의 불을 받으려면 예배가 회복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닫힌 하늘의 문이 열리고 은혜의 비, 능력의 비, 축복의 비가 내리려면 예배가 회복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불의 응답, 물의 응답을 받으려면 무너진 예배의 단을 수축해야 합니다.
   
예배의 단이 무너지면 그 사람 안에는 세상의 불이 가득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늘의 문이 닫히고 기근으로 고통당하게 됩니다.
   
우리 중에 어떤 분은 예배의 단이 무너진 분이 있을 것입니다. 전에는 새벽제단을 쌓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새벽제단이 무너졌습니다. 어떤 사람은 수요제단을 쌓았는데 수요제단이 무너졌습니다. 이 보다 더 심각한 사람은 주일제단이 무너진 사람입니다. 주일제단은 삼손의 머리카락 같습니다. 머리카락이 잘린 삼손은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잃어버렸습니다. 마찬가지로 주일제단이 무너진 사람은 머리카락이 잘린 삼손처럼 영적으로 비참한 지경에 놓인 것입니다. 불의 응답, 물의 응답을 받기를 원하시면 무너진 제단을 수축하기를 바랍니다. 무너진 예배의 단을 수축하기를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주일예배, 수요일예배, 새벽예배까지 드리고 있으니 이 말씀을 나와 상관없는 말씀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원어를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입니다.
   
수축하다의 원어의 뜻은 ‘고치다. 치료하다. 건강하게 하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 뜻 그대로 적용을 하면 지금 주일, 수요일, 금요일, 새벽예배를 드리고 있는 분들도 예배를 고쳐야 합니다. 잘못된 부분은 치료해야 합니다.
   
예배의 장소에 와서 앉아 있다고 하나님께서 그 예배를 다 받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사야서와 말라기서를 보면 하나님께 제사하러 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그들이 성전의 뜰만 밟는다고 말씀했고,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눅 18장에 보면 주님은 성전에서 큰 소리로 기도하는 바리새인의 기도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유창한 언어로 크게 기도를 했지만 주님은 그가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이 아니라 죄인이었던 세리가 의롭다 함을 받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바리새인의 기도는 크게 병이 든 기도, 아니면 하나님 앞에서 다 썩은 부패한 기도였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의 기도는 수축되었어야 했습니다. 고치고 치료하여 건강하게 될 필요가 있었습니다.
   
우리의 예배를 살펴봐야 합니다. 우리는 정해진 순서에 따라서 익숙하게 그리고 세련되게 예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너진 제단처럼 또는 병든 바리새인의 기도처럼 수축되어야 할 예배일 수 있습니다. 만약 내가 드리는 예배가 그런 예배라면 이제는 다시 수축되는 역사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대면하는 예배를 드리십시오. 하나님께 집중하는 예배를 드리십시오. 오직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를 드리십시오. 


3. 물을 붓는 헌신이 필요합니다. 
   
엘리야의 제단에 불의 응답, 물의 응답이 있기 전에 엘리야는 그 제단에 12통의 물을 부었습니다. 그 때는 3년 6개월간 비가 오지 않았던 때입니다. 물 한 방울이 귀할 때입니다. 물이 생명 같은 때에 12통의 물을 부었다는 것은 엄청난 헌신입니다.
   
하나님은 불의 응답, 물의 응답을 하시기 전에 우리들의 헌신을 보시는 분입니다. 주님이 각 사람에게 요구하는 헌신은 다릅니다. 하나님이 내게 요구하는 헌신은 다른 사람보다 내가 잘 압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 깊은 곳에 우리가 헌신해야 할 것을 가르쳐주십니다. 우리는 그것을 하님의 제단에 부어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헌신을 받으시고 불로서, 물로서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희생이 있은 후에 오순절에 성령께서 임하신 것처럼, 물을 붓는 헌신 후에 불의 응답, 물의 응답이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영에 하나님이 넣어주신 것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작은 부담이 될 수도 있고, 큰 부담일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물질적인 부담일수도 있고 영적인 부담일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새벽기도일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중보기도일수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에게는 전도의 부담일수도 있습니다. 헌신하십시오. 자기를 희생하십시오. 영의 부담에 순종하십시오. 그렇게 할 때 불의 응답, 물의 응답이 있습니다.
   
요즘 제 아내와 최목사님에게는 철야의 부담을 주신 것 같습니다. 그 부담에 순종해서 밤에 철야 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런 순종이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게 하는 것이고, 하늘이 열리고 단비가 내리게 하는 것입니다. 


4. 기도해야 합니다. 
   
엘리야는 무너진 단을 수축하고 물을 부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37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36,37절)
   
하나님은 엘리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기도에 응답하셔서 하늘에서 불이 내리게 하셨습니다. 38절에 보니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늘 문을 열고 비가 내려주시기 전에도 엘리야에게 기도하게 하셨고, 그 기도의 응답으로 비를 내려주셨습니다. 42,43절에 보니 엘리야가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무릎을 꿇고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사환에게 “올라가 바다 쪽을 바라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하기를 일곱 번 한 후에 바다에서 사람 손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고 조금 후에 구름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해지며 큰 비가 내렸습니다. 하나님은 불의 응답, 물의 응답을 하시기 전에 먼저 기도자를 세우시고 기도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도의 응답으로 불로, 물로 응답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은 우리가 환난을 당하거든 염려하거나, 방법을 찾으라고 말하지 않고 기도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 50:15에서 말씀합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엘리야가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셨습니다. 그 결과 모든 백성들이 엎드려서 말했습니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엘리야의 기도로 하나님께서 영화롭게 되셨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기도하면 하나님은 여러분의 기도에 응답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의 응답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3년 6개월간 비가오지 않았던 이스라엘은 절망적이었을 것입니다. 아합과 오바댜가 물을 찾아나섰지만 그들에게 무슨 기대감이 있었겠습니까? 그들은 물이 나올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움직인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하고 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움직였을 것입니다. 그렇게 절망적이었던 그들에게 하나님은 불로 응답하시고 물로 응답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환경을 보나 자기의 능력을 보나 ‘이 이상 더 좋아질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라며 절망 중에 계신 분이 있을 것입니다. 아닙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잘 못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하늘의 문이 열리면 불의 응답, 물의 응답을 받으면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십시오. 주님의 일하심을 기대하며...
   
미국 우주왕복선 챌린저호를 우리는 슬프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발사 직후 폭발하였습니다. 온 지구의 사람들이 그 장면을 TV를 목격하였습니다. 오랜 연구 끝에 발사된 우주선이 75초 만에 공중에서 산화되고 말았습니다. 우주선에는 비행사 7명이 타고 있었습니다. 뼈조각은 물론 가루도 못 찾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비극 속에서도 미국인들은 경이로운 반응을 보였습니다. 죽은 우주인 중에 교사가 한 명 있었습니다. 선생님을 잃은 학생들이 성금을 모아 우주 쎈터에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다시 도전하여 주십시오.” 조그만 아이들이 용기를 불어 넣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은 다시 도전하였습니다. 이것이 미국의 저력입니다.
   
우리는 지난 7월 7일 2018년 동계올림픽 평창 유치라는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하나님이 이 나라를 이렇게 축복하시는 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감사했습니다. 이번 동계올림픽 유치를 통해서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 우리민족의 끈질김을 보여주었습니다. 2번의 실패가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도전한 결과 이런 좋은 열매를 얻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 포기했다면 우리는 이번에도 다른 나라의 유치 소식을 듣는 것으로 끝났을 것입니다. 도전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기로 결단하고 도전하십시오. 절망속에서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다시 하나님 앞에 서십시오. 물의 응답, 불의 응답을 속에서 살겠다고 소원하십시오.
   
무너진 제단을 수축하고, 물을 붓는 헌신을 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매달려서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불의 응답, 물의 응답을 받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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