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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야베스를 통해서 본 믿음 (대상 4: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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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베스를 통해서 본 믿음 (대상 4:9-10) 

믿음은 보이는 것으로 행치 않는 것이다. 즉 현실에 묶이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말씀과 비전으로 사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야베스를 통해서 볼 수 있다. 야베스는 불우하고 어려운 형편에서도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삼고 담대히 그리고 간절히 간구하여 응답 받음으로 자기 인생을 역전시켰다. 즉 복의 복을 구하고 더 넓고 큰 것을 바라보고 더 참되고 평안한 것을 구하였다. 그러므로 낙심치 말고 하나님께서 예수 안에서 주신 가장 아름다운 복을 굳게 붙잡고 믿음으로 나가 받도록 하자.

이 시간 “야베스를 통해서 본 믿음”이라는 제목입니다. 오늘도 축복의 설교입니다. 여러분,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히11장 1절에 그 정의가 나와 있지만 고후5:7에서도 우리에게 귀한 힌트를 줍니다. 고후5:7을 보면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 즉 믿음은 보는 것으로 행치 않는 것이라 했습니다. 

보는 것이 무엇일까요? 보는 것 즉 보이는 것은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란 현실에 묶이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약속과 비전을 확신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그런 믿음의 위인들을 많이 보지만 특별히 가장 어렵고 불행한 가운데 믿음으로 큰 복을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본문의 야베스라는 사람입니다. 

* 야베스의 현실은 어떠했을까요? 

우리는 그를 소개하는 9절과 그의 기도 10절을 통해서 그의 상황을 엿불 수 있습니다. 9절에 “야베스는 그 형제보다 존귀한 자라 그 어미가 이름하여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뺐?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라고 소개합니다. 성경이 이렇게 소개한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가 어떤 형편 가운데 있었는가를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몇 가지 면에서 야베스의 어려웠던 상황을 엿보게 됩니다. 

1. 야베스는 어머니가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아버지가 지어주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이름을 지어주었다는 것은 아버지에게 무슨 문제가 있다는 뜻이 암시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일반적인 가정이라면 통상적으로 아버지가 이름을 지어줄 텐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즉 아버지를 일찍 여의인 유복자일 가능성이 큽니다. 어머니가 야베스를 임신한 상태에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어머니는 당시 구제 대상이었던 과부였을 것입니다.


2. 어미가 지어준 이름은 야베스였습니다. 

야베스라는 이름은 “수고로이 낳았다”는 뜻입니다. 이 이름의 뜻에서 우리는 그가 태어날 때 어머니가 난산의 엄청난 고통을 겪었거나, 아니면 남편을 잃고 과부가 된 어머니가 유복자로 야베스를 배었을 때 너무도 가난하여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입지도 못하는 고난 가운데 있었을 것을 보여줍니다. 가난해 보신 분은 그것을 압니다. 아이는 가졌는데 먹지 못하여 아이가 태중에서 자라지 못하기도 합니다. 혹은 낳은 후에도 산모가 먹지 못해 젖이 나오지 않아서 아이와 함께 울어야 하는 고통도 있습니다. 혹은 산모가 아이를 낳다가 난산으로 죽기도 합니다.  

라헬이 베냐민을 낳을 때 거친 에브랏 길에서 난산하여 베노니(나의 슬픔의 아들)라고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죽어갔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창35:18). 베노니가 베냐민으로 바꾸어지지만 그러니까 베냐민 이름은 어미인 라헬이 지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어머니가 고통 속에서 지은 이름이 야베스입니다. 이처럼 그의 출생은 그의 어머니에게 엄청난 고통이었습니다. 

즉 '야베스'라는 이름으로 보건대 "차라리 배지나 말 걸 너를 낳은 것이 후회가 된다."는 탄식이기도 하고, "이제 너는 고생문이 훤하겠구나!"하는 그의 어머니의 탄식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그의 현실은 나면서부터 너무나도 척박했습니다. 10절에 나타난 대로 복도 없었고, 땅도 없었고, 환란 많고, 근심도 많았으며, 부양해야 할 형제들만 가득했습니다. 아버지도 안 계시고 어머니마저 산후후유증으로 병들지 않았을까 추측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야베스입니다. 


3. 복도 적었고 땅도 좁았고 환난도 근심도 많았습니다. 

그것을 그의 기도에서 엿보게 됩니다. 10절에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했습니다. 환난과 근심조차 많았으니 힘든 인생이었습니다. 
 

4. 그러한 그가 심히 존귀한 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야베스를 복 주셔서 존귀하게 해 주셨습니다. 성경에서 쓰이는 존귀한 자에 대한 용례를 볼 때 왕족이나 귀족 등 권력과 재력을 겸비한 뛰어난 사람에게 쓰여진 용어입니다. 이 단어는 창 34장의 추장 세겜 같은 사람에게, 삼상 22장의 다윗과 같은 사람에게, 왕하 5장을 보면 나라를 구한 영웅 나아만 같은 자나, 에 9장을 보면 민족을 구한 파사의 총리 모르드개에게나 붙여졌던 말입니다. 이런 존귀는 뛰어난 제사장이나 아주 훌륭한 율법학자에게도 붙여졌습니다. 이 존귀는 메시아의 영광을 묘사하는데도 쓰인 단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형제보다 존귀한 자란 형제들이 비천했다는 뜻이 아니라 형제들도 존귀했는데 야베스가 더 존귀했다는 뜻입니다. 모두 한 어머니의 불행한 자녀일 텐데 그들도 함께 존귀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해 줍니까? 그것은 바로 이 모든 것이 야베스의 축복의 영광이 그들에게도 함께 주어졌음을 암시합니다. 믿음이 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치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 그럼 대체 야베스가 불행한 과거를 딛고 이렇게 위대한 축복과 존귀의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요? 

그 원인은 바로 그의 담대한 믿음에 있었습니다. 현실에 묶이지 않은 담대한 믿음입니다. 그리고 그의 기도 습관에 있었습니다. 10절에 “아뢰어” 라는 말의 원문의 뜻이 ‘부르짖다’는 뜻임을 볼 때 그가 얼마나 그 현실에서 벗어나려고 얼마나 간절히 부르짖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자나 깨나 “하나님 저에게 복을 주세요.” 하는 야베스의 간절한 기도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절망의 현실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현실에 묶이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과 성령께서 주신 비전을 가지고 담대히 믿음으로 부르짖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을 보시고 성취시켜 주십니다. 성경에 아무리 놀라운 약속이 있어도 믿음 없으면 소용이 없고, 기도 없으면 소용이 없어요. 겔36:37에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말씀하셨습니다. 

브루스 윌킨슨(Bruce Wilkinson)목사가 쓴「야베스의 기도」가 베스트 셀러가 되었는데 저자에 따르면 하나님은 그 본래 성품이 우리를 넘치도록 복주시기를 좋아하시기에 우리가 열심히 구하면 넘치도록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한 비판이 많았습니다. 지나치게 상업주의적이라, 지나치게 이기적이고 기복주의적이라, 야베스의 기도는 기독교의 기도의 모델이 될 수 없다는 등등의 비판이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본문의 야베스의 기도가 우리에게 믿음이 무엇이며 현실을 돌파할 기도가 무엇인가만큼은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생각할 수조차도 없는 불가능한 현실 속에서 낙심하지 않고 복에 복을 구하고, 지경을 넓혀 달라 구하고,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해달라고 구한 그의 기도는 얼마나 담대하고 믿음이 넘치는 기도입니까? 아마 그의 기도는 눈물로 범벅된 기도였을 것입니다. 이 믿음의 기도가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던 것입니다. 

* 그럼 야베스의 기도를 봍해 보여준 그의 믿음은 어떤 것일까요? 

1. 더 큰 복을 바라보는 믿음이었습니다. 

복도 좋은 것인데 복의 복을 구하였습니다. 우리가 지금 사는 것도 복 받아서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복으로 만족할 수는 없습니다. 이 복으로는 겨우 살아갈 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고 야베스처럼 내 형제를 섬기고 도우려면 복의 복이 있어야 합니다. 그냥 복만으로는 안 됩니다. 복의 복이 있어야 합니다. 저도 요즘 들어 “하나님 저에게 복을 주세요.” 하는 기도가 어느 때보다 간절히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복을 주시려나 봅니다. 저도 복을 받아야하겠습니다. 

복 받은 사람과 받지 못한 사람과는 차이는 큽니다. 복 받지 못하면 광야에서 도시락 하나 가지고 나눠먹자 말자 이게 크다 저게 크다 네가 크구나 내가 적구나 왈가왈부하지만, 복을 받으면 주고 주고 또 주고 또 주면서 수천 명이 잔치하고도 부스러기만도 열두 광주리 가득히 남는 것과 같습니다. 축복 무시하지 마세요. 광야의 기적은 예수님의 축복이 이루어낸 기적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복을 논하기 전에 먼저 복을 받아야 합니다. 복을 받은 후에 복을 논해도 늦지 않습니다. 그래야 우리가 할 일을 다 할 수 있습니다. 땅의 복만이 아니라 하늘의 복도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주신 복으로 섬김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2. 더 넓은 곳을 바라보는 믿음이었습니다. 

야베스는 하나님께 자기의 지경을 더욱 넓혀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 기도는 하나님의 더 큰 일을 할 수 있는 활동의 배경을 달라고 하는 비전의 기도입니다. 이 상태에서 만족하시렵니까? 더 먼 곳 더 넓은 곳 더 높은 곳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꿈이 없는 사람은 자기 인생을 스스로 저주하는 사람입니다. 누구 탓 못합니다. 꿈이 없는 자기의 탓일 뿐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하셨습니다. 

3. 참된 도우심과 평안을 구하는 믿음이었습니다. 

야베스는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얼마나 환난과 근심이 많았으면 이런 기도를 드렸을까요? 주의 손은 능력의 손입니다. 그 손을 간구한 것은 그만큼 난제가 많았음을 시사합니다. 저는 인생을 많이 살지는 못했지만 갈수록 평안이 얼마나 귀한지 모르겠습니다. 환난과 근심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저는 저만 아니라 남을 영으로도 돕고 육신으로도 도울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의 노년의 꿈은 복지선교입니다. 마치 아둘람굴처럼 세상에서 환난 당하고 상처 받은 사람들이 다윗에게 모여드는 것처럼 영육 간에 고통 받는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 치유와 위로를 받는 것입니다. 불치의 병자들이 와서 복음을 듣고 또 오기만 하면 다 나았으면 좋겠어요. 

하나님께서는 간절한 야베스의 그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환난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해주셨습니다. 야베스는 나중에 그 형제들보다 더욱 존귀한 사람이 되어서 유대 전승에 의하면 당대의 존경 받고 유명한 율법학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에서 제사장과 랍비라고 하면 최고의 존경이 대상입니다. 그렇다면 불우한 환경에서도 인품과 경건은 물론 공부 많이 한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의 승리였습니다. 

한 사람이 밤중에 사막에서 길을 걷다가 음성을 들었습니다. "밑을 보고 돌멩이를 주어 네 주머니 속에 채워 넣어라. 내일 아침 기쁨과 슬픔을 함께 경험할 것이다." 사나이는 지시대로 했습니다. 이튿날 호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던 돌멩이를 꺼내 본 그는 놀랐습니다. 그 돌멩이는 모두 다이아몬드였던 것입니다. 그는 기쁘면서도 슬펐습니다. 호주머니 속에 넣은 돌멩이들이 모조리 다이아몬드였기 때문에 기뻤지만 그럴 줄 알았더라면 더 많이 넣지 못했던 것이 슬펐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는 이런 슬픔이 없기를 바랍니다. 예수 안에서 무엇이든지 기도하면 들어주신다 하셨는데 믿음 없어서 받지 못하는 일 없기를 바랍니다. 야베스의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모두 현실을 초월한 야베스의 담대한 믿음과 그 간절한 기도를 본받아 야베스의 복을 우리도 받는 가장 복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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