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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오직 하나님의 선한 손을 믿고 (느 2: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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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하나님의 선한 손을 믿고 (느 2:11-20)


우리는 이스라엘 민족의 남 왕국 유다가 바벨론 제국에 의해 멸망하고 많은 유다 백성이 바벨론으로 끌려가 살게 된 역사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벨론 제국이 또 페르시아 제국에게 정복을 당하고 멸망했으며 바벨론에 끌려와 살던 유다 백성의 새 통치자가 된 페르시아의 왕의 새로운 정책에 따라 바벨론의 유대인들이 고국 땅으로 돌아가 파괴된 예루살렘 성전도 다시 건축할 수 있게 되자 귀향의 역사가 시작되었음도 또한 알고 있습니다. 

세력과 영토를 계속 넓혀간 페르시아제국이 동쪽으로는 인도와 국경을 같이 하며 서북쪽으로는 마게도니야와 서남쪽으로는 이집트와 리비아까지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정복하고 다스리던 때 페르시아 왕 아닥사스다의 궁정에 느헤미야라는 한 유대인이 술 관원으로 있었음도 이미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유다에서 온 사람들로부터 바벨론에서 돌아온 유다 백성들이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느1:3)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슬퍼 울며 금식기도를 드리는 가운데 자기도 고국 땅으로 돌아가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중수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고(느1:11) 아닥사스다 왕의 호의적인 허락과 유다 총독으로서의 지위와 성벽 재건에 필요한 물질적 지원을 위한 조치들을 얻어내 예루살렘에 오게 되었음을 돌아본 바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루살렘에 돌아온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 중수의 역사를 시작하기 직전까지의 그의 활동을 기록한 부분입니다. 이 준비과정 속에서의 느헤미야를 주목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유익할 것입니다. 우선 느헤미야가 아닥사스다 왕에게 청원한 내용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조금 앞서는 2:7-8을 봅니다. 느헤미야는 왕에게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거든 강 서쪽 총독들에게 내리시는 조서를 내게 주사 그들이 나를 용납하여 유다에 들어가기까지 통과하게 하시고 또 왕의 삼림 감독 아삽에게 조서를 내리사 그가 성전에 속한 영문의 문과 성곽과 내가 들어갈 집을 위하여 들보로 쓸 재목을 내게 주게 하옵소서.” 한 것입니다. 

이 청원 속에는 두 가지 요구사항이 있습니다. 하나는 유다까지 가는 동안 통행의 제약을 받지 않도록 조서를 내려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왕의 삼림 감독 아삽이 예루살렘 성곽과 문과 느헤미야가 거할 집에 쓸 재목을 공급하도록 조서를 내려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느혜미야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벽을 중수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치밀하게 조사하고 신중하게 그 일을 추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페르시아에서 유다까지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유프라데스 강을 건너 서쪽 지역을 통과해야 하는데 왕의 허락 없이는 그곳 총독이 그 누구도 통과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냈던 것입니다. 

또 예루살렘으로 가기 전에 건축에 쓰일 자재의 확보가 필수적임을 생각했고 어디서 자재를 공급받을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누구를 움직여야 할 것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했던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왕의 삼림 감독 아삽에게 조서를 내려달라고 청원했는데 아삽은 히브리 이름입니다. 즉 그는 유다 백성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좋은 목재는 레바논에서 공급되곤 했는데 아마도 유다에 인접한 레바논에 있는 왕 소유의 삼림을 감독하는 사람이 유다 사람이라면 왕이 조서만 내려주면 잘 협력하리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 모든 사실을 느헤미야는 면밀하게 조사해서 알아놓았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리고 그는 이 모든 자기의 계획을 왕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잘 이해시킬 수 있을지 그 때와 방법 또한 세심하게 살피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예루살렘 성벽의 중수와 민족공동체의 재건의 뜻을 품은 지 넉 달 동안 그는 그저 슬피 울며 기도만 한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며 그가 단계적으로 취할 모든 일을 곰곰이 구상했던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도착해서도 먼저 무너진 성벽 터를 직접 꼼꼼히 돌아보았습니다. 오늘 본문 13-15절은 그 사실을 기록한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치밀할 뿐 아니라 부지런하면서도 신중한 사람이었습니다. 본문 11-12절을 봅니다: “내가 예루살렘에 이르러 머무른 지 사흘 만에 내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내 마음에 주신 것을 내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아니하고 밤에 일어나 몇몇 사람과 함께 나갈새 내가 탄 짐승 외에는 다른 짐승이 없더라.” 먼저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이르러 머무른 지 사흘 만에” 성벽 터 현장점검에 나섰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장사된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고 할 때는 금요일 해 지기 전에 돌아가셔서 주일날 새벽 동트기 전에 부활하셨다는 말입니다. 사실상 그 사흘 중에 온전한 날은 하루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 뜻으로 보면 느헤미야가 “내가 예루살렘에 이르러 머무른 지 사흘 만에”라고 한 것은 예루살렘에 도착한 다음날 딱 하루 쉬고는 그 다음날로 성벽 터 현장점검에 나섰다는 말입니다. 그 머나먼 길을 오느라고 쌓인 피로를 풀자면 한 주일쯤 필요할 법도 한데 그러기에는 느헤미야는 너무나 부지런한 사람이었음을 짐작하게 됩니다. 

느헤미야는 그가 예루살렘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마음에 있는 계획을 먼저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 터를 살피러 나가기 전에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본문 16절에도 보면 “방백들은 내가 어디 갔었으며 무엇을 하였는지 알지 못하였고 나도 그 일을 유다 사람들에게나 제사장들에게나 귀족들에게나 방백들에게나 그 외에 일하는 자들에게 알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내부에도 유다의 대적들과 내통하는 사람들이 있을 가능성을 숙지하고 있었습니다. 사전에 정보가 새어나가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반대와 방해에 부딪치는 것을 피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리고 동족의 지도자들이 다함께 성벽중수와 민족공동체재건에 나서게 만들기 위해서는 탁상공론이 아니라 현장의 상황에 대한 정확한 지식에 기초한 대안을 제시하며 설득해야 할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계획을 내놓기 전에 현장을 돌아보고자 한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성벽 터를 보러 나갈 때 “밤에 일어나” 나갔고 그것도 “몇몇 사람”하고만 나갔습니다. 그 몇몇 사람이라는 것도 아마 주로 현장지리를 잘 아는 안내자들이었을 것입니다. 

이 또한 철저한 기밀유지를 위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탄 짐승 외에는 다른 짐승이 없더라.” 한 것은 자기 혼자만 나귀를 타고 갔다는 말입니다. 여럿이 말을 타고 가면 고요한 밤에 남의 눈에 띄기도 쉽고 말발굽 소리와 말울음 소리 때문에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말보다는 소리를 작게 내는 나귀를 타고 갔으리라 봅니다. 아무튼 대단히 신중한 느헤미야의 행보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비밀리에 성벽 터를 둘러본 느헤미야는 앞으로 자기가 행할 일들을 다시 한 번 숙고한 후에 드디어 백성의 지도자들을 만난 설득작업에 나셨습니다. 본문 17-18절을 봅니다: “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당한 곤경은 너희도 보고 있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 하고 또 그들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왕이 내게 이른 말씀을 전하였더니 그들의 말이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매” 합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 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자존심을 되찾자는 말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은 모든 이스라엘 민족의 영적, 정신적, 정치적 구심점이었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두시겠다고 하신 성전이 있는 곳입니다. 안전히 지켜져야 할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성벽이 다 무너지고 문이 다 불타 없어진 채로 긴 세월 동안 방치되어 있다고 하는 것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지극히 수치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음을 역설하고 지도자들의 각성과 분발을 촉구한 것입니다. 

물론 바벨론에서 돌아온 유다 백성의 삶의 여건이 열악했고 스스로 성벽을 건축하기에 재력도 부족했음을 느헤미야가 몰랐던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불가능항 일이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 믿음으로 느헤미야는 지도자들을 격려했습니다. 그는 그 일이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고 그때까지 하나님의 선한 손이 도우셨음을 간증했습니다. 그러자 방백들과 제사장들과 귀족들이 한 입으로 말하기를 “일어나 건축하자.” 했고 모두 힘을 내어 그 선한 일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항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유다 백성의 지도자들이 다 일어나 성벽을 건축하기도 하자 그 사실은 곧바로 유다의 북쪽과 동쪽과 남쪽의 모든 인접지역의 행정관들이 일제히 방해공작을 시작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그들은 예루살렘의 성벽이 중수되고 유다 민족의 공동체가 재건될까봐 마음 졸이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의 9-10절을 보면 “강 서쪽에 있는 총독들에게 이르러 왕의 조서를 전하였더니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이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가 이스라엘 자손을 흥왕하게 하려는 사람이 왔다 함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고 했습니다. 

페르시아 왕의 신임과 총애를 받던 자가 유다의 총독이 되어 돌아왔다면 그 동안 그들이 누린 유다에 대한 통치와 행정권을 잃게 될 것이 뻔하였기에 그들은 근심 가운데 느헤미야의 행보를 주시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유다의 지도자들이 성벽을 건축하자고 다 일어나니 이제는 노골적으로 방해작전에 돌입한 것입니다. 본문 19절을 봅니다: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이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이 이 말을 듣고 우리를 업신여기고 우리를 비웃어 이르되 ‘너희가 하는 일이 무엇이냐? 너희가 왕을 배반하고자 하느냐?`” 이 말 속에는 두 가지 계략이 있습니다. 

하나는 유다 백성을 업신여기는 말로 그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그들은 “너희가 하는 일이 무엇이냐?” 했습니다. 그 말은 “도대체 될 일을 해야지. 너희가 정말 그 일을 해낼 수 있으리라 보느냐?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계략은 유다 백성에게 겁을 주어 공사를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너희가 왕을 배반하고자 하느냐?” 했습니다. 이들은 전에도 이런 식으로 유다 백성과 페르시아 왕 사이에 이간질을 벌여 왕이 성벽재건공사의 중단을 명하는 조서를 내리게 하는 성공을 거둔 바 있습니다. 

그러자 느헤미야가 나서서 반박했습니다. 본문 20절입니다: “내가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리니 그의 종들인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려니와 오직 너희에게는 예루살렘에서 아무 기업도 없고 권리도 없고 기억되는 바도 없다. 하였느니라.” 느헤미야는 그 대적들의 비웃음과 겁박이라는 양면 전략을 페르시아 왕의 명령과 조서에 의거해서 공박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이미 그들도 다 알고 있는 바였습니다. 느헤미야는 오직 하나님께서 형통하게 하실 것이고 하나님의 종들로서 그의 뜻을 받들어 성벽을 건축하려 할 뿐이라는 신앙고백으로 맞섰습니다. 

그리고 끝으로 느헤미야는 그 대적들에게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아무 기업도 없고 권리도 없고 기억되는 바도 없다”고 잘라 말하며 성벽 건축하는 일에 참견하지 말 것을 단호히 표명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얻어먹을 것도 없고 그럴 권리도 없으며 그런 권리를 주장할 수 있을 만큼 기여한 바도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신앙적으로 유다 백성과 함께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말입니다. 예루살렘 성벽을 중수하는 일은 유다 백성의 신앙의 문제이고 그 순수성을 회복하며 유지하기 위한 일이니 하나님을 바로 알지도 못하고 섬기지도 않는 자들과는 상관없는 일임을 천명한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느헤미야의 지도자로서의 열정과 치밀함과 부지런함과 신중함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에게서 가장 중요한 지도력은 역시 신앙이었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의 선한 손을 믿고 예루살렘 성벽중수와 민족공동체 재건에 나선 것입니다. 그는 순간순간 하나님께서 선한 손으로 함께하실 것을 확신하며 그를 의지했습니다. 그는 그 자신 최선을 다해 연구하고 계획을 세우며 추진했지만 모든 것을 자기가 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선한 손의 역사로 이루어졌음을 고백하곤 했습니다.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려니와 우리는 하나님의 종들이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리라.” 이것이 그의 신념이고 믿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지혜요 힘이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선한 손만을 의지하는 느헤미야에게 하나님께서는 느헤미야가 구하지 않은 것까지 허락하셨습니다. 느헤미야가 아닥사스다 왕에게 유다까지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도록 하는 조서와 왕의 삼림 감독에게 건축에 쓰일 재목을 공급하도록 하는 조서를 내려달라는 청원만 했을 뿐인데 왕은 느헤미야에게 군대장관과 마병을 보내어 그와 동행하게 했습니다. 

그것은 느혜미야가 요청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왕이 스스로 한 일입니다. 아니 느헤미야는 그것을 하나님의 선한 손이 도와서 왕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라고 믿었습니다(느2:8-9). 느헤미야가 그것을 받아들인 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산발랏을 비롯한 대적들에게 그가 왕의 권위와 지원을 입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목적에서였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새 성전을 건축하려고 하는 우리에게 느헤미야의 믿음은 우리에게 깨우치는 바가 큽니다. 반대하는 사람도 있고 방해하는 사람도 있으며 비웃는 사람도 있고 겁을 주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도 우리 스스로의 힘만으로 건축하기에는 너무나 경제적으로 약합니다. 그러나 느헤미야처럼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려니와 우리는 하나님의 종들이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리라.”는 믿음으로 나아가면 다 이루고도 남을 것입니다. 느헤미야처럼 기도도 많이 해야 하겠지만 우리의 지혜와 역량을 총동원하여 최선의 준비를 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최선을 다하되 언제나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의 뜻을 잘 받들려고 힘써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한 손을 믿고 새 성전 건축의 큰일에 다함께 힘과 지혜를 모으는 우리가 됩시다. (이수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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