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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3) (마 5:3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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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3) (마 5:33-37)

어느 미국의 대 재벌이 세계적인 잡지에 광고를 냈다고 합니다. 누구든지 녹색 얼룩말을 잡아오면 100만 불을 주겠다는 광고였습니다. 이 광고를 접한 세계 각국의 사람들의 반응이 달랐다고 합니다. 

(영국 사람) 탐험을 떠날 준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프리카 지도를 사고, 포획할 그물을 준비하느라고 분주했습니다. 

(프랑스 사람) 그들의 예술적 기질이 발휘되어 많은 사람들이 그림 도구를 준비하여 녹색 얼룩말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독일 사람) 학구적인 사람들이 많아서 각 도서관에 가서 백과사전이나 자료를 찾아 보고 얼룩말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합니다. 

(일본 사람)들은 일반 얼룩말을 끌고 와서 털을 다 뽑고 녹색 털을 정교하게 심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어땠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서로 모여서 이야기를 합니다. ‘그거 진짜야?’, ‘정말이래?’, ‘정말 100만불을 줄까?’, ‘녹색 얼룩말이 정말로 있기는 한거야?’, 하도 속아 살아봐서... 의심이 많아서... 그랬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를 보면 거짓과 불의가 팽만해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사회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친밀하게 유지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믿음과 신뢰입니다. 믿음과 신뢰는 서로 간의 인격을 묶어 주는 끈입니다. 이러한 신뢰 관계는 정직과 성실이라는 두 가지 실로 만들어집니다. 정직할 때 신뢰가 생기고, 신뢰가 생길 때 친밀함이 생깁니다.

반대로 사람 사이를 파괴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불신입니다. 상대방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믿음이 깨집니까? 부정직하고, 불성실하면 신뢰가 깨집니다. 즉 상대방이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하면 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깨집니다. 상대방이 불성실하면 상대방에 대한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대인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직과 성실입니다. 불신 사회는 붕괴된 사회입니다. 붕괴된 사회를 다시 건설하기 위해서는 정직과 신뢰가 회복되는 길밖에는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계속되는 마태복음의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그 유명한 팔복의 말씀을 하시고, 이어서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으로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서의 삶을 제시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당시에 팽배하였던 그릇된 율법주의에 대해서 지적을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율법을 폐하러 오신 분으로 오해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은 율법을 완성하러 왔다고 하시면서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에 대해 말씀하시며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율법관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십계명 중에 예를 들면서 말씀하시는데, 먼저, 6계명인 ‘살인하지 말라’에 대한 말씀을 하셨고, 다음으로 7계명인 ‘간음하지 말라’에 대한 말씀을 하셨고, 이제 오늘 본문 ‘맹세에 대한 교훈’은 9계명인 ‘거짓증거하지 말라’에 대한 말씀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계명의 단호함을 강조하시기 위하여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는 강한 말씀을 우리에게 하신 것입니다. 1. 맹세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 

(33~34절) “또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예수님께서는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오해한 그룹들이 있었습니다. 초대교회의 에세네파, 종교개혁 때의 재세례파, 그리고 퀘이커 교도들입니다. 그들은 맹세하지 말라고 했다고 해서 결혼 서약이나 법정에서 하는 맹세도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여호와의 증인들’은 ‘국기에 대한 맹세’도 맹세이기에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이 말씀을 잘 못 이해한 것이죠? 

사람들은 왜 맹세를 합니까? 여러분, 사람들은 정직하지 않고 성실하지 않은 존재입니다. 사람들은 거짓말을 아주 잘 하는 존재입니다. 죄로 인해 인간의 본성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사회를 보면 온갖 거짓과 불의가 팽만해 있는 것을 봅니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사회입니다. 그래서 서로 간의 약속을 해도 말로 한 약속은 믿지를 못해서 맹세를 하고, 더 나아가서 서약서 쓰게 하고, 서약서에 인감도장 찍고, 그 도장 믿을만한 도장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인감증명서 첨부하고, 또 보증인 세우고, 녹음과 녹화 떠 놓고, 그리고 법률 사무소에 가서 공증까지 합니다. 

서로 말로 간단한 약속을 하면서도 ‘이것 꼭 지켜야 한다’ 하면서, 손가락 걸고, 손도장 찍고, 손바닥 복사하고, 코팅한다고 합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믿지 못해서’.... 

어느 기름집에서는 참깨로 기름을 짜서 팔면서, 이것은 ‘진짜 참 기름’이라고 합니다. 더 나아가 이것은 ‘진짜 순 참 기름’이라고 하다가, 이것은 ‘100% 진짜 순 참 기름’이라고 합니다. 왜요? 사람들이 못 믿으니까.... 

옛날에는 ‘기독교인(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믿어주었다고 합니다. ‘그 사람은 예수 믿는 사람이니 틀림없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제가 목사입니다’라고 해도 믿어주지 않습니다. 왜요? 목사들 가운데서도 거짓되고, 잘못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은 있는 그대로 말하고, 한 번 말을 했으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실천하려고 애써야 할 것입니다. 

지금의 사회가 이렇게 서로 믿지 못하는 사회가 되었으니 말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상대방이 내 말을 잘 믿어 주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내 말을 상대방이 잘 믿어 주지 않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제발 내 말을 좀 믿어 달라. 내 말은 참말이다’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우리는 맹세를 하는 것입니다. ‘내 명예를 걸고 맹세한다’, ‘내 전 재산을 걸고 맹세한다’, ‘내 목숨을 걸고 맹세한다’라고 하면 상대방이 더 믿어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맹세를 하는 것은 맹세의 대상을 걸고 자신의 말의 진실성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왜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그것은 당시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맹세에 대해 오용하고 남용하였던 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맹세에 대해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지 않고 여러 가지 피조물들, 즉, 하늘, 땅, 예루살렘, 자신의 머리, 등으로 맹세했습니다. 그리고는 이러한 이름으로 한 맹세는 잘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한 맹세는 반드시 지켜야 하지만, 이러한 것들로 한 맹세는 반드시 지키지 않아도 된다”, 이것은 얄팍하고 추악한 인간의 단면을 드러내 주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은 자기의 거짓말을 합리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신의 거짓말에 핑계를 대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인간의 거짓을 말하려고 하는 본성을 아주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들의 모습이 오늘의 우리의 모습, 나의 모습은 아닙니까? 


2. 맹세에 대한 구약 율법의 목적 

구약 성경은 맹세 자체를 금지하지는 않습니다. 맹세를 허용합니다. 그러나 맹세를 허용하되 지켜야 할 선이 있었습니다. 

1)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할 수 있습니다. (신6:13)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를 섬기며 그의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 정말로 엄숙한 맹세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는 맹세입니다. 

2)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 됩니다. (레19:12)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 맹세를 하는 것을 하나님은 싫어하셨습니다. 그래서 십계명 중, 3계명이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는 것인데,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것이 헛된 맹세할 때 사용하는 것입니다. 

3) 맹세하면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시50:14)

“감사로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여기에서 서원은 맹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한 맹세는 반드시 갚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맹세에 대한 구약 율법의 중심 목적은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맹세한다는 것은 절대로 거짓말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무 쉽게 맹세를 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맹세를 했다면 맹세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3. 그리스도인으로서 진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산상수훈의 말씀을 하시면서, 팔복에 대한 말씀에 이어서 소금과 빛이 되어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하는 삶을 살려면 구체적으로, 구약의 율법이 정하는 정도의 도덕적, 윤리적 수준을 넘어야 한다는 말씀을 하시고 계십니다. 

먼저는 살인해서는 물론 안 되고, 살인자의 마음도 가져서는 안 되며, 다음으로 간음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육적으로는 물론 영적으로도 깨끗하고 순결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음란하고 문란한 생활을 하면서 소금과 빛이 되는 삶을 살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오늘 말씀에서 진실하게 살아야 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은 있는 그대로 말하고, 한 번 말을 했으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실천하려고 애써야 할 것입니다. 말과 행실이 일치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거짓 맹세와 증거를 해서는 안 됩니다. 말에 대한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될 수 있으며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예수를 믿는 꿈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한 권사님 이야기입니다. 그 권사님은 인테리어 사업을 하고 계셨는데, 17년 전에 서울 강남의 방배동에 새로이 개업을 하셨습니다. 개업예배를 드리고 간절히 기도드렸는데, 사업이 잘 되었습니다. 그런데 IMF 때, 부도를 맞아서 완전히 망하게 되었습니다. 그 권사님이 부도를 맞기 전에 저에게 상담을 했습니다. 일주일 정도 있으면 부도를 맞아서 완전히 사업을 거둘 수 밖에 없을 것 같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권사님 이야기가, 부도는 막을 수 없지만 지금이라도 자재를 미리 감추어두고 어느 정도의 자금을 따로 돌려두게 되면 나중에 재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고 물으니까, 기독교인의 양심으로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부도로 인하여 손해를 볼 다른 사람을 생각하면 자신이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도가 나더라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은 다 끌어서라도 다른 사람의 손해를 막아주려고 애쓰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정말로 부도가 났고 그 권사님은 자신이 그동안 모아놓았던 것, 그 모두를 다 내 놓았습니다. 채권자들이 몰려왔을 때, 자신의 것은 다 내 놓았다고 말하면서 정말로 죄송하다고 사죄를 했습니다. 그 일 이후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자신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진실하려고 노력했다고 합니다. 지난 달에 저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정말 오랜 만에 전화를 했습니다. ‘목사님 안녕하십니까?’, 반갑게 전화를 받았습니다. ‘지금 어떻게 지내십니까?’, 사업을 다시 시작해서 잘 해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직종이냐고 하니까, 전에 하던 직종이라고 합니다. 

감사하더라고요. 제가 기억하는 그 권사님, 정말 진실하게 살려고 애쓰고, 말한 대로 살려고 애쓰는 분이었습니다. 

또 한 분, 어느 권사님의 간증입니다. 이 분은 서울 강남에 빌딩을 갖고 계시고 부자이시고, 신앙이 좋은 분이십니다. 

이분이 집사님일 때, 원래 집이 서울 평창동에 이층집에 살고 계셨고, 조그마한 사업도 잘 되어서 괜찮은 삶을 사셨던 분이셨는습니다. 그런데 오래 전에 친한 친구가 보증을 서 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이 분이 고민을 하다가 그 친구를 위해 보증을 서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결국 일이 안 풀려서 친구의 빚을 고스란히 떠안게 되었습니다. 채권자가 날마다 찾아와서 보증을 선 이 집사님에게 책임을 지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집사님은 그 채권자의 요구에 결국 집을 팔아서 갚겠다고 약속을 하였습니다. 너무 순순히 책임을 지겠다는 말이 믿어지지 않아 ‘정말이야?’고 묻는 채권자에게 “예수 믿는 사람은 말한대로 합니다”라는 말을 한 후, 정말 집을 팔아서 친구의 빚을 대신 갚아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남은 돈으로 당시 서울 변두리에 땅을 사서 집을 짓고 이사를 했습니다. 십 수년이 지나서 이분의 땅과 집이 엄청난 값으로 치솟았습니다. 그 권사님이 땅을 사서 집을 지은 곳이 지금의 강남 영동의 호텔 옆이었던 것입니다. 그때는 거기가 서울의 변두리여서 땅값이 아주 쌌었다고 합니다. 그분이 하시는 말씀이, “지금 이 집을 팔면 그때 잃어버렸던 집을 세 채를 사고도 남습니다”, 그분의 말씀을 들으면서 어떤 시원한 느낌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정말로 진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말과 행실이 일치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시간 시편 15:1~5의 말씀을 봉독해 드리고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시15:1~5)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 /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 그의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아니하고 그의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웃을 비방하지 아니하며 / 그의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하며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 /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 주지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하지 아니하는 자이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우리의 의가 바리새인보다 나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하여 어두운 세상의 빛이 되고 썩어져 가는 세상의 소금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이웃에게 해를 끼치지 아니하고 깨끗한 삶을 살며, 한 걸음 더 나아가 신실하여 한 번 맹세하고 약속한 것은 자신에게 해가 되더라도 변함없이 지킬 줄 아는 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대로 살아가기 위하여 힘쓰고 노력하며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들 가운데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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