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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창 18: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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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창 18:1-15)


지난 7일 한국 시각으로 새벽 0시 18분 자크 로게 IOC 위원장이 “평창!”이라고 외쳤습니다. 치열했던 2018년 동계 올림픽 유치전이 독일의 뮌헨과 프랑스의 안시를 제치고 대한민국의 평창으로 결정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순간 온 국민이 환호하며 마냥 기뻐했습니다. 물론 환경 문제를 비롯한 부정적인 결과를 걱정해서 반대하는 사람들도 없지는 않았지만... 누가 뭐래도 2018년 동계 올림픽 평창 유치는 기적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 기적을 연출하기 위해서 모두 수고했습니다. 유치위원회 대변인 나승연 씨도 수고했고 김연아 선수도 정말 수고했습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을 비롯한 재벌 회장들도 정말 수고했습니다. 물론 대통령도 수고했습니다. 그 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정말 수고했습니다.

그런데 이 기적을 연출한 숨은 주역이 따로 있습니다. 여든의 시골 노인에서부터 음악 교사, 어린 꼬마, 강원도로 시집 온 다문화 가정주부와 그 자녀, 군인, 장애인 등 남녀노소 각계각층의 강원도 주민 2,018 명으로 이뤄진 강원도민 합창단이 바로 그 숨은 주역입니다. 그들은 2월 18일 열린 IOC의 강릉 국제 실내 빙상장 실사 현장에서 깜짝 공연을 펼쳤습니다. 공연은 비록 짧았지만 2,018 명이 하나가 되어 들려 준 그룹 아바의 ‘I have a dream’과 ‘아리랑’ 선율은 IOC 평가 위원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올림픽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쉽게 말해서 세계인의 스포츠 잔치가 아닙니까? 겨울 스포츠 잔치를 강원도 평창에서 열고 싶다는 것은 이 잔치를 통해서 손님들을 극진하게 대접하고 싶다는 뜻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대한민국과 강원도민들은, 특히 2,018 명의 강원도민 합창단원은 전 세계를 향해서 바로 그 뜻을 분명히 보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결정은 그 진실한 마음이 IOC 위원들을 비롯한 전 세계인들에게 통한 결과였다고 말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미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한낮 뜨거운 태양 아래 아브라함은 장막 문에 앉아서 쉬고 있었습니다. 장차 아들을 얻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이미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의 현장에는 생기가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미 늙은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아들을 얻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별로 기대할 것이 못 되었던 것 같습니다. 때문에 가슴 설레임도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남자는 은수저 한 벌만 들 힘이 있어도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람 가운데 이 방면의 기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마도 배우 안소니 퀸일 것입니다. 그는 생전에 다섯 명의 여자에게서 열세 명의 아이를 낳았는데 마지막 아이는 그의 나이 여든한 살 때에 그의 비서와의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아브라함도 포기하기에는 이르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하여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다시금 확신을 주려고 찾아오셨던 것 같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 약속의 또 다른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사라에게도 그 사실을 알려 주려고 찾아오셨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세 남자의 모습으로 그를 찾아오셨습니다. 뜨거운 한낮 장막을 찾은 낯선 사람들을 아브라함은 매우 친절하게 맞이했습니다. 잠시 뜨거운 햇볕을 피하도록 문을 열어 주는 정도가 아니라 먹고 마실 수 있도록 식사를 대접해도 좋겠느냐고 아브라함은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들이 승낙하자 아브라함은 매우 분주해졌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즉시 아내인 사라와 하인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도록 지시했습니다. 그리고 푸짐한 식탁이 준비되자 그들을 식탁으로 인도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마치 시중을 드는 하인처럼 곁에 서서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들은 배가 고파서 아브라함을 찾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피로를 풀기 위해서 아브라함을 찾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아브라함을 찾은 목적은 그에게 선물을 주는 데 있었습니다. 식사를 마친 그들은 준비한 선물을 내놓으려고 했습니다. 그 선물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에게 더욱 값진 선물이었습니다. 그들이 물었습니다.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손님을 대접할 때에 주부는 흔히 장막 안에 있습니다. 알면서도 사라의 소재를 물은 것은 그들이 준비한 선물이 사라에게 직접적으로 해당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브라함에게 이미 들려 준 아들에 대한 약속을 이제 그의 아내 사라에게 들려 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 때 비로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찾아오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아브라함은 아들을 얻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번에는 웃지 않았습니다. 왜냐 하면 반복되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아브라함에게 믿음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처음 듣게 되는 사라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사라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자신의 형편과 처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내년에 아들이 있을 것이라는 그 말씀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사라가 왜 웃느냐고 물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사실 아브라함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도 일찍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웃음으로 대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들 부부에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그렇습니다! 하나님에게 있어서 불가능이란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사실을 오늘 우리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대체로 사람들은 분에 넘치는 대접을 받게 되면 뭔가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하고 싶어하게 마련인 것 같습니다. 때문에 지난 2월 평창 현지를 실사하기 위해서 방문했던 IOC 평가 위원들도 가장 좋은 점수를 주지 않았습니까? 우리 국민들과 특히 강원도민들이 얼마나 열렬하게 그들을 환영했습니까? 이번 남아공 더반 총회에서 유치 위원들이 프레젠테이션을 잘 했다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IOC 위원들이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손님 맞을 준비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 주지 않았습니까? IOC 위원들도 분에 넘치는 대접을 이미 받은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말입니다. 때문에 그들은 평창에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 관계의 실상이요 또한 한계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열렬히 환영하기 때문에 그 대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선물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오늘 봉독한 말씀에 등장하는 세 남자가 아브라함의 극진한 대접에 감동했기 때문에 아들에 대한 약속으로 보답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선물을 가지고 아브라함을 찾아왔습니다. 다만 아브라함이 나그네의 모습으로 찾아오신 하나님을 기꺼이 영접했기 때문에 아들을 얻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다시금 듣게 되었고 그 결과 더 굳게 믿을 수 있게 되었을 뿐입니다.

때문에 오늘 우리도 하나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시든지 늘 영접해야 합니다. 때로는 지친 나그네의 모습으로 오실 수 있습니다. 또 때로는 작은 아이의 모습으로 오실 수도 있습니다. 또 때로는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외국인 근로자의 모습으로 오실 수도 있습니다. 어떤 모습으로 오시든지 결코 외면하거나 배척해서는 아니 됩니다. 영접하는 자에게 무엇을 주신다고 성경이 말하고 있습니까?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우리가 모든 사람을 대할 때에 주님을 대하는 것처럼 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큰 선물은 성령일 것입니다. 약속하신 성령이 오시면 어떻게 될 것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까?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욜 2:28) 전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을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서 우리가 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백 세 된 아브라함이 어떻게 아들을 낳을 수 있었습니까? 특히 여성의 생리가 끊어진 사라가 어떻게 임신할 수 있었습니까? 도무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셨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삶의 현장에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포기한 것이 어떤 것입니까? 물론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수단과 방법으로는 전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이미 확인했을 것입니다. 돈으로도 되지 않았고 힘으로도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일도 하나님은 얼마든지 하실 수 있기 때문에 결코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때가 되면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께 능하지 못한 일이란 없습니다. 지금도 우리를 찾으시는 주님을 반갑게 영접함으로 말미암아 날마다 삶의 현장에서 주님이 주시는 크고 놀라운 은혜와 평강을 마음껏 받아 누리는 참으로 복된 주님의 제자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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