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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행동하시는 그분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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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그만큼 경험의 폭이 넓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어른을 공경하고 그분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중의 하나가 바로 그분들의 삶에서 체득되어진 삶의 지혜를 활용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역사 소설을 무척 좋아합니다.
역사 소설을 읽으면서 한가지 특이한 사실을 발견했는데 어느 시대에도 역사의 흐름에는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의도대로 흘러오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생애를 살펴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데,
성경의 인물들의 의도대로 되어진것보다 그렇지 않는것이 더 많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것은 요셉의 경우에도 적용됩니다.

족장의 아들로 태어나 이방땅에 노예로 팔려온것만 해도 억울할텐데, 주인 보디발의 아내의 모함으로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됩니다.
요셉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얼마나 황당하고 참담 하였겠습니까?
더구나 당시의 풍습에 의하면 한번 감옥에 갇히면 왕의 허락이 있어야 방면되는,
그러니까 죄수의 신분이 된다는것은 한마디로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끝난 삶이 됨을 말합니다.

그런데 창세기 40장을 읽어보면 이렇게 요셉의 활동 범위를 최소한 축소시키신 하나님의 일하심이 나오는데 40:1입니다.
"이런 일들이 있은 지 얼마 뒤에, 이집트 왕에게 술잔을 올리는 시종장과 빵을 구워 올리는 시종장이, 그들의 상전인 이집트 왕에게 잘못을 저지른 일이 있었다. (새번역성경)

요셉으로 하여금 인간적인 절망을 경험케 하신 하나님께서는 애굽왕의 가장 측근 두 사람이 죄를 지었을때 그들을 보디발이 감독하는 감옥으로 보냅니다.
그런데 신기한것은 보디발의 관리하에 있던 감옥은 요셉이 갇힌 그 하나만이 아니었을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요셉이 갇혀 있던 그곳으로 왔던것은 우연일까요?

그래요. 여기까지는 우연이었다 가정합시다.
그런데 요셉과 함께 수인 생활을 하는 그 두 관리가 같은날 이상한 꿈을 꾸게 되고 그 꿈을 해몽해주는 요셉의 말과 똑같이 되는 사실 역시 우연으로 치부해야 할까요?

아닙니다. 요셉의 배후에서 일하시는 하나님, 행동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이 바로 창세기 40장의 내용입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두 관리와의 만남은 요셉이 애굽왕을 만나게 되는 징검다리인 셈입니다.

이렇게 요셉의 배후에서 일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동일하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back ground 이심을 믿음으로 고백 하는 푸른이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 한명 한명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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