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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새 자아, 옛 자아 (롬 6: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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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자아, 옛 자아 (롬 6:6-11)


두 자아의 유형

인간의 내면에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자아가 있습니다. 

(1) 뮤지컬 <모차르트!>에서는 궁중 지휘자인 아버지가 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다섯 살 난 아들의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자랑스럽게 소개합니다. 모차르트는 성장하면서 틀에 얽매이는 것을 힘들어하고, 빈털터리가 되기도 하고, 향락에 빠지기도 합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뮤지컬이 끝날 때까지 다섯 살 때에 보여준 천재성이 또 다른 자아가 되어 모차르트 곁에서 열심히 작곡을 하면서 격려와 채찍질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2) <사랑과 영혼>이라는 영화에서 사람이 죽자 영혼이 빠져나와서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가는 장면이 등장한 이후, 많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사용되고 있는 등 염려스러운 일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3) 하나님께서는 바울사도님의 고백을 통해서 우리에게 거듭난 자아와 옛 자아의 개념을 분명하게 보여 주셨습니다. 자아개념을 잘 정리하면 평생 살아가는 동안 필요한 자원을 얻을 수 있고, 기독교역사에서 최고의 관심사이었지만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사람이 변화되는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성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아주 귀한 말씀으로 받으시면 큰 은혜가 될 줄 믿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고민이 있습니다. 거듭난 후에는 옛사람의 영향력이 더 이상 미치지 않아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호시탐탐, 시시각각 우리를 옛사람의 성품으로 살게 한다는 것입니다. 


싸우는 두 자아 

예수님을 믿으면 거듭납니다. 거듭남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 먼저 거듭나기 전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우리 인간 영혼의 기원(紀元)을 아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1. 거듭남 이전단계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영혼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아담은 죽음도 없고, 죄도 없이 에덴동산에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모든 것을 허락하신 하나님께서 유일하게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으므로 죄인이 되었습니다. 죄인이 되므로 여자는 해산의 고통이 뒤따랐고, 땅은 엉겅퀴를 내었으며, 남자는 수고의 대가로 식물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잃었고, 아담의 죄는 전 인류에게 전가(轉嫁)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냉엄하신 판결은 『(렘17:9)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 (롬3:23)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 (롬3:10)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사람들은 교리적인 단어로 선악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2. 거듭난 단계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행16:31)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 (요5:24)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면 더 이상 죄의 노예가 되지 않습니다!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므로 죄의 세력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고, 천국이 보장되었습니다.

3.  ‘이미’와 ‘아직’

새 생명은 거듭난 사람에게 성령님의 요구대로 살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옛 자아 역시 우리를 죄 가운데 살도록 유혹합니다. 위대한 바울사도님께서도 이 둘의 싸움으로 인하여 (롬7:19) 나는 원하는 선을 행하지 않고, 원하지 않는 악을 행합니다.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행하고 있다면 그 일을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라 바로 내 안에 살고 있는 죄입니다. 이러한 행동들로부터 발견한 하나의 법칙이 있습니다. 선(善)을 행하려는 마음은 이미 나에게 있지만 악(惡)도 아직 나와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의 몸의 여러 부분들에서는 다른 법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나를 내 몸에서 작용하고 있는 죄의 법에 사로잡히게 합니다. 두 자아의 싸움에 지친 바울사도께서 마침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성령님의 음성대로 살기를 원하시는 사람들의 절규를 선창 했습니다. 절규를 끝내기 위해서 기독교사에는 노력도 했고, 금욕주의를 선택하기도 했고, 사막으로 들어가기까지 했지만 이것은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입니다.


싸움을 이기는 유일한 길

이 싸움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이길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훈련이나 수련으로 된다는 발상을 포기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죄를 짓는 사람의 습관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최초의 죄도 마귀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천 방법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내가 끊지 못하고 있는 죄의 습관을 떠올리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오른손을 펴시고 그 죄를 짓지 않으면 얻을 수 있는 유익을 두 가지 이상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모차르트가 다섯 살 때 인정받았던 모습을 성인이 되어서도 떠올렸던 것처럼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주님의 은혜 덕분에 인정받았던 모습을 떠올려 보십시오. 눈으로 선명하게 되새겨 보시고, 그때 들렸던 소리를 들어보시고, 느꼈던 감정을 다시 느끼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 왼손을 펴시고 왜 그러한 죄를 짓는지 스스로에게 변명할만한 이유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변명 하나를 들은 이후, 오른손의 입장에서 그 소리를 수용하고, 위로해 주기를 반복해 보십시오. 

네 번째, 오른손을 들어서 왼손을 때리면서 “예수이름으로 명령하노니 죄질 생각은 떠나가라!”고 세 번만 외쳐 보시기 바랍니다. 

다섯째, 죄를 짓는 장소에 주님이 아주 밝은 모습으로 임재하는 모습과 천국에서 죄짓는 행동을 바라보시면서 기도하시는 모습을 그려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언어로 선포하시 바랍니다. “내 죄의 습관은 나에게서 떠나갔다. 이제는 다시 넘어 지지 않을 것이다.”


가시나무새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람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 곳 없네.... 

살아서 단 한번 우는 새, 죽기 전에 가슴을 가시나무에 스스로 찌르고 운다는 새가 되지 맙시다! 더 늦기 전에 잠시, 잠깐의 쾌락에 영원한 가치와 상급을 매몰시키지 맙시다! 이 땅에서도 천국을 이루라는 주님의 명령을 실천합시다. 주께서 힘을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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