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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복된 자의 길에 서는 사람 (신 2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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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된 자의 길에 서는 사람 (신 28:1-6)

우리 주변을 보면 벗어나야 할 것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을 종종 봅니다. 그 가운데 도박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하나의 유혹에서 벗어나지를 못한다고 합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이번 한번만!”이라고 하는 유혹입니다. 잃어버리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하고“딱 한판만 잘되면!”이라고 하는 기대가 그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열 번을 잃다가도 한판만 따면 된다는, 그리고 반드시 딱 한번은 잘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지를 못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더 웃긴 것은 그 순간에는 욕망만 가득차서 앞뒤 분간을 못합니다. 가령 열 번을 져서 1억을 잃었는데도 그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한번 이겨서 천만 원 딴 것을 성공했다고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된다.”는 희망을 걸고 망할 때까지 도박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렇게 욕망 지향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한 현실의 의미나 가진 것의 소중함은 아랑곳없고 가지지 못한 것, 저 앞에 있는 욕망, 단 한 번의 성공을 지향하는 마음으로 달려갑니다.“이 일만 잘 되면 행복해질 것이다.”,“이것만 이루면 공생 끝, 행복시작이라.”는 그 욕망 때문에 정말 행복하지 못하고 망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세요. 어디 그게 쉽게 만족이 됩니까? 이것이 되고 나면“저것만 되면...”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 그것을 이루면“그것까지만 이루었으면...”하는 게 또 있습니다. 그리고 더 문제는 인간이란 하나씩 성공해가면서 자신의 가치를 높여보게 되어있다는 사실입니다.‘내가 이것까지 성공했는데 저 정도쯤이야 되지 않겠어!’라는 자신감이 생깁니다. 자신감이 나쁜 것은 분명히 아닙니다. 하지만 자신감이 지나쳐서 자만심이 될 때가 문제입니다. 

[버트란트 러셀]이라는 사람을 잘 아실 것입니다. 그 사람이 자신의<행복론>에서 이렇게 말합니다.“자기 자신의 힘을 겸허하게 평가하고 자기 자신의 힘과 존재를 겸허하게 평가하는 것이 행복의 근본이다.”이 말을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을 겸허하게 낮추어서 평가하고 사는 사람은 항상 자기 성공에 놀란답니다. 

무슨 말입니까?‘아, 나는 이만한 사람이 못되는데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부족한 나에게 어떻게 이런 복이 왔나?’하고 자기 앞에 이루어지는 그 일 자체가 복이라고 여기며 자기 스스로 놀라면서 산다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반대로 자기를 스스로 높이며 사는 사람은 항상 실패에 대해서 놀라며 산다는 겁니다.‘어떻게 나 같은 사람에게 이런 일이 있단 말인가?’,‘어떻게 나 같이 완벽한 사람에게 이런 불행이 있단 말인가?’하며 마치 있을 수 없는 일이 자기에게 일어났다고 생각하며 사는 겁니다. 

부부사이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를 낮추고 상대방을 보면‘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런 훌륭한 사람을 나 같은 사람에게 주셨나!’싶지만 자기 자신을 한껏 높여서 상대방을 보면‘어쩌다 저런 사람하고 걸렸나! 내가 저런 사람하고 살 사람이 아닌데 실수다 실수!’그러는 겁니다. 이게 불행의 원인입니다. 여러분 선택은 나에게 있고, 내가 어떤 자세로 임하느냐에 따라서 복과 저주가 갈라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복과 저주를 함께 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신11:26절을 보면“내가 오늘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그랬습니다. 이 말씀은 복과 저주 중에 우리가 무엇이든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복을 선택하는 현명한 사람이든지, 저주를 택하는 어리석은 자이든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선택은 자유입니다. 그러나 선택 뒤에 오는 결과는 부득이 내가 받아야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에 대해서는 내가 고칠 수 없습니다. 그것이 심판일지라도 받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말씀을 잘 이해해야합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복된 환경이 있는 게 아니라 복된 자가 있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복이란 소유나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바는 복된 사람이 있고 복된 의미가 있는 것이지 복된 환경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 복된 길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복된 자가 되면 복된 길로 가는 것이고 그보다 중요한 것은 복된 길로 가는 자에게 복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다. 사람이 복을 따라가는 게 맞습니까? 복이 사람을 따라 오는 것입니까? 복은 따라가는 게 아니라 따라 오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세워놓은 복, 내가 생각하는 복을 따라가서 쟁취하겠다고 하는데 여러분, 복은 쟁취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이란 주어지는 것입니다. 복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께서 복을 주어야 받는 것이지, 이것을 내가 쟁취하고 갈취하고 빼앗아 낸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렇게 얻은 것은 복이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성경 본문말씀은 복된 사람이 되는 길, 복 받는 길을 확실하게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본문을 정리해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하나님의 말씀을 삼가듣고 그 명령을 지켜 행하면 나가도 복을 받고 들어와도 복을 받고 여기서도 복을 받고 저기서도 복을 받고 너 뿐만 아니라 네 집안에 있는 모든 사람 모든 짐승까지도 복을 받을 것이다.”여러분 오늘 우리가 복 받을 수 있는 비결이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듣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 말의 의미는 조심스럽게 놓칠세라 듣고 또 듣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내 잘못된 생각으로 인해서 말씀이 왜곡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비우고, 내 욕심이나 이상이나 비판이나 이런 거 다 비우고 아주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서 하나님 말씀을 듣는 것이 삼가 듣는 자세입니다. 

[커밍 워크]라고 하는 사회학자는 현대인으로 성공하는 비결에 대해서 지능, 지식, 기술, 태도 이 네 가지를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 네 가지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태도, 즉 삶의 자세라고 그랬습니다. 자세가 좋아야 됩니다. 태도가 훌륭해야합니다.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는 공부하는 자세가 가장 중요합니다. 배우는 자에게는 배우는 태도가 좋아야 잘 배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듣는 자세, 예배하는 자세, 기도하는 자세, 말씀 듣는 자세가 좋아야 합니다. 거기에 따라 복이 좌우됩니다. 

어떤 부흥되지 않는 교회에 교인들에게 조사를 했답니다. 설교를 들을 때 어떻게 듣느냐는 게 질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교인들의 가장 큰 문제가 설교를 들을 때 50%밖에 안 듣는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내 마음에 드는 절반은 듣고 내 마음에 안 드는 절반은 버린다는 겁니다.

말하자면“하나님 앞에 정직한 십일조는 교인의 의무입니다.”하는 설교는 아예 싫으니까 안 들어버리고“아무 것도 하지 않고 거저 교회만 잘 나오면 복 받을 것이요.”이런 설교는 기분 좋게 듣는다는 말입니다. 교인들이 전부 자기가 좋아하는 절반만 듣고 듣기 싫은 소리는 아예 안 들어버리고 마는 이 교회가 부흥하겠습니까? 

여자분들, 밥상을 차려 놓았는데 남편이나 아이들이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잘 먹는 사람이 좋습니까? 깨작깨작하면서 이건 어떻고 저건 어떻고 따지는 사람이 예쁩니까? 참 꼴불견이거든요. 그래서 옛날 어른들이 진리를 가르쳐 주었습니다.“같이 앉아서 음식 먹어보고 음식가리는 사람하고는 놀지 말라.”그랬습니다. 까다로운 사람이거든요. 정말 힘들고 피곤한 사람입니다. 밥상에 올려놓은 거는 무조건 다 맛있게 먹는 것이 중요한 것처럼 영적 건강도 먹성이 좋아야 됩니다. 무슨 말씀이든지 다 받아들이고 잘 소화하는 자세가 좋아야 합니다. 

솔직히 내 마음에 드는 것도 있고 안 드는 것도 있고, 이해되는 것도 있고, 되지 않는 것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의미는 내 이성적 비판을 누르고 그 말씀을 따르는 것입니다. 내 생각을 버리고 그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선택한 신앙이요, 중요한 것은 이것이 복된 길입니다. 

여러분, 때로는 다 납득되지 않아도 됩니다. 먼저 순종해도 될 때가 있습니다. 모든 것을 이해해야 되겠다고 하지 않아도 됩니다. 때로는 먼저 순종하고 나면 깨달음이 오는 것입니다. 계산해 보고 결정하겠다고 하지 마십시오. 먼저 드리고 나면 배가 되는 역사를 보게 됩니다. 내 이성에 신앙을 따라오게 하지 말고 신앙에 내 이성을 맡겨야 되는 것입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때에 귀한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메이어(F.B. Meyer)]박사는 말하기를“신앙이란 내 모든 생각을 버리고 내 마음의 충동을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인이 되었다면 내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입니다. 내 뜻을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입니다. 마치 아브라함이 그랬고, 모세가 그랬던 것처럼 이해되지도 않고, 깨달아지지도 않지만 거저 믿고“가라!”하면 가고, “건너라!”하면 건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변론을 벌이지 마시고, 꾀를 부리지 말아야 됩니다. 정직하게, 때로는 우직하게, 때로는 고집스럽게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복된 자가 되는 길입니다. 
어느 초등학교 시험지에 답을 적은 것입니다. 

문제1)만유인력을 발견한 사람은? (답) 죽었음

문제2)“불행한 일이 겹쳐서 일어나는 것”을 네 글자로<설( )가( )>이라고 한다. 
       정답은? (답)설사가 또 

문제3)부모님은 왜 우리를 사랑하실까요? (답) 그러게 말입니다.

초등학생이니까 충분히 이해가 가는 답입니다만 그러나 만약에 여러분에게“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며 복을 주실까요?”라는 질문에“그러게 말입니다”라고 대답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정답은“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입니다.”라고 분명히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승리를 얻게 되고, 순종한 사람에게는 복이 따라 오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가 얻을 복을 성경은 구체적으로 적고 있습니다.“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에게 복은 좋은 직업도 아니요, 환경도 아닙니다. 무조건 잘 살게 되는 것이 복의 우선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가장 먼저는 복된 자가 되는 것이고, 그래서 복된 길에 설 때 이제 그 앞에 전개되는 모든 것이 복으로 화하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복이 무언지도 모르고 복 받기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요, 복된 길을 등지고 살면서 복 받기를 바라는 것은 미련한 것입니다. 그리고 저주스러운 못된 일만 골라 하면서 잘살기만 바라는 사람은 불한당 같은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가 자세를 고치고 분명히 복된 길에 서서 복된 자의 길을 가는 지혜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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