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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로서 사명 감당합시다 (딤전 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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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로서 사명 감당합시다 (딤전 3:15)

(딤전 3:15)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교회를 하나님의 집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집이라고 할 때 일차적으로는 예루살렘 성전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이차적으로는 언약의 백성을 가리킵니다

(민 12:7)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내 온 집에 충성함이라

(호 8:1) 나팔을 네 입에 댈지어다 원수가 독수리처럼 여호와의 집에 덮치리니 이는 그들이 내 언약을 어기며 내 율법을 범함이로다

언약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성전, 혹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을 갖고 있었습니다.

(겔 11:16) 그런즉 너는 말하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비록 그들을 멀리 이방인 가운데로 쫓아내어 여러 나라에 흩었으나 그들이 도달한 나라들에서 내가 잠깐 그들에게 성소가 되리라 하셨다 하고

언약의 백성들과 하나님은 피차간에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안에 거하였고 하나님께서는 그들 안에 거하셨습니다.

한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는 모두 언약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집이요, 하나님이 거하시는 참다운 전입니다
때문에 교회는 두 시대 속에 있는 동일한 집이요 성전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룩하고 구별된 성도들의 모임은 거룩하고 구별된 성전입니다.

외형적으로 크고 웅장해서 영적이고 하나님의 복이 임하는 것이 아니라 비록 소수가 모이고 외형적으로는 보잘것없는 교회에서 성도들이 모인다 해도 그곳에는 하나님께서 친히 임재하시고 친히 복을 내려 주십니다.

(마 18: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라고 합니다.
  
이 집은 그리스도와의 교제와 각 성도들 사이의 교제를 통하여 구원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의 교회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교회의 내적 영광은 겉으로 보기에 아름답고 값비싼 재료를 사용하여 지은 건축물 자체에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살아 있는 하나님의 인격적인 임재를 깨닫게 해주는 영적 공동체가 바로 교회의 영광인 것입니다. 즉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영적인 교회요 그들의 교제는 아름다움이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단순한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묘사하는 것은 구약 성경을 참고할 때 그다지 낯선 표현이 아닙니다.

구약 성경에서는 이방인이 섬기는 생명 없는 우상과 의도적으로 대조시키기 위해 자주 여호와 하나님을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여호수아는 요단강을 건너는 이적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사 가나안 일곱 족속을 쫓아내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수 3:10) 또 말하되 살아 계신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에 계시사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히위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너희 앞에서 반드시 쫓아내실 줄을 이것으로서 너희가 알리라

살아계신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으로서 영원토록 살아 계시어 우주 만물의 운행과 인간의 모든 역사에 친히 섭리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일컫는 말입니다.
실로 여호와는 이방의 온갖 목석의 죽은 신과는 현격히 대조되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시 96:5-7) 만국의 모든 신들은 우상들이지만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음이로다 오직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나이다 그들의 우상들은 은과 금이요 사람이 손으로 만든 것이라

(시 115:5)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냄새 맡지 못하며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이 있어도 작은 소리조차 내지 못하느니라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살아계심을 특별한 사역을 통해서 자신의 백성들에게 친히 나타내시는데, 여기서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가나안 일곱 족속을 진멸시키심으로써 자신의 살아계심을 보여주실 것이었습니다(Keil). 

여호수아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언급함은 이스라엘 백성이 처한 역사적 상황에 동참 하시고 임재하시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 자신의 임재를 드러내시는 곳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명적인 눈이 뜨여 주어진 여건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음을 발견하며,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체험할 때에 여호수아가 고백했던 것과 갈이 우리 가운데 살아계신 하나님을 진실되게 고백하고 담대하게 증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도 열방 우상들의 인간이 만든 것인 무능을 지적하며 경배를 금지하면서 여호와의 절대 주권을 대조하며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라고 합니다.

(렘 10:10) 오직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왕이시라 그 진노하심에 땅이 진동하며 그 분노하심을 이방이 능히 당하지 못하느니라

이러한 대조는 우상들은 거짓 신들이며 오직 여호와한분만 참된 하나님 즉 진실 그 자체이심을 부각시키기 위해 서입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오직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요’라고 선언합니다.
‘참’(에메트)은 ‘바른’(창24:48), ‘확실한’(신13:15),‘진리’(시25:5)라는 의미의 명사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는 진정한 하나님 이십니다’라는 의미로서 우상의 헛됨과 구별되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존재의 진정성을 찬양합니다.

우상이 말하거나 움직일 수 없는 생명 없는 존재라는 사실과 대조되는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역사하심을 찬양 합니다. 우상이 인간에 의하여 만들어지고 인간에 의하여 움직이는 존재이며 인간이 어떻게 꾸미느냐에 따라 그 면모가 달라지는 존재, 다시 말해서 인간에 의해 그 운명이 결정되는 존재라는 사실과 대조를 이룸을 나타내며 영원한 왕이시라고 합니다.

주권이 없는 것과 대조되는 하나님의 주권을 부각시킵니다. 
‘영원한’(올람)은 영원히’(사51:8) ‘끊임없이’(사34:10)라는 의미의 명사로서 인간의 한계마저 뛰어넘는 위대하신 분이심을 나타냅니다.

우상은 인간보다 못한 존재로 아무런 주권이 없으나 하나님께서는 주권자이시되 인간과 비교할 수 없이 더욱 탁월하셔서 그 주권이 영원 무궁히 계속된다는 의미를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는 실로 인간의 왕과 달라서 태초부터 종말까지 세세 무궁토록 영원한 왕이십니다.
시인도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며 어느 때에 하나님을 뵐까 합니다.

(시 42:2)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하나님은 내 생명을 지으신 아버지이시며, 모든 생명의 근원이십니다. 하늘에는 그 영광으로 가득 차 있고, 땅 위에는 그 선하심으로 충만 되어 있습니다. 그분의 자비는 인간들뿐만 아니라 미생물에게까지도 미쳐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인간들에게 복주시고 그 영혼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시고 해와 달고 별과, 바람과 나무와 꽃을 노래하게 하시며 인간이 부르짖으면 하늘에서 응답해 주시니 은총의 잔은 손에서 넘치고, 삶의 만족은 절정에 이릅니다. 인생의 궁극적인 만족은 이러한 은혜를 우리에게 허락하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습니다.
시인은 또한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며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는다고 합니다

(시 84:2)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앗수르 왕 산헤립의 심복 랍사게가 유다 왕 히스기야와 여호와 하나님께 한 모욕적이며 위협적인 말로 유다 백성들의 마음을 히스기야 왕에게서 떠나게 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부터도 떼어놓으려 했을 때 성전으로 하나님을 찾아간 히스기야는 옷을 찢고 베옷을 입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기를 다짐하고 여호와의 전으로 갑니다. 그리고 왕궁 맡은 자 엘리아김과 서기관 셈나와 제사장 중 어른들을 이사야에게 보냅니다. 그들이 이사야에게 랍사게가 그의 상전 앗수르왕의 보냄을 받고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훼방하였은즉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견책하실까 하노라 그런즉 바라건데 당신은 이 남아 있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하시더이다 라고 전합니다.

(사 37:4)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랍사게의 말을 들으셨을 것이라 그가 그의 상전 앗수르 왕의 보냄을 받고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훼방하였은즉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그 말로 말미암아 견책하실까 하노라 그런즉 바라건대 당신은 이 남아 있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하시더이다 하니라
  
다리오 왕은 자신뿐 아니라 사자 굴속에 다니엘을 던져 놓은 후의 상황을 보고 살아 계신 나라와 백성들도 하나님을 두려운 분으로 알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을 살아계신 하나님이라 부릅니다.

(단 6:26-27)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하지 않으실 이시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의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이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라 하였더라
  
북이스라엘 왕조의 선지가 호세아는 여로보암 2세 때부터 북왕조가 앗수르에게 멸망받기 3년 전인 주전 725년까지 자신의 가정과 행복을 희생하면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회개를 촉구하며 활동했습니다.
  
호세아에게 사명이 임했던 시기는 정치적으로 번영을 구가하던 시대였습니다. 사명을 받았던 호세아의 처지는 젊었을 때였습니다.

호세아에게 임한 사명의 내용은 하나님께서는 호세아에게 '음란한 아내를 취하여'(2절) 결혼하라고 명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호세아에게 고멜과의 결혼을 명하신 의미는 그 고멜의 음란성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의 타락한 실상을 호세아로 하여금 신앙적으로 조명하게 하시고 그 사명을 절감케 하시려는 의도라고 하겠습니다. 그 결과 세 명의 자녀를 얻었다고 했는바, 그 자녀의 이름을 통하여 호세아는 자신의 민족의 처지를 뼈저리게 절감할 수 있었습니다.
  
첫째아들의 이름은 '이스르엘'(4절)로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농부가 씨를 뿌리는 행위'를 뜻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그들이 우상화하는 앗수르를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을 열방 중에 흩어버리시겠다는 선고입니다.

첫딸의 이름은 '로루하마'(6절)라고 부를 것을 명하셨습니다. 이는 '용서하지 않겠다'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용서에는 항상 '회개'라는 조건이 수반됩니다. 남왕조 유다도 북왕조와 같은 죄악을 자행했지만 온 백성이 회개한 고로 앗수르의 손으로부터 구원받은 적이 잇습니다. 성도의 삶의 무기는 결코 '칼이나… 말과 마병'(7절)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 '진실함'이 인생 최대의 무기요, 지혜입니다.

둘째아들은 '로암미'(9절)라 부르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내 백성이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아마도 고멜이 다른 남성과 교제하여 얻은 자녀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자녀의 이름을 통하여 호세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도저히 '하나님의 백성'으로 불릴 수 없이 타락했음을 절감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불륜한 아내가 그러하듯 영적으로 남편 되신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게 될 운명에 처했음도 더불어 깨달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상실한 인생에게 더 이상의 희망은 없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너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할 것이라는 회복의 약속을 전합니다.

(호 1:10)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되어서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 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할 것이라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인용을 하였습니다

(롬 9:26)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그렇다면 이것은 구약 성경에만 국한되는 표현 양식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신앙을 고백할 때 사용합니다.

(마 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를 질문하는 대제사장도  예수께서 침묵하시거늘 대제사장이 이르되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마 26:63)합니다
바울의 전도하는 말 중에도  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행 14:15)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배교자들에 대한 심판을 경고하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히 10:31)라고 합니다.

다윗 왕이 인구 조사를 한 후 심판을 받을 때 한 말의 인용입니다(삼하 24:14;대상 21:13).

다윗 왕은 사람의 손보다 하나님의 손에 빠지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러나 요점은 다윗 왕의 선택 여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죄를 범할 경우 하나님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배교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심판이 피할 수 없는 무서운 것임을 시사합니다(Lane,Morris).
  
(요 6: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고후 3:3)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 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 판에 쓴 것이라

(살전 1:9) 그들이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에 들어갔는지와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와 이방인들이 그리스도께로 회심하는 것을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으로 이해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맺은 언약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렘 30:22)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너희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이러한 사상은 성경 언약의 근간을 이룹니다.

(출 29:45-46)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거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니 그들은 내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서 그들 중에 거하려고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줄을 알리라 나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레 26:12)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니라

(시 114:2) 유다는 여호와의 성소가 되고 이스라엘은 그의 영토가 되었도다

(겔 37:27) 내 처소가 그들 가운데에 있을 것이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특히 바울의 신학 사상에서도 두드러집니다.

(고후 6: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그러므로 교회는 살아계신 하나님께 구원받은 사람들의 모임이기 때문에 구원받은 감격, 감사가 넘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하시고 그를 믿는 사람은 죄 씻음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며 영생을 얻어 영원한 하나님의 집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도록 허락 하셨습니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구원받은 사람은 영원한 하나님의 집 천국에 가서 영원토록 살아계신 하나님과 영원토록 살게 되는데 그곳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운 곳입니다. 신부가 신랑을 위해 단장한 것 같은 아름다운 나라입니다. 눈물, 이별, 질병, 죽음이 없는 곳입니다. 성경은 천국을 낙원이라고 표현하고 있으며,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위해 예비해 놓으신 집, 또는 내 아버지 집이라고 말합니다.  “천국은 영원한 기쁨의 곳”(세익스피어)이요  “천국은 그리스도가 계시는 곳”(스펄죤 목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장차 들어갈 영원한 하나님의 집 천국의 복락을 사모하며 지상의 살아계신 하나님의 집인 하나님의 교회를 통해서도 주시는 천국의 기쁨과 복락과 은혜와 복을 누리며 사명감당하는  모두가 됩시다.

교육하고 선교하고 봉사며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사명 감당하되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의 교인들로서 사명 감당하는 모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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