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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난하신 하나님 (말 3: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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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신 하나님 (말 3:10-12) 


제가 태어나서 10년 후에도 우리나라는 국민소득이 100불도 되지 않았었습니다. 우리나라보다 더 가난한 나라는 없었다고 할 수 있으리만큼 우리나라는 가난했었습니다. 제가 태어났을 때 어머니 젖이 적어 고생을 했답니다. 그때는 분유를 구할 수 있는 때도 아니었기 때문에 쌀을 가루 내어 그것으로 맘 죽 같이 해서 먹였답니다. 그런데 그 맘 죽을 해 먹일 쌀도 늘 넉넉질 못해 맘고생이 심했었답니다.

어느 날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친구 집을 봐 주러 가셨었는데 쌀독에 쌀이 가득 있어서 그것을 몰래 바지 주머니에 담아 오셨답니다. 담아 오신 것이 아니라 훔쳐 오신 것이었지요. 저는 아버지가 친구 집에서 몰래 훔쳐 오신 쌀을 먹고 생명을 부지 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학교의 수위가 되셨습니다. 아버지를 고향에서부터 아셨던 분은 저희 아버지가 학교 수위를 하고 계셨던 것을 보고 모두 다 놀라셨습니다. 굶어 죽어도 그 자리에서 그 일은 안 하실 분으로 모두 다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저희 아버님께서 어린 저에게 해 주셨던 말씀은 아마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겁니다. “오십이 다 되어 나를 낳고 보니 학교 수위 아니라 똥 구루마라도 끌겠더라.”

학교 다닐 때 학교에서 외국에서 보내 준 우유 가루와 옥수수 가루를 배급 받았습니다. 가끔씩 외국에서 보내준 구제품 옷을 받아 입기도 하였습니다. 겉이 제법 낡은 겨울 외투는 뒤집어서 다시 입었습니다. 일본 말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을 ‘우라까이’이라고 했었던 것 같습니다.

74년도에 처음으로 선풍기를 샀습니다. 76년도에 처음으로 19인치 흑백텔레비젼을 샀습니다. 그때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하여 보상금을 받았는데 그 돈으로 처음 텔레비전을 집에 들여 놓을 수 있었습니다. 78년도에 처음으로 냉장고와 전화기를 들여 놓았습니다. 78년도 신학교를 졸업하고 전임전도사가 되었습니다. 그때 제가 교회로부터 받았던 생활비는 7만 원이었습니다.

82년도에 영락교회 부목사가 되었습니다. 영락교회는 그해부터 부 목사에게 자가용을 한 대씩 주었습니다. 막내였던 저는 제일 낡은 자동차를 배당 받았습니다. 7540 포니 원 이었습니다. 비가 새는 차였습니다. 그래도 얼마나 행복했었는지 모릅니다.

우리나라는 독일에 광부와 간호사들을 파송하여 외화를 벌어 들였습니다. 당시 대통령이 독일을 방문하여 고생하는 광부와 간호사들을 보고 우셨다는 이야기는 지금 들어도 가슴이 찡합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월남전에 참여하여 많은 군인들이 그곳에서 피를 흘렸습니다. 그 핏 값으로 경제 발전의 터전을 닦았습니다.

그러던 우리나라가 부자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엄청난 부자가 되었습니다. 저만해도 그렇습니다. 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45평 아파트에서 삽니다. 50인치가 넘는 최신식 LED 텔레비전을 놓고 에어컨을 틀어 놓고 겨울에 추운 줄도 모르고 여름에 더운 줄도 모르는 옛날 재벌처럼 살고 있습니다. 자동차도 두 대나 있습니다. 교회에서 준 차와 집에서 산 자동차입니다. 둘 다 다 크고 좋은 차들입니다.

예전에 이민을 갔던 분들은 집을 팔아도 가족의 비행기 값이 되지 못했었습니다. 그렇게 이민을 가서 고생을 하면 부자가 되었습니다. 집도 사고 자가용도 사고 당시 우리 한국에 살던 우리와는 다른 수준과 차원의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가끔씩 한국에 올 때 선물로 전자 계산기나 워크맨 그리고 카메라를 가지고 들어오면 정말 칙사 대접을 받고 모든 사람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입장이 바뀌었습니다. 그때 비행기표 값도 되지 않던 집들이 지금은 몇 억짜리 집이 되었습니다. 어떤 것은 몇 십억이 되기도 하였고 드물기는 하겠지만 어떤 것은 몇 백억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것을 팔아 지금 이민을 가면 그곳에서는 좀처럼 꿈꾸기 어려운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가난하고 어려운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틀림없는 사실은 우리나라가 전체적으로 부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말도 못하게 큰 부자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나라가 전체적으로 부자가 되는 통에 정말 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하던 큰 부를 쌓은 사람들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제가 월급 7만원을 받았던 78년도만해도 한 달 수입이 100만 원이 되는 사람은 큰 부자였습니다. 불과 30년이 지난 지금 한 달에 100만 원을 버는 사람은 극빈자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억대 연봉을 받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아졌으며 수 십억원의 연봉을 받는 사람들도 제법 많아졌습니다. 옛날에는 사업에 큰 성공을 하여야 겨우 얻을 수 있는 수입을 연봉으로 받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니 사업에 성공을 한 사람들이 벌게 되는 부의 단위와 규모는 이제 우리가 상상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옛날에는 억대 재산을 가지고 있었으면 부자였습니다. 지금은 몇 십억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부자 소리를 들을 겁니다. 그래도 큰 부자 소리는 듣지 못합니다. 수 백 억 수 천 억의 재산을 가진 사람들도 주위에 심심치 않게 숨어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이젠 수 조 단위의 재산을 가진 부자들도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돈이 없으면 참 힘듭니다. 가난해서 가난의 고통을 아는 사람은 쉽게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 벼개하고 누었으니 하는 식의 배부른 소리 쉽게 못합니다. 사람들이 사람답게 사는데 필요한 돈이 있습니다. 돈으로 누릴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대개 다 그와 같은 삶을 누리고 즐기기 위하여 열심히 돈을 법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려고 돈을 법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바로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돈을 법니다. 돈에대한 욕심 때문에 돈을 법니다. 자신들이 세운 돈 버는 목적을 달성해도 계속 돈을 버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나중에는 돈 버는 것에 대한 목적이 없어지고 그냥 돈 버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 버리게 되고 맙니다. 그렇게 되면 문제가 아주 심각해집니다.

다 쓰지도 못할 돈을 욕심으로 벌기하면 그것도 경쟁적으로 벌기 시작하면 드디어 자본주의의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부익부 빈익빈의 문제입니다. 올해 미국 집회를 갔다가 정신 나간 미국 부자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집에 자가용 제트 비행기가 있는 부자랍니다. 그런데 휴가를 갈 때는 자기 제트 비행기를 타지 않고 점보기를 전세 내어 간답니다. 그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가 있는데 그 애견이 작은 비행기를 타면 멀미를 하기 때문이랍니다. 

그런 정신 나간 부자들이 많아지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그와 같은 삶을 욕심내며 꿈꾸며 살아가게 되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요즘 우리들이 텔레비전에서 쉽게, 쉽게 보게 되는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의 빈국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고생을 하는 사람들이 생겨납니다. 하루 1달 미만의 돈으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것도 없어서 굶어죽어 가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이런 일이 계속되게 되면 세상이 불안해 지기 시작합니다. 지난 주 아프리카에서 사역하시는 어느 선교사님 한 분을 만나 뵈었습니다. 일부이기는 하지만 제법 많은 선교사들이 그곳에서 불안한 생활을 한다고 합니다. 집에 담을 높이 쌓고 경비원들을 고용하며 집에 들어갈 때 몇 백 미터 전에서 워키 토키로 경비원에게 연락을 하고 차가 도착하자마자 순식간에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문을 닫는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습격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정도 되면 선교사는 선교 포기하고 귀국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 그렇게 되면 선교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까지 하면서라도 선교를 한다고 그곳에 남아 그런 생활을 계속한다면 선교는 점점 더 어려운 상황으로 바뀌어 갈 것입니다.

저는 사회주의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이상적이고 낭만적으로 보이는 면이 많지만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아도 문제가 많은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입니다. 여러 설명 없이 세계의 사회주의는 70년 만에 깨끗이 실패로 끝이 났습니다. 성공해도 성공이 아닌 사회주의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흘려진 수 많은 피의 댓가를 생각하면 이게 보통 큰 실패가 아닙니다.

저는 사회주의보다는 자본주의를 더 신뢰하였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생각이 점점 바뀌고 있습니다. 자본주의도 사회주의와 마찬가지로 희망이 없습니다. 그 끝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파멸입니다. 지금 세계와 우리나라의 자본주의는 파멸의 끝을 향하여 질주하고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사회주의 문제는 모자람입니다. 사회주의 방식으로는 사람들이 꿈꾸는 건강한 이상을 이룰 수 없습니다. 평등은 좋으나 (사실은 사회주의도 평등은 이루지 못합니다. 평등의 이데올로기를 외치는 그 사람들도 다 원죄를 가지고 있는 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사회는 세계에 거의 유일하게 사회주의 국가로 남아 있는 북한입니다. 그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저들의 평등은 모두 가난하고 모두 힘들고 고생하는 삶의 수준으로의 평등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자본주의의 문제는 지나침입니다. 자본주의는 처음에는 사회주의 국가 보다 더 성공적으로 국민들의 삶의 수준을 높혀 줍니다. 그러나 끝없는 욕심 때문에 부가 점점 소수의 몇몇에게 불랙 홀처럼 빠져 들어가게 됩니다. 결국은 사회주의처럼 국민들의 대부분을 절대적이든 상대적이든 빈곤에 빠져 들게 합니다. 사회주의에서 빈곤은 차라리 견디기 쉽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에서의 빈곤은 사회주의의 빈곤보다 더 어렵습니다. 말도 안되고 필요도 없는 부를 누리는 사람들이 주위에 자꾸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애견 멀미 한다고 점보기 전세 내어 휴가가는 사람들을 보면 자신의 처지가 비참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피가 머리로 솟구치게 되면 세상을 엎어 버리고 싶은 충동이 생겨나게 됩니다.

우리는 북한을 불쌍히 여깁니다. 북한이 불쌍한 것은 두말 할 것 없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북한 못지않게 우리 남한도 불쌍합니다. 북한은 실패한 사회주의 때문에 무너져 내려가고 있고 우리 남한은 실패할 자본주의 때문에 무너져 내려가고 있습니다. 요햔계시록에 보면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책망이 나옵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계 3:17) 요즘 우리들의 모습은 마치 라오디게아 교회와 같습니다.

세상이 부자가 되는 통에, 많은 사람들의 소득이 높아지는 통에 목사인 저의 소득도 제법 높아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목사는 무조건 가난해야만 한다는 생각과 논리에 찬성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겁 없이 이야기하고 발표하다가 치도곤을 당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래도 제 생각은 아직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가난한 목사가 아닙니다. 제가 가난한 목사가 아니라고 이야기를 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제가 엄청난 부자인 줄로 아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 정도는 아닙니다. 세상 부자들이 들으면 픽 웃을 수준의 부자입니다. 2002년 도에 제가 억대 연봉을 받는다는 글을 누가 우리 교회 게시판에 올려서 온통 난리가 난 적이 있었습니다. 제 정년이 이제 앞으로 5년 정도 남았는데 아마 은퇴 할 즈음이 되면 억대 연봉에 도달할것 같아 보입니다.

저는 아버지가 유산으로 물려주신 집이 토대가 되어 형성된 어느 정도의 재산이 있습니다. 큰 욕심 없이 버려두었더니 실수와 실패를 하지 않아 제게는 과분한 재산이 되었습니다. 저는 올해로 만 60이 되었습니다. 오래 전부터 꿈꾸고 기다려 오던 60이 되었습니다. 60이 되자 또 70이 기다려 집니다. 제 나이에 대한 욕심은 70쯤이 되어야 어느 정도 찰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전 60이 좋습니다. 60은 인생은 다시 정리하고 새롭게 해야 할 중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60은 올라가는 나이가 아니라 내려오는 나이입니다. 이때 정신을 차리고 내려오지 않고 계속 올라만 가다보면 내려올 때를 놓치고 조난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많은 성공한 사람,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런 실수를 하고 삽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치명적인 실수를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아직도 적지 않은 월급을 받고 어느 정도의 기본적인 재산이 있으니 더 노력하고 힘쓴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재산을 모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별 큰 의미가 없습니다. 반대로 살려고 합니다. 재산을 정리하고 줄이려고 합니다. 요즘 아주 구체적으로 계산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지나가는 말처럼 아내와 의논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아내와 심각하게 이야기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지나가는 말처럼 말을 꺼냈는데 아내의 생각도 저와 똑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최소한 절반 정도를 줄일 작정입니다. 얼마 전까지 삼분의 일 정도를 줄일 생각과 계획을 하고 있었는데 그것도 욕심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절반을 줄이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우선 내렸습니다.

이달 초 코스타 인도차 카나다를 다녀왔습니다. 코스타를 마치고 어느 교회에서 집회를 하였습니다. 그 교회는 아이티 사역을 열심히 하는 교회였습니다. 그 교회에서 올해 65세로 은퇴하신 장로님을 만났습니다. 은퇴를 하시면서 생활도 어느 정도 정리를 하신 것 같았습니다. 큰 부자 같아 보이시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제가 잘 모르는 일이지만.... 그래도 당신 스스로의 말로 죽을 때까지 남 신세는 지지 않아도 될 만큼 하나님이 준비해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래도 좀 남게 해 주셔서 최소한 10만 불 정도는 교회가 열심인 아이티 사역에 내놓으려고 한다고 하셨습니다. 10만 불을 가지고 아이티에 자그마한 공장 하나를 세우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장로님 말씀으로는 주위에 널려있는 페트 병들을 수거하여 그것으로 플라스틱 물통과 같은 것을 만드는 공장을 해서 운영해 보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페트 병으로 물건을 만드는 공장을 세우면 주위에 널려 있는 페트병을 수거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사람들에게 돈을 벌 수 있게 해 줄 수 있고 공장을 운영하려면 사람들도 고용하게 될 터이니 성공적으로 운영만 된다면 좋은 사회적 기업을 운영해 볼 수 있을 것이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저는 그 사업이 아이티에서 가능한지 불가능한지 모릅니다. 그러나 65세 장로님이 자신의 삶을 정리하면서, 하나님이 자신에게 복으로 주신 물질을 자신만을 위하여 욕심 부리지 않고 내 놓아 아이티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주려고 하는 생각을 한다는 그 자체가 너무 좋았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에도 그런 사람들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돈이 모이고, 그런 돈으로 이런 저런 사회적기업을 만들고, 남은여생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일하고 사업하고 장사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면, 그리고 그와 같은 일과 사업에 하나님이 기름 부어 주셔서 성공하게 한다면 세상이 얼마나 좋은 세상이 될 수 있을까를 상상해 봅니다. 그렇게 되면 아이티도 살고 지금 우리 열매나눔재단이 손대려고 하는 말라위도 살 수 있게 되지 않겠습니까?

저희 재단 이사 중의 한 분이 꽤 큰 회사의 회장님이십니다. 변호사 회계사만 수 천 명이 되는 큰 회사를 만드신 분이십니다. 이분도 이제 60이 다 되어 오시는 분이십니다. 보통 세상적으로 생각하면 앞으로 최소한 10년 이상은 회사를 위하여 더 일하실 수 있고 지금까지의 성공을 바탕으로 지금보다 더 큰 회사를 만들 수도 있으실겁니다. 그러면 당연히 자신도 지금보다도 더 큰 부와 성공을 이룰 수 있으실겁니다.

이사님에게 오늘 설교와 같은 내용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결론만 말씀드리면 회장직을 후배에게 물려주셨습니다. 그리고 MYSC라는 사회적기업을 만들고 계십니다. MYSC란 Merry Year Social Consulting의 약자입니다. Merry Year는 우리 열매나눔재단의 영어 이름입니다. NGO를 컨설팅하는 회사입니다. 그것을 통하여 NGO들을 건강하게 하고 투명하게 하여 더 많은 사람들과 기업들과 나라가 안심하고 그리고 많이 그곳을 지원하게 하고 투자하게 하려는 것을 목적으로 세워지는 사회적기업입니다. 앞에 말씀을 드린 이사님과 몇몇 뜻있는 분들이 사재를 털어 지금 회사 설립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제가 그 회사의 회장이 되었습니다. 그 이사님이 대표를 맡기로 하셨습니다.

저는 밑바닥에서부터 회계사 변호사를 수 천 명 씩이나 고용하는 큰 회사를 만드신 분이 남은 여생 하나님께 올인하는 뜻으로 이 사업을 하신다면 또 큰 회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회사의 성공은 그 전 회사의 성공과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그 전 회사의 성공은 개인의 성공으로 끝이 날 수 밖에 없는 성공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의 성공은 개인의 성공과 부요함과는 아무 상관없는 것입니다.

이 회사는 사람들이 열심히 죽어라고 헌신하고 일을 하지만 그 모든 성공과 이익은 모두가 다 하나님의 것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성공한 크리스천들이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부와 건강과 명예와 경험과 지식을 총 동원하여 하나님을 위한 기업을 세우고 그것에 올인한다면 그리하여 자신이 자신을 위하여 세원 기업의 성공보다 더 큰 성공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얼마나 신날까요?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십일조를 달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다시 묵상하다가 문득 엉뚱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를 부요케 하신 하나님은 오히려 참 가난하시구나하는 엉뚱한 생각이었습니다.

참 죄송하고 마음이 슬펐습니다. 세상에는 정신없는 부자들이 많습니다. 쓸 수도 없고 쓰지도 못할 만큼의 부를 축적한 부자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는 크리스천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하나님은 가난하십니다. 저는 우리 하나님을 부자로 만들어 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시고 싶어 하시는 모든 일을 이루어 드리고, 하나님이 꿈꾸시고 욕심내시는 모든 일을 신나게 후원하고 밀어드려서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는 그런 삶을 살고 싶습니다. 전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전 그렇게 살꺼에요. 재미 있을겁니다. 신날 겁니다. 행복할 겁니다. 마음 있으신 분은 함께 붙으세요. 같이 가십시다. 

가난하신 우리 하나님을 부자로 만들어드리는 프로잭트에 남은 인생을 걸고 한번 올인해 보십시다. 아멘. (김동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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