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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바벨탑을 쌓는 사람들 (창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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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탑을 쌓는 사람들 (창 11:1-9) 


저는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실패한 후 재수를 포기한 채 상가에서 점원 노릇을 일 년 정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처음 받았던 월급은 7,000원이었습니다. 견습생이었기 때문이었지만 견습이 끝나고 몇 달 후 제가 정식으로 받은 월급도 10,000원이었습니다.

77년도 결혼을 했을 때 아내는 학교 선생이었습니다. 둘째 아이를 낳을 때까지 학교 선생 노릇을 계속했었는데 77년도 제 아내의 월급은 약 14만 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결혼 전 저희 가정의 월 수입은 5만 원 정도였습니다. 결혼 후부터 저희 집은 살림이 펴지기 시작했습니다.

나라와 국민들이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참으로 무진 애들을 썼습니다. 대표적인 운동이 새마을 운동이었습니다. 가발을 만들어 수출을 하고 월남 전에 파병을 하여 젊은이들이 피흘린 대가로 받은 달러로 나라 발전의 토대를 삼기도 하였습니다. 다행히 나라는 성장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무섭게 발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78년도 신학교를 졸업하고 전임전도사가 되어 교회에서 처음으로 받은 생활비는 7만 원이었습니다. 그해 가을 제직회에서 어느 집사님 한 분이 제 월급이 너무 적다고 발언을 하고 제직들이 동의를 하여 거의 곱절이나 생활비를 올려 주어 13만 원이 되었었습니다. 불과 일 년 전까지만 해도 저희 집 월 수입이 5만 원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두 배 반이나 경제 규모가 커진 셈이었습니다.

80년도 목사 안수를 받고 81년 말까지 청량리 중앙교회에서 시무를 하였습니다. 청량리 중앙교회를 떠날 때 제 월급은 30만 원 수준이었습니다. 82년 영락교회 부목사가 되었습니다. 영락교회 부목사의 생활비는 보통 다른 교회의 담임목사 수준이었습니다. 영락교회 부목사가 된 82년 제가 교회로부터 받은 생활비는 60만 원이 조금 안 되는 수준이었습니다. 전임전도사가 된 직후와 비교할 때 불과 5년 만에 월수입이 6배나 는 셈이었습니다.

올해로 결혼 34년 째가 되었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저는 정말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겨울에도 추운 줄 모르고 여름에도 더운 줄 모르는 넓은 집에서 자가용을 놓고 사는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2001년도에 저는 ‘깨끗한 부자’라는 책을 썼었습니다. 그 책 때문에 청부론이라는 논쟁이 붙었습니다. 그 논쟁은 지금까지도 끝이 나질 않았습니다. 저는 의보다 이를 더 중히 여겨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를 쌓으려고 하는 것을 거부하고 용기 있게 가난을 선택하는 청빈은 인정하고 존중하지만 그것이 지나쳐 가난함을 무조건 깨끗함으로 생각하고 모든 부를 다 더러움으로 생각하는 왜곡된 청빈 사상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아직도 우리 한국 사회와 교회에는 목사는 가난해야만 한다는 바탕생각이 있습니다. 저는 많은 오해와 공격을 그 때문에 받지만 그와 같은 생각에도 찬성하지 않습니다. 

저는 경제적인 안정을 누리며 여가와 여유를 어느 정도 누리며 사는 것이 잘못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비교적 남의 눈치 크게 보지 않고 그와 같은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지금의 내 생활이 너무 지나친 것은 아닌가?’하는 긴장은 하면서 삽니다. 내가 너무 내 욕심만 부리다가, 그래서 ‘다 쓰고 먹지도 못할 돈을 깔고 앉게 되는 것은 아닌가?’ 그러다가 ‘나 때문에 이 세상 어느 구석진 곳에서 최소한의 먹고 쓸 돈이 없어서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과 계산을 늘 하며 살려고 나름 긴장하고 있습니다.

저는 저의 수입과 지출을 10년 째 기록하며 살고 있습니다. 모든 지출을 다 자세하게 다 기록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수입과 지출을 기록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내 수입 중 몇 %를 내가 헌금과 구제와 선교와 봉사를 위하여 지출하고 사는가를 확인하기 위함입니다. 2010년을 보니 작년에 저는 수입의 53.31%를 제가 썼고 46.69%를 헌금과 구제와 선교와 봉사를 위하여 지출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축과 재산이 자꾸 늘어가고 있습니다. 제 자식들과 특히 저희 부부의 노후를 위하여 제가 계산하고 욕심내는 그래서 기도하는 수준의 재산이 있습니다. 그것을 넘으면 그것은 내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내 놓으려고 합니다. 작년까지 제가 계산하고 내 놓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액수는 제가 가지고 있는 재산의 30%의 규모였습니다. 최근, 아주 최근 다시 계산하고 생각하는 규모는 50%입니다. 

동안교회를 시무할 때 정주채 목사님이 시무하시는 향상교회의 집회를 다녀왔었습니다. 정 목사님은 잠실중앙교회의 담임목사셨는데 장년 출석이 2천 명을 넘자 교회 분립을 감행하고 본 교회를 후임에게 맡기고 분립된 작은 개척교회를 맡아 나가셨습니다. 그것이 2000년 10월 첫 주일 이었습니다. 2001년 1월 향상교회의 첫 부흥회 강사로 제가 초청을 받았습니다. 그때 향상교회는 약 400명 정도 출석하고 있었습니다. 참 충격적이었습니다.

당시 동안교회는 장년 주일 출석이 4천 명이 조금 안 되던 때였습니다. 3,400평이라고 하는 적지 않은 예배당을 건축하였지만 교인이 계속 늘자 그 예배당도 자꾸 좁아져서 출석교인이 5천 명을 넘어서면 다시 또 건축을 생각해야만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향상교회 집회를 다녀 온 후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5천 명이 넘으면 다시 교회를 건축하지 말고 교회를 분립해야지.’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높은 뜻 숭의교회의 개척은 그와 같은 생각과 결심의 결과로 이루어졌습니다. 춣석교인이 5천 명을 넘으면 교회 성장에 가속이 붙게 됩니다. 큰 문제가 없다면 몇 년 안에 만 명을 넘게 되고 만 명을 넘게 되면 그 이상의 성장도 크게 어렵지 않게 됩니다. 동안교회는 바로 그 시점에 다다랐을 때 스스로 그 선을 허물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가 또 다시 출석 5천 명 선이 되었을 때 그것을 허물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허물려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거의 강압적인 방법으로 허물게 하셨습니다.

보통의 경우 우리들은 그것이 돈이든, 교회든, 세상적인 성공이든 계속해서 쌓아가려고 하는 본능에 사로잡혀 계속 높이 쌓아갑니다. 그런데 그것이 옳은 일인지, 필요한 일인지, 유익한 일인지는 잘 묻지 않습니다. 그냥 높이 쌓아올리는 데만 집중합니다. 저는 그 본능이 바로 바벨탑 본능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인간들에게는 선악과를 따먹은 원죄가 있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원죄는 하나님의 자리에 자신을 놓고자하는 본능입니다. 자기 스스로가 하나님이 되려고 하는 본능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 노아의 후손들이 시날 평지에 바벨탑을 쌓은 이유도 바로 그 원죄 때문이었습니다. 4절에 보니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저들이 바벨탑을 쌓은 목적은 하나님의 심판을 대적하기 위함도 있었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자기 이름을 내기 위함이었습니다. 자기를 높이고, 자기 이름을 내고, 자기가 하나님처럼 되기 위하여 저들은 높이, 높이 탑을 쌓았습니다. 그 바벨탑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후손인 우리 인간들을 지금까지 계속해서 그 바벨탑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마음 속에는 우리의 조상이 바벨탑을 쌓을 때 가져던 생각과 마음이 그대로 있습니다.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의 이름을 내자.”

하늘만큼 높아지기 위하여, 하나님만큼 높아지기 위하여 사람들은 끝도 없이 탑을 쌓습니다. 돈의 탑을 쌓습니다. 성공의 탑을 쌓습니다. 세상에는 어마어마한 탑을 쌓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돈이 다 필요해서도 아니고 꼭 필요해서도 아닙니다. 그 성공이 꼭 필요해서도 아니고 다 필요해서도 아닙니다. 목적은 오직 하나입니다. 자기의 이름을 내기 위함입니다. 높아지기 위함입니다. 하나님만큼 높아지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만큼 높아진 사람들은 마치 하나님처럼 삽니다.

그것은 꼭 수 백 억, 수 천 억, 수 조 원의 재산을 가진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모든 덤터기를 저들에게 뒤집어씌우고 자신은 아닌 척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수 백 억, 수 천 억 원의 재산을 가지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을 가지지 못한 이유는 그것의 어리석음을 알았기 때문이 아니라 똑같은 욕심은 가지고 있지만 그만한 능력이 없어서 그런 것 뿐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수 백 억, 수 천 억 원이 되지는 않지만 자신 역시 필요 이상의 돈과 성공을 이미 가지고 남과 키재기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의 삶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다시 말하면 삶의 모든 목적이 자기 이름을 내고 높이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내고 높이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은 참 많습니다. 그러나 정말 예수 믿는 사람답게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하나님을 내기 위하여 사는 사람은 세상에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오로지 자기의 이름을 내고 높이기 위하여, 돈과 성공을 하늘에 닿을 만큼 쌓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삶의 목적이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인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자기의 이름을 높이고 자기의 이름을 내기 위하여 바벨탑을 쌓는 노아의 후손들에게 하나님은 벌을 내리셨습니다. 그것은 언어를 혼잡케 하여 서로 말이 안 통하게 하고 말이 안 통함으로 함께 살 수 없어 온 지면으로 흩어지게 하신 것입니다. 오늘 날에도 이 하나님의 심판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내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기 위하여 살지 않고, 자기가 자신의 목적이 되어 바벨탑을 쌓듯 계속 돈과 명예와 성공을 쌓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똑 같은 벌을 주십니다.

저들은 외로움의 심판을 받고 있습니다. 바벨탑 꼭대기에 사는 사람들은 외롭습니다. 말 통하는 친구들이 없습니다. 친구보다는 적이 더 많습니다. 모두가 다 자신과 경쟁하여 자신을 누르거나 아니면 누르지 못하면 자신의 성공을 시기하고 질투하며 틈만나면 음해하려고 하는 적들만 주위에 가득합니다. 친구가 없으니 일만 합니다. 그냥 바보처럼 탑만 쌓습니다. 실제로 저들의 공공의 적이 되기 일쑤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저들은 대부분 공공의 적입니다.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흡입해 자신의 탑을 쌓음으로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가난해지고 불행해지기 때문입니다.

저는 은퇴 후에 어느 정도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죽을 때까지 쓰고 살 집도 하나 있었으면 좋겠고, 자가용도 한 대 있었으면 좋겠고, 일 년에 한 두 번 가고 싶은데 여행도 갈 수 있고, 손주들에게 용돈도 줄 수 있고, 내가 좋아하는 취미 생활을 할 수 있을 만큼의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와 같은 것을 이루지 못하고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하나님이 허락해 주신다면 저는 솔직히 그와 같은 삶을 누리고 싶습니다. 특별히 예외적인 일이 생긴다면 그것도 포기하겠지만 웬만하면 그것을 지키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지금 현재 제게 주신 모든 여건과 상황과 능력들을 계산해 보니 건방진 이야기일는지 모르나 그와 같은 소원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큰 문제없을 것 같습니다. 더 정직하게 말씀드리자면 현재 제가 가지고 있는 힘은 그것을 준비하고도 퍽 많이 남을 것 같습니다. 얼마든지 더 부해질 수 있고, 얼마든지 더 높아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것은 사양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들어 눞고 싶지는 않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돈도 할 수만 있다면 계속 모으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저의 이름을 높이지 말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 드리고 싶습니다. 정말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바와 같이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고 싶습니다.

혼자만 그렇게 살지 않고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모으고 싶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모아 하나님의 군대를 만들고 싶습니다. 수 백 억, 수 천 억의 재산을 모을 수 있는 능력의 사람들이 모여 그 능력을 자신의 이름을 높이는데 사용하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 드리기 위하여 쓴다면 이 세상은 하나님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

그것은 꼭 수 백 억, 수 천 억의 성공을 이룬 사람들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그것이 비록 작고 적더라도 자신이 자신의 목적이 되지 않고 하나님이 자신의 삶의 목적이 되는 사람들이 모이게 된다면 정말 강력한 하나님의 군대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오순절 날 초대교회에 나타났던 현상을 통하여 그와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도 자기의 것을 자기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이룬 모든 성공과 쌓은 부를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하여 나누고 허물었습니다. 그러자 즉시 그 공동체는 하나님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성령 충만함을 받은 초대교회에 나타난 첫 은사는 방언의 은사였습니다. 방언의 은사는 오늘 본문과 반대되는 역사입니다. 

오늘 본문의 바벨밥에는 언어의 혼잡과 흩어짐이 나타났는데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초대교회에는 서로 말이 통하기 시작하였고 말과 함께 마음이 통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것이 방언을 통하여 이루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말이 통하자 마음이 통하게 되었습니다. 저들은 흩어지지 아니하고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저들이 모이기를 힘썼던 것은 모이는 것이 즐거웠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모이면 기쁘고 순전한 마음으로 함께 떡을 떼었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감격이 저들의 삶 속에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자신의 이름을 내기 위하여 바벨탑을 쌓는 어리석음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것은 어리석음을 벗어나 악한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 죄입니다. 그 죄는 결국 우리를 사망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해주신 물질과 건강과 재능과 경험들을 그저 경쟁하기 위하여, 남보다 높아지기 위하여 쌓으려고만 하지 말고 그것을 허물어 자신을 부인하고 허문 것으로 다시 하나님을 위하여 보다 더 크고 위대한 탑을 쌓아가는 사람들이 되시면 어떠시겠습니까? 애초부터 삶의 목적과 방향을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에 두고 살아가면 어떠시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제가 욕심내고 그리고 어느 정도 누리고 있는 삶의 여유를 아직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위에는 그와 같은 삶을 누리고도 남을 것들을 오로지 바벨탑을 쌓기 위하여 자신도 모르게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다 쓰지도 못하고 필요도 없는 것을 깔고 앉아 하나님의 나라의 경제와 정치의 흐름을 가로 막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세상과 세상 사람들이 바벨탑을 쌓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입니다. 문제는 교회와 교인들도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오로지 자신의 이름을 높이기 위하여 바벨탑을 쌓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부흥과 성장도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의 교회와 자신의 이름을 높이기 위한 바벨탑 쌓기인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하나님의 벌을 받아 교회와 세상이 불통하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세상의 지탄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무너져 내려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좋을 것이니라.”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자신의 이름을 높이기 위하여 바벨탑을 쌓지 말고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그 능력을 사용하여 이 땅에 거대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데 쓰임 받는 사람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김동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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