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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모두가 마음 들여 할 일 (느 3:2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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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마음 들여 할 일 (느 3:28-4:6)


오늘 본문은 페르시아의 아닥사스다 왕에 의해 유다의 총독으로 파견된 느헤미야의 주도로 유다 백성이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과 불타버린 성문들을 재건하는 공사를 시작하여 진행시켜가는 과정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벽 재건공사에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를 기록한 느헤미야 3장 전체는 비슷한 사실들의 지루한 반복 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읽어보면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는, 어떤 절에서는 누가 건축했는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떤 절에서는 누가 무엇을 건축했는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어떤 절에서는 누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건축했는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3:1에서는 이 세 가지를 다 볼 수 있습니다: “그 때에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그의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일어나 양문을 건축하여 성별하고 문짝을 달고 또 성벽을 건축하여 함메아 망대에서부터 하나넬 망대까지 성별하였고” 합니다. 3:2에서는 누가 건축하였는지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다음은 여리고 사람들이 건축하였고 또 그 다음은 이므리의 아들 삭굴이 건축하였으며” 합니다. 3:3에서는 누가 무엇을 건축하였는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문은 하스나아의 자손들이 건축하여 그 들보를 얹고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 합니다. 오늘 본문의 3:32에서는 누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건축했는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 모퉁이 성루에서 양문까지는 금장색과 상인들이 중수하였느니라.” 이런 몇 가지 형식의 기록이 번갈아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성벽 쌓는 일에 남녀노소, 신분이나 부족의 구별이 없이 온 백성이 참여했다는 사실입니다. 3:1을 다시 보면 “때에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그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일어나 양문을 건축하여 성별하고 문짝을 달고 또 성벽을 건축하여 ...”라고 했고, 오늘 본문 28절에서는 “마문 위로부터는 제사장들이 각각 자기 집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하였고”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3:8절에 보면 “그 다음은 금장색 할해야의 아들 웃시엘 등이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향품 장사 하나냐 등이 중수하되 ...”라고 기록되어있고, 본문 32절에 보면 “성 모퉁이 누에서 양문까지는 금장색과 상고들이 중수하였느니라.” 했습니다. 즉 대제사장 같은 고위성직자들로부터 금장색, 말하자면 세공기술자, 향품장사 등 상고들 즉 상인들까지 꼭 같이 일했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성벽은 이렇게 해서 재건된 것입니다. 

또 봅시다. 3:9에는 “그 다음은 예루살렘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자 후르의 아들 르바야가 중수하였고”라고 기록되었고, 3:17에는 “그 다음은 레위 사람 바니의 아들 르훔이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그일라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자 하사뱌가 그 지방을 대표하여 중수하였고” 라고 썼는가 하면, 29절에서는 “... 그 다음은 동문지기 스가냐의 아들 스마야가 중수하였고” 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레위 지파 사람의 아들만 아니라 최고위층 행정관의 아들도, 심지어는 고위행정관 자신도 함께 성벽을 쌓았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벽의 재건은 이렇게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남자들만 아니라 여자들도 같이 일했습니다. 3:12에 보면 “그 다음은 예루살렘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자 할로헤스의 아들 살룸과 그 딸들이 중수하였고” 라고 되어있지 않습니까? 이렇게 온 백성이 한마음으로 일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다 무너졌던 예루살렘 성이 다시 서게 된 것입니다. 

느헤미야 3장의 기록 중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그 다음은 ...”, “그 다음은 ...”, “그 다음은 ...”이라는 말이 거의 매 절마다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즉 예루살렘 성벽 전체 둘레를 쌓는데 “무엇은 누가 건축하고 그 다음 무엇은 누가 건축하고” 하는 식으로 또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는 누가 중수하고 그 다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는 누가 중수하고” 하는 식으로 성벽 쌓는 일이 진행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이 대표적으로 보여주듯이 성벽 쌓는 일에 참여한 백성들이 각각 자기 집 앞을 맡아 쌓았다는 사실은 우리가 유의할 만한 일입니다. 본문 28-32절을 다시 읽어봅니다: “마문 위로부터는 제사장들이 각각 자기 집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임멜의 아들 사독이 자기 집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동문지기 스가냐의 아들 스마야가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셀레먀의 아들 하나냐와 살랍의 여섯째 아들 하눈이 한 부분을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베레갸의 아들 므술람이 자기의 방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금장색 말기야가 함밉갓 문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하여 느디님 사람과 상인들의 집에서부터 성 모퉁이 성루에 이르렀고 성 모퉁이 성루에서 양문까지는 금장색과 상인들이 중수하였느니라.” 무엇을 말하고 잇는 것입니까? 

백성들이 각각 자기가 사는 집의 맞은편 성벽부분을 책임지고 쌓음으로써 성벽이 이 빠진 데 없이 다 연결되어 차곡차곡 올라갈 수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누가 혼자서 또는 몇몇이 도맡아서 성벽을 중수한 것이 아니라 모두가 각자 자기에게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자기의 할 몫을 성실하게 행함으로써 이루어진 것이라는 말입니다. 

본문 끝 절인 4장 6절을 봅니다: “이에 우리가 성을 건축하여 전부가 연락되고 고가 절반에 미쳤으니 이는 백성이 마음 들여 역사하였음이니라”. 이 문장은 우리에게 세 가지 사실을 확인시켜줍니다. 첫째는, “전부가 연락되고” 한 것처럼 일단 성벽둘레 전체가 중간에 끊어진데 없이 다 연결되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고가 절반에 미쳤으니” 한 대로 그때까지 쌓은 성벽의 높이가 계획하는 높이의 절반 정도까지 올라갔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이는 백성이 마음 들여 역사하였음이니라.” 한 것과 같이 그만큼 성벽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은 온 백성이 열심히 일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유다백성들이 이렇게 성을 재건하는 데에 어려움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숱한 난관과 위협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본문 4:1-3에서 보듯이 산발랏이라 하는 자와 암몬 사람 도비야라 하는 자 등 이방인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방해했습니다. 이들은 유다 민족이 제 땅을 되찾고 민족공동체를 재건하는 일에 위협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좇아다니면서 유다백성들이 하는 일을 중지시키려고 했습니다.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조롱하여 사기를 떨어뜨리거나 하고 있는 일에 회의를 갖게 만들려고도 했고, 공사현장을 습격하여 유다백성들을 살육하는 일까지 계획했습니다. 

그럴듯한 말로 느헤미야를 유인해내서 살해하려고도 했고 동족을 매수해서 그를 모함하거나 위협하기도 했으며 흑색선전으로 그를 대역죄인으로 몰려고도 했고 동족들과 이간시키려고도 했습니다. 이러한 온갖 방해와 위협 앞에서 유다백성들은 비장한 각오와 단결 속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들을 지키고 재건의 사역을 완성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뒤따르는 말씀들 속에서 우리는 유다 백성의 결연한 자기방어의 의지를 잘 엿볼 수 있습니다. 

4:16부터 몇 절을 읽어봅니다: “그 때로부터 내 종자의 절반은 역사하고 절반은 갑옷을 입고 창과 방패와 활을 가졌고 ... 성을 건축하는 자와 담부하는 자는 다 각각 한 손으로 일을 하며 한 손에는 병기를 잡았는데 건축하는 자는 각각 칼을 차고 건축하며 ... (21절로 뛰어넘어서) 우리가 이같이 역사하는데 무리의 절반은 동틀 때부터 별이 나기까지 창을 잡았었으며 그 때에 내가 또 백성에게 고하기를 사람마다 그 종자와 함께 예루살렘 안에서 잘찌니 밤에는 우리를 위하여 파수하겠고 낮에는 역사하리라 하고 내나 내 형제들이나 종자들이나 나를 좇아 파수하는 사람들이나 다 그 옷을 벗지 아니하였으며 물을 길으러 갈 때에도 기계를 잡았었느니라”. 

유다민족공동체의 새 성벽을 세우고 지키기 위하여 한 손에는 일 한 손에는 무기, 낮에는 성을 쌓고 밤에는 파수하는 일에 있어 너나가 없었으며, 최고지도자로부터 그 종자에 이르기까지 옷을 벗고 편안히 누워 잠을 잔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물을 길으러 갈 때에도 무기를 들고 다녔다는 것입니다. 

끝으로 백성의 영도자로서의 느헤미야의 청렴성과 솔선수범하는 헌신도 예루살렘 재건에 큰 힘이 되었을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5:14-16의 말씀은 이를 잘 보여줍니다: “내가 유다 땅 총독으로 세움을 받은 때 곧 아닥사스다왕 이십년부터 삼십이년까지 십이년 동안은 나와 내 형제가 총독의 녹을 먹지 아니하였느니라. 이전 총독들은 백성에게 토색하여 양식과 포도주와 또 은 사십 세겔을 취하였고 그 종자들도 백성을 압제하였으나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이같이 행치 아니하고 도리어 이 성 역사에 힘을 다하며 땅을 사지 아니하였고 나의 모든 종자도 모여서 역사를 하였으며” 합니다. 

오늘 본문이 전하는 유다 민족의 역사이야기는 오늘날의 우리 자신과 이 나라를 위하여 예비된 소중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2018년 동계올림픽이 대한민국 평창에서 열리게 되었습니다. 1988년 하계올림픽과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에 이어 다시 한 번 국격을 높이고 국가발전을 기할 절호의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 이 국제 체전이 성공적으로 치러지도록 온 국민이 마음을 모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국내의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등 각 분야에서는 국민 사이에 이념적 양극화와 대립이 극복되지 않고 있습니다. 소통의 부재와 합리적이고 건전한 대안 없는 상호비방만 난무하고 있습니다. 

내년은 또 총선과 대선이 둘 다 있는 해입니다. 이 두 선거를 앞두고 여야 간에 비방전은 치열해질 것입니다. 일단 이기고 보기 위해 무책임한 행태로 국민의 마음을 갈라놓을 것입니다. 그래서 금년은 매우 중요한 해입니다. 이런 때 교회가 국민화합의 매체가 되고 국가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예언자적 사명을 수행해야 할 터인데 지금 교회는 국민들로부터 오히려 불신과 외면과 질타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교회의 위기는 곧 국가적 위기라는 의식이 필요합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그렇습니다. 그러기에 금년 8.15 구국기도회는 남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다 같이 힘껏 나라를 위한 기도의 손길을 모아야 하겠습니다. 8.15는 나라를 잃었던 우리 민족에게 광복을 준 기쁨의 사건이지만 동시에 민족이 두 상반된 이념과 두 상이한 체제로 갈라져야 했던 새로운 슬픔의 사건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잊을 수도 없고 잊어서도 안 되는 북녘의 동포들을 생각하며 또한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남북의 동포들이 평화공존과 자유민주국가로의 통일을 이루어가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함께 모여 기도해야 합니다. 

유다 백성이 느헤미야와 함께 예루살렘 성벽을 중수한 일은 새 성전 건축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안고 있는 우리 새문안교회를 위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사십여 년 만에 새 성전 건축이라는 큰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일을 위해서도 느헤미야와 더불어 유다 백성이 예루살렘 성벽을 중수하던 그 마음, 그 정신, 그 헌신, 그 용기, 그 수고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모두가 마음을 들여 헌신적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모두가 자기 앞에 있는 자기 몫의 부분을 감당해주어야 합니다. 누군가가 좀 크게 해주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 아닙니다. 

아무개는 낼만한 사람이 안 낸다고 속으로 불평하거나 비난할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말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면 예루살렘 성벽이 올라가듯이 우리의 새 성전도 올라갈 것입니다. 그 다음은 내가, 그 다음은 네가, 그 다음은 누가 하는 식으로 중간에 이 빠진 데 없이 온 교우가 손에 손을 잡고 함께 건축해야 합니다. 남의 일 구경하듯이 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제직으로 시무하는 데는 은퇴가 있어도 건축헌금 바치는 데는 은퇴가 없습니다. 예루살렘 성벽 재건하는 데 신분과 지위의 차별 없이 모두 참여했듯이 우리 새문안교인이라면 그 누구도 빠짐없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참여해야 합니다. 헌금의 액수가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의 형편을 다 아십니다. 할 수 있는 만큼 힘껏 마음 바쳐 하면 됩니다. 그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아무 때나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 이 성전건축의 기회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은 두고두고 부끄럽게 될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벽 재건공사를 비웃고 방해한 자들로 영원히 역사에 기록된 호론 사람 산발랏과 암몬 사람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 같이 새문안교회의 역사에 기억될 사람이 한 사람도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새 성전 건축은 모두가 마음 들여 할 일입니다. 시작이 절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식 설계계약이 지난 주 금요일에 이루어졌습니다. 새문안교회 새 성전 건축은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미 절반은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제 남은 절반을 완성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가 마음 들여 참여하는 이 일에 큰 은혜를 베푸시기를 기원합니다. (이수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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