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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굴러 온 보리 떡 (삿 7: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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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러 온 보리 떡 (삿 7:13-23) 
 
 
사람들은 역사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인물들을 영웅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위대한 인물도 따지고 보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는 연약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는 출애굽의 영도자 모세도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마른 막대기에 불과하다고 고백을 하였습니다(출 4:1-2). 블레셋의 용장 골리앗을 쓰러뜨린 다윗도 이새의 양을 먹이는 목동소년이었습니다(삼상 17:34). 삼백 명의 의용군을 데리고 미디안의 대군을 단숨에 섬멸시킨 기드온도 스스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고 하였습니다(삿 6:15). 본문 말씀 13절에는 그를 가리켜 미디안 진영으로 굴러 들어온 한 덩이의 보리떡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이 말씀이 신비로운 기독교 복음의 진리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1. 기드온과 삼백 명

기드온이 미디안 전쟁에 나갈 의용군을 모집할 때 삼만 명이 넘는 무리가 모여왔습니다. 그중에서 두 번이나 추려내고 겨우 삼백 명이 남았습니다. 그들은 수적으로 보나 군사적 역량으로 보나 미디안 군대와는 적수가 될 수 없는 세력입니다.

1) 무가치한 인간실존

떡은 사람이 먹는 양식을 뜻합니다. 그렇지만 그 종류는 다양합니다. 쓰여지는 재료와 만드는 방법과 먹는 대상에 따라서 이름도 다르고 가치도 다르게 분류됩니다. 보리떡은 쌀이나 밀가루같은 고급 재료가 아닌 가장 가치 없는 재료로 만들어진 떡을 의미합니다. 배고픈 사람이 요기를 하기 위한 식물이거나 일반적으로는 짐승의 사료로 쓰이는 정도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벳새다 광야에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이 넘는 군중을 배불리 먹였다고 했는데 이것 역시 가장 가치 없는 재료를 뜻합니다(요 6:9). 성경은 범죄한 인간의 실존을 무가치한 존재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본래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존귀한 신분이었지만 죄가 들어온 후에는 가장 추악하고 더러운 것으로 전락해버렸습니다.

2) 미디안과 맞서는 기드온의 군대

굴러 온 보리떡은 기드온과 그를 따르는 삼백 명 군대를 비유한 것입니다. 본문 말씀 13절에 “기드온이 그 곳에 이른즉 어떤 사람이 그의 친구에게 꿈을 말하여 이르기를 보라 내가 한 꿈을 꾸었는데 꿈에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영으로 굴러 들어와 한 장막에 이르러 그것을 쳐서 무너뜨려 위쪽으로 엎으니 장막이 쓰러지더라.”고 했습니다. 14절에 “그의 친구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의 칼이라 하나님이 미디안과 그 모든 진영을 그의 손에 넘겨주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미디안 진영에서 주고받는 병사들의 이야기는 그대로 적중하였습니다. 골짜기의 메뚜기 떼와 해변의 모래처럼 많은 미디안 군사에 비하여 기드온의 삼백 명은 보리떡 한 덩이에 불가했습니다.

3) 세상과 교회(예수 그리스도)

사람들은 불가능한 일을 하게 되면 ‘달걀로 바위 치기’라는 말을 합니다. 비교가 안 되는 상대와 싸우는 경우를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블레셋 전투에서 다윗의 형들과 사울 왕은 승산 없는 싸움이라고 말렸지만, 결국 소년 다윗의 물맷돌 한방에 백전노장 골리앗은 맥없이 쓰러지고 말았습니다(삼상 17:49).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이 매우 작은 겨자씨만큼만 있어도 거대한 산을 옮길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마 17:20). 그것은 기독교 복음이 지니는 신비로운 능력입니다. 세상의 권력과 불신앙적 이교문화는 태산처럼 커 보였으나 결국 그리스도 복음의 능력 앞에 정복당하고 말았습니다(단 2:34-35, 롬 1:16).

2. 하나님께서 쓰시는 도구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들어 쓰시는 일꾼을 그릇으로 표현하였습니다(딤후 2:20). 고린도후서 4:7에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1) 선택된 도구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목적을 위하여 사람을 부르실 때는 그 사람의 조건이나 자격을 따지지 않습니다.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받은 것이나 주님의 사역에 참여하는 일꾼이 된 것도 전적으로 주권자 하나님의 의지에 따라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자기는 므낫세 지파 중에서 극히 약하고 자기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말하는 기드온을 불러서 이스라엘을 구하게 하였습니다(삿 6:15). 미디안 전쟁에 나간 기드온의 삼백 명 군사들도 훈련된 병사가 아닙니다. 처음 기드온을 따라 나온 무리들 가운데 “누구든지 두려워하는 자는 돌아가라.”고 하여 이만이천 명이 돌아갔습니다. 그 뒤에 또 일만 명을 돌려보내고 겨우 삼백 명이 남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선택받은 사람입니다. 선택받은 것 자체가 은혜입니다.

2)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도구입니다.

고린도전서 1:27-28에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약한 것을 붙들고 강하게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심오한 지혜를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시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하신다고 하였습니다(사 42:3). 모세를 부르실 때도 그의 손에 들린 지팡이를 가지고 온갖 능력을 행사하게 하였습니다(출 4:1-5). 모세처럼 자기의 무능과 부족함을 인식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붙드시고 크게 사용하십니다(눅 5:8-10).

3)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입니다.

하나님께서 미련한 자, 약한 자, 천한 자를 존귀하게 들어 쓰시는 이유를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고전 1:29). 사도 바울처럼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어떤 경우도 자기를 내세우거나 교만하지 않습니다. 오직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만 돌리게 됩니다. 바울은 스스로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라고 하였고(고전 15:8), “죄인 중에 괴수”라고 하였습니다(딤전 1:15). 그렇지만 그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높였습니다(빌 4:13). 기드온의 군사들도 미디안을 무너뜨릴 때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고 하며 구호를 외쳤습니다(삿 7:18).

3. 승리적 삶의 비결

기드온의 군대는 각자 손에 나팔을 잡고 빈 항아리를 들고 그 안에 횃불을 감추고 싸움터로 나갔습니다. 그들이 밤중에 나팔소리와 함께 항아리를 깨뜨리고 횃불을 치켜들었을 때 미디안 진영은 무너졌습니다. 이와 같은 승리의 비결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믿고 따른 것입니다.

1) 나팔을 불었습니다.

20절에 “세 대가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부수고 왼손에 횃불을 들고 오른손에 나팔을 들어 불며 외쳐 이르되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다.”라고 외쳤습니다. 22절에 “삼백 명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와께서 그 온 진영에서 친구끼리 칼로 치게 하시므로 적군이 도망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나팔 소리를 하나님의 말씀 또는 복음으로 비유합니다.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하나님의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질 때 무덤에서 잠자던 자들이 일어난다고 하였습니다(살전 4:16). 이것은 살려 내는 생명의 나팔입니다. 여기 기드온의 군대처럼 군사를 움직이게 하는 파수군의 나팔도 있습니다(겔 33:7). 파수꾼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그대로 전해야 되고 백성은 그 말씀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만 하는 것입니다. 성도가 세상에서 대적 마귀를 꺾는 것이나 죽음을 이기고 승리하는 비결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2) 항아리를 깨뜨렸습니다.

성경에는 사람의 육체를 항아리에 비유하였습니다(고후 4:7). 본래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흙으로 육체를 만드셨기 때문입니다(창 2:7). 여기 기드온의 군사가 나팔소리에 맞춰 다같이 항아리를 깨뜨리게 한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싸움을 싸우는 신령한 전투에는 인간의 육체나 완력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 싸움은 혈과 육으로 하는 싸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엡 6:12). 혈기나 정욕이나 육체의 요소들은 신령한 싸움을 싸우는 사람들의 발목을 잡고 영적인 힘을 빠지게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50에 “혈과 육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나팔소리에 항아리가 깨어지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육신의 소욕을 깨뜨리는 것이 승리의 비결입니다(갈 5:24).

3) 횃불을 들어 올렸습니다.

나팔 소리와 함께 삼백 명이 동시에 횃불을 치켜들었을 때 미디안 진영은 삽시간에 무너져 버렸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의 태양이요, 빛의 근원이라고 하였습니다(말 4:2, 요 1:5). 한편 죄와 마귀와 죽음의 세력을 어둠으로 표현하였습니다(엡 6:12). 빛은 어둠을 추방합니다. 혈과 육을 의지하는 어둠의 세력들은 그리스도의 밝은 빛 앞에서 무너지고 맙니다. 밤중 같은 세상에서 어둠의 세력들이 잠시 동안 힘을 얻고 권세를 발휘하곤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좋아합니다(요 3:19). 그렇지만 성도들은 빛된 삶으로 승부를 걸어야 됩니다. 빌립보서 2:15에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라.”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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