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히 12:25-29)

첨부 1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히 12:25-29)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것은 그리스도의 나라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리스도의 나라가 견고하게 세워지기 전에 먼저 유대교 안에 있는 여러 것들이 없어져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이방인들이 영적 이스라엘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강력한 진동(震動, 물체가 몹시 울리고 흔들림)이 있어야 했습니다. 

마침내 이 땅에 메시야의 출현은 유대교 전체를 와해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함께 성전 휘장을 하나님께서 찢으신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속죄의 종결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40년 후에 성전 자체도 완전히 훼파해 버리셨습니다. 
학개 2장 6절에 『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라고 했습니다. 
학개의 이 말은 우리가 보는 별들이 있는 그 하늘 우주세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인 율법 아래 있는 유대의 법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늘이라고 하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들을 형식적으로 흉내 내었기 때문입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나라를 대적하는 당시 로마 제국과 같은 모든 세력과 보좌와 권세들을 진동시켜 폐하실 것입니다. 

Ⅰ. 하나님의 소리는 땅을 진동시켰습니다. 

본문 12장 26절에 『 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라고 했습니다. 
여기 『 그 때에는 』 과거 시내산 사건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 내용이 히브리서 12장 18-21절에 『 너희의 이른 곳은 만질만한 불 붙는 산과 흑운과 흑암과 폭풍과 나팔 소리와 말하는 소리가 아니라 그 소리를 듣는 자들은 더 말씀하지 아니하시기를 구하였으니 이는 짐승이라도 산에 이르거든 돌로 침을 당하리라 하신 명을 저희가 견디지 못함이라 그 보이는 바가 이렇듯이 무섭기로 모세도 이르되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 하였으나 』라고 한 말씀입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현현하실 때 땅이 진동했습니다. 
출애굽기 19장 18절에 『 시내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점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라고 했습니다. 
사사기 5장 4-5절에 『 여호와여 주께서 세일에서부터 나오시고 에돔 들에서부터 진행하실 때에 땅이 진동하고 하늘도 새어서 구름이 물을 내렸나이다 산들이 여호와 앞에서 진동하니 저 시내산도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진동하였도다 라고 했습니다. 
시편 68편 8절에 『 땅이 진동하며 하늘이 하나님 앞에서 떨어지며 저 시내산도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서 진동하였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이 같은 위엄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Ⅱ. 하나님은 약속하신 대로 하늘을 진동시 킨다고 했습니다. 

본문 12장 26-27절에 『 …이제는 약속하여 가라사대 내가 또 한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이 또 한번이라 하심은 진동치 아니하는 것을 영존케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든 것들의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니라 』고 했습니다. 
여기 『 이제는 약속하여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뉜 데 에펭겔타이"( )로서 개역성경에는 "데"( , 그러나)가 생략되어 있습니다. 

"데"는 시내산 사건에서 나타난 땅의 진동보다 더 큰 진동이 있을 것임을 암시합니다. 한편 『 약속하여 』는 하나님께서 약속의 형식으로 말씀하신 실체들을 그리스도인들이 소유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약속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현재까지 그 약속이 지속되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비록 과거에 약속하셨다 할지라도 약속을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약속은 반드시 실현된다는 것입니다.
『 가라사대 내가 또 한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 이 말씀은 학개 2장 6절의 인용으로 앞서 과거의 일어난 사실인 시내산 사건과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과거의 시내산 사건은 땅만 진동시켰으나 장차에는 하늘과 땅을 모두 진동시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땅"과 "하늘"은 시내산에서의 계시와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새 언약에 대한 상징입니다. 진동은 미래에 벌어질 세상의 변형, 또는 궁극적인 파멸을 가리키는 것으로 우주적 대변혁을 말합니다. 하늘로부터의 경고를 무시한 자들은 땅으로부터의 경고를 무시한 자와 마찬가지로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새 언약의 계시를 거부한 자들은 최후의 파멸의 날에 하나님이 친히 시내산에서 주어진 계시를 무시한 자들과 마찬가지로 심판 하신다는 것입니다. 
복음이 온 우주에 전파되었을 때 마지막 진동이 필연적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4장 7절에 『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고 했습니다. 

요한도 마지막 때라고 했습니다(요일 2:18). 『 이제는 』(26절) 이 말은 조금 있으면 이라는 말입니다. 『 이 또 한 번이라 하심은 』 앞절의 "땅"과 "하늘"의 대비와는 달리 "진동치 아니할 것" 과 "진동할 것"을 대비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시내산의 현현을 통해 땅을 진동하고도 다시 한 번 미래에 하늘과 땅을 진동하시는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① 『 진동치 아니하는 것을 영존케 하기위하여 』라는 말씀에서 『 영존케 』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지속적이고도 변함이 없는 속성이나 새 하늘과 새 땅과 같은 실체, 혹은 하나님과 연관된 의인들을 가리킬 때 사용되었습니다(사 66:22). 

여기 "영존"은 하나님과 그의 나라의 불변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시간적인 지속성이 아니라 남아 있는 실체의 질적인 불변성을 말합니다. 새 언약에 신실한 자들은 미래에 영원히 진동하지 않을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할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구원을 즐길 것이며 심판하시는 이인 하나님의 불변성을 공유하게 될 것입니다. 
② 『 진동할 것들 곧 만든 것들의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니라 』,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최후의 날에 심판하시는 또 하나의 이유는 변동될 것, 즉 창조물을 제거하기 위함입니다. "진동할 것"과 동일시되고 있는 "만든 것들"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권한에 종속되어 있으며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동할 것"과 "진동치 아니하는 것"의 차이를 "창조물"과 "창조되지 않은 것"으로 보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장차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는 모든 것들은 진동할 것이며 필연적으로 제거될 것입니다. 

그들은 새 언약의 축복을(22-24절) 빼앗길 뿐만 아니라 저주와 심판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25절). 옛 언약을 거부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심판을 면치 못했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옛 언약보다 월등한 새 언약의 메시지를 고의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율법을 거부할 때보다 더 엄중한 심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12장 10절에 『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으려니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 』고 했습니다. 

Ⅲ. 우리는 진동치 못할 그리스도의 나라를 받았습니다. 

본문 12장 28절에 『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라고 했습니다. 
모리스(morris)는 말하기를 "진동치 못할 나라는 최종적인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는 실체로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진동"(에살류센, )은 땅을 흔들었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진동치 못할"이라는 말 에살류톤( )은 "흔들리지 않는"이라는 뜻입니다. 

진동치 못할 나라는 곧 그리스도의 나라입니다. 그리스도는 곧 그 나라입니다. 
누가복음 17장 21절에 『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고 했습니다. 
여기서 『 너희 안에 』란 말은 심령천국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곧 바리새인들 가운데(within you가 아니라 among you) 있는 예수 자신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 나라라고 했습니다(눅 22:30; 요 18:36).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겼다고 했습니다(눅 22:29).
그리스도의 나라(엡 5:5)라고 했습니다. 사랑의 아들의 나라(골 1:13)라고 했습니다. 주의 나라(히 1:8)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벧후 1:11)라고 했습니다. 

십자가에서 한편 강도는 "내 주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라고 했습니다(눅 23:42). 마태복음 6장 33절에 『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요동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나라를 받았기 때문에 그 나라를 세우는 사명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나라는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시는 나라입니다. 
에덴동산에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옵소서"라는 기도가 필요 없었습니다. 그러나 에덴동산에 죄가 들어옴으로 사단의 나라(마 12:26)가 세상에 세워진 것입니다. 

따라서 에덴동산에서부터 인간이 타락하기 전에 이미 이 기도는 필요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원시 아담보다는 더 나은 아담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나라, 곧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우리의 구주로 오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3장 15절에 『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 라고 했습니다. 

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창 3:21), ②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보다 그를 깊이 사랑하여 위하여 채색 옷을 지었더니(창 37:3), ③ 시온이여 깰찌어다 깰찌어다 네 힘을 입을찌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찌어다 이제부터 할례 받지 않은 자와 부정한 자가 다시는 네게로 들어옴이 없을 것임이니라(사 52:1), ④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사 61:10), ⑤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섰는지라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슥 3:3-4), ⑥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4), ⑦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갈 3:27 ), ⑧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4), 

타락 이후에 이 세상은 두 나라가 세워진 것입니다. 곧 세상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메시야이시며 우리의 왕이시라는 메시지를 선지자를 통해서 분명하게 계시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육신적 자손들은 이 사실을 모르고 오해했습니다. 메시야 나라의 참된 본질에 관하여 유대인들은 치명적인 실수를 범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영적으로 궁핍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불신앙적이고 근본적인 주요 원인은 메시야의 나라가 잠정적(暫定的 우선 임시로 정하는 조치) 인 세상 나라와 똑 같다는 그릇된 관념을 가지는 데 있었습니다.

이와 병행해서 기독교가 부패하는 가장 중요한 원천은 로마와 그 백성들이 그리스도의 영적인 나라를 세상적인 나라로 바꾸려는 시도였습니다. 교회와 국가를 일치시켜 세상적인 가치관과 방식으로 그 세력을 확장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나라는 영적인 방편을 통해서, 영적인 사람들을 위하여, 영적인 사람들에 의해서, 영적인 목적을 향하여 나아가는, 영적인 나라라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는 세상 나라를 정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이 세상 나라에 전파하는 것입니다. 

나폴레옹이나 시이저나 샬만대제가 한 것같이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메시야를 거부했다고 해서 그 나라를 세우는 일이 연기 되거나 지연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 나라를 그들에게서 빼앗아 이방인들에게 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1장 42-43절에 『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나라는 이 세상 나라와 전혀 다른 본질과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8장 36절에 『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한 나라를 받았은즉 』이라는 말은 첫째, 그리스도의 통치 영역에 들어감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둘째, 우리가 그리스도의 통치 영역에 들어감을 우리 스스로가 기꺼이 허락했다는 말입니다. 셋째,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활에 참여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넷째,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다섯째, 우리는 우리의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아 영생인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여섯째,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신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일곱째, 우리는 원시 아담보다 한 단계 높은 지위(더 나은)를 얻었다는 것입니다. 
여덟째,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은 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행하신 절대 주권적인 은혜라는 말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 12절에 『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고 했습니다. 
야고보서 2장 5절에 『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 』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25장 34절에 『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고 했습니다. 

이 세상 나라들은 요동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에는 하나님이 진동(심판)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진동치 못할 나라, 곧 진동치 아니하는 나라를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이 나라입니다. 우리는 결코 진동하거나 어떤 새로운 세대에 양도될 나라를 받지 아니했습니다. 우리가 받은 나라는 자손만대에 영원한 나라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고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선언적 유언을 했습니다(수 24:15).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은 자들은 복음을 듣고도 망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복음을 영화롭게(시 50:23; 66:2; 사 24:15)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는 복 받은 자들입니다(행 13:48).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