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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창조섭리의 노동과 안식 (창 3: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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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섭리의 노동과 안식 (창 3:15-21)


지금부터는 계절적으로 휴가철이 됩니다. 온 세계가 똑같습니다. 많은 사람이 집을 떠나서 안식을 찾고, 자연을 찾아다니게 되는 계절인데 우리 대한민국도 이제는 휴가철 문화가 선진국화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7, 8월에 집을 비우고 길을 떠나는 수없이 많은 여행객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이때가 되면 괜히 어디라도 가야지 안가면 좀이 쑤십니다. 하다못해 ‘방글라데시’라도 가야 된다고 합니다. 방에서 굴러다니는 게 ‘방글라데시’라고 합니다. 

과학문명이 오늘날과 같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 살던 사람들은 ‘앞으로 과학세상이 오게 되면 인간은 노동력이 아주 절대적으로 감소되고 편안히 살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희망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방법이 달라졌을 뿐 지금 이 시대 사람들은 옛날보다 더 많은 일을 해야 합니다. 옛날에는 스트레스라는 말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일이 많아서 스트레스가 병의 원인이 되고 있는 문화권에서 살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걸어 다니면서도 할 일을 다 했는데 오늘날에는 그렇게 정리가 잘 된 길을 그렇게 빠른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데도 날마다 입에 붙은 소리가 “시간이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런 생활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어머니 한 사람이 열 명의 자녀도 길렀는데 지금은 두 명도 쩔쩔 맵니다. 방법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힘들고 땀이 흐르는 것은 옛날보다도 훨씬 더하고 정신적 고통은 옛날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에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하나님의 방향 제시가 아예 창세기에 나왔습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여기서 “종신토록”이라고 했으니까 “늙어서 죽는 시간까지 네 곁에서 수고가 떠나지 아니하겠다.” 라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수고라는 말은 “힘이 소멸하다. 지치다.”라는 뜻으로 “너는 죽을 때까지 지쳐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이런 창세기의 약속이 나왔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해 주셨으니 인간은 이 길을 누구나 피할 수 없이 지치고 수고해야만 되는 그런 삶을 어쩔 수 없이 살아갑니다. 

이러한 말씀에 기초해서 인생을 한번 평가한다면 ‘내가 왜 사는가?’ 일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이 가장 정확한 인생철학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세상에 보내신 뜻은 반드시 내가 해야만 될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일을 하기 위해서 나는 존재한다고 우리가 봐야 합니다. 그런데 이때부터 인간의 일은 저주 개념이 아니라 축복 개념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이 가장 살맛나는 때가 언제입니까? 세상이 나를 필요로 할 때입니다. 필요 없다고 버리는 날, 사실상 내 인생의 살맛나는 인생은 끝났습니다. 

에덴동산에서는 저주 같은 개념으로 일이 주어졌지만 하나님은 그때부터 인간의 이 노동의 개념을 바꾸어서 일에서 인간 기쁨과 행복이 주어지도록 일을 축복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일이 너무 바쁠 때는 쉬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누구나 합니다. 그러나 한 달만 쉬어보십시오. 일이 그리워 못 견딥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나를 기다리는 일이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행복입니다. 그래서 종신토록 일하라는 것은 종신토록 행복 하라는 것입니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 역사에나 나라가 망할 때 일 안하는 똑같은 현상이 있습니다. 국민들이 일하기 싫어하는 것입니다. 

제가 아르헨티나를 갔을 때 문화부 장관도 만났고 그 나라의 최고 영적 지도자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아르헨티나가 세계 6대 강국이었다고 합니다. 우리도 학교에서 그렇게 배웠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금은 저 모양이 되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국민들이 일을 싫어하면서부터 나라가 망했다고 합니다. 이제는 되돌이킬 수 없는 나라가 되어 버렸다고 한탄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이만큼 된 것이 노동력으로 된 것이지 자원혜택으로 된 것이 절대 아닙니다. 일 하는 민족은 영원하고 일 있는 사람은 행복하고 할 수만 있으면 종신토록 일해야 행복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삶의 철학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아버지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성경의 기록대로 보면 “예수님은 하도 바빠서 식사할 겨를도 없는지라.” 그렇게 일을 많이 하신 것을 보게 됩니다. 십계명 가운데도 “엿새 동안 힘써 네 모든 일을 하고”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왜 사는가? 일을 하기 위해서다.” 

그러면 어떻게 일을 해야 하는가? 이 창세기가 보여주는 성격이 있습니다. 하나는 창조성입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창조적 성격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일을 했을 때 그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나에게도 유익하고 이웃에게도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해쳐나가서 기름진 옥토를 가꾸어 싱그러운 곡식과 열매를 창출해내는 창조적인 일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은 열심히 했는데 창조적 아닌 일들이 세상에 얼마든지 있습니다. 여러분이 한번 TV 뉴스 시간에 보십시오. 

사고를 치는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절도라든가 강도라든가 사기꾼 같은 종류의 사람을 볼 때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을 실제적으로 생각해 보십시오. ‘저 사람들은 얼마나 그 일이 힘든 일인데…….’ 남의 생명을 위협하고 돈을 뺏는 일이 자기 생명을 내놓고 해야 되는 일 아닙니까? 보통 담력 가지고는 안 됩니다. 아주 독한 마음의 결단이 있어야만 강도짓을 하는 것입니다. 한 순간에 자기 생명을 잃어버리게 될지도 모르는 일에 자기를 투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어려운 일을 그렇게 어렵게 했지만 그 사람을 일 잘했다고 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두 악한 일을 했다고 합니다. 남의 집에 들어가서 그렇게 깊이 감추어둔 보물을 찾아내는 일이 얼마나 힘이 듭니까? 기가 막히게 눈을 돌려야 되고 그게 얼마나 가슴이 뛰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어려운 일을 했지만 그 도둑놈을 보고 누가 용감한 시민이라고 합니까? 도박하는 사람들 보십시오. 밤을 꼬박 새웁니다. 철야합니다. 밥도 안 먹습니다. 

머리 회전을 얼마나 빨리빨리 돌려야 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일을 했는데도 사회악이라고 취급합니다. 창조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각설이 출신이 목사가 되어서 책을 냈습니다. 경험한 것이 많을 거 아닙니까? 나는 그 책을 재미있게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봤습니다. 이 각설이 밥 얻어먹는 것이 쉬울 거 같지만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고 합니다. 보통 힘들고 고난스러운 일이 아니라고 그 고난스러운 일을 모두 썼습니다. 

365일 굶지 않기 위해서 머리를 써야 하는데 이 각설이들도 자기의 영역이 있다고 합니다. 자기 관할 구역에 다른 놈이 들어오면 “왜 여기 들어왔느냐?” 전쟁을 해야 한답니다. 밥 줄만한 집의 식사시간을 잘 기억해야 되고 거절하지 않고 언제나 주는 집과 10번 가도 안 주는 집을 구분해야 되고 모든 가정의 가정주부나 가정부의 성격을 파악해야 되고 사나운 개가 있는지 없는지 잘 기억해야 되고 실적이 좋아야 우두머리한테 얻어맞지 않고 최소한의 각설이타령 한 곡조는 멋지게 부를 줄 알아야 하고 얼마나 각설이가 힘이 드는지 거기 보니까 보통 힘든 게 아니더라고요. 그런데도 각설이를 잘했다고 박수치는 사람 없습니다. 

“왜 젊은 사람이 그러고 있느냐?” 이러기도 하고……. 두목이 어느 날 병이 들어서 죽으면서 유산을 물려주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동지들이여! 그동안 수고 많이 했다. 내가 이것을 유산으로 물려주노니 이것만 잘 가지고 있으면 최소한 굶어죽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무엇을 물려주나 했더니 낡은 공책 하나를 주었는데 거기 보니까 온 동네 집 제삿날과 생일날이 적혀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창조와 구원입니다. 나의 일을 통해서 되어지는 일이 하나님의 창조성과 구원성에 도움이 될 때 우리는 일하는 기쁨과 행복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오늘 말씀에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때부터 인간의 노동은 축복이 되었습니다. 우리 사람의 몸에서 땀이 밖으로 나온다는 것은 건강에 절대적 유익이 된다는 과학적 상식 때문에 사우나 문화가 발달한 것입니다. 요즘은 아예 불가마로 변했습니다. 노폐물이 터져 소멸되는 것은 큰 병을 미리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땀을 흘릴수록 좋다.” 그래서 하나님이 인간의 건강을 위해서 땀이 흐르도록 축복하신 것이 일입니다. 여러분! 눈물 흘리면 뇌 세포가 건강해진다고 의학 잡지에 판명되었습니다. 콧물이 터져 나오는 것은 병이 해결되고 있다는 사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콩나물 국 먹고 땀 흘리면 낫는 병도 많지 않습니까? 내가 보니까 날마다 아프다고 골골 하는 사람치고 일찍 죽는 사람을 못 봤습니다. 왜 그런가 했더니 작은 아픔을 통해서 큰 아픔이 없어진다고 합니다. 얼굴에 땀이 흐르도록 노동을 하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건강 법칙으로서 그때부터 축복이 되어서 땀 흘리고 엉겅퀴 가시덤불을 해쳐나가는 하나님의 일의 축복을 우리가 받은 것입니다. 땀 흘리고 땀 안 흘리는 일이 있습니다. 미국에도 복권 게임을 많이 합니다. 

돈 1불만 잘 투자하면 땀 흘리지 않는 불로소득이 평생을 써도 못다 쓸 만큼 벼락치기 부자로 수백만 달러, 수천만 달러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되어 버립니다.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주변에 많이 생깁니다. 우리나라에도 복권을 팔지 않습니까? 그런데 미국에서는 이 복권에 당첨된 사람 뒷조사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제도가 과연 유익한 것이냐? 망할 것인가? 망한 것이라면 하지 말아야지 왜 복권판매를 하는가?” 이것을 조사하기 위해서 복권 당첨된 사람들을 다 뒷조사를 해서 발표합니다. 복권 당첨이 될 경우는 수천만 달러를 한꺼번에 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복권 당첨된 사람들에게 기자들이 물었다고 합니다. “당신이 이 소식이 결정되는 순간 이제 당신은 벼락부자가 되었지 않습니까? 그렇게 결정이 되었을 때 당신이 제일 먼저 생각한 것이 무엇입니까?” “이혼입니다.” 통계가 그렇게 나왔습니다. “이 돈만 있으면 내가 더 좋은 사람 만나서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의 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게 아주 정직한 대답이었습니다. 공개된 사람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1989년에 700만 달러 복권 당첨된 앨버트 테시는 본부인과 이혼하고 그 많던 돈이 3년 만에 완전히 파산되었습니다. 

그리고 본부인이 12세, 13세 된 두 자녀 양육비를 안 보냈기 때문에 18개월 고소를 당해서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돈은 하나도 없어지고 그렇게 되었습니다. 땀 흘리며 땀 흘리지 아니한 일을 분석해 보면 왜 하나님이 땀 흘리고 일하라고 하셨는가 그 이유를 알게 됩니다. 

여러분! 전 세계에서 신체적 조건이 가장 우수한 사람은 아메리칸 인디언들입니다. 지금은 요즘에 그런 영화가 인기가 없어서 안 나오지만 옛날에는 아메리칸 인디언들이 웃통을 다 벗어젖힌 신체적인 조건을 들어내면서 달리는 것을 보십시오. ‘저 사람들 얼마나 저렇게 건강한가?’ 그런데 지금 그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자녀 출산도 못하는 멸종 위기입니다. 왜 그렇게 신체적 조건이 가장 좋은 사람들이 번성해야지 멸종이 되어 가는가? 미국 정부가 주는 너무 좋은 복지 혜택 때문입니다. 땀 흘리지 않도록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일 안해도 살게 국가가 혜택을 주니까 거의 가 다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다 멸종되었습니다. 20대, 30대 청년들이 국가가 복지 혜택에 의해서 공짜로 돈을 주는데 무슨 일을 합니까? 날마다 술이나 마셔서 완전 씨가 말라 버린 겁니다. 지금은 “이러다가는 인디언들이 다 죽어버리겠다. 보호를 해야겠다.” 그래서 “인디언 보호 지역”이 있어서 관광명소가 됩니다. “인디언들 보러가자.” 이렇게 되고 맙니다. 땀 흘려 일하는 민족은 영원하고 종신토록 수고하는 사람은 종신토록 행복합니다. 하나님이 창세기 때 그렇게 정해놓으셨습니다. 

요한복음 15장 1절에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일하지 아니하고 열매 없는 가지는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이렇게 하지 않았습니까? 창세기 1장 2절에 보십시오. 하나님이 자신의 일을 하시고 뭐라고 하셨습니까?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창조성 있는 일을 한 다음에 그것을 바라보는 내 기쁨이 충만해야 합니다. “어두운 밤 쉬 되리니 내 직분 지켜서 찬 이슬 맺힐 때에 일찍 일어나 해 돋는 아침부터 힘써서 일하라. 일할 수 없는 밤이 속히 오리라.” 큰 일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자기 사명의 처소에서 주어진 평범한 소시민적 일을 열심히 하면서 그 속에서 주어지는 작은 행복을 크게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 하나님 백성들의 삶입니다. 

그 다음에는 우리 하나님이 정하신 일의 진리 가운데서 많은 사람들이 소홀이 생각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휴식과 안식의 조화입니다. “하나님도 일을 마치시고는 안식하시니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하나님이 정해주신 안식법은 인간으로서 최대 축복이 됩니다. 우리는 일을 잘하기 위해서 절대 필요한 것이 휴식과 안식의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일과 휴식을 훌륭하게 조화시키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이 이 안식법 선포를 하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나그네일지라도 일시키지 말라. 

심지어는 육축까지도 일하지 말라.” 절대 금했습니다. 아예 십계명 가운데 선포하셨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이렇게 안하면 끝없는 일의 노예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사실 노예들은 자유가 없습니다. 주인은 좀 쉴 수 있는 시간이 있어도 노예나 가축들은 쉴 시간이 없습니다. 평생 노동에 시달려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렇게 못하도록 “네 남종도 네 여종도 가축도 안식일을 지키도록 해라. 절대 일하면 안 돼.” 이렇게 정해주신 것이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그래서 이 하나님의 안식법은 온 세상의 누구에게든지 자유함을 줄 수 있는 행복의 진리가 된 것입니다. 

우리 사람 몸의 병이 생기는 것은 질서의 조화가 깨어질 때입니다. 몸과 마음의 쉼을 가져올 수 있는 자기 즐거움을 활용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문명이 발달하는 국가일수록 사람들이 여행이라든가 취미활동, 문화생활, 스포츠 이런 것을 아주 훌륭하게 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선진국이 가는 겁니다. 요즘 세상 문화는 우리 한국도 휴식 공간을 효과 있게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 아주 멋있게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죽어라고 일만 하는 사람은 멋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멋대가리가 없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반드시 돈을 많이 들여야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것은 사람의 지혜에 따라서 하는 겁니다. 

저는 제 목회 인생에 평생에 딱 한번만, 일 년만 안식년을 가지려고 늘 계획하면서도 아직까지 잘 안되는데 우리교회를 목회하면서 일 년만 안식년을 가졌으면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때가 되면 안식년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조용하신 것을 보니까 안주실 모양이군요. 성경에 보면 땅도 쉬게 하라고 했습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땅도 휴식을 취해야 땅의 기능이 보존됩니다. 계속 파고 곡식을 내라고 달달 볶으니까 땅이 다 지쳐서 병이 들어서 쓰러졌습니다. 

지금은 지구 전체가 병이 들었다고 했지 않습니까? 병든 지구를 입원시켜야 하고 치료를 해야만 살아날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 한국의 모든 땅이 노쇠하여 병약하여졌기 때문에 병충해를 견디어 내지 못하므로 모든 식료품이 농약에 의지하여서 생산되기 때문에 우리들은 어쩔 수 없이 독약스러운 음식을 매일 먹고 살아가야 된단 말입니다. 땅이 건강하면 농약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건강한 음식을 산출해 주는데 지금은 다 병들어서 안 된다는 말입니다. 

이제 우리나라도 5개월만 지나면 변하는 게 있습니다. 2012년 1월부터 토요일 정기 휴일이 됩니다. 학생들은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토요일에 학교를 안갑니다. 선진국들이 다 그렇게 하였기 때문에, 토요일에 쉬었다고 교육이 안 되는 것이 아니라고 검증되었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그렇게 한다고 이미 결정해서 이제 내년 1월 1일부터는 이 문제가 당장 왔습니다. 그 다음에 2014년이 되면 대한민국이 GNP 3만 달러라고 정부가 자신 있게 방송했습니다. 

우리나라가 GNP 3만 달러 선진국이 되는 겁니다. 이렇게 GNP 3만 달러가 되고, 토요일마다 놀토가 되면 교회는 이때부터 어려워집니다. 왜 어려워지는가? 서구의 교회들이 그때부터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GNP 3만 달러부터 교인이 줄기 시작했는데 가장 문화적으로 어려웠던 것이 주말여행 문화입니다. 이제는 토요일 쉬고 주일에 쉬지 않습니까? 그러면 주말여행을 떠납니다. 그러면 이것이 이웃집에서 모두 가는데 우리가 안가면 아이들이 “우리 아빠는 무능하다. 이웃집에서는 저렇게 싸가지고 신나게 주말여행을 떠나는데 우리 아빠는 가지도 못하고 무능해!” 그러니까 자존심이 상해서 어쩔 수 없이 가야 합니다. 

이 문화가 그렇게 가기 때문에 그러다 보면 하루 교회 빠지고 이틀 빠지고 사람이 그래도 한번, 두 번 빠질 때 양심이 괴롭지 한 달 빠지면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일 년 빠지면 ‘내가 언제 예수 믿었나?’ 이렇게 됩니다. 서구 사회들이 그렇게 된 겁니다. 서구 사회 문화가 GNP 3만 달러 오면서부터 급격하게 교인이 줄기 시작했습니다. 이웃집이 여행 가는데 어떡합니까? “아빠! 우리는 안가?”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가는 때도 많고 즐거워서 가는 때도 많고 어쨌든 이 문화가 형성되면 이 군중심리에 동요를 안 받을 수 없습니다. 사실 이것이 발표되면서 우리 교역자들은 이미 회의했습니다. “그러면 우리 교회는 어떻게 할 것인가? 최소한 예배는 드리고 주말여행을 떠날 수 있는 시간을 새로 만들어야 할 것이 아닌가? 

주일날 새벽 6시라든지 하여튼 예배는 안 드리고 가는 것보다 드리고 가는 것이 훌륭한 것이니까 어쩔 수 없이 가기는 가도 예배는 드리고 가라고 이런 것을 만들어야 될 것이 아닌가?” 이런 얘기를 오래 전부터 상의하고 있습니다. 이제 보십시오. 우리 눈앞에, 당장 5개월 후로 다가왔습니다. 지금도 우리 한국의 교인은 전체적으로 늘지 않습니다. 오히려 2퍼센트씩 줄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문화가 오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니까 이때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이것이 우리 교회 지도자들의 고민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전체가 다 그런 것이니까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는 “주말여행은 떠나더라도 예배는 드리고 가십시오.” 만약에 안 드리고 가면 가다가 사고 날 테니까 그런 줄 알라고 공갈을 치던가 어떻든가 해서 신앙을 붙들어 매야지……. 그래서 성경에 뭐라고 했습니까? “안식일을 기억하여 그 날을 거룩히 지키라.” 이렇게 하나님이 아주 십계명에 명령하신 것입니다. 안 지키기 때문입니다. 이제 안 지키는 문화가 오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마지막 말씀에 “너는 흙으로 돌아가리니”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일생동안 땀 흘려 일했습니다. 열매도 얻었고 업적도 남겼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은 뭐냐? 흙으로 돌아갑니다. 나의 인생의 종착역은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미리 생각하면서 살아야 보람 있는 일을 할 수 있고 뜻있는 일의 땀을 흘릴 수가 있습니다. 나의 인생이 흙으로 돌아가는 그 시간에 ‘왜 내가 그토록 땀 흘려 일했는가? 억울하다.’ 그러면 일을 헛했습니다. 보람 없는 일을 했습니다. ‘일해서 내가 무엇을 했는가? 아! 하나님 말씀에 빛으로 내가 훌륭하게 잘했지! 하나님 나라 확장에 내 일이 얼마나 도움이 되고 감사하다. 

내가 한 일을 보고 내가 심히 좋아할 수 있는 그런 마음으로 내가 돌아가야지.’ 잔뜩 일을 많이 했는데 억울해서 견딜 수 없는 마음으로 금방 다가옵니다. 나폴레옹 장례식 때 친구가 한 유명한 말 기억나십니까? “천하를 다 가지셨던 대왕이시여! 그대가 어찌 6자 땅 속에 누워있단 말이오?” 영웅도 재벌도 천하장사 삼손도 누구도 다 똑같이 흙으로 돌아갈 것을 기억하면서 ‘이 땅에서 땀 흘려 일하면서 무엇을 할 것인가?’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알렉산더” 영화를 다 보셨을 것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에게 최고 충성한 심복이 있지 않습니까? 

그 사람 때문에 알렉산더는 그렇게 땅을 많이 차지했지 않습니까? 그런데 전쟁을 하다가 그 심복이 상처를 입어서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알렉산더도 마음이 너무나 아팠습니다. “여보게! 당신의 소원은 뭐든지 내가 들어주겠다. 한 나라를 달라면 나라를 주겠다.” “대왕이시여! 내가 지금 죽어 가는데 나라를 뭐합니까? 내가 1년만 더 살게 해주십시오.” “이 사람아! 그것은 하나님이나 할 수 있는 일이지 내가 어떻게 해?” “그럴 줄 알았다면 하나님께 충성할 것을…….” 그리고 죽었습니다. “필경 너는 흙으로 돌아가리니” 창세기 초반부에 나타난 하나님의 기쁨은 하나님이 자신이 하신 일을 보고 자신이 기뻐했습니다. 우리는 내가 한 일을 보고 내가 기뻐해야 합니다. 

“내가 무엇을 했지? 내가 일평생 왜 이렇게 땀을 많이 흘렸지? 이게 뭐야? 업적은 있는데 왜 마음이 기쁘지 않아? 이게 뭐야?” 쓸데없는 일만 했기 때문에 이렇게 되는 겁니다. 휴가 계절이 뭐냐? 이런 모든 것을 정리하는 겁니다. 재창조하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이 기간이 매우 중요한 기간입니다. 조용히 내가 한 일을 돌아보며 새로운 마음을 가지고 영적으로, 육적으로 재정비해서 Recreation을 할 수 있도록, 재창조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게 바로 휴가철이 주는 하나의 유익이라고 우리가 생각합니다. 여러분! 이번 여름철에 Recreation할 수 있는 유익함이 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이 주신 일의 성격을 우리가 창세기에서 배웁니다. 땀 흘려 일하는 것은 축복이요 종신토록 수고는 종신토록 행복 하라는 주님의 은혜인 것을 저희들이 기억하고 주어진 일을 성의 있게 땀 흘려 일하는 것이 나에게 기쁨이 될 수 있는 보람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서 살아가는 지혜로운 아버지의 자녀들이 되게 하옵소서. 좋은 계절을 맞아 오고가면서 모두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게 도와주시고 특별히 오고갈 때마다 안전하게 주님이 지켜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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