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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현장 선교사! (요 1: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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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선교사! (요 1:19-23)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언이 이러하니라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대 또 묻되 그러면 누구냐 네가 엘리야냐 이르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또 말하되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복음은 성도님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서론]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현장 선교사’라는 영적 정체성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일을 하고 있든, 어떤 환경에 있든 현장 선교사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면 그 삶이 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복음전도>라는 책을 쓴 마이클 그린 교수는 “전도는 우리의 부업이 아니라 본업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든 복음을 전하는 것이 본업이 되어야 합니다.

이는 결코 자신이 하는 일을 소홀히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복음 전파를 위해서는 직장이나 사업장에서 더 큰 증거를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큰일을 행하게 하시고 반드시 승리를 얻게 하신다는 증거를 현장의 불신자에게 보여 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나의 전도’와 ‘나의 선교’에 대한 인식이 분명해지면 말하지 않아도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영적 영향력을 입히게 되어 있습니다.
본문에도 보면 이런 복음 전파에 누구보다 자신의 삶을 드렸던 세례 요한이 등장합니다. 

예수님께서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더 큰 자가 없다”고 말씀하실 정도로 그의 존재감은 컸습니다. 이러한 세례 요한이었지만 그는 자신을 드러낸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천국 복음을 드러내는 데에만 인생의 모든 초점을 맞추고 살았습니다. 모든 성도 여러분이 세례 요한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참 복음을 밝히 드러내며 하나님의 큰일을 행하고 반드시 승리를 얻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그리스도의 증언자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언이 이러하니라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 대 (요 1:19~20)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지도자들이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보내어 세례 요한이 도대체 누구인지 물을 정도로 그는 당시 유대 사회에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많은 표적과 기사를 행해서 인기를 얻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말씀 선포가 사람들의 마음속을 파고들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는 그야말로 암흑 그 자체였습니다. 구약 말라기서를 끝으로 무려 400년 동안이나 이스라엘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시간표 속에서 세례 요한은 예수님보다 여섯 달 먼저 제사장 사가랴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세례 요한은 이미 잉태 전부터 나실인으로 택함을 받았고, 예수 그리스도보다 먼저 와서 그의 길을 예비하라는 사명을 부여 받은 존재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본격적으로 사역하시기에 앞서 그의 길을 닦는 역할을 감당해야 했는데 그는 그 사명을 충실하게 행하였습니다. 

유대 광야에서 회개와 천국의 메시지를 선포하였고 요단강에서 회개의 물세례를 베풀면서 예수님 맞을 준비를 확실하게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세례 요한이 가는 곳마다 인산인해를 이루자 유대 지도자들은 사람을 보내어 그가 혹시 메시야가 아닌지 떠보았습니다. 

세례 요한은 대중적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었지만 자신은 결코 메시야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답합니다. 사실 인기가 절정에 오르고 사람들의 기대가 높아지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 분수를 벗어나 교만에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세례 요한은 달랐습니다. 자신은 그리스도가 아님을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렇다면 엘리야가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말 4:5를 보면 메시야가 오기 전에 엘리야가 먼저 올 것임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을 들어 질문을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세례 요한은 이마저도 아니라고 답합니다. 

사실 세례 요한은 말 4:5에 예언된 엘리야가 맞습니다. 하지만 자신은 철저하게 가려져야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니라고 부인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네 존재가 무엇이냐?”라는 사람들의 질문에 그는 아주 중요한 답변을 합니다. 
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요 1:23) 세례 요한은 자신은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실체는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사람들이 가장 빠르고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그 길을 닦는 존재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27절을 보면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발끈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는 존재’라고 말합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요 3:30)고 고백할 정도로 그는 오직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데에만 집중했습니다.
 
초대교회 사도들도 이런 모습을 통해 놀라운 현장 변화의 증거를 보였습니다. 행 3장을 보면 베드로가 40년 된 앉은뱅이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유한 사건이 나옵니다. 이 사건을 본 사람들이 베드로를 주목하자 그는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라고 하면서 모든 이목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놀라운 권세가 있음을 밝힌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놀라운 현장 변화의 역사는 다른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선포되면서 나타난 증거였습니다. 여러분들도 가는 곳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선포하는 그리스도의 증언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 이름이 선포될 때 모든 흑암이 꺾이고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영적 지각변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종교개혁자 요한 칼빈은 “인생이란 내게 주어진 사명의 길을 가는 것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세례요한이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에 생명 건 헌신을 했던 것처럼 성도 여러분도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현장 선교사로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에 늘 감사하며 최고로 가치 있는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현장 선교사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 1:29)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일컬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는 아주 간단한 표현이지만 구약 성경 전체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고 있는 놀라운 메시지입니다.
창세기 3장에서 일어난 첫 사람 아담의 불순종 사건으로 인해 모든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 죄와 저주 가운데 사단 종노릇하며 살다가 영원한 멸망 길로 갈 수밖에 없는 운명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이런 죄 문제에서 빠져나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임시적인 방법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피 제사였습니다. 여기에 제물로 드려지는 것이 흠 없고 티 없는 어린양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친히 어린양이 되어 우리의 모든 죄의 짐을 짊어지심으로 임시적이고 반복적으로 드려야 했던 모든 제사를 십자가 상에서 단번에 끝내신 것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어린양을 잡을 필요도 없고 피를 뿌리는 제사도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히 10:19~20) 

예수님께서 왜 육신의 옷을 입고 이 땅에 오셨을까요? 우리의 모든 죄를 육체의 피로 다 씻어 주시기 위함입니다. 이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 앞에 나갈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하나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게 된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이처럼 놀라운 영적 진리인 참 구원의 비밀을 미리 알고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세례 요한의 고백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것으로 가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본문 32~33절에서 성령이 예수 그리스도 위에 머물렀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 세례를 베푸시는 분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성령 세례는 방언을 하거나 몸이 뜨거워져야만 받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는 순간 받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 예수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내주하시고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게 됩니다. 거듭남의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행하는 물세례는 이런 성령 세례를 받은 자의 외적 표시인 것입니다. 

34절을 보면 세례 요한은 이러한 확실한 증거를 보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는 전도자의 삶을 사실적으로 살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요 1:34) 결국 신앙생활이란 첫 단계가 성령을 받는 것(구원)이고 다음 단계가 성령의 능력에 힘입어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를 다르게 표현하자면 하나님의 복음이 자신을 움직이는 개인복음화의 응답을 먼저 맛보고 그것을 현장에 증거하는 것이 신앙생활이라는 것입니다. 

성공하는 사람이 갖추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기회포착력입니다. 기회가 왔을 때 그것을 잡는 힘, 결단하는 힘, 행동하는 힘이 있을 때 인생에서 성공가도를 달리게 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고의 신앙생활은 말씀을 들을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예배의 자리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체험해야 합니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 복음을 현장에서 전할 기회를 놓치지 않고 포착해야 합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이 전도자의 삶을 살아감으로써 하나님의 큰일을 행하고 반드시 승리를 얻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어느 날 동생이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와 툴툴거렸습니다.
“형, 나 큰일 났어. 선생님이 너무 어려운 숙제를 내줬어.”
그러자 형이 물었습니다.
“무슨 숙제인데?”
동생이 답했습니다.
“우리 선생님이 남극과 북극에 사는 동물을 다섯 가지나 알아오라고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북극곰이랑 펭귄밖에 모르겠어.”
그러자 형이 말했습니다.
“뭘 고민해? 북극곰 세 마리, 펭귄 두 마리라고 써 가면 되지.”

이처럼 말도 안 되는 답을 우리에게 주는 종교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인생의 답을 얻겠다고 무속인을 찾아가지만 그들이 답을 주지 못합니다. 복음 없는 종교인은 인생의 답을 줄 수 없습니다. 인간의 노력, 인간의 수단은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이외의 것으로는 죄를 씻을 수 없습니다. 모든 종교는 사람의 노력을 요구하지만 복음은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저 믿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는 인생의 모든 문제에 대한 정확한 답인 예수 그리스도의 참 복음을 전해줘야 합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이 삶 속에 참 소망, 참 복음을 가지고 현장에서 정확한 복음을 증거하는 현장 선교사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삶을 변화시키는 복음을 갖게 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선지자적, 제사장적, 왕적 사명을 가진 우리가 삶의 현장에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현장 선교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를 통해 복음 속에서 축복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 받들어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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