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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전 6: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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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전 6:19-20)

로마에 있는 우르반 대학의 대강당 건물에는 "그리고 그 다음엔" 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 대학 강당에 이 문구가 새겨지게 된 배경이 있습니다. 오래전 로마 법대 졸업반에 가난한 학생이 있었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졸업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고민하다가 그는 필립 네리라는 예수 잘 믿는 부자 노인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습니다. 네리는 그 요청을 들어 주기로 허락한 후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였습니다. 

"자네, 법대를 마치면 무엇을 하려는가?" 
"변호사가 되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엔" 
"돈을 벌겠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엔" 
"집을 짓고 결혼을 해야지요." 

"그리고 그 다음엔" 
"자녀를 낳고 교육을 시켜야지요." 

"그리고 그 다음엔" 
"점점 늙어가겠지요." 

"그리고 그 다음엔...!" 

학생은 대답을 못하고 고개를 떨구고 말았습니다. 

이때 네리는 엄숙하게 입을 열었습니다. 
"그 다음엔 죽음이고, 그 다음엔 하나님의 심판이 있고, 그 다음엔 예수 안에서는 영원한 천국이고, 예수 밖에는 영원한 지옥이 있네. 그런데 자네는 그걸 모르고 기껏 죽기 위해 공부하겠는가?" 

사람들은 이 땅에서 먹고 사는 문제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좀 더 차원을 높이면 먹고 사는 문제보다도 “왜 사느냐?,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 합니다. 먹고 사는 것은 생존에 관한 문제라면, 왜 사는가 하는 것은 존재가치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먹고 살기 위하여 태어난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목적을 따란 살도록 지음을 받은 존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사 43:7절에 보시면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 43:21절에는 좀 더 구체적으로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골 1:16절에서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다.”라고 하였고, 오늘 본문 20절에서는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한마디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바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의 근본적인 삶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즐거움,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서 우리가 만들어 졌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깨닫고,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기며, 하나님을 선포하고 찬양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이 말씀을 따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삶의 최고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영광’이란 말의 원어적 뜻은 ‘무게, 중요한 것, 가치 있는 것’이란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 가장 무게를 두고, 하나님을 가장 중요하게 모시고, 나의 모든 인생에 하나님을 가장 가치 있게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가인 하이든이 죽기 일 년 전 비엔나의 홀에서 열리는 연주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작곡한 천지창조 연주를 보기 위해서입니다. 연주가 모두 끝난 후 사회자는 이곡을 작곡한 하이든 선생이 이 자리에 참석하였다고 소개하였습니다. 그러자 모든 청중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하이든에게 우뢰 같은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때 휠체어를 타고 있던 하이든이 늙고 힘없는 몸을 일으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이 작품은 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부터 온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땅에서 가장 복된 삶이 무엇입니까? 부귀영화를 누리고, 최고의 권력을 소유하고, 우리의 자녀들이 잘 되고, 건강하고, 풍족한 삶을 사는 것입니까? 이러한 것이 복이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 성도들에게 가장 복된 삶은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사도 바울이 왜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충고했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모습을 보면 우리는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보기에 고린도 교회는 심히 서글픈 교회였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분쟁하며 싸우는 교회였습니다. 우상의 제물로 골치를 앓고 있었습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고린도전서 12장과 14장을 보면 은사 문제로 시끄러웠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사를 하나님께 영광돌리기보다는 자신의 영광으로 가로챘습니다. 특별히 육체적인 음행을 죄로 여기지 않고 교회 안에서도 악한 죄를 짓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이러한 잘못된 모습은 자유사상에 근거합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헬라철학의 이원론적인 사고를 따라서 영과 육의 영역을 구분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혼이 구원을 받았으니까 육신으로는 무엇을 해도 상관이 없다고 믿었습니다. 몸은 썩어 없어질 것으로 영혼의 구원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육신의 욕망을 억제할 필요가 없고, 육신욕망을 채우기 위해 성적인 음란으로 나간 것입니다. 

이러한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잘못된 사상을 보여주는 말씀이 12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 "모든 것이 가하다"는 말은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자유를 표현할 때에 사용하는 사도바울의 특별한 문구입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도 ‘모든 것이 내게 가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는 모든 것이 허락되었으니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고린도교회의 완전주의자들의 주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상은 사도 바울의 자유사상과는 다른 차원의 자유입니다. 

사람들은 '내가 내 몸 가지고, 내 돈 가지고, 내 맘대로 하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내 것입니까? 오늘 사도 바울은 본문 말씀에서 분명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19절 말씀에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비추어 보면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자신의 몸의 소유권에 대해서 오해를 하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것이 아니라는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의 몸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으로서 우리의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여기서 몸은 사람의 육체를 가리키지만 육체와 생명과 존재, 모두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내 것’이 아닙니다. 나에 대한 소유권, 자주권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것의 소유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왜냐하면 본래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순간부터 이런 소유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렇게 고백하는 순간부터, 우리의 소유권이 하나님에게로 넘어간 것입니다. 

벧전 2:9절에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라”고 했고, 사 43:1절에 보면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구약에 나오는 욥은 하루아침에 엄청난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시험으로 자기가 소유한 모든 가축과 종들을 잃어 버렸고, 열 명의 귀한 자식이 한꺼번에 죽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건강도 잃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욥은 이처럼 엄청난 시련 중에서도 믿음을 지켰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욥1:21절에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 지니이다.”라고 하면서 하나님께 범죄 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아들 딸 10남매가 다 죽고, 모든 소유가 다 없어지고 건강도 잃게 되었는데도 욥은 슬퍼하거나 실망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욥이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는가 하면, 욥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알았습니다. 자녀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요, 재물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알았습니다. 건강과 생명도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하나님께서 주셨던 것을 하나님께서 찾아가셨으니 마땅한 일이고 슬퍼하거나 원망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날마다 욥처럼 ‘하나님! 나의 몸과 생명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나의 존재와 모든 것의 소유는 하나님이십니다.’라는 고백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을 보면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우리 몸의 용도에 대해서도 잘못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하나님이 주신 몸을 잘못 사용하였습니다. 음란과 육체적인 쾌락에 사용 하였습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부터 우리는 이제 우리의 몸이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의 목적에 사용되어야 합니다. 우리 몸의 용도를 하나님이 지정하셨습니다. 

본문 19절에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 알지 못하느냐”고 했습니다. 고전 3:16절에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롬 6:13절에서는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의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성령의 전’은 성도 개인이 하나님의 성전이요, 개인의 인격 속에 성령님이 거하신 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전으로서의 몸인 성도는 거룩한 성전으로서 합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 몸은 성령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처소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몸은 보통 몸이 아닙니다. 성령이 거하시는 몸입니다. 그러기에 몸을 더럽혀서는 안 됩니다.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름답게 단장해야 합니다. 진실 됨으로, 거룩함으로, 성실함으로 단장해야 합니다. 집의 가치는 그 집의 규모가 결정합니다. 그러나 정말 그 집의 가치는 그곳에 누가 살고 있느냐, 혹은 살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미국의 아브라함 링컨은 가난해서 통나무집에 살았습니다. 그런데 링컨이 살았던 그 보잘 것 없는 통나무집이 지금까지 잘 보존되고 관리되고 있습니다. 보잘것없는 통나무집이 이렇게 잘 관리되고 보존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미국에서 가장 훌륭한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이 살았던 집이기 때문입니다. 

청와대가 유명한 것은 건물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 곳에 대통령이 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보잘 것 없는 존재이나 내 안에 성령 하나님이 내주하시기에 우리는 존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몸을 깨끗하게 잘 관리하고 보존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거룩해야할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본문 말씀 20절에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고전 7:23절에는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피로 값을 주고 우리를 사셨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고 우리를 사셨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 외아들의 목숨과 나의 생명을 바꾸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는 우리가 얼마나 귀한 존재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생명만큼 귀한 존재입니다. 

성도들은 예수님께서 피로 값 주고 사신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몸을 타락시키거나 함부로 사용할 권한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 3:17절에서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누구든지 예외 없이 성령의 전인 몸을 더럽히면 그 사람을 멸하십니다. 반대로 몸을 성별하여 하나님을 위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몸을 돌보아 주시며 위해 주십니다. 

성령의 전은 깨끗해야 합니다. 성령의 전인 우리의 몸도 이름 그대로 거룩해야 합니다. 성도들은 그 더러운 정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입니다. 성령을 좇아 행함으로 그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살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이제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성도님들은 자신의 몸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고귀한 존재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이처럼 고귀한 존재로 부르신 하나님을 위해 사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사나 죽으나, 먹든지 마시든지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존재들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나의 가치를 발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사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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