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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마 8: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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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마 8:18-27)

“공포증(phobia)”이란 말은 “과장된 혹은 무력화시키는 공포”라는 의미로서 고대 희랍의 신화에서 적을 놀라게 하던 전쟁의 신인 “포보스”의 이름에서 유래했습니다. 말 그대로 공포와 심한 불안을 유발한다는 말입니다. 

공포증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3세기 철학자들이 기술한 악마공포증(惡魔恐怖症), 신공포증(神恐怖症) 등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이후 19세기에 이르러 정신과학 문헌에 공포증이란 용어가 등장하여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즉 공포증이란 설명할 수도 없고 합리적이지도 않으며 자신의 통제밖에 있고 상황에 대한 회피행동을 유발 할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공포증은 

❶특정공포증(specific phobia)이 있습니다. 명확히 구분할 수 있는 대상이나 상황에 대한 현저하고 지속적인 공포를 말합니다.

 ❷사회공포증(social phobia)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지켜 볼 수 있는 상황에서 무엇을 할 때 지나치게 불안하고 긴장하는 것을 말합니다. 

❸광장공포증(agora phobia)이 있습니다. 즉각적으로 피하기 어려운 장소나 상황에 처할 때에 두려워하는 것을 말합니다. 

문헌에 의하면 

➀ 유명한 웅변가인 “데모테네스”는 “계단공포증”이 있었습니다.
➁ 로마의 유명한 정치가였던 “시저”는 “어둠공포증”이 있었습니다. 
➂ 세계적인 문호 “셰익스피어”는 “고양이공포증”이 있었습니다. 
➃ 철학자 “파스칼”은 “광장공포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위대하고 유명한 사람들이 공포증에 시달렸다는 것을 보면은 공포증이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으며 자신의 의지대로 안 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심리학자들은 공포증 중에도 “특정공포증”을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나누고 있습니다. 
➀ 동물형 공포증은 공포의 대상이 동물이나 곤충에 대한 두려움을 말합니다. 주로 아동기에 나타납니다.
➁ 자연환경 공포증은 천둥번개, 높은 장소(고공), 물 등과 같은 자연 환경에 존재하는 대상들에 대한 두려움을 말합니다. 아동기에 많이 나타납니다. 
➂ 상해형 공포증은 혈액, 주사, 부상을 보거나 주사나 기타 의학적 처치를 받을 때 나타납니다. 피를 보면은 기절하거나, 의학적 처치를 받을 때 자지러지게 비명을 지릅니다.  
➃ 상황형 공포증은 대중교통, 터널, 엘리베이터, 비행, 항해, 운전, 폐쇠된 공간 등의 특수한 상황에 의해 유발됩니다. 

공포증이란 정신분석적으로 치료가 가능합니다. 그러나 치료가 쉬운 것은 아닙니다. 자신이 어떤 공포증을 가지고 있나를 인지하여 특수한 환경을 피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피할 수 없을 때에는 약물치료 및 심리치료를 병행하기도 합니다. 신앙인들은 믿음으로 극복하고 치료 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자연환경인 “바다의 물”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가는 중 바람으로 말미암아 큰 놀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됩니다. 제자들이 주님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라고 아우성칩니다. 제자들은 극단적인 공포에 시달립니다. 그것이 바로 죽음의 공포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라고 책망섞인 질문을 하십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갑니다. 


갈릴리 건너편으로 가라 !

우리 주님이 복음을 전하실 때 많은 이들이 찾아와 에워쌉니다. 우리 주님은 제자들에게 무리가 자기를 에워싸는 것을 보시고 건너편으로 가기를 명하십니다(18). 제자들이 배를 띄웁니다. 

그 틈새에도 별일이 다 일어납니다. 심지어 어떤 제자는 자기 아버지가 죽어 장사지내는 것도 팽개치고 따라 다닙니다. 정신없이 따라 다니다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죽은 아버지 장사(葬事)를 치러야 했습니다. 그 제자는 우리 주님께 “주여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21)... 우리 주님은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22)고 말씀하십니다. 

더디어 우리 주님이 배에 오르시매 제자들도 따릅니다. 제자들은 우리 주님과 함께 배를 타고 갈릴리를 항해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신앙생활의 원리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끌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주님을 따라다녀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이 가실 곳에 주님을 모시고 다녀야 한다는 것입니다. 걸어 다니건, 자전거를 타건, 자동차를 타건, 기차를 타건, 배를 타건, 비행기를 타건 말입니다. 

성경의 역사를 보면은 하나님이 앞장서신 때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➀출애굽할 때 하나님이 앞장서십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언약궤를 앞세우고 앞장서십니다. ➁가나안을 정복할 때 앞장서십니다. ➂다니엘이 사자 굴로 던짐을 받을 때 앞장서십니다. ➃다니엘의 친구들이 풀무 불에 던지움을 받을 때 앞장서셔서 들어가십니다. ➄요나가 니느웨로 들어갈 때 하나님은 미리 그곳에 들어가 계십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을 앞세워서 움직이고, 일하면 절대 실패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앞세워 모시고 다니면 언제나 드라마틱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우리 주님은 언제나 우리 앞서 가십니다. 요한복음 10:4-5절에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양들은 끝까지 목자를 따릅니다. 양들은 타인을 절대 따르지 않습니다. 목자의 음성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16:24)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을 앞세워 모시고 다니자면 ➀자기를 부인하고 ➁자기의 몫에 태인 십자가를 지고 ➂주님을 앞세워 따라가야 합니다. 이게 성도의 길이요, 제자의 길이며, 그리스도인들의 길입니다.


주여 깨셔서 우리를 구원하소서 !

세상에는 두 가지의 고난이 있습니다. 

➀ 일반적인 고난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이면 누구든지 받는 고난을 말합니다.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고난을 말합니다. 인간이라면 구구나 피해갈 수 없는 고난을 말합니다. 일반적인 고난에는 하나님의 일반은총(一般恩寵)이 함께 하십니다.

➁ 특별한 고난이 있습니다. 신앙 때문에 당하는 고난을 말합니다. 성경 말씀은 이런 고난을 당한 자들의 기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11:23-27절에서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➀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➁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➂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➃세 번 태장으로 맞고 ➄한 번 돌로 맞고 ➅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➆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➇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이 주님과 함께 배를 타고 항해를 합니다. 갑자기 큰 놀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주무십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면서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25)라고 외칩니다. 

일반적인 고난은 일반적인 방법으로 해결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특별한 고난은 좀 다릅니다. 특별한 고난이라 해도 하나님이나 우리 주님은 금방 개입하시지 않습니다. 마치 주무시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때에는 우리가 하나님을 깨우고, 주님을 깨워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그 행위를 “기도”라고 표현합니다.

본문에 제자들은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라고 외칩니다. 어부 출신의 제자들이지만 자기들의 경험과 실력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고라의 자손은 시편44:22-25절에서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주여 깨소서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 일어나시고 우리를 영원히 버리지 마소서 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가리시고 우리의 고난과 압제를 잊으시나이까 우리 영혼은 진토 속에 파묻히고 우리 몸은 땅에 붙었나이다”라고 하나님께 구원을 요청합니다.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

시작하는 말에서 “공포증”에 대하여 말씀드렸습니다. 인간이면 누구나 약간의 “공포감”은 다 있습니다. 그것이 심할 때에 “공포증”이라고 합니다. 제자들은 지금 극도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무서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주님은 무서워하는 대신에 믿음을 요구하셨습니다.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26)라고 꾸짖으셨습니다. 공동번역에서는 “그렇게도 믿음이 없느냐? 왜 그렇게 겁이 많으냐?”라고 번역했습니다. 대다수의 영어 성경에서는 “little faith”라고 표현합니다. 

욥이 엄청난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 이유는 자기 자신의 잘못으로 말미암아 사탄에게 문을 열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욥은 
➀욥은 표층(表層)에 머무는 신앙생활을 합니다. 지구가 표층(表層)과 심층(深層)있는 것처럼 신앙도 표층에 머무는 신앙과 심층으로 깊이 들어가는 신앙이 있습니다. 

욥기 42:5-6절에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라고 말합니다. 

➁ 욥은 죽음을 두려워 합니다. 욥기 3:25-26절에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내가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나에게는 평온도 없고 안일도 없고 휴식도 없고 다만 불안만이 있구나”라고 탄식합니다. 

➂ 욥은 자녀들을 신앙으로 양육하지 못했습니다. 욥기 1:4-5절에 “그의 아들들이 자기 생일에 각각 자기의 집에서 잔치를 베풀고 그의 누이 세 명도 청하여 함께 먹고 마시더라 그들이 차례대로 잔치를 끝내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하게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을까 함이라 욥의 행위가 항상 이러하였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욥기8:3-4절에서 수아사람 빌닷이 “하나님이 어찌 정의를 굽게 하시겠으며 전능하신 이가 어찌 공의를 굽게 하시겠는가 네 자녀들이 주께 죄를 지었으므로 주께서 그들을 그 죄에 버려두셨느니라”고 말합니다. 

➃ 욥의 부인은 가짜배기 신앙의 소유자입니다. 야바위 신앙입니니다. 욥기 2:8-9절에서 욥의 부인은 “욥이 재 가운데 앉아서 질그릇 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고 있더니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말합니다.

욥은 이런 몇가지 이유로 사탄에게 문을 열어 놓습니다. 사탄이 “얼씨구나 좋다.”고 쳐들어 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눈으로 친히 뵙고 진정으로 회개하고 신앙의 심층으로 들어 갔을 때 사탄은 “줄행랑”을 칩니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이전보다 더 많은 축복을 받습니다. 


끝맺는 말

우리 주님의 교훈은 두려운 일, 무서운 일, 공포감에 휩싸일 때 믿음을 키우라고 말씀하십니니다. 
➀ 우리가 만일 하나님을 믿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 어떤 하나님의 보호와 축복도 받지 못합니다.
➁ 믿음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축복을 받는 필수조건입니다. 
➂ 반면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는 불신은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을 절대 받지 못합니다. 
➃ 기도와 믿음을 키워나갈 때 우리 주님이 우환질고를 꾸짖어 물리쳐 주십니다. 이내 잔잔하게 됩니다. 사탄은 영원히 줄행랑을 치고 도망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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