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물고기 뱃속에서 드린 기도 (욘 2:1-9)

첨부 1


물고기 뱃속에서 드린 기도 (욘 2:1-9)


성경에는 정말 많은 기도 이야기가 나옵니다. 다양한 시대, 다양한 상황, 다양한 사람들의 기도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중에 가장 특이한 기도 가운데 하나가 바로 오늘 본문의 요나의 기도입니다. 

요나의 기도가 특이한 것은 다음 두 가지 때문입니다. 첫째, 기도를 드린 장소입니다. 요나가 기도를 드린 장소는 놀랍게도 물고기 뱃속입니다. 저가 물고기 뱃속에서 삼일을 있으면서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어떻게 사람이 물고기 뱃속에 들어갈 수 있으며, 또한 그 안에서 3일을 죽지 않고 살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아주 특별한 기도의 자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바로 이런 기도의 자리는 성경의 다른 기도에서는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둘째, 기도 내용입니다. 요나의 기도에는 우리가 성경의 인물들의 기도에서 기대하는 내용이 없습니다. 먼저 요나의 기도에는 자신의 불순종에 대한 회개가 없습니다. 요나는 지금 하나님을 피해 도망치다가 하나님 앞에 섰습니다. 당연히 회개부터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요나의 기도에는 회개가 없습니다. 

다음으로 요나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순종하겠다는 다짐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기도 중에 하나님의 뜻을 깊이 깨닫습니다. 그리고 그 뜻에 순종하기로 마음을 다해 결단하게 됩니다. 그러나 요나의 기도에는 이런 깊은 깨달음이 없습니다. 그리고 결단이 없습니다.

그러면 요나는 어떻게 하다가 이렇게 특이한 기도를 드리게 된 것일까요? 이 기도의 배경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요나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니느웨로 가서 말씀을 선포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수가 없었습니다. 계속 이스라엘을 괴롭혀 온 니느웨, 그래서 멸망당하기를 기도해 왔던 그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라는 명을 받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요나는 하나님의 명을 저버리고 사명을 피해 도망을 칩니다. 니느웨와 정 반대 방향인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게 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큰 폭풍으로 배의 앞길을 가로막으셨습니다. 배가 파선 직전에 이르자, 요나는 이 풍랑이 자기 때문임인 줄 알고, 자신을 바다에 던지라 청합니다. 바다에 빠져 죽기를 청한 셈입니다.

그런데 바다에 빠지자, 하나님께서 큰 물고기를 예비해 두셨습니다. 그리고 그 물고기로 하여금 바다에 빠진 요나를 삼키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 곳에서 삼일을 머물게 됐습니다. 오늘 요나의 기도는 바로 이 물고기 뱃속에서 드린 기도인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왜 이런 특이한 기도를 살펴보게 하실까요? 우리에게 무엇을 교훈하시기 위해 이런 기도를 묵상하게 하실까요? 하나님께서는 이 기도를 통해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고자 하실까요?

기도하게 하시는 하나님

본문 2절을 보면 요나가 이렇게 기도합니다.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요나가 고난을 받게 돼서 기도를 하게 됐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역시 2절에 요나가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스올의 뱃속에 들어가게 됐기 때문에 기도를 하게 됐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스올이란 흔히 ‘음부’라고 번역되는데, 그 뜻은 “죽음의 세계”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죽음의 깊은 세계와 같은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게 됐기 때문에 기도하게 됐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요나는 원래 기도할 생각이 없던 사람입니다. 1장 3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지금 하나님을 피해 도망치던 중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만날까봐 기도 자리를 피하던 중이었던 것입니다. 

왜 요나는 기도 자리를 피하려 했을까요? 한 마디로 하나님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요나는 다시스로 가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라는 말씀을 거역하고 불순종하는 죄를 범했습니다. 하나님의 벌이 임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서기가 두려웠던 것입니다.

창 3:8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은 뒤, 하나님이 두려워 하나님을 피하여 숨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오늘 우리들 안에도 그대로 재현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했을 때, 스스로 기도의 자리로 나가기가 어렵습니다. 하나님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의 벌이 무섭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요나가 그랬습니다. 그리고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한 그리스도인들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결국 요나로 하여금 기도의 자리로 나오지 않으면 안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요나가 니느웨가 아닌 정반대의 길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배가 다시스로 가지 못하게 폭풍을 통하여 가로막으셨습니다. 요나가 이 폭풍이 자기 때문이라고 하며 자청하여 바다에 던져졌습니다. 어찌 보면 차라리 죽겠다고 나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큰 물고기를 준비시켜 놓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요나의 길을 막으신 것입니다. 다시스로 가는 길을 막으셨습니다. 그리고 죽고자 하는 길도 막으셨습니다. 그리고 결국 기도의 자리로 요나를 몰아가신 것입니다. 

유명한 찬송 3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의 찬송시를 쓴 사람이 존 뉴우턴입니다. 이분이 고난을 당하는 어떤 부인에게 쓴 편지 내용이 전해집니다. “고난은 우리를 자극하여 기도하게 만듭니다. 불행히도 우리는 고난을 받아야 기도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아무런 고통스러운 변화도 없이 다만 오랫동안 편안하고 풍요한 시간이 계속되면, 우리는 냉랭하고 형식적인 태도로 하나님과 교제하게 됩니다. 그러나 고난은 우리의 영혼을 일깨워 주며, 우리를 긴장시켜 열심히 주를 찾게 합니다. 왜냐하면 그때는 주님밖에 의지할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사실입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의 경우가 좋은 예입니다. 삼상 1:10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한나가 고통 중에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자식이 없어 천대 받던 그 설움 때문에 마음이 괴로웠는데, 그 때문에 기도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그 고난이 없었다면 그와 같은 간절한 기도를 드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도의 자리로 몰아가십니다. 기도하지 않을 수 없게 하십니다. 왜 그렇게 하실까요? 가만히 두면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군대 용어가 생각이 납니다. “맞고 할래 그냥 할래!” 선택은 둘 중 하나입니다. 어차피 해야 하는 일입니다. 맞고 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요, 그냥 하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도의 자리로 몰아가시기 전에 우리가 스스로 깨닫고 기도의 자리를 지켜야 하겠습니다.

기도 중에 변화하는 요나

1절을 보면,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도하게 하시자 입을 열러 기도를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2절을 보면,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나가 기도하되 적극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요나는 기도의 자리를 피했지만,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따라 어쩔 수없이 기도의 자리로 내몰렸습니다. 그러나 일단 기도의 자리에 들어서서는 전력을 다해서 기도에 몰두했습니다.

그러자 기도 중에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요나 자신이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도의 놀라운 능력이 요나에게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브루스 윌킨슨(Bruce Wilkinson)이 지은 [야베스의 기도]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대상 4:9-10에 나오는 무명에 가까운 한 사람 야베스의 기도를 다루고 있습니다. 

야베스라는 이름은 “고통”이라는 뜻입니다. 어미가 고통 중에 이 사람을 낳았기 때문에 이름을 야베스라 지었습니다. 그런데 이 야베스가 자신에게 닥친 환란을 거두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인생 자체를 변화시켜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형제보다 존귀한 자”가 되었습니다.

이 책은  인생을 변화시키는 기도의 힘에 관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 책을 읽고 감동을 받아 야베스처럼 기도한 사람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도 야베스에게 일어났던 그대로 놀라운 일이 일어나 그들의 인생이 변화된 경험을 하게 됐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저자에게 자신들의 간증을 써서 보냈는데 전 세계로부터 온 편지의 수가 수천 통이 넘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자 브루스 윌킨슨은 그 편지를 정리해서 2005년에 또 다시 책을 출판했습니다. 그 책 제목이 [야베스의 기도, 그 후]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능력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요나를 새롭게 변화시켰습니다. 야베스도 변화시켜 그 인생이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기도하는 사람들 그들을 변화시킵니다. 그 인생을 새롭게 빚어놓습니다. 세상 말로 기도가 팔자를 바꿉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도하십시오. 기도가 여러분의 인생을 바꿀 것입니다. 기도가 그 지긋지긋한 운명을 바꿀 것입니다. 기도가 꼬여있는 모든 인생의 관계를 바꾸어 놓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요나에게 일어난 몇 가지 변화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과의 관계가 달라졌습니다.

본문의 기도를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님에 대한 호칭이 변화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2절에서 요나는 하나님을 “여호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6절에 보면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요나는 기도 가운데 하나님과의 관계가 개선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태어났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랐습니다. 그리고 요나는 특별히 사명자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구체적으로 선지자 사역을 하게 됐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을 아직도 제 3자처럼 불렀습니다. 하나님이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셨습니다.

그러나 기도 중에 하나님과 관계가 달라졌습니다. 우선 요나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해 일해 오셨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3절을 보면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 던지셨으므로 큰  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내 위에 넘쳤나이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하여 세심하게 역사하셨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기도 가운데 이 사실을 깨닫게 됐던 것입니다.

다음으로 요나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구원하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6절을 보면 “주께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바다 깊은 곳에 빠졌을 때, 큰 물고기를 준비하셨고, 그 물고기로 하여금 자기를 삼키게 하셔서 죽음을 면케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또한 기도 가운데 깨닫게 됐던 것입니다.

요나는 기도 중에 이런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하나님을 새롭게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새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세심하게 자기를 위해 일하고 계신 것을 새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정말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실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정말 여러분을 사랑하신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오늘도 일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런 사실은 영적인 비밀입니다. 그래서 이성적 판단과 합리적 사고를 통해서는 결코 발견할 수도 없고 깨달을 수도 없습니다. 다만 성령의 감동하심을 통해서 발견하게 되고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성령께서 우리의 눈을 열어주십니다. 그 때 우리는 이 영적인 비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둘째, 삶의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본문의 기도를 자세히 살펴보면, 요나의 삶의 태도가 달라졌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4절을 보면,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 하나님을 피하여 도망쳤지만 다시 하나님을 향해 돌아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9절을 보면 이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하나님을 원망하며 하나님을 등지던 그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하겠고, 다시 하나님을 위해 살겠다는 것입니다.

요나가 어떻게 이렇게 변했을까요? 바로 기도 때문입니다. 기도의 자리에서 저가 달라진 것입니다.

오래 전에 한 어머니가 자녀 문제 때문에 상담을 청했습니다. 아들이 사춘기를 무척이나 힘들게 보내고 있었습니다. 공부는 뒷전이고 엉뚱한 일에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학교도 빼먹기가 일쑤였습니다. 성품도 거칠게 변해서 부모에게 대들고 가끔 가출까지 했습니다. 엄마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교과서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아이를 위해서 기도하고 계십니까?” 엄마의 대답이 당연하다는 듯 “그럼요! 아이 때문에 금식 기도까지 하고 있는 걸요?” 제가 또 다른 질문을 던졌습니다. “아이를 위해 무슨 기도를 드리고 계십니까? 아이가 예수 믿고 거듭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까?” 이 어머니가 주춤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실토했습니다. 

“사실 아이가 공부 잘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착한 아이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사춘기를 잘 극복하게 해 달라고만 기도했습니다.
그날 이후 어머니의 기도가 달라졌습니다. 예수 믿고 거듭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예수의 성품을 닮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인내하며 기다렸습니다. 이 아이가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그 아이가 신학생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도가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새사람되게 합니다. 삶의 태도를 바꾸어놓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가 기도의 자리에 있기를 원하십니다. 때로는 기도의 자리를 멀리 떠나있을 때, 하나님께서 억지로라도 기도의 자리로 몰아넣으십니다. 그만큼 우리에게 기도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자리를 지키십시오. 그리고 위로부터 임하는 기도의 능력을 덧입으십시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