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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질적인 성장 요소(1) (행 2:3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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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적인 성장 요소(I) (행 2:38-42)  

성령을 받은 베드로, 그는 교회가 생긴 이래로 처음 설교를 하였다.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해 설교하였다. 또한 우리가 받은 성령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누구든지 부어주신다는 설교를 하였다. 그의 설교는 청중의 가슴을 두들기고 회개와 세례의 자리로 초대하였다. 그리하여 예루살렘교회는 3천명의 제자가 생겨나는 전도 폭발이 일어났다. 

그런데 첫 번째 교회에서 첫 번째 설교에 의해 3천명이 된 이 역사는 베드로 자신의 탁월한 설교의 내용 때문이 아니다. 그는 현대 목회도 모르고 교회를 관리하는 행정도 모른다. 다만 하늘로부터 부어주신 성령의 능력에 사로잡혀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구원을 받으라고 외쳤을 뿐이다. 

교회의 전도 폭발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3천명의 회개한 사람들이 모여 구원을 받고 더욱 역동적인 교회가 된 데는 주님의 계속적인 도우심이 있었다. 행2:47下을 보면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고 하였다. 

우리가 이 처음 교회의 성장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단순히 숫자 때문만이 아니다. 그렇게 만들어 놓는 것이 성령의 역사이고 더 나아가 구원 받는 사람을 더하기 해 주신 것이 주께서 하신 일이라는 말씀 때문이다. 즉 주님은 양적인 성장을 한 순간에 이루어 놓은 것에 끝나지 아니하시고 질적 성장을 계속 돕고 계신 것이다. 3천명의 제자가 생겼어도 3천명 이후 구원 받는 사람이 더하여지지 않는다면 역동성이 사라진 교회가 된다. 

교회는 우리끼리의 교회인 것이며 주님이 돕지 않는 교회인 것이다. 교회의 머리되신 주님이 오신 이유는 잃어버린 자를 찾아 죄인을 구원하러 오셨다. 따라서 교회는 사람을 구원하려고 일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주님은 그때 도와주신다. 구원의 감격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구원 받는 사람이 많아지도록 도와주신다. 

교회는 성장해야 한다. 양적 성장을 위해 질적 성장이 계속 연쇄 반응으로 작용해야 한다. 그것이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이다. 주님이 돕고 계신 이유이다. 구원 받는 사람이 더하게 되는 교회가 되려면 어떤 요소가 있어야 하는가? 여러 가지 요소가 있어야 하는데 오늘은 세 가지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한다.

1. 가르침이 계속 되어야 한다. (행2:42上)

사도 베드로는 회개를 촉구하였다.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고 하였다. 3천명이 이 설교를 듣고 돌아왔다. 설교는 중요한 것이다. 교회의 강단은 설교가 없는 예배가 되어서는 안된다. 또 설교자가 주일 낮 예배는 설교 휴강이라고 써 붙여서도 안된다. 설교는 중단될 수 없다. 개신교는 강단을 중요시 여기는 강단 목회다. 하지만 설교만 계속되어서는 안된다. 진정한 질적 성장을 바란다면 가르치는 일을 계속해야 한다. 

행2: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라고 하였다. 

3천명의 사람들이 제자로 불리워졌다고 이름을 듣는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배우는 자가 되었다. 사도들을 가르쳐야 하는 중요성을 실천하였다. 가르쳤다는 것, 그것이 제일 먼저 나오는 3천명 교회에 대한 진면목이다. 가르침을 받는 것, 그것은 성숙의 지름길이다. 기독교가 무엇인지 배우지 않는다면 예수가 오신 이유, 배우지 않는다면 뼈가 없는 사람처럼 되기 쉽다. 교회에 믿고자 나온 신도들에게 설교를 듣게 해야 하지만 오늘 본문을 보면 사도들이 직접 나섰다. 

예수와 함께 호흡하며 예수를 곁에서 지켜본 사도들! 예수의 땀과 호흡, 숨소리를 알고 있는 사도들이 가르쳤다. 그 가르침, 디다케는 교회의 기초요 교회의 뼈대다. 그러므로 교회는 설교를 통해 사람을 회개 시키고 제자에로 결단하게 하듯이 가르치기가 계속되어야 한다. 가르치는 사역이 어떤 이유로든 중단되어서는 안되고 배우는 일들이 방학이라는 미명으로 쉬어서도 안된다. 배우지 않는 교회는 성숙이 오지 않는다. 가르치지 않는 교회는 기독교적 지식과 지성을 무시하는 교회, 감정주의가 되기 쉽다. 

우리는 계속해서 불같은 성령을 받아야 한다. 주님의 역사하심을 믿어야 한다. 그러나 내게 나타난 체험과 강한 역사,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관한 것은 가르침을 받아 정돈된 신앙으로 성숙해야 한다. 세대와 세대를 뛰어넘어 교회에서, 가정에서, 영적 사역에 대한 가르침이 계속되어야 한다. 그것은 교훈이 되고 유산이 되며 가치있는 신앙의 알멩이가 된다.  

2. 교제가 회복되어야 한다. (행2:42中)

3천명의 사람들은 가르침을 받기만한 것이 아니다. 행2:42中을 보니까 “서로 교제하고”라고 적고 있다. 교제란 하나님의 사람이 된 하나님의 제자들끼리의 만남이다. 크리스챤들은 주의 제자가 된 자로서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한다. 

엡2:19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우리는 한 시민, 한 식구다. 고통과 기쁨을 함께 하는 식구다. 공동 운명이다. 엄마가 아프면 다 아프다. 아빠가 바람을 피면 다 영향을 받는다. 그것이 식구다. 우리는 서로 교제해야 한다. 교제가 활발히 일어나야 한다. 

우리의 교제는 예배하면서 교제한다. 봉사하면서 교제하고 내 것을 내어주면서 교제하고 현장에 나가 전도하면서 교제하고 섬기면서 교제해야 한다. 그러므로 신앙 생활은 혼자서 고독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고독한 신앙! 방에 머무르는 홀로 신앙은 병든 것이다. 한 식구가 된 성도는 함께 가야 한다. 

크리스챤은 마음을 열고 형제들과 삶을 공유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성도는 교제하므로 성숙해진다. 교제하므로 새 힘을 얻는다. 영감을 얻는 것도 소속감을 갖는 것도 교제 속에 머물 때이다. 삶의 모델을 찾고 삶의 영향력을 얻는 것도 교제함에 있다. 마18: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교제함으로 주님이 함께 해 주시고 요17:20에서 교제하므로 불신자들이 예수를 믿게 된다. 

그런데, ‘서로’ 교제다. 나 혼자만의 서두름이 아니다. 

갈5:13 “서로 종 노릇 하라.”, 
골3:13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롬16:16 “서로 문안하라.”, 
갈6:2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롬12:10 “서로 우애하고”, 
롬15:14 “서로 권하는 자임을...”, 
엡5:21 “피차 복종하라” 등 서로 서로 문안하고 서로 서로 사역을 나누는 ‘서로’의 교제다. 

교회에 와서 제단만 쳐다보고 가서는 안된다. 십자가는 쳐다보지 않고 사람의 앉아있는 모습만 보고 가서도 안된다. 우리는 내 옆에 있는 성도와 교제해야 한다. 내 옆자리에 예배하는 그 사람에게 문안해야 한다. 또 교회에 와서 성도는 목사와 교제해야 한다. 중보기도하면서, “아멘”으로 화답하면서, 목회자의 사역에 동참하면서 교제해야 한다. 인사도 안하고 나가는 것이 신속하고 빠른 것이 아니다. 서로 서로 교제하는 것이 교회의 참 모습이다. 

우리는 교회로 올 때 교제하려는 마음을 지니고 와야 한다. ‘금주에는 10명의 사람과 손을 잡으리라.’는 마음을 와야 한다. 그래서 찾아나서는 용기, 안부를 묻는 용기, 마음의 빗장을 부수는 용기로 사람을 만나야 한다. 교제는 부담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이름만 불러주어도, 먼저 방긋 웃어만 주어도, 인사의 말만 던져도 교제의 문이 열린다. 먼저 허리를 굽혀 보라. 내가 특별한 사람이 된다.
  

3. 기도에 몰입해야 한다. (행2:42下)

행2:42下 “기도하기를 힘쓰니라.”고 하였다. 교회는 영적인 기관이다. 성령의 임하심으로 움직여진 것이 교회다. 그 성령의 임하심을 위해 초대 교회는 일주일 내내 기도에 전혀 힘썼다. 행1:14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그래서 기도로 성령을 받은 교회는 성령을 받은 이후 3천명의 제자가 더하여진 후에도 기도를 전혀 힘썼다. 기도가 중단되지 않은 것이다. 어떤 경우에든지 기도는 계속되어야 한다. 기도는 호흡과도 같아서 기도를 하지 않는 교회는 죽은 교회다. 

기도하는 일에 몰입해야 한다. 여기 본문에 전혀 힘쓰는 기도는 개인 기도가 아니다. 복수형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모여서 드리는 교회적인 기도다. 기도를 쉬지 않도록 자꾸 기도하는 자리로 나아가라. 한국 교회의 장점은 기도하는 교회이다. 산기도, 새벽기도, 철야기도를 유산으로 남겨준 교회다. 게다가 중보기도가 교회마다 특공대로 만들어져 있다. 

우리 교회도 11개의 그룹 중보기도가 있다. 10월초에 7-24기도향연축제가 있어 전 성도가 7,000 기도 시간에 도전한다. 기도하는 교회는 방향을 잃지 않는다. 기도하는 교회는 성공을 똑바로 관리한다. 기도하는 교회는 거룩을 유지한다. 기도하는 교회는 축복을 바로 사용한다. 질적인 교회로 성장하려면 기도에 빠져야 한다. 기도하는 일에 투자해야 한다. 기도에 힘쓴다는 것은 노동으로 알라는 것이다. 기도는 노동이기에 더욱 거룩하다. 

오늘 우리는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해주시는 ‘질적인 교회가 되기’ 세 가지를 나누었다. 다음 시간에 다시 나누겠지만 이런 초대 교회의 처음 모습을 우리 교회는 재현하려고 해야 한다. 교회에서 예배하러 모일 때나 또 집으로 돌아가 작은 CM 모임으로 모일 때나 이 몇 가지 요소들이 크리스챤의 생활의 체질화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성장하고 성숙할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교회를 세워갈 수 있다. 주님이 돕고 계시는 한 구원의 역사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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