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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때를 아는 사람 (마 25: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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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를 아는 사람 (마 25:1-13)


우리는 예수를 믿는 기독교인들입니다. 우리 기독인들의 신앙 중에 가장 중요한 내용은 구원과 영생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를 잃어버리고 영원히 죽게 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어 영생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 우리 기독교 신앙의 가장 핵심이 되는 내용입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받은 복이 참 많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만해도 말도 못할 복을 받았습니다. 제가 지금 누리고 있는 모든 복의 유일한 원인은 ‘믿음’입니다. 예수를 믿는 부모 밑에 태어나 어려서부터 예수를 믿어 지금까지 이르게 된 것이 제가 지금 이런 복을 누리며 살게 된 가장 중요한 아니 유일한 이유입니다.

수도 없이 많은 복을 받았지만 누가 저에게 예수를 믿어 받은 복 중에 가장 큰 복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저는 두 번도 생각하지 않고 ‘속죄’라고 대답하겠습니다. 제 삶에 있어서 가장 고통스럽고, 수치스럽고 부담스러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제 속에 있는 죄입니다. 얼마 전 뉴스를 보니 저축은행 비리와 연관이 되어 조사를 받던 어떤 분이 점심시간에 택시를 타고 한강으로 가서 그냥 투신하였다고 합니다. 다행히 구조를 받아 생명은 건졌다고 하지만 저는 그 분이 왜 그런 일을 하였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죄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 죄가 어느 날 갑자기 자기를 공격하자 그것을 감당할 수 없어서 강물로 뛰어들었던 것입니다.

성경은 죄의 삯을 사망이라고 말씀합니다. 정말로 그렇습니다. 죄는, 죄가 주는 고통과 수치와 부담은 죽음보다 더 큰 고통과 부담과 수치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죄가 저에게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저에게 그런 죄가 있다는 사실을 잘 모릅니다. 특히 저를 사랑하고 따르고 존경하는 사람들은 상상도 하지 못합니다. 저는 그와 같은 죄가 그와 같은 사람들에게 드러나는 것도 두렵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몰라도 끝까지 몰라도 그것을 제가 모를 수는 없습니다. 그 제가 알고 있는 죄가 저에게는 제일 고통스러운 일이고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그 모든 죄악들이 다 사하여졌다고 말씀하십니다. 주홍같이 붉은 죄와 진홍 같이 붉은 죄가 흰 눈 같이 그리고 양털과 같이 희어졌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속죄의 은총은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최고의 핵심입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속죄의 은총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제가 깨끗한 그릇이 되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좋아하시는 귀한 사역들을 담아내고 감당하고 있음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저의 저 된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본래 제 속엔 귀한 것이 없었습니다. 없을 뿐 아니라 귀한 것을 담을 수도 없었습니다. 제 그릇이 너무 더러웠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다시 저를 깨끗게 하여 주시고 깨끗하고 귀한 것을 담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저를 자랑할 수 없습니다. 자랑한다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자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속죄를 믿으며, 그 속죄를 통하여 제가 구원을 얻었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저는 죽어도 그것으로 제 삶이 끝이 나는 것이 아님을 믿습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과 함께 영생할 것을 저는 믿습니다.

저는 지금 제 삶이 너무 좋습니다. 만족스럽습니다. 저는 제가 세상에서 이룰 수 있는 것 보다 더 많은 것을 이루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안정된 삶을 삽니다. 가정적으로도 안정된 삶을 삽니다. 교회적으로도 그리고 목회적으로도 저는 안정된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하루, 하루가 만족하고 행복하고 감사합니다.

저는 가끔 제가 이 세상에서 얼마나 더 살 수 있을 것인가를 계산해 봅니다. 제 계산을 단순합니다. 내가 제일 사랑하고 예뻐하는 우리 손녀들이 시집가는 것을 볼 수 있을까? 우리 손녀들이 낳은 아이를 안아 보고 죽을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세 아들이 나름 자기들이 하는 일에 성공하는 것을 볼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이 저에게 그 복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아도 아무 문제 없습니다. 제가 죽음으로 가게 될 하나님의 나라는 제가 살고 있는 이 세상과 비교될 수 없이 좋고 아름답고 행복한 나라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아내는 일 년에 한 번 정도 뉴욕에 살고 있는 큰 아들 집엘 갑니다. 가서 보통 한 두 주일 정도 지내다 옵니다. 아들 때문이 아니라 손녀들 때문에 갑니다. 올해도 벌써 일정을 잡아 놓았습니다. 일 년에 한 번 뉴욕을 갈 때마다 짐이 이민 가방으로 두 개 정도 됩니다. 아마 이번에도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벌써 집에 사다 놓은 것만 해도 엄청 많습니다. 옷, 장난감, 신발, 동화책 등등 이제 뉴욕 갈 날이 가까워지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자나 먹을 것들을 사다 쌓아 놓을겁니다. 우리 아내의 낙은 손녀 딸들 옷과 장난감을 사는 것입니다. 누가 함께 가면 모를까 혼자 가면서 그 많은 집을 공항에서 찾아서 카트에 싣고 나가는 것이 쉽지는 않은데 아내는 그 수고를 조금도 힘들어 하지 않습니다.

뉴욕에 가는 일은 일 년에 한 번이고 가서 지내는 일은 약 두 주 정도인데 그 때문에 한국에서의 생활이 영향을 받습니다. 우리 아내의 삶을 약간 과장해서 설명하자면 뉴욕에 가는 날과 뉴욕에 가기 위하여 준비하는 날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뉴욕에 가서 아이들과 지내는 날도 행복하지만 그 날을 기다리며 그 날을 준비하는 날도 그에 못지않게 행복합니다.

우리는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사람들입니다. 거기서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게 될 것이고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그와 같은 사실을 믿고 또 거기서 만날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이곳에서의 우리의 삶은 궁극적으로 그 하나님 나라를 내다보고 준비하는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하신 비유의 말씀입니다. 열 처녀가 모두 신랑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신랑이 언제 올는지는 아무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신랑을 맞기 위하여 등불을 켤 기름을 미리 준비해 놓아야만 했는데 미련한 다섯 처녀는 신랑이 더디 오리라 생각하고 기름 준비하는 일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습니다. 지혜로운 다섯 처녀는 신랑이 언제 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언제 오시더라고 문제가 없도록 미리 기름을 준비해 놓고 신랑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느닷없이 신랑이 도착하였습니다. 지혜로운 다섯 처녀는 그 느닷없음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기름을 미리 준비해 놓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다섯 처녀는 그때 허둥지둥 기름을 사려고 하다가 문이 닫혀 잔치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의 말씀을 우리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설명해 주시기 위하여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런 비유의 말씀을 하신 이유를 저는 알 것 같습니다. 그것은 예수님 보시기에 우리가 모두 다 어리석은 다섯 처녀처럼 보이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 예수를 믿는다고 열심히 교회를 다닙니다. 헌금도 하고 봉사도 하고 그럽니다. 그런데 우리는 대부분 현재의 삶에 눈이 어두워 내세를 바라보지 못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생각하지 못합니다. 죽음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마치 죽으면 끝이고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는 믿음 없는 사람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정말 어리석은 다섯 처녀처럼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신랑 되신 예수님 다시 오시고 이 세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 나라의 삶이 시작될 때 그 나라에 들어도 가지 못하고 슬피 울며 이를 갈 사람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재림이 없다면, 우리의 삶과 세상이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과 이 세상에서의 삶이 전부라면, 우리에게 영생이라는 것이 없다면 지금처럼 살아도 아무 문제 없습니다. 그러나 정말 우리가 부활을 믿고, 영생을 믿으며,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의 삶을 믿는다면 지금처럼 살아서는 안 됩니다. 잠시 머물다가 떠날 세상에 온 정신을 다 팔고 살아서는 안 됩니다. 지혜로운 다섯 처녀처럼 신랑 맞을 준비를 해야만 합니다. 기름 준비를 해야만 합니다.

83년 영락교회 부목사로 있을 때 있었던 일입니다. 제 인생과 목회에 매우 중요한 깨달음을 가져다 준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영락교회 부목사로서 가장 중요한 역할은 교구를 심방하는 것이었습니다. 보통 일 주일에 사흘 정도를 일 년 내내 심방을 해야만 했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교구를 심방하면 점심을 대접하는 가정이 꼭 있었습니다. 지금은 대개 식당에서 대접을 하지만 당시는 집에서 점심을 준비하여 대접하는 것이 예의인 것처럼 여겨지던 때였습니다.

제 점심을 준비하기로 한 어느 집사님께서 제 아내에게 전화를 하였습니다. ‘제가 목사님 점심을 준비하게 되었는데요 혹시 목사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음식이 무엇인지를 일러 주시면 그걸 준비해 드리고 싶습니다.’

아내는 끝내 그 질문에 대답을 해 주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무슨 음식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그것이 알려지게 되면 일 년 내내, 아니 평생 동안 심방하며 그 음식만 먹을 가능성이 많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내에게서 답을 얻지 못한 그 집사님은 그냥 자신이 알아서 제 점심을 준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정성이 있어서 그랬는지 입에 맞는 음식이 있어서 점심을 아주 잘 먹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이후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제 입에 맞아 제가 잘 먹었던 그 음식이 다른 교구를 심방할 때도 계속해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이상해서 ‘이 음식이 나를 따라 다니네’라고 이야기를 했더니 그 음식을 준비했던 또 다른 집사님이 제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저도 사모님에게 전화했었는데 안 가르쳐 줍디다. 그래서 뭐 어제 점심한 집에 전화 했지요. 목사님 젓가락이 어딜 많이 가더냐고....’ 참 감동이었습니다. 젊은 목사 점심 그냥 웬만큼 준비하여 대접하면 될 일인데 이왕이면 좋은 것을 대접하겠다고 전에 점심한 집에 전화를 하여 내 젓가락이 어딜 많이 가더냐 묻고 그 음식을 준비해 놓은 정성에 얼마나 깊은 감동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그날 저는 매우 중요한 것 하나를 결심했습니다. 그것은 목회를 저 마음으로 해야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젓가락이 어딜 많이 가는가를 보고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음식을 평생 장만해 드리는 마음으로 목회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부족하지만 그것이 제 평생의 목회가 되었습니다. 제 목회를 한 마디로 정의하고 정리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젓가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기도 어느 지방에서 군소 교단의 연합집회가 연초에 있었습니다. 연초에 모이는 제직 수련회였습니다. 사흘 저녁을 하는 집회였는데 이튿날 점심에 연합회 회장 목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저녁에 일찍 와서 교회 목사님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집회를 하시자고. 약속을 하고 일찍 교회로 갔더니 저를 보신탕 집으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앞이 아찔 했습니다. 

제가 죽어도 먹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보신탕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형제 없이 자라나 개와 고양이를 형제인 줄 알고 살았던 저에게 보신탕이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체면 때문에 먹는 체라도 할 수 없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당황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모면하게 해 주세요. 제가 보신탕 못 먹는 것을 알면 이 분들이 얼마나 무안하시겠습니까?’

보신탕은 처다도 보지 못하고 밥하고 밑에 차려져 있는 밑반찬하고만 밥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기도 때문이었는지 아무도 그것을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신가한 일이었습니다. 무사히 식사와 집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그날 저녁 값을 누가 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회장 목사님이 계산하셨습니다. 회장님 계산을 하실 때 영수증을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영수증을 회계에게 드리면 회계는 그것을 장부에 기록할 터였습니다. 회계는 장부에 뭐라고 기록을 했을까? 

‘강사 접대비’

‘난 안 먹었는데 자기들이 다 먹고 강사 접대비래....’ 이런 생각을 하다가 웃음이 뻥 터졌습니다. 웃음이 멈추어지지를 않아서 고속도록 휴게소 들어가 한 참을 웃다가 다시 운전을 해 집에 돌아왔었습니다. 그날 저는 또 평생 잊을 수 없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습니다. 잘못하면 저런 식으로 목회를 하기 쉽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하나님 핑계를 대고 자기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그것을 목회라고 우겨대기 쉽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런 짓은 하지 말아야 하겠다고 굳게 결심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젓가락을 생각하며 높은 뜻 숭의교회 시절 ‘Buffet just for God'라는 제목으로 14번인가 17번인가 계속해서 설교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좋아하실 만한 사역을 정리하여 한 주일 씩 설교한 것이었습니다. 그 설교를 듣고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사역이 있거든 그것을 붙잡고 평생 잘 준비하여 하나님께 그것을 드리는 삶을 살자는 뜻에서 한 설교였습니다.

저는 정말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그렇게 살다가 하나님께 가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들을 기름 준비하듯 준비하여 드리다가 이 세상을 떠날 때에 하나님 나라에 가고 싶습니다. 이왕이면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실만한 일을 하다가 그 선물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가고 싶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렇게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밤낮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세상에 속한 일만을 생각하다가 점점 나이 들어 하나님 나라에 다 들어가게 되었는데도 죽을 때까지 걱정하지 않고 먹고 편히 놀 생각만 하다가 정작 하나님을 위하여 아무 것도 해 드리지 못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신랑 되신 예수님을 맞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82년도 저는 지금도 참 이해하기 어려운 경험 하나를 하였었습니다. 영락교회 부목사로 성동구를 담당하고 있었는데 80 넘으신 어르신 한 분을 장례하게 되었습니다. 하도 신기한 일이라 그 성함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돌아가시는 날 아침 일어나셔서 집 안과 밖 마당과 길을 다 쓰시고 목욕을 하시고 옷을 갈아 입으신 후 자리를 깔고 누우셔서 시간을 물으셨답니다. 자녀들이 시간을 일러드리니까 ‘조금 남았다’고 말씀하신 후 정말 몇 시간 후 주무시듯 돌아가셨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 이해할 수 없으나 그 분은 당신이 돌아가시는 날과 시간을 알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 어르신처럼 자신의 마지막 날을 안다면 틀림없이 어리석은 처녀처럼 살지 않고 지혜로운 처녀처럼 기름을 준비하고 신랑 맞을 준비를 잘 하는 삶을 살겁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도 그 날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꾸 우리는 그것을 잊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지혜로운 다섯 처녀는 신랑 오시는 시간을 알았던 그 신기한 어르신 같은 사람들이었을까요? 그래서 기름을 준비할 수 있었던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때와 시기를 알지 못한 것은 어리석은 다섯 처녀와 똑 같았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신랑이 언제 오실는지는 알지 못했지만 언제 오시더라도 문제가 없도록 미리미리 기름을 준비해 놓았었습니다. 그랬더니 때를 몰랐지만 마치 때를 아는 사람같이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종말 신앙이라고 부릅니다.

부족하지만 하나님의 젓가락을 생각하며 기름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살다가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신랑 맞을 준비를 하고 있으면 신랑이 오기 전에도 천국이 시작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 아내가 손녀 딸 줄 선물을 준비하고 그것을 모아 놓으면서 이미 행복해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좋은 선물 마련하여 드리려고 살면 그때부터 천국의 삶이 시작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오늘 예수님이 오시면 아무 문제없이, 부끄러움 없이 하나님 앞에서 서실 수 있으실까요? 혹시 여러분은 어리석은 다섯 처녀처럼 신랑 맞을 준비를 밤낮 다음으로 미루고 평생을 땅에서 살 사람처럼 땅만 쳐다보며 땅에 것에만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고 계시는 것은 아닐까요?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제 인생도 벌써 제 손녀 딸 시집 가는 것을 보고 죽을 수 있을까를 계산하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그 시간이 언제인지는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그다지 많이 남아 있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저는 최선을 다하여 그 날을 준비하며 살겠습니다. 신랑 맞을 기름을 준비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이왕이면 하나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것을 준비하며 살다가 예수님 오실 때, 우리 예수님 만날 때 그것을 드리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와 함께 그렇게 사십시다. 세상은 아무리 좋아도 세상입니다. 세상은 하나님 나라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세상은 아무리 좋아도 한 세상일 뿐입니다. 손 털고 빈 손으로 떠나야만 하는 세상입니다. 다 털어야 합니다. 다 놓고 가야만 합니다. 보물은 땅에 쌓은 것이 아니라 하늘에 쌓는 것입니다. 보물을 하늘에 쌓으면 하늘에서만 부요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서도 부요해 지고 하늘에서도 부요해 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젓가락을 생각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정하여 마음껏 하다가 그것을 들고 신랑 되신 우리 예수님 만나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신부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김동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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