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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강권할 수 있는 믿음 (눅 14: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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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북한 청소년 축구팀이 한국에 와서 전지훈련을 하고 한국 팀과 친선경기를 가진 후에 돌아갔다. 그들은 한국사회를 보면서 신기해하고 놀라는 것이 많았다고 한다. 남한 사람들을 만나기만 하면 ‘이거이 뭡네까?’라는 말을 연발하며 질문을 해댔다고 한다. 특히 휴대전화를 보고 놀라고 신기해하면서 휴대전화를 보기만 하면 빼앗아서 이리저리 만져보곤 했다고 한다. 

그들은 특히 시내를 다니면서 빨간 십자가가 많이 있는 것을 보고 ‘저거이 뭡네까?’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래서 십자가라고 하니까 또 ‘십자가가 뭡네까?’라고 물었고 교회라고 하니까 또 ‘교회가 뭡네까?’라고 물었고 교회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모여서 예배하는 곳이라고 했는데도 전혀 이해하지 못하더란다. 갓난아기 때부터 종교와 신앙을 모르고 자랐기 때문에 오직 공산주의 사상만 교육받고 자랐기 때문에 교회와 신앙은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 참으로 기막히고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복음을 전혀 듣지도 못하고 예수님을 알지도 못하고 영생도 모르고, 공산주의가 최고이고 북한이 천국이라고 생각하고 김일성을 하나님처럼 받들고 살다가 죽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들의 영혼이 결국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니 기가 막혔다. 

이렇게 구원도 영생도 모르는 사람들이 비단 이들 뿐이겠는가? 우리 주위에는 아직도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또 듣고도 깨닫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은가? 먼저 부름 받고 먼저 믿은 우리가 그들에게 다가가서 구원의 복음을 전해야 하지 않겠는가?

교회는 어떤 곳인가? 교회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그렇다면 교회는 무엇을 하는 곳인가? 교회는 유람선이 아니라 구조선이다. 교회는 예수 믿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먹고 놀고 즐기는 곳이 아니라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는 일을 하는 곳이다. 먼저 구원받은 사람들이 아직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힘쓰는 곳이 교회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가장 먼저 할 일은 영혼구원이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전도이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열고 많은 사람들을 초청했다. 잔치가 다 준비되어서 초청한 사람들을 오라고 했더니 모두가 핑계를 대고 못 오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당시의 풍습은 잔치를 하기 전에 미리 초청해서 오겠다는 약속을 받고 잔치준비가 다 되면 다시 종을 보내서 초청한 손님을 데리고 온다. 일단 처음에 초청을 받고 승낙한 사람은 두 번째 초청을 거절할 이유가 없다. 아랍인 종족들 사이에서는 두 번째 초청을 거부하면 선전포고로 간주했다고 한다.

화가 난 주인은 종들에게 시내에 가서 거리와 골목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데리고 오라고 했다. 그래도 잔치자리가 다 차지 않았다고 하자 주인은 길가와 산울타리로 가서 사람들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잔치자리를 채우라고 했다. 여기서 잔치를 연 주인은 하나님이고 두 번째 초청을 거절한 사람들은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고 복음을 거절하는 유대인들이다. 그리고 잔치자리에 초청되어 들어간 가난하고 몸이 불편한 사람들은 유대인들이 무시하는 세리와 창녀와 죄인과 이방인들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열어 놓으신 천국잔치를 거절한 사람들은 절대로 그 잔치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들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고 무시하던 사람들이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세 종류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첫째는, 주인의 초청을 거절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주인의 초청을 받고 가겠다고 해놓고 실제로는 가지 않았다. 이 사람들은 다른 일을 그 잔치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고 주인을 무시했다.

둘째는, 초청에 기꺼이 응한 사람들이다. 종들이 시내의 거리와 골목에서 만난 가난한 사람들과 몸이 불편한 사람들은 두말하지 않고 종들을 따라와서 그 잔치자리에 들어갔다. 마태복음 22장에는 이 잔치가 혼인잔치였고 잔치에 초청한 사람도 임금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람들은 자기들은 감히 그런 잔치자리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초청을 받자 즉시 따라갔다. 

셋째는, 초청을 받고 주저한 사람들이다. 종들이 길가와 산울타리로 나가서 만난 사람들은 초청을 받고 선뜻 잔치에 가기를 주저했다. 나 같은 사람을 정말로 그런 잔치에 들어가게 하겠는가 반신반의했을 것이다. 그 초청이 사실이라고 해도 정말로 내가 들어가도 되겠는가 하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우리 교회도 잔치를 준비하고 있다. 온 교회가 태신자를 작정하고 그들을 교회로 초청해서 복음을 듣게 하려고 계획하고 있다.

우리가 이번에 태신자들을 초청할 때도 이런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정작 초청한 사람들은 오지 않고 다른 사람이 올 수도 있다. 꼭 오겠다고 약속하고도 오지 않는 사람도 있고, 전혀 올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한 의외의 사람들이 오기도 할 것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비유와 같을 것이다.

꼭 오겠다고 해놓고도 다른 일이 있다고 가버리는 사람들도 있다. 초청하면 선뜻 대답하고 오는 사람들도 있다. 갈 마음도 있고 가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어서 주저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주인이 종들에게 말한 대로 그런 사람들은 “강권해서” 데려다가 잔치자리에 앉혀야 한다. 
물론 전도는 강요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강요한다고 해서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강권과 강요에 진심이 담기면, 그 강권하는 사람의 진심을 알게 되면 감동을 받고 마음을 열고 움직인다.

전도하면서 상대방이 싫어할까봐, 기분 나빠 할까봐 강력하게 권하지 못했는가? 그러나 그 사람을 사랑한다면 그럴 수 없다. 믿음의 결과가 무엇이고 믿지 않는 결과가 무엇인지 안다면 그럴 수 없다. 강권할 수 있는 신앙, 강권할 줄 아는 믿음이어야 한다. 다른 것은 몰라도 복음만은 강권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믿으라고 강력하게 권할 수 있는가? 첫째, 확신이 있으면 강권할 수 있다. 무엇이 진리인가? 무엇이 사는 길인가? 무엇이 구원의 길인가? 이것을 확실히 안다면 강권할 수 있다. 아니 강권할 수밖에 없다. 이 길만이 진리이고 이 길만이 살 길이기 때문이다. 이 길로 가지 않으면 망하고 죽기 때문이다. 주인의 초청을 거절한 세 사람이 무슨 핑계를 대었는가? 그것이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고 예수를 믿지 않는 이유이다.

첫 번째 사람은 밭을 샀으니 나가보아야 하겠다고 했다. 이것은 그 사람이 물질을 가장 귀하게 여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우리는 물질보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것으로 영혼이 구원받을 수 없고 그것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그러므로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것을 분명히 믿는다면, 이런 확신이 있다면 예수를 믿으라고 강권할 수 있다.

두 번째 사람은 소 다섯 겨리를 샀으니 시험해 보아야 한다고 나갔다. 이것은 그 사람이 일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는 뜻이다. 그러나 사람이 아무리 일을 많이 하고 일을 열심히 해도, 착한 일을 많이 해도 그것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을 열심히 하는 것보다 예수님을 만나고 죄를 용서받고 영혼이 구원받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 사실을 확신한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를 믿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권할 수 있다.

세 번째 사람은 장가들었기 때문에 즉 결혼했기 때문에 갈 수 없다고 했다. 당시 율법에 의하면 결혼한 사람은 일 년간 군대도 가지 않고 다른 일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 사람은 육신의 만족과 쾌락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물론 사람이 결혼도 해야 한다. 결혼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결혼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다. 아무리 결혼을 잘해도 영혼이 구원받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어떤 예수를 믿지 않는 두 청년이 부흥회를 인도하고 있는 목사님을 찾아와서 물었다. “목사님, 벼락도 하나님이 내리시는 것인가요?” “그렇고말고요.” “어제 아주 큰 벼락이 내렸던 것을 목사님도 아시죠? 그런데 벼락은 죄인들을 친다고 하던데요 정말로 그렇습니까?” “그렇지요.” “그러면 우리 집 앞마당에 있던 버드나무가 어젯밤 벼락을 맞아 그만 부러지고 말았는데 그 나무가 죄가 많아서 그런건가요?” 목사님은 ‘바로 이때다’라고 속으로 생각하고 이렇게 말했다. “학교 다닐 때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와서 회초리로 칠판을 탁탁 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야 조용히 하라는 경고지요.” “그런데도 계속 떠들면 어떻게 되지요?” “그러면 벌을 받게 되지요.” “바로 그것입니다. 당신의 집의 버드나무가 벼락을 맞고 부러진 것은 당신이 죄를 회개하지 않고 예수를 믿지 않으면 당신을 치시겠다는 하나님의 경고가 아니겠습니까? 자 결단을 하세요.” 두 청년은 그날 당장 부흥회에 참석해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는 확신이 있으면 강권할 수 있다.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는다는 확신이 있으면 강권할 수 있다. 복음에 대한 확신과 천국과 지옥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강권하라.

둘째, 사랑이 있으면 강권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예수를 믿으라고 그 사람에게 강권할 수 있다. 그 사람의 영혼을 사랑하는 사람이 예수를 믿으라고 강권할 수 있다. 우리는 사람들의 겉모습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겉모습을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사람들의 영혼을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영혼을 사랑해야 한다.

어떻게 다른 사람의 영혼을 사랑할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죄인인 나를 사랑하셔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그 사랑이 내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흘러넘친다. 우리는 내가 받은 예수님의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5:13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어느 집사님이 전도를 많이 하는 분이 전혀 예수를 믿지 않을 것 같은 완고한 친구를 찾아갔다. 그리고 한 번만 붙잡고 기도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친구는 귀찮은 생각에 그냥 그러라고 승낙했다. 그래서 그 친구를 껴안고 기도를 시작했다. 그런데 그렇게 완고하게 버티던 친구가 울기 시작했다. 

내 안에 죄에 빠진 영혼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복음을 강권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사랑으로 일할 때 성령께서 나를 통해서 일하셔서 그 사람의 마음을 녹이시고 마음 문을 여시고 복음을 받아들이게 해주신다.

셋째, 열정이 있으면 강권할 수 있다. 즉 사명에 대한 열정이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예수를 믿으라고 강권할 수 있다.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 나의 사명이라는 것을 깨닫는 사람이 강권하여 복음을 전할 수 있다.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복음전도의 사명을 완수하겠다는 열정이 있을 때 강권할 수 있다.

어떤 목사님이 심방을 갔는데 그 가정의 남편은 얼굴이 매우 곱상하게 생긴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의 아내가 “목사님, 이 사람이 지금은 예수를 믿어서 다행히 저렇게 변했지만 옛날에는 부산에서 유명한 깡패였습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목사님이 “아니, 깡패라면 싸움을 잘해야 되는데 그 체격에, 그 인상에, 그 손으로 깡패대장을 하셨습니까?”라고 했다. 그러자 그 남편이 이렇게 대답했다. “목사님, 싸움을 할 때 ‘나는 오늘 여기서 죽는다’는 결심으로 덤비면 덩치가 세배나 커도 상대가 알아차리고 무릎을 꿇습니다.” 

우리에게 열정이 있으면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다. 내게 맡겨진 일을 목숨 걸고 하겠다는 강한 사명감이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강권할 수 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이 복음을 전하겠다는 열정이 있으면 복음을 강권하며 전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열정에 사람들이 감동해서 마음이 움직인다. 

한 간호사가 물이 가득 들어 있는 물병을 가지고 급하게 복도를 지나가다가 다른 사람과 부딪혔다. 그러자 그 물병에 들어 있는 물이 밖으로 흘러넘쳤다. 이처럼 사람은 자기 안에 가득 차 있는 것이 밖으로 흘러나오는 것이다. 내 안에 확신이 가득 차 있으면 밖으로 나타난다. 내 안에 사랑이 가득 차 있으면 밖으로 흘러내린다. 내 안에 열정이 가득 차 있으면 밖으로 흘러넘친다. 사람들은 확신과 사랑과 열정이 있는 사람에게 감동을 받고 마음을 연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일하는 복음의 일군들이다. 하나님 나라의 잔치 자리는 반드시 채워져야 한다. 잔치 자리를 채우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하나님에게서 잔치 자리를 반드시 채우라는 명령을 받았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나가서 강권해서라도 사람들을 데려다가 자리를 채워야 한다. 
엄마들이 아이에게 밥을 먹이려고 애를 쓰는 것을 많이 본다. 밥그릇을 들고 돌아다니는 아이를 쫓아다니면서 먹이려고 애를 쓴다. 왜인가? 싫다면 그냥 두지 왜 억지로 먹이려고 하는가? 왜 아이가 싫다는데도 자꾸만 먹으라고 하는가? 그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밥을 먹어야 잘 자라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런 사랑, 이런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잃어버린 영혼을 찾기 원하는 마음으로, 집을 나간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심정으로 복음을 전해야 한다. 밤늦도록 들어오지 않는 아들딸 때문에 대문도 잠그지 못하고 늦게까지 잠을 자지 못하는 어머니의 심정으로 강권하며 전도해야 한다.

강권한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강권한다는 것이 막무가내로 강요한다거나 무식하게 밀어붙이라는 것이 아니다. 그런다고 사람들이 오겠는가? 

첫째, 그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다. 내가 작정한 태신자들을 위해 매일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한다. 그들을 위해 안타까운 마음으로 눈물로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만나러 가기 전에 기도하고, 만나러 가면서 기도하고, 만나러 가서 말하기 전에 기도하고, 만나서 말하면서 기도하고, 말을 끝내고 기도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기도하고, 집에 돌아와서 기도하고, 다시 만나러 갈 때까지 매일 매 순간 기도해야 한다. 그래야 만나서 말할 때 성령께서 일하셔서 그들의 마음을 열어주시고 그들의 발걸음이 예수님께로 향하게 해주신다.

둘째, 그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이다. 그들의 마음이 열리고 마음이 움직이도록 사랑으로 섬기는 것이다. 그들을 만날 때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부드럽고 친절하게 대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작은 선물을 정성껏 준비해서 전하며 전도하는 것이다. 우리가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고 친절하게 대하는데 그의 반응이 차가울 때가 있다. 그럴 때 내가 저 사람에게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그래도 그렇게 해야 한다. 예수님을 믿는 길만이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그 사람의 영혼이 구원받을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다.

셋째, 그들을 설득하는 것이다. 간절한 마음으로, 사랑의 마음으로 그리고 확신을 가지고 그들을 설득해야 한다. 진정으로 그들의 영혼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말로 설득해야 한다. 꼭 예수님께 나오라고 강력하게 설득해야 한다. 그러나 설득이나 강권은 사람의 노력과 힘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성령께서 함께 하셔야 하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께 순종해서 복음을 전하면 성령께서 내 표정과 내 말과 행동에 함께 하셔서 열매를 맺게 해주신다. 

어떤 할머니가 아침마다 옆집 사는 젊은 부부를 찾아가서 기도했다. 한두 번도 아니고 매일 찾아가서 꼭 기도를 했다. 그들이 교회에 나올 때까지 그렇게 하기로 작정했다. 그러나 젊은 부부는 자기들은 교회에 안 나가니까 오시지 말라고 하면서 매번 짜증을 부렸다. 그리고 견디다 못해서 이사를 가려고 집을 내놓았다. 그런데 집이 나가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집이 나갈 때까지만 교회에 나가기로 합의했다. 그런데 결국 그 집 남편이 장로가 되었다고 한다.

내 안에 확신이 있고 사랑이 있고 열정이 있으면 성령께서 나를 통해서 일하신다. 나는 순종만 하고 일은 성령께서 하신다. 내가 순종해서 전도하기만 하면 성령께서 나를 통해서 그 사람의 심령을 강권하시고 열매 맺게 하신다.

저도 여러분을 강권한다. 이것이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고 가장 원하시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먼저 믿은 우리들의 최고의 사명이기 때문이다. 이 일을 잘하면 칭찬과 상급을 받지만 이런저런 이유와 핑계를 대고 이 일을 하지 않으면, 이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우면 하나님께 책망과 징계를 받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저도 여러분에게 전도하라고 강력하게 권한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태신자를 작정하고 모두가 열심히 전도에 힘쓰라.

여러분이 얼마나 바쁘고 살고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지 알지만 강권한다. 이 복음을 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지금이 가장 중요한 때이기 때문이다. 깨어 기도해야 전도도 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한 주간 동안 열심히 전도하기를 강력하게 권한다. 그동안 작정하고 기도하던 태신자들을 이번 주간에는 꼭 찾아가서 만나서 이번 주일에 꼭 나오도록 강력하게 권하라. 지금이 바로 그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야 할 때이고 내가 그에게 전도할 때임을 깨닫고 강권하여 전도하라.

주일 오후가 되면 늘 거리로 나가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전도지를 나누어주는 한 그리스도인이 있었다. 그런데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어느 주일 오후, 몹시 피곤했던 그는 서재에서 조용히 쉬고 있었다. 그때 그의 어린 아들이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빠, 오늘은 왜 전도지를 나누어주러 나가지 않으세요?” “비가 너무 많이 오는구나.” 그는 가볍게 대답했다. “아빠, 그럼 비 오는 날에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구원하지 않으시나요?” 놀란 그가 아들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비가 너무 많이 내릴 때는 거리에 사람들이 별로 없단다. 게다가 아빠는 지금 몹시 피곤하거든.” “아빠, 그렇다면 제가 아빠 대신 나갈까요?” 아들의 진지한 모습을 본 그는 전도지를 주면서 다 나누어준 후 곧장 집으로 오라고 했다. 그러나 그 전도지를 다 나누어주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마침내 소년의 손에 한 장의 전도지가 남게 되어 그는 가장 가까운 집을 찾아가서 문을 두드렸다. “누구시죠?” 몹시 침통한 표정의 여인이 문을 열었다. 소년은 얼굴에 큰 웃음을 띠고 공손하게 말했다. “미안해요, 아줌마, 저는 아줌마에게 이 전도지를 전해 드리려고 왔어요.” 그리고 다음 주일 예배시간에 목사님이 주님의 은혜를 간증하고 싶은 분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때 한 여인이 일어났다. “저는 남편과 아들을 잃어버린 후 인간의 모든 고통을 맛보았습니다. 오랜 갈등 끝에 저는 자살을 결심했습니다. 비가 많이 오던 주일 밤, 목을 맬 준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문을 열어보니 거기에는 밝은 표정의 작은 천사가 서 있었습니다. 그는 저에게 전도지 한 장을 주었습니다. 그것을 읽으면서 저는 하나님이 저를 버리지 않으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23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강권할 줄 아는 신앙이 올바른 신앙이다. 강권할 주 있는 믿음이 살아 있는 믿음이다. 복음에 대한 확신을 가지라. 사랑을 회복하라. 열정을 불태우라. 그리고 사람들을 강권하라. 기도로 강권하라. 사랑으로 강권하라. 설득으로 강권하라. 그래서 하나님 나라의 잔치 자리를 빈자리가 없도록 가득 채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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