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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르짖게 하시는 하나님 (시 107: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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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짖게 하시는 하나님 (시 107:17-19) 
 
“17. 미련한 자는 저희 범과와 죄악의 연고로 곤난을 당하매 18. 저희 혼이 각종 식물을 싫어하여 사망의 문에 가깝도다 19.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구원하시되”(시 107:17-19) 

I. 본문해설 

본문은 누구의 시인지 정확하게 규정하기 어렵지만, 이 시인은 언약 백성으로서의 삶의 많은 굴곡을 겪었고 거기서 하나님이 어떻게 자기를 책망하고 용서하고 인도하시는지를 경험하였다. 시인은 곤고한 사람이며, 그 사람이 고통 가운데 하나님 앞에 괴로워 하는 그림이 등장한다. 


II. 곤고함의 원인: 미련함 

A. 곤고한 자의 고통 

시인은 이 곤고함의 원인이 ‘미련함’ 때문이라고 못 박으면서 그 곤고한 자의 고통을 구체적으로 서술해 간다. “저희의 혼이 각종 식물을 싫어하여 사망의 문에 가깝도다” 라고 말이다. 사람이 근심과 염려에 가득 차서 곤고하게 되면 먼저 먹기가 싫어진다. 그래서 음식을 통해서 넘치는 힘을 공급받아야 될 의욕을 상실한다. 여기에서 식물을 싫어한다고 하는 것은 넘치는 마음의 곤고함 때문에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사람의 모습을 나타낸다. 사망의 문이 가깝다고 할 때, 여기서 ‘문’은 권세와 위엄의 상징이다. ‘사망의 문에 가깝다’ 라고 하는 것은 사망의 기운이 이미 자기를 큰 힘으로 지배하고 있고, ‘문에 가깝다’는 것은 죽음에 매우 가까이 와 있음을 뜻한다. 그런 죽음의 기운이 마음과 영혼뿐만 아니라 육체에까지 깊이 스며들어 삶의 모든 의욕을 잃어버린 상태가 오늘 시인이 그려내고 있는 이 사람의 상태이다. 

B. 범죄와 죄악의 결과 

언약 백성이고 하나님의 자녀임에도 불구하고 왜 이 사람은 이렇게 식물을 싫어하고 사망의 문에 가까워 곤고한 자로 고통을 받는 처지에 놓이게 된 걸까? 언젠가는 이 시인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넘치고 생명력 있는 축복 속에서 믿음의 삶을 영위한 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 식물을 싫어할 정도로 영혼이 지치고 사망의 문에 있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시인은 다른 곳에서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이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그려지는 그림은 죄를 짓고 손발이 쇠사슬에 묶여 꼼짝도 못한 채 깊은 지하 감옥에 갇혀 있는 죄수의 모습이다. 

성경에서 이렇게 곤고한 자가 고통을 받는 것은 ‘범죄와 죄악의 결과’ 라고 못 박고 있다. 그래서 성경은 “저희의 범과와 죄악의 연고로 고통을 당하매” 라고 말한다. 우리는 고난을 당할 때마다 내가 무엇을 잘못해서 이런 고난과 시련의 열매를 거두게 되었는지 돌아보고, 하나님 앞에 자기를 돌아보고 회개하는 기회를 가지며 겸손해져야 한다. 우리가 당하는 고난 속에서 또 다시 사람을 원망하고 죄 위에 악을 더하고, 불신앙의 죄를 더하는 것은 매우 불행하고 잘못된 것이다. 오히려 고통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 앞에 깊이 회개하며 고난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음성이 무엇인지를 듣고 헤아릴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주님은 우리가 올바르게 살지 못할 때 다시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 주님은 여러분들의 심령을 돌아오게 하시기 위하여 수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시고, 인격적으로 여러분들의 이름을 부르며 당신의 사랑으로 돌아오라고 가르치신다. 하나님은 다양한 방법으로 여러분들의 양심의 목소리를 듣게 하시고, 예배를 드리며 설교자의 하나님 말씀에 대한 가르침을 통해 깨닫게 하시며 성도들과의 교제를 통해서도 하나님은 여러분의 인격에 끊임없이 호소하시고 주님의 애끓는 음성을 들려주신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범죄하고 하나님을 멀리 떠나서 마음은 이미 이 세상의 욕심으로 분탕질하고 있기 때문에 세밀한 주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시련과 고난이 겹칠수록 하나님과 고요히 대면하고 그 분께 간절히 기도하는 시간들을 더 많이 가져야 한다. 기도의 열렬함의 깊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깨달음의 깊이와 비례한다. 시련과 고난이 깊을수록 온 마음을 다하여 예배를 드려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나님의 자녀의 큰 특권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시고 그리스도가 우리의 신랑이시니 우리가 그 신랑을 의지하여 아버지 앞에 나아가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빌 때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진심을 기억하고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향한 무한한 죄의 용서와 순종하기 위해서 필요한 무한한 하나님의 은혜를 약속하셨다. 회심을 한 후에 가장 뼈저리게 후회가 되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주님께 돌아오기 전까지 내가 겪은 인생의 많은 시련이었다. 주님을 믿은 후 과거를 돌아보니 나의 인생에 일어났던 수많은 시련들은 주님이 나를 안타깝게 당신께로 돌아오라고 부르시는 음성이었다. 

C. 지혜없음 

미련하다는 것은 지혜가 없는 것을 가리킨다. 지혜는 무엇일까? 자연적인 지혜와 신령한 지혜가 있다. 자연적인 지혜는 이 세상에서 사물들의 질서, 인생을 사는 자연적인 질서에 대한 이해를 가리키는 것이다. 지혜 없는 사람은 순간 순간 일어나는 세상의 변화무쌍한 사실들에 마음을 빼앗기느라고 그 뒤에서 모든 것들을 움직이고 있는 커다란 질서들을 올바르게 보지 못한다. 그것이 이 세상에서의 지혜 없음이다. 그러나 오늘 시인이 말하는 지혜는 신령한 지혜이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 진리의 빛도 사랑하는 사람이다. 항상 하나님의 말씀의 빛 아래에서 은혜를 받으면서 사람을 보고 상황을 볼 수 있는 지혜이다. 이것이 있을 때 곤고한 인생을 살지 않는다. 진리의 말씀이 우리 안에 살아 있을 때는 모든 판단이 분명하다. 시인이 미련하게 되었기 때문에 범죄와 죄악 속에서 고난을 당하며 절망 속에 빠져들게 된 것이다. 


III. 부르짖게 하시는 하나님 

이런 사람을 고치는 방법으로 오늘 성경은 ‘부르짖게 하시는 하나님’ 이라고 가르친다. 간절하게 부르짖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망가진 것들을 고치신다. 기도는 영혼의 활발한 운동이다. 우리 심령의 피의 펌프질이다. 그런데 졸고 자면서 드리는 형식적인 기도는 털끝만큼도 우리 영혼의 근육을 움직이지 않는다. 오래 기도하는 척해봐야, 나는 그래도 기도 하는 시간이 있다라는 교만이 쌓일 뿐이지 영혼에는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말씀의 감화를 받으면서 하나님 앞에 곤고하고 고통스러운 환경 속에서 영혼을 하나님 앞에 고정시키고 간절히 부르짖는 것이다. 마치 이 세상에서 삶과 죽음을 초월하고, 이 세상에 있는 어떤 것들에도 집착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 한분을 만나야 되겠다는 결심으로 마음을 다해 눈물로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리는 것이다. 주님이 제일 싫어하는 것은 씩씩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 의지하지 않고 혼자 씩씩하게 살아갈 때 하나님은 크게 넘어지게 하신다. 

IV. 결론 

간절한 부르짖음 속에서 우리의 마음 갈피 갈피에 끼었던 더러운 악과 삶의 불결한 동기들을 쏟아내는 것이다. 간절히 하나님 앞에 매달려 기도하는 것이다. 주님은 이렇게 간절히 부르짖을 때까지 곤고한 가운데 살아가는 우리들을 내버려 두신다. 그래서 하나님 의지하지 않고 살았던 많은 날들이 얼마나 커다란 죄인지를 깨닫게 하시고 지금도 하나님은 당신께 부르짖는 사람들을 불러 다시 용서해주시고 다시 살 수 있도록 하나님이 힘을 주신다. (김남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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