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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잠깐 쉬어라 (창 2:1-3, 막 6:30-34) - 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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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쉬어라 (창 2:1-3, 막 6:30-34)

우리는 두주간에 걸쳐서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난 많은 재난의 소식을 듣고 있습니다. 지난 22일 노벨상의 나라 노르웨이에서는 정부청사가 폭탄테러로 허물어지고 7명이 사망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곧 동일의 범인은 가까운 곳에 야외의 청소년 수영장에 가서 경찰 복장을 하고 가서 청소년들을 불러 모은뒤에 무차별 총기를 난사해서 많은 젊은이들이 생명을 잃었습니다. 도합 그로인해서 91명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무슬림이 자기나라에 이주하는 것을 반대하는 극우주의자라고 밝혀지고 있습니다. 

또 지난 23일에는 중국 고속열차가 추돌사고를 일으키고 다리난간에서 추락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35명 이상이 숨졌고 250여명이 사상을 겪는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중국은 경제가 발전하면서 고속열차를 자랑했지만 결국 그들이 자랑하던 고속열차는 벼락한방에 정차하게 되고 통신장애를 일으켜서 앞에 서있는 열차를 못보고 뒤에차가 들이받아서 그렇게 엄청난 사고를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이것도 어찌보면 준비없는 발전만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인재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또 지난 화요일부터 시작된 경기 수도권과 집중호우로 인해서 많은 사람이 고통을 겪었습니다. 적어도 70여명이 사망당했다는 보도를 접하고 있고 수천명의 이재민이 발생을 했습니다. 우리교회 청소년부도 교통이 다 통제되었기 때문에 올림픽대로, 강변북로 모든 도로를 이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마석기도원을 가지 못하고 교회안에서 수련회를 마친 그런일도 있었습니다. 

왜 이렇게 한반도에 물붓듯이 비가 한꺼번에 쏟아질까 정확한 이유는 아무도 모릅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설명할 뿐입니다. 어떤 놀라운 기후의 이변이 우리에게 다가왔고 온난화로 인해서 한반도가 아열대기후로 변화되고 있는 과정에 있지 않은가 추측을 해볼 뿐입니다. 그러나 이번 집중호우로 인한 많은 사고 사망자들은 어찌보면 인재에서 인간의 실수로부터 온 그런 비참한 결과라고도 말할 수 있겠습니다. 

여러분이 잘아는 우면산 개발은 참으로 무차별하게 이루어졌고 그것은 오늘의 화를 자초한 결과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찌보면 우리사회속에 팽배해있는 속도를 중시하고 개발 지상주의에 빠져있고 성장위주의 모든 개발이 주는 경고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이번 수해를 바라보면서 인간이 쌓아놓은 문명이라는 것이 자연앞에서 얼마나 무기력하고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가를 다시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한 하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발전의 모델과 같은 강남 가장 중심부에 가장 번화가에 물폭우가 이루어져서 모든 것이 침수되어지는 그런것을 볼 때 인간의 문명이 발전할 수록 하나님을 점점더 떠나가는 이면에 경고를 주지않는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사실 우리 사회는 대한민국은 여유가 있는 민족이였고, 전통을 자랑하던 민족이였습니다. 그래서 옷을 입어도 넓은 도포자락 실용적이 아닌것 같지만 넓은 도포자락의 여유와 미소가 있었던 민족이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잘못된 문화병에 걸려서 빨리빨리 문화, 조급함, 안달, 인내심부족, 이런것들이 우리 사회에 우리 가정에 두드러지는 문화적 병이라고도 말할 수가 있습니다. 

예전에 어르신들은 밥을 지어도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쌀을 잘 씻어서 때로는 안쳐놓습니다. 하루전날 안쳐놓거나 아니면 한시간전에 물에 재워놓습니다. 적당이 불게한 다음에 밥솥에 밥을 안칩니다. 그리고 군불을 땝니다. 그렇게 해서 잘 끓고 김이나고 소리가 날 때 불을 서서히 없앱니다. 그리고 불없는 상태에서 뜸을 꽤 오래 들입니다. 그러면 맛있는 밥이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게 복잡하게 밥을 만드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전기코드 전기밥솥에 꼽으면 되는 것이고, 그저 압력밥솥에 꼽으면 밥이 빨리되는 그래서 예전에는 느끼지 못하는 밥의 차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런 밥문화가 아니라 젊은이들 중심으로 라면문화로 바꿔졌습니다. 패스트문화, 인스턴트식품, 빨리 끓여서 빨리먹고 빨리 일하고 빨리 돈벌고 빨리 성공하고 빨리 출세하기 위해서 이런것들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점점 우리속에 찾아 오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떤 문화 평론가는 우리 사회에 깊이 들어온 라면문화가 우리를 조급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 하는 그런글도 썼습니다. 우리 사회에 있는 라면만 해도 엄청나게 종류가 많습니다. 그걸 숫자별로 보니까 일 일번지 라면, 이 이백냥라면, 삼 삼양라면, 사 사발면, 오 오양면, 육 육개장라면, 칠 세븐라면, 팔 팔도라면, 십 열라면까지 라면의 종류만해도 어마어마하게 많습니다. 

어찌보면 이것은 빨리먹고 일하는 조급함의 문화속에서 온 결과라고도 하겠습니다. 그러다보니 인터넷에 사도신경대신 라면신경이 나왔습니다. 라면을 신봉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것 같습니다. 전능하사 안성탕면을 만드신 농심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신라면을 믿사오니 이는 분말스프로 잉태하사 건더기 스프를 낳으시고 불위에 끓는물에 고난을 받으사 상위에 오르시고 죽은지 3분이면 쫄깃한 면으로 다시 살아나사 배고픈 자의 배를 부르게 하오시며 몸이 다시사는 것과 먹은 김치와 더불어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그리고 아멘대신 라면 그럽니다. 우리의 조급함을 풍자하는 조크도 인터넷에서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모두가 다 그렇습니다. 여러분과 저도 다 이 병에 걸려 있습니다. 교회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면 저도 습관적으로 해봐야 제방 일층에서 4층, 5층인데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그런데 습관적으로 빨리닫기를 누릅니다. 어느날은 누가 타고 있습니다. 안누르고 점잖케 있었더니 뒤에서 누군가 벌써 눌러놨습니다. 그리 급하지도 않은데 빨리 닫기를 누르고 급하게 내려가야 별볼일도 없는데 또 빨리 닫기를 누르고 왜 그럽니까. 빨리갈 이유도 없는데 습관적으로 빨리 닫기를 눌러서 조급함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속도병이 우리사회에 병폐중에 하나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정말 빠른 것만이 좋은것이냐?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느림의 미학도 있는 것이고 때로는 멈춰서 자신을 돌아보고 때로는 휴식을 갖는 그런 관조의 모습도 필요하다 하는 것입니다. 

이런  조급함을 아시는 주님께서 오늘 우리들에게 성경을 통해서 너희가 쉬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쉼이 없는 우리들에게 분주함과 스트레스와 긴장과 조급함속에서 살았던 우리들에게 가던길을 멈추고 좀 쉬어라 그리고 자신을 돌아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무척이나 바쁜 삶을 사셨던 분이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삶이 3년이라는 공생에 안에 농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1장에 보면 그분은 새벽 미명에 나가서 한적한 곳에 나가서 기도했습니다. 하루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가르치고 복음을 증거하시며 그리고 많은 병자들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계신곳마다 물밀듯이 병자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외면하지 아니하시고 한사람 한사람 다 치료해주시고 말씀을 전하시며 그들을 돌려보내십니다. 또 때로는 사마리아 수가성을 지나다가 예수님께서는 행로에 곤하여 휴식하기도 하셨습니다. 

마침 점심을 굶으셨기 때문에 제자들은 동네에 밥을 얻으러 내려갔습니다. 그 사이에 한 여인이 와서 물을 길을 때 예수님은 쉬는 시간에도 그 여인과 대화를 시작하십니다. 목마름에 허덕이는 그 여인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그에게 소개해 주십니다. 그 여인은 예수님을 만나고 너무나 반가워서 물 양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내가 메시아를 만났다고 많은 사람에게 주님을 소개하게 됩니다. 또 예수님은 배를 타고 건너실때도 행로에 고물에서 주무신적도 있습니다. 아마 몹시 피곤하셨기 때문에 짬만나면 쉬기도 하셨습니다. 아마 성경에는 없지만 때로 코를 골며 주무셨을지도 모릅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오늘 제자들을 향해서 너희가 잠깐 쉬어라라고 말씀합니다. 

마가복음 6장 30절부터 32절입니다. 사도들이 예수께 모여 자기들이 행한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하니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 이에 배를 타고 따로 한적한 곳에 갈새. 예수님은 제자들을 말씀으로 무장시키셔서 그들을 파송하셨습니다. 때로는 그들에게 귀신을 내어쫓는 능력도 주셨습니다. 

이제그들은 가서 신나게 사역을 했습니다. 제자들이 와서 보고합니다. 자기들이 와서 행한것과 가르친것을 낱낱이 보고했다. 그런데 예수님이 보시니까 그들은 너무나 지쳐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특별한 휴가명령을 내리십니다.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가서 잠깐 쉬어라. 아마 오고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들은 음식도 거른채로 예수님께 달려와서 보고에 열중이였던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배를 타고 한적한 곳에 가시는 모습을 성경은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왜 제자들에게 휴식을 명령하셨을까. 창세기 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6일동안 천지를 창조하신후에 마지막 7일째 안식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들도 안식하는 거룩한 날로 안식일을 정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일에 하나님께 나와서 육체적인 쉼을 얻으며 영적인 회복을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와 예배함으로 우리 영혼이 재충전을 받고 가능하면 주일날은 육체적인 일을 하지 않도록 우리는 노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쉬셨기에 우리도 쉬어야 하는 것입니다. 왜 주님께서는 특별히 제자들에게 쉼을 명령하셨을까. 왜 우리에게 쉼이 필요할까요. 

첫째는 살아온 날을 돌아보기 위해서 우리에게 쉼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사역에 바쁜 제자들은 이제 보고하기에 열심히였지만 그들은 사역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돌아볼 여유를 갖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잠시 쉬면서 우리의 사역을 점검해보자. 우리가 얼마나 바르게 사역하고 있는지 혹 우리가 돌이킬 것은 없는지 한번 반성해보자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서가신 어르신들은 그저 보릿고개를 경험하시면서 살아오셨습니다. 그분들의 삶의 목적은 자식들을 굶기지 않고 먹이는 것입니다. 어떻게든 책가방 들려서 학교에 보내면 부모가 할 일은 다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휴식없이 앞만 보고 달려갔습니다. 어찌보면 우리들의 세대에도 그럴 것입니다. 좀 더 돈을 모으기 위해서 좀 더 빨리 집장만을 하기 위해서 좀더 좋은 차를 사기 위해서 좀더 성공하기 위해서 우리는 앞만보고 달려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님께서는 너희가 잠깐 한적한 곳에 가서 쉬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고도원이라는 청와대 비서를 지냈고 지금은 인터넷상에 많은 명상의 글을 올리는 아침편지 저자는 그런 말을 했습니다. 자동차로 말하면 가장 위험한 차는 브레이크가 고장난 차입니다. 멈춰야할 때 멈추지 못하면 사고가 발생합니다. 인생의 쉼표는 브레이크와 같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합니다. 가장 위험한 차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브레이크가 고장난 차입니다. 멈춰야 할때 멈추지 못하는 차는 앞만 보고 질주할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인생에 가장 큰 위험은 쉼이 없는 인생입니다. 그저 앞만보고 달려가는 사람들, 어느날 병원에 갔더니 중병의 선언을 받습니다. 왜? 몸이 너무 지쳐있어서 신경계에 호르몬계에 이상이 올수도 있습니다.  또한 내 영혼이 영적 위기를 경험할때도 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자식들을 위해서 앞만보고 달려왔는데 깨어나 보니까 자식들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자식이 아무도 없습니다. 때로는 아내마저 내 곁을 떠나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쉼이 없는 삶입니다. 내가 살아온 삶이 정말 바르게 살아왔는가 내가 잘못한 일은 없는가 돌아볼수 있는 쉼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목회에도 쉼은 필요할 것입니다. 제가 지금도 젊지만 더 젊었을 때 열심히 일할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는 쉼이라는 것은 사치처럼 여겼습니다. 저는 월요일이면 교역자들이 쉬는 날이지만 월요일도 어김없이 출근합니다. 그리고는 교회를 떠나지 않습니다. 집에 앉아 있으면 꼭 죄짓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교회나와 있어야지 뭔가 일거리를 찾아야지 뭐라도 해야지 하나님앞에 충성한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떤 글을 읽다보니까 쉬는 것도 목회라는 좋은 말이 있었습니다. 제가 그래서 그 말의 도움을 많이 받습니다. 쉬는 것도 목회다, 내가 충분히 쉬어야지 사역할 때 최선을 다해 사역할 수 있지 목사가 건강해야 교회가 건강할 수 있지 저는 그런 생각을 하곤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도 때로는 가던길을 멈추고 자신의 살아온 길을 돌아보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왜 쉼이 필요합니까? 살아온날을 돌아보고 감사하기 위해서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에게 왜 쉼이 필요할까요? 바른 방향을 점검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무작정 앞만보고 질주해 왔습니다. 그런데 속도보다 더 중요한것은 방향입니다. 달리기 선수가 달려야 하지만 만약에 뒤돌아서 달린다면 실격일 것입니다. 푯대를 향해서 목표를 향해서 달려가야 합니다. 어찌보면 현대인들의 모습은 목표를 상실한 이탈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 돈을 벌어야 되는지, 왜 달려야 되는지, 때로는 그 의미조차 모른채 무작정 달려가는 것입니다. 달려가지 않으면 이탈할까봐 두려움이 내게 있기 때문입니다. 

독일의 인문과학전문기자인 월리스나빌이라는 휴식이라는 책을 근간에 내서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만은 그분이 그런말을 했습니다. 현대인들은 번아웃신드롬에 빠져있다. 언제 어디서든지 인터넷에 접속가능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져있고 남에게 뒤쳐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고 신력을 증명해야 한다는 끝없는 중압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긴장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게 현대인들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디가도 핸드폰을 놓고오면 불안합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현대 문명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방향이 바른가에대해서는 묻지 않습니다. 왜 인기있는 가수와 탤런트들이 수없이 자살하고 있습니까 그들은 바른 목적을 설정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인기를 얻고 환호성을 받고 돈을 받고 출세하는 것이 그들의 목적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어느순간 인기가 시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방송사가 더 이상 자신을 찾지 않을 때 삶의 의미를 잃어 버립니다. 인기없는 내가 살아서 뭐하나. 예전에는 길거리에 가면 사람들이 막 누구라고 알아봤는데 이제는 길거리에 나가면 별로 알아보는 사람도 없습니다. 삶의 의미를 못느낍니다. 그래서 우울증에 빠집니단. 잠을 이루지 못하고 수면제를 먹어야 하고 그러다 결국 자살을 시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른 목적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보면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카터대통령을 존경합니다. 대통령은 그의 인생의 목적이 아니였습니다. 그는 대통령을 하야한후에도 얼마든지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는 집짓기 운동을 통해서 수많은 사람에게 집을 지어주고 자신을 필요로하는 곳에 어디든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는 인생의 목적을 바로 알기 때문입니다. 어찌보면 우리는 많은 업적주의에 빠져서 소중한 가치, 생명의 가치, 삶의 의미의 가치를 잃어버리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른 방향을 점검하기 위해서 우리는 잠시 멈춰서 휴식해야하는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왜 우리에게 쉼이 필요할까요. 지혜와 힘을 얻기 위해서 쉼이 필요합니다. 

미국 유명한 IT회사의 CEO는 그 사람은 뭐를 하다가 잘 안되면 일년에 한번씩 휴가를 떠나는데 한달씩 휴가를 떠난다고 합니다. 그는 단촐하게 가서 그는 휴가동안 마음껏 책읽고 쉬면서 자연을 감상한다고 그럽니다. 그런데 자신이 사무실에서 스트레스받으며 바쁘게 돌아갈때는 떠오르지않던 아이디어가 그렇게 마음놓고 쉬면서 정말 놀라운 아이디어들이 번뜩번뜩 떠오른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이템 하나를 잡으면 그거 가지고 돌아와서 십만명이 넘는 자기회사 직원들을 벌어먹인다는 것입니다. 휴식이 지혜를 준다는 것입니다. 

참된 지혜라는 것은 자연과의 대화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데서 참된 지혜를 발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어찌보면 우리에게 재충전이 필요합니다. 우린 너무나 지쳐있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에겐 쉼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리크리에시션이라는 말은 재창조라는 휴식이라는 것은 재창조라는 창조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혹은 리프레쉬 나자신을 새롭게 한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책을 읽다보니까 계곡에 나무를 자르는 찍는 두 젊은이가 있었다고 합니다. 한사람은 열심히 일만합니다. 점심먹는 시간 20분외에는 열심히 일만합니다. 그는 쉬지않고 일합니다. 그런데 또 한사람은 하루에 네 번정도 넉넉히 쉬면서 일을 합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나무를 자른것을 비교해봤더니 넉넉히 네 번씩 쉬면서 일한 사람이 훨씬 많은 나무를 잘라 놨다는 것입니다. 이상해서 나는 점심시간도 아껴가면서 나무를 잘랐는데 나는 왜 이렇게 적느냐고 많은 사람에게 물었더니 그 사람이 그렇게 말합니다. 나는 쉬는동안에 그냥 쉰것이 아니라 내 도끼 날을 갈았다네 날카로운 도끼를 가지고 나무를 자르니까 짧은 시간에 더 많은 나무를 자를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에게는 쉼이 필요한 것입니다. 

성경에도 엘리야처럼 탈진되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를 로뎀나무에 누이시고 물과 고기를 날라주셔서 그로하여금 충분히 쉬게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가 힘을 얻으니까 다시 올라가서 그의 마지막 사역을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찌보면 우리 인생에 이런 쉼의 때가 필요하지 않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8월 첫주는 많은 분들이 휴가를 떠나는 시간입니다. 아마 어떤 분들은 휴가대신 수해복구 현장에가서 구슬땀을 흘리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굉장히 의미있는 일입니다. 남을 위해 땀을 흘리면서 내 삶이 재 충전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어떤분들은 기도원집회에 가셔서 영적인 은혜를 받기를 원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세상의 복잡한 삶을 벗어나서 3박 4일동안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만 듣고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기도에 전념한다는 것은 내 인생에 굉장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요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지난 금요일 심야기도때 간증했던 집사님도 그런간증을 했습니다. 내가 지금까지는 평범한 신앙의 삶을 살았지만 내가 마석기도원 집회에 가서 은혜를 받고 내 인생이 변화되었다고 그런 놀라운 간증을 했습니다. 물론 교회에서도 변화를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도 서로 체면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아니 저사람이 언제부터 저렇게 시끄럽게 기도했대. 남을 의식하기 때문에 마음놓고 기도하거나 회개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모르는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마음놓고 밤을 새며 산에가서 고요한 장소를 찾아서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거기서 많은 분들이 은혜를 체험하고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런 영적은혜의 기회로 이 한주간을, 여름을 삼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또 여러분들이 이번 여름휴가나 가족들이 함께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을 때 가족의 소중함을 발견할 수 있으면 더 좋겠습니다. 

일본에 쓰나미가 작년에 덮쳤을 때 그런 이야기가 신문에 실렸습니다. 쓰나미가 닥쳐올 때 어디로 달려갔을까요? 어떤 사람들은 저금통장을 향해서 어떤사람들은 자기 일을 향해서 아닙니다. 그들은 그 모든 것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자기 가족을 향해 달려갔다고 합니다. 가족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는 것이 그들의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였습니다. 

여러분들이 이번 휴가를 통해서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현대사회는 가족이 점점해체되어 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명, 네명이 한 가정의 울타리속에 사는 가정이 많지 않다고 합니다. 이제는 절반 이상이 한명내지 두명이 한 가구를 이루고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울리는 가정이 점점 파괴되어가고 해체되어가는 현상속에 있습니다. 휴가때만이라도 온 가족이 함께 시간을 나누고 가족의 중요함을 재발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번 포천에 산사태가 나서 동창들이 휴가를 갔다가 참변을 당한 기사를 여러분이 읽었을 것입니다. 남자분 5분이 동창생이고 부인들과 함께 열명이 꼭 여름이면 펜션이나 조용한 곳을 찾아갔다고 합니다. 이번에도 포천에 산밑에 조용한 가옥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남편들은 밖에 마루에서 주무시고 아내들은 안방에서 자고 있었는데 그때 산사태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아름드리 나무가 이 집을 덮쳤습니다. 남자들은 다 탈출했습니다. 여자분 5분중에 2명은 간신히 탈출했습니다. 하지만 3명은 헤어나오지 못했습니다. 한사람은 아름드리나무에 맞아서 즉사했고 두 사람은 흙더미속에서 찾아내어서 몇시간동안 숨이 붙어있었지만 핸드폰도 안되고 연락도 안되는 바람에 5시간후에야 구조대가 오는 바람에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마지막까지 흙더미속에서 남편이 아내의 손을 붙들고 여보 죽지마 여보죽지마 하면서 소리쳤다고 합니다. 

가장 위급한 순간에 마지막 순간에 무엇이 중요했을까요? 내 아내와 내 가족이 가장 중요했다는 것입니다. 가족처럼 소중한 것이 어디있겠습니까. 바쁘고 분주해서 가족에게 좀 소홀히 했다면 여러분이 보내는 짧은 시간의 휴가일지라도 가족과 함께 보내면 얼마나 의미가 있겠습니까. 가족처럼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진정한 행복이란 많은 물질을 얻는데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넓은 집, 큰 집, 비싼 집에 산다고 반드시 행복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몇일전 신문을 보니까 이집트에 행복한 쓰레기 마을이라는 기사가 났습니다. 이집트 외각에 한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은 쓰레기 마을로 불린답니다. 이집트 사람들은 이슬람을 믿기 때문에 그들은 무슬림을 자처합니다. 그래서 기독교인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살데가 없어서 도시 외각에 판자촌같은데에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그들이 하는 일은 다른 직장도 얻지 못하고 카이로에서 나오는 쓰레기의 삼분의 일을 그들이 다 재배치를 한다고합니다. 그것을 버리고 정리하고 수거해서 버릴것은 버리고 재생할것은 재생하는 일들을 하는게 바로 기독교인들이 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그 마을에 가면 두가지 때문에 놀라는데 첫 번째로 놀라는 것은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 더미를 보고 놀라고 두 번째는 그 쓰레기더미 속에서 즐겁게 뛰어노는 아이들의 웃음을 보고 놀란다고 그럽니다. 그 아이들이 그렇게 천진난만하고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아이들은 좋은 옷을 입고 잘 입지만 그들은 공부에 눌려서 학업에 짓눌려서 찡그린 얼굴로 살아가는데 그 아이들은 쓰레기더미속에서 그렇게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행복이란 무엇입니까? 문명이 행복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물질만이 행복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정말 가족의 소중함을 발견하고 하나님이 주신 인생의 목적을 바로 발견할 때 거기에 행복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달려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쉼과 안식을 통해서 내 자신을 돌아보고 내 미래를 설계하고 가족의 소중함을 발견하며 깊은 은혜에 영적자원속으로 자신을 빠뜨리는 그런 휴가가 그런 여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여름휴가를 통해서 여러분의 삶에 새로운 재충전을 얻고 새로운 영적인 눈이 뜨이는 그런 은혜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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