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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신앙을 소유하지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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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해전부터 가끔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와 새벽에 약수터에 다닌다.
종일 좁은 진료 실에서 환자들만 만나야 되는 나로서는 맑은 산 공기도 좋지
만 같이 살아가는 건강한 '이웃과의 만남'이 더 좋다.
     내가 의사라는 것을 의식하지 않고 보통이야기를 할 수 있고 또 전문 직업
인으로서 서로의 고충을 나눌 수 있어 더욱 좋다.
     판사인 그 친구와 같이 약수터를 다니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한번
은 너무 부끄러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간혹 교회와 관계되는 소송을 맡게
되는데 서로 합의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되어 합의를 권할 때가 있단다. 그
런데 이상하게 이런 경우 다른 경우보다 합의가 훨씬 더 어렵더라는 얘기였
다. 그래서 아예 합의를 기대하지 않는단다. 그 친구는 양쪽이 같은 신을 믿
을텐데 또 같은 신과 관계되는 일인데 서로 합의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해
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 친구의 말에 반론을 제기할 수 있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나의 편견인지
는 몰라도 난 그 러질 못했다. 어릴 때부터 교회생활을 했던 나의 경험에 비
춰보아 나도 공감하는 이야기였다. 다만 보이고 싶지 않은 교회 안의 모습을
예수를 믿지 않는 이로부터 지적을 받게 되어  부끄러웠고, 잘 감추어 오던
나의 마음도 들킨 것 같아 더욱 당황했었던 것이다.
     왜 예수 믿는다는 자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욕먹는 일이 많을까? 그 욕먹는
일이 예수의 이름으로 인한 것이라면, 그보다 더 큰복이 어디 있겠느냐만 그
렇지 못하니 문제다. 흔히 어떤 교단을 기복신앙 이라 하여 그 문제점들을
많이 이야기하지만 대부분의 기성 교회들의 현실을 살펴보면 그와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보통 기복신앙이라고 말할 경우 그 복은 분명히 하나님이 주
시는 복이 아니라 이 세상 인간들의 복을 의미한다.
     예수를 믿으면 분명히 복을 받는다. 물론 하늘나라의 복이다. 그러나 복 받
기를 위해서 예수 믿는 경우 그 복은 과연 무슨 복일까? 우리 모두 복 받기
를 원한다. 또 세상 살 동안 세상 복도 바라는 것이 우리 모두의 솔직한 심
정일 게다. 그러나 그 세상 복은 더 큰 복 즉 하늘나라의 복과 상치될 때가
많으니 문제다.
     인간은 불안한 존재다. 현대는 인간을 더욱 불안하게 만든다. 그래서 현대
인은 불안을 없애기 위해 무엇이나 많이 소유하려 하고 거기 의지하려 한다.
     불안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네 생활을 보면 다들 불안을 없애기 위해 여
러 가지 많은 노력을 한다. 재물은 많이 모아서 자식을 잘 키워 지위가 있는
친구를 사귀어 학문이나 명예를 가져 아니면 사회봉사나 취미를 '가져서' 불
안을 해결하려고도 하다. 그러나 이런 방법으로 불안을 없애는데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혹시 있을지 모르는 사후세계에 대한 불안도 '신앙을 소유'하여
해결하려고 한다. 마치 노후보장이나 불의의 사고에 대비한 보험에 가입하는
것같이! '가진다' 혹은 '소유한다'는 말은 '내가 무엇을 가진다'는 의미다.
     '신앙을 가진다'는 의미는 자기가 가진 여러 살아가는 방법 혹은 이념들에다 한 가지를 더 보태는 것이다. 이 '신앙을 소유함'으로 자신의 불안이 줄어들
게 되고 또 인간의 기본 욕구인 의존심이 충족되면 거기 만족하게 된다. 그
럴 때 인간은 누구나 거기 안주하려하고 더 이상의 발전을 원하지 않는 심리
가 있다. 그 결과 자기에게 만족을 준 그 교리나 신앙 방법에 지나치게 집착
하게 된다. 만약 남의 신앙방법이 자기 것과 조금이라도 달라 보이기라도 하
면 경계하고 배척한다. 그렇게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며 구별된 삶을 살던 바
리세인들의 귀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라는 소리가 왜 들리지 않
았을까? 자기가 '소유한 신앙'은 자기에게 안정이나 만족은 줄지는 몰라도 신
앙의 요구에 부응할 수는 없다.
     성경은 우리들에게 예수의 '참 포도나무'에 잘 붙어 있는 '가지'가 되어 신
앙의 열매를 맺으라고 요구하건만(요15:4) 오히려 예수라는 '가지'를 달고 힘
겹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인 것 같다.
     믿음은 끊임없는 자기부정이며 무거운 짐을 덜어 가는 것이다. 생각이 좀
다르고 성격의 차이가 있고 믿는 방법이 나와 좀 달라 보인다 해도 예수의
십자가 아래 같이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자기가 '소유한 신앙'만을 고집
하거나 강요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인간은 하나님을 볼 수도 그에 대해 이야기할 수도 없다. 만약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하나님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께 기
도 할 수 있으며 그를 찬양하며 그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는 존재다.
     주여! '나의 신앙'을 버리게 하소서! 내가 당신의 거하실 장소를 지정하지
않게 하소서! 그리고 항상 당신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게 귀기울이게 하시고
그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이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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