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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를 기쁘시게 하라 (고전 7:32-35) - 이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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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를 기쁘시게 하라 (고전 7:32-35)

고린도전서 7장에는 고린도 교회가 부딪히고 있었던 또 하나의 문제인 결혼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결혼문제는 아마 1절에 “너희가 쓴 문제에 대하여”란 표현을 보면 고린도교회가 먼저 사도 바울에게 서면으로 질문을 했던 것을 답변한 내용입니다.   

고린도전서 7장 전체를 통해 고린도교회가 사도 바울에게 질문한 내용을 보면 크게 3가지 문제입니다. 

먼저는 부부간의 성문제입니다. 두 번째는 이혼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독신의 문제입니다. 사도 바울의 답변을 통하여 기독인의 결혼관을 다시 한 번 새롭게 정립하시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행복한 가정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1. 부부간의 성문제입니다. 

고린도교회는 결혼에 대해서 극단적인 두 가지 정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금욕주의와 쾌락주의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영지주의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영지주의는 영과 육을 분리하여 영은 선하고 육은 악하다는 이원론에 바탕을 두기 때문에 육체를 위한 결혼은 악한 것이며, 성은 추한 것이라는 생각에서 금욕주의가 나타났습니다.  

금욕주의자들은 육체적인 욕망은 악한 것이므로 철저하게 성적인 욕망을 억제해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결혼을 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들은 결혼을 죄악시하며 독신으로 사는 것이 더 경건한 삶으로 착각하였습니다.  

그리고 결혼은 했지만 금욕주의 영향을 받아서 부부간에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올바른 부부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므로 음행의 빌미를 주었고, 이것이 비도덕적인 음행으로 발전하여 결혼의 고귀한 가치를 상실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7:3절에서 “남편은 그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고 했습니다. 더 나아가 7:4절에서 결혼한 사람은 자신의 몸에 대한 권리가 자기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배우자에게 있음을 말씀하면서 배우자의 의무를 잘 감당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영혼과 육체가 별개이므로 육체가 아무리 죄를 지어도 영혼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육체적인 죄를 허용하는 쾌락주의가 나타났습니다. 이런 쾌락주의에 빠져있던 사람들이 성적인 죄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두 가지 모두가 잘못된 것이라고 권면합니다. 쾌락주의자들에 대하여는 이미 6장에서 그 잘못을 지적하면서 결론적으로 6:19-20절 말씀에 이렇게 권면합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금욕주의자들을 향하여는 “한 남자마다 한 아내를 두고 한 여자마다 한 남자를 두라”고 했습니다. 금욕적인 삶이 표면적으로 볼 때는 무척 경건해 보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인간의 연약함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금욕적인 생활을 하다 사단에게 틈을 주지 말고, 결혼하고, 남편과 아내의 의무를 잘 감당하라고 하였습니다. 


2. 이혼의 문제입니다. 

당시 고린도교회 안에는 신앙 때문에 이혼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예수를 믿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믿지 않는 배우자가 이혼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럴 경우에 당시로서는 이혼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혼자가 된 성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또 반대의 경우도 있었습니다. 예수를 믿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믿지 않는 배우자에게 이혼을 요구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10절 이하에서 이혼에 대해서 두 경우를 다르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남편과 아내 둘 다 신자인 경우입니다. 

10-11절에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라서지 말고 만일 갈라섰으면 그대로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은 믿는 자의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이혼을 금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마 5:32절에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저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린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고 하시면서 이혼을 금하셨습니다. 

신앙을 가진 부부가 이혼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사실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죄악입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부정하는 큰 죄악입니다. 


두 번째의 경우는 믿지 않은 배우자를 둔 경우입니다. 

이 경우에는 믿지 않는 배우자라도 일방적으로 먼저 이혼을 요구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믿지 아니하는 아내나 남편이 함께 살기를 원하거든 이혼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14절에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는 거룩하니라." 이 말은 믿지 않는 배우자를 위해 기도와 사랑과 섬김을 통해서 예수를 믿게 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반대로 믿지 아니하는 배우자가 함께 살기를 원치 않고 이혼을 요구해 올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도 바울은 이러한 경우는 이혼을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15절에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애될 것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불신 배우자에게 반드시 매여 있을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가능한 한 화평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할 경우는 이혼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혼에 대한 전체적인 결론을 7:27절에서 이렇게 맺고 있습니다. 

“네가 아내에게 매였느냐 놓이기를 구하지 말며 아내에게서 놓였느냐 아내를 구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배우자가 예수를 믿지 않더라도 이것을 이유로 이혼하지 말라는 것이고, 신앙 때문에 이혼을 당해서 혼자가 되었다면 또 다시 결혼하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3. 독신의 문제입니다. 

독신생활의 문제는 8-9절, 그리고 25-38절까지 다루고 있습니다. 혼자 사는 독신에는 몇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처음부터 결혼하지 않고 독신이 된 사람도 있고, 결혼했다가 이혼을 하거나 사별로 독신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8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혼인하지 아니한 자들과 및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이 말은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사는 경우나, 혹은 결혼을 하고 혼자 된 경우에도 할 수 있으면 그냥 혼자 지내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여러분, 사도 바울이 독신으로 혼자 사는 것이 좋다고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먼저 임박한 환난 때문에 혼자 사는 것이 좋다고 했습니다. 

7:25-26절 말씀에 “처녀에 대하여는 내가 주께 받은 계명이 없으되 주의 자비하심을 받아서 충성스러운 자가된 내가 의견을 말하노니 내 생각에는 이것이 좋으니 곧 임박한 환난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임박한 환난이란 무엇을 가리킵니까? 바로 종말로 곧 예수님의 재림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의 재림이 멀지 않아 이루어짐으로 종말이 가까이 왔다고 생각하면서 살았습니다. 신학적으로 사도 바울은 예수를 믿은 초기에는 ‘임박한 종말론’을 믿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 사는 것이 좋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삶의 고난 때문이라도 혼자 있는 것이 좋다고 했습니다.  

28절 말씀에 “그러나 자아가 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요 처녀가 시집 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로되 이런 이들은 육신에 고난이 있으리니 나는 너희를 아끼노라”고 했습니다. 공동번역에서는 ‘육신의 고난’을 ‘세상살이가 고달프기 때문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사도 바울 당시 고린도 교회의 상황은 재난이 임박해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언제 로마 당국에 의해서 붙잡혀 갈지 모릅니다. 따라서 경제적으로도 몹시 어려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결혼 안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결혼한 자들은 거기에 따르는 시련을 감당할 각오를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29절에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그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여기서 ‘때가 단축하여 졌다’는 뜻은 우리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내 인생의 종말이 가까이 와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인 모세는 시 90:9-10절을 통하여 우리의 생애가 얼마나 짧은 것인가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 하였나이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혼자 사는 것이 더 좋다고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32-3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너희가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 장가 가지 않는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까 하되 장가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까 하여 마음이 갈라지며 시집 가지 않은 자와 처녀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하되 시집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까 하느니라” 

이 말씀을 통해 사도바울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온전히 섬기는 삶을 위해서는 독신으로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결혼을 하게 되면 세상 일을 염려하게 되고, 가정을 꾸리기 위해 애쓰다 보면 마음이 나눠져 주님을 전심으로 사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일생동안 혼자 산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오직 주의 일을 위해, 전심전력하여 주님 주신 복음을 전하기 위해 혼자 살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위한 삶을 사는 자가 아니어야 합니다. 오직 우리를 구원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를 위하여 내 몸을 내어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이 몸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주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을 잘 섬기기 위해 무조건 혼자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 

본문 35절에 “내가 이것을 말함은 너희의 유익을 위함이요 너희에게 올무를 놓으려 함이 아니니 오직 너희로 하여금 이치에 합당하게 하여 흐트러짐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의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을 잘 섬기기 위해 무조건 결혼을 하지 말고 혼자 살아야 된다는 부담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부부가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하나가 되어 주님을 더욱 잘 섬기는 그러한 가정을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결혼을 하게 되면 마음이 아내와 남편에게로 나뉘어져서 주님을 섬기는데 지장을 받게 된다는 말은 결코 결혼을 하지 말라거나 아내나 남편보다는 오직 주님만 생각해야 된다는 그런 뜻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가 한 마음으로 흐트러짐이 없이 주를 섬길 수 있기를 위해서 부부가 온전히 하나가 되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세워 주며, 모든 근심 걱정 없이 화평한 마음으로 지내게 되어질 때 더욱 주님을 온전한 마음으로 섬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가정이 믿음 안에서 넘치는 사랑으로 하나를 이루어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도 온전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오늘 말씀의 총 결론을 38절에서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결혼하는 자도 잘하거니와 결혼하지 아니하는 자는 더 잘하는 것이니라” 

사도 바울은 미혼이냐, 독신이냐, 기혼이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이라면 독신도 무방하고 또 결혼을 한다 하더라도 그 결혼 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면 되는 것임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결혼해서 잘 섬길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좋고, 반대로 주님을 더 잘 섬기기 위해 독신으로 있기를 원하면 그러면 독신으로 있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을 섬기는 삶이 우리 신앙인들의 궁극적인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을 어떻게 더 잘 섬길 수가 있느냐 이것이 우리의 삶의 모든 가치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 10:31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삶을 살다가 하나님 앞에서 착하고 충성된 종이었다고 칭찬과 상급과 영생복락 누리는 하나님의 자녀들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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