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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거룩한 낭비 (마 26: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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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낭비 (마 26:6-13)


오늘은 8.15 광복 66주년 남북평화통일주일입니다. 이에 대한 말씀은 오늘 오후에 듣기로 하고 오늘은 지난 주에 이어서 '거룩한 낭비'라는 주제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노 권사님의 헌금

어떤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떤 늙으신 여자 권사님이 하루는 담임목사님에게 5억 원을 들고 와서 헌금을 하시는 것입니다. 헌금을 하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젊어서 월남해서 정말 열심히 살았습니다. 시장통에서 장사하면서 먹고 살고 자식들 키워서 독립시켰고 이제는 인생 다 살았는데 가지고 있던 그 가게가 팔리면서 목돈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애들도 다 커서 독립했고, 나는 더 이상 많은 돈 필요 없습니다. 목사님께 드릴테니 꼭 필요한 일, 좋은 일에 써 주시기를 바랍니다.” 

자, 팔순 권사님의 평생의 땀이 어린 이 헌금을, 이 돈을 받아야 합니까? 말아야 합니까? 참, 결정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목회자가 성도의 헌금을 막을 권리는 없습니다만, 그러나 왠지 쉽게 선뜻 그 헌금을 받기가 어려운 마음도 이해하실 줄 압니다. 결국에는 그 목사님이 이 헌금을 받아서 목회자를 양성하는 신학교에 전달했으며, 신학교에서는 예배당을 건축하는데 귀하게 사용하였습니다. 

본문은 성경 상에 나타난 가장 아름다운 드림의 행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주인공인 마리아의 행위는 논란의 여지가 있었습니다. 가룟 유다의 지적처럼 그녀가 드린 삼백 달란트(2,100만원=300⨉7만)의 향유는 누가 보아도 낭비인 것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가만 두어라"고 말씀하시며 그녀의 행한 일이 복음이 전해지는 곳엔 어디나 증거될 것이라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왜 주님은 그녀의 행위를 기념할 만한 거룩한 낭비로 인정하셨을까요? 함께 생각해 봅시다. 

어떤 복지관의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는 분이 한번은 길가에서 구걸하는 분에게서 1006개의 백 원짜리 동전을 후원금으로 받았습니다. 구걸하는 분이 후원금을 낸 것도 특별하지만, 무려 100원 짜리 동전을 1060개나 모은 정성이 대단하여서, 이 분은 동전 뭉치를 받아들고 세 번이나 세어보았고, 동전을 세어 까맣게 된 손을 함부로 씻지도 못했답니다. 

이야기인즉 이렇습니다. 지하철에서 구걸하는 한 아주머니인데, 화상으로 흉측하게 변한 자신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을 만나 딸을 낳고 행복하게 지내다가, 그만 남편이 병으로 죽고 어린 딸과 자신만 남았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구걸하여 벌어먹게 됩니다. 그런데 딸마저 시력을 잃는 병에 들었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듣습니다. 이때부터 아주머니는 딸의 수술을 위해 돈을 모았습니다. 

구걸해서 번 돈 중에서 천 원짜리는 생활비로 사용하고, 500원 짜리는 딸의 수술비 마련을 위해 저축하고, 백 원짜리는 자기보다 어려운 노인 분들을 위해 사용하려고 모았다는 겁니다. 10만 6천원. 그렇다면 이 돈은 기가 막힌 가난 속에서 드린 아주 큰 기부금입니다. 이것은 또한 '거룩한 낭비'입니다. 

예수님의 생애에도 이와같은 거룩한 낭비를 보여주어 예수님을 감동시킨 여인이 있었으니 바로 되살아난 나사로의 여동생 마리아입니다. 십자가를 지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던 예수님은 베다니를 지나게 되었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그 마을에서는 예수님을 위한 잔치를 벌입니다. 동네 사람들까지 모여 함께 기쁨을 나누는 자리였습니다. 

그때 마리아는 매우 귀한 향유 한 근을 예수님 발에 붓고 자신의 머리털로 그 발을 닦아드렸습니다. 마리아가 예수께 드린 나드 향유는 유대 땅에서 나는 향유가 아니라 높은 산에서 자라는 특별한 나무에서 추출한 향유로, 300데나리온 어치나 하는 값비싼 향유였고 마리아의 전 재산이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이 일을 비난하였으나, 주님은 마리아의 헌신을 칭찬하셨습니다. 

마리아의 헌신은 몇 가지 점에서 우리에게 모범이 됩니다. 예수님이 칭찬하실 만한 헌신은 어떤 것일까요? 


첫째, 마리아는 넉넉치 못한 가운데 가장 귀한 것을 드렸습니다. 

주님께 가장 귀한 것을 먼저 드리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먼저 좋은 것으로, 자신은 나중 덜 좋은 것으로 하는 것은, 믿음에서 우러나온 자세입니다. God first, me last!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주로, 신으로 고백하면서도 사실은 자신에게 먼저 좋은 것으로 하고, 하나님께는 나쁜 것으로 나중에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에는 낭비니 사치니 하면서 싸고 되는 대로 하자던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자랑하고 내세우는 데에는 가장 화려하고 비싼 것을 한다면 결국 하나님을 하찮게 여기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귀한 것, 소중한 시간을 하나님께 먼저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시간이 가장 중요합니다. 할 일 없고 따분하게 남는 시간에 예배나 드리자 한다면 이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태도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어떤 시간, 어떤 물질, 어떤 태도로 대하느냐를 보면,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마리아는 가장 소중한 것으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둘째, 마리아는 자기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아드렸습니다. 

유대 여인의 긴 머리털은 자존심의 상징입니다. 우리도 예전에 처녀가 남편을 맞이하는 것을 쪽을 푼다고 하였습니다. 머리를 풀고 내려뜨리는 것이 자신의 정절과 자존심을 바치는 일이었습니다. 마리아가 소중한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겼다는 것은 사랑의 고백이요 생명을 바치는 헌신입니다. 

서울의 어느 교회에서, 이름을 대면 알만한 대기업 사장이나 국회의원과 같이, 평소에 보좌관들과 비서를 두고 살던 분들이 차량 안내를 하고 교회 청소를 하며, 화장실 정돈까지 한다는 얘기를 듣고 많이 감동했던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가 죄인이요 어린 아이와 같기 때문에 차이는 있을지언정 어떤 차별도 있을 수 없습니다. 마리아가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긴 것과 같이, 어린 아이와 같은 순수함으로 주님께 헌신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 마리아는 의무감으로 한 것이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헌신했습니다. 

은혜가 많은 곳에 헌신이 많습니다. 주님께서 나사로를 살리심으로, 잃었던 오빠를 찾았던 마리아는 그 은혜에 대하여 최선의 정성으로 갚았습니다. 자원하는 마음이 되려면 은혜를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이 나같은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에 몸버려 피흘리셨음을 기억하십시오. 주님의 사랑 앞에 우리도 사랑으로 응답하는 생활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헌신하고 충성한다면 주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이번 주에 누구누구 청소하시오, 그래서 도살장에 끌려오듯이 겨우 나와서 하는 둥 마는 둥 한다면 얼마나 초라한 헌신이요 봉사입니까? 기왕 봉사하고 기왕 헌금할 바에는 깊이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헌신하십시오. 그 헌신이 주님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헌신이 됩니다. 이렇게 자원하는 마음으로 헌신하면 우리 마음과 생활에 은혜가 넘치게 됩니다. 

자녀를 위해 부모는 무모하게 희생합니다. 그리 큰 가치가 없는 인간을 위해서도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주어 희생당하게 하셨습니다. 계산적인 거래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삶이란 각박하고 차갑지만, 무모하리만큼 뜨거운 헌신과 희생이 있는 곳에서 오히려 생명이 아름답게 자라고 열매 맺습니다. 

인터넷에 한 초등학생이 올려놓은 '아빠가 숨쉬지 않는 이 세상' 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저는 그 글을 보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참으로 감동적인 글입니다. 엄마 없이 가난하게 사는 부녀 가정에 아빠는 늘 병치레를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아빠가 병으로 죽었는데, 알고 보니 3년 전부터 암으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딸은 그것도 모르고 늘 아빠에게 불평하며 원망하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빠는 딸을 위해 자기 치료를 포기하고 돈을 저축해 두셨던 것입니다. 아빠가 남긴 통장과 3년 동안 쓴 일기를 보고 딸은 한없이 울고 후회를 해보지만 돌아가신 아빠는 다시 살아나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여러분 한 가정이 행복해지려면 누군가가 자기 젊음과 행복과 이익을 포기하고 탕진해야 합니다. 한 가정이 든든히 서기 위해서는 어머니가 엄청난 희생을 바치지 않으면 안됩니다. 사랑의 낭비, 거룩한 낭비를 통해 가정이 건강하고 든든하게 유지됩니다. 무모하리만큼 뜨겁게 헌신하는 교인이 없으면 그 교회는 냉냉하고 힘들어집니다. 마리아와 같이 헌신하는 성도가 있을 때 그 교회는 사랑과 은혜의 따뜻한 바람이 불기 시작합니다. 

사랑은 거룩한 낭비입니다. 사랑은 주고서 더 주기를 바라며, 얼마를 주었는지 계산하지 않으며, 준 것을 아까워하거나 후회하지 않습니다. 어머니의 사랑, 예수님의 사랑은 바로 이와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을 알게 되면 비로소 거룩한 낭비, 사랑의 진리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원리임을 알게 됩니다. 여러분이 그 거룩한 낭비를 실천하는 사람이 되지 않으시겠습니까? 

예수님의 발을 씻기는 일은 제자들이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마리아가 그 일을 해주었다면 제자들이 감사하고 격려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가룟 유다는 대놓고 비난하였으며 다른 제자들도 거기에 동조하였습니다. 교우 여러분! 선한 일을 하다가 비난을 받더라도 낙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거룩한 낭비로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성도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은 분명히 여러분 편에 서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눈물 나는 봉헌생활의 기쁨을 느끼지 못하면 그리스도의 제자가 아닙니다. 

마리아의 헌신은 거룩한 낭비였습니다. 경제논리로 보면 그것은 분명 낭비였지만, 하나님을 향한 헌신이었기에 거룩한 낭비요 주님이 받으실만한 헌신이었습니다. 마리아는 뜨거운 사랑으로 정도에 넘치도록 주님께 헌신하였는데, 이것이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하는 거룩한 사건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를 크게 칭찬하셔서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마리아의 행한 일이 전해져서 기념되리라고 하십니다(마26:13). 

저는 지난 주간에 기분이 좋았습니다. 장로님들이 앞장서서 우리교회 미래를 위해 위대한 결단을 하셨습니다. 자원하는 마음으로 어떤 누구의 요구나 지시가 없이 많은 헌금을 작정하셨습니다. 돈을 많이 내서라기보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헌신과 봉사가 너무 복되고 아름다운 열매 맺으리라 믿어졌기 때문입니다. 

마리아의 헌신으로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였고, 예수님은 마리아의 거룩한 낭비로 인하여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향유 냄새 가득한 집! 거룩한 낭비, 사랑의 낭비가 있는 곳에 오늘도 이와같은 은혜와 사랑의 향유냄새가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향유 냄새가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에 주님을 위한 거룩한 사랑의 낭비가 나타나서 향유 냄새가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거룩한 낭비

* 비싼 예배 : 지금 우리가 드리고 있는 이 예배에는 얼마나 비용이 들까요? 좀 어감이 그렇습니다만 우리는 매주 얼마짜리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일까요? 한 번 생각해 볼까요? 우리교회 1년 예산이 일억 원쯤 됩니다. 연간 52주 동안 예배드리니 대충 50으로 나누면 일억 나누기 오십, 즉 200만 원쯤 됩니다. 우리가 드리는 이 예배가 200만 원짜리입니다. 싸구려 아닙니다. 가룟 유다식으로 말하자면 매주 이 돈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많이 도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룟 유다의 공식, 가룟 유다의 계산법, 가룟 유다의 사고방식에서 빠진 것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바로 거룩한 낭비입니다. 합리주의자, 경제주의자의 눈으로 볼 때, 이것은 어마어마한 낭비입니다. ‘한 사람 발 씻기 위해서 일 년 연봉 가까운 비용을 쓴단 말입니까? 예수님 이러시면 안 되지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의 눈으로 볼 때는 그렇지 않습니다. ‘내버려 두어라. 그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이니 소중한 일이다. 그대로 두어라.’ 하면서 소원을 풀어주는 것입니다. 사람이 마음이 통하여 움직이게 되면 그 인생 전체가 변화됩니다. 그리하여 새로운 삶, 놀라운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향유로 예수님의 발을 씻은 결과, “온 집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 찼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향유 냄새란 코로 맡을 수 있는 그 냄새를 말하기도 하지만, 마음으로 맡을 수 있는 냄새, 향기를 뜻하기도 합니다. 마리아는 거룩한 낭비를 통하여 냄새가 가득 차는 그런 일을 하였던 것입니다. 

냄새가 가득 차는 그러한 일이라! 우리 생애 가운데 여러 가지 일이 있을 줄로 압니다. 그렇지요? 거룩한 낭비를 통하여 향유 냄새가 가득 차게 되는 그런 일을 우리가 생각할 수 있지요. 모두에게 다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 한국 기독교사에 염학섭 목사님 같은 분이 계시다는 것은 복입니다. (愛恩 염학섭 목사님은 1897. 2. 1-1970. 9. 13. 독립투사로 일평생 충성, 희생, 겸허, 청빈이라는 신앙생활의 4대 비결을 좌우명으로 삼고 생명 바쳐 목양하신 영적 거장이셨다. 다음은 그가 남긴 ‘은총의 회고’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염 목사님이 함경도 북청군 이곡면 삼기교회에서 풍산군 능귀면 양평교회로 옮겨 가실 때의 일입니다. 이별을 서러워하는 삼기교회 교우들과 마지막 작별을 하는 모임을 조촐하게 가졌습니다. 그때 모임에 참석하지 못한 김유경이라는 한 가난한 과부가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4남 3녀의 자식들과 시어머니, 시할머니까지 계신 대가족 생계를 꾸려가고 있었습니다. 송별금을 준비해서 참석해야 예의라고 생각한 그 여인은 사정이 여의치 않아 참석을 못했습니다. 

떠나기 이틀 전 그 여인은 ‘찹쌀 두 되’를 보자기에 싸 가지고 전도사님을 찾아왔습니다. “전도사님, 이교회를 떠나시는 날 꼭 이 쌀로 밥을 지어 잡수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 여인이 가져온 쌀 두 되는 다른 집의 쌀 두 가마니와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것임을 알고 전도사님은 감격했습니다. 어떻게 쌀을 구했는지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떠나는 날을 이틀간 연기해서 그 내력(來歷)을 알아보았습니다. 

쌀 큰 한 되에 25전 하던 당시에 그녀는 자기 머리를 깎아서 받은 1원 중 50전을 투자하여 전도사님에게 줄 쌀 두 되를 샀고, 나머지 돈으로 식구들 양식을 마련했다는 것입니다. 여인에게 있어서는 귀중한 머리칼을 팔아 마련한 쌀 두 되의 내력을 전해들은 전도사님은 집에 돌아와서 아내와 상의한 끝에 그 쌀을 가치있게 사용하기로 작정했습니다. 우선 쌀 두 되를 다시 시장에 내다 팔아서 50전을 받고 우리 집안 식구들이 얼마씩 낸 돈을 합쳐서 모두 3원을 마련하였습니다. 

염전도사님은 그 돈으로 새로 부임해 간 양평교회에서 ‘백미 두 되 적선 전도회’란 이름을 붙여 가난한 과부를 기념하는 기금을 만들었습니다. 오래도록 그녀를 기억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양평교회 교우들에게 그녀의 갸륵한 마음씨를 전하고 그 돈 3원으로 교회의 경제력을 굳건하게 하자고 제안하였더니 교우들도 전폭적인 지지를 해주었습니다. 그 돈으로 강아지 열 마리를 사서 교우들이 각자 분담하여 6개월을 키웠습니다. 다음에는 개를 판 돈으로 돼지새끼 열 마리를 사서 1년간 키웠습니다. 다시 돼지를 판 돈으로 송아지를 구입하여 2년간 길렀습니다. 소를 판 돈을 3년간 불렸더니 거액의 돈이 되었습니다. 

그때 마침 금융조합에 만여평 토지를 저당 잡히고 돈을 빌려 간 사람이 갚지 못하여 매각하는 일이 있었는데 조합과 토지주인과 합의하여 교회가 그 땅을 인수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있는 돈을 지불하고 나머지 잔액은 해마다 갚는다는 조건으로 계약이 성립되어 토지를 갖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온 교회 남녀 교우들이 합심 단결하여 그 토지에서 농사지어 나온 돈으로 해마다 빚을 갚아 8년이 지난 후에는 남은 땅값과 그 동안의 이자까지도 다 갚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1만여 평 땅이 완전히 교회 소유가 되었습니다. 축복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때마침 그 지방에 대규모의 허천강 수력전기 댐 공사가 시작되어 땅값이 갑자기 5배 이상으로 뛰어올랐습니다. 

1만여 평의 땅을 비싸게 팔아서 다시 3만여 평의 싼 땅을 구입하였습니다. 그리고 남은 돈으로는 남녀 교역자 주택과 정미소를 지었습니다. 땅에서 나오는 수입만으로도 교회 재정이 풍족히 유지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실로 하나님의 축복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가난했던 그 과부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 여인은 항상 기도로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나도 항상 그녀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그 과부의 집에 마침내 축복이 임했습니다. 찢어지게 가난한 가계에서 열 식구가 근근히 연명하던 그녀의 집안이 내가 떠나고 3년 뒤에는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 집에 생전의 남편이 남겨 준 유일한 재산인 1정보 가량의 돌산이 있었는데 쓸모없다고 생각한 돌산이 변해 옥토가 되었습니다. 그녀가 쓸모 있는 산이 되게 해달라고 간구했던 것이 현실로 이루어졌습니다. 해마다 홍수 때면 그 마을의 논밭이 물에 잠기는 것을 막기 위해 함경남도 도청 토목과에서 나와 대규모의 제방공사를 시작했는데 그해에는 공사에 필요한 돌을 그녀의 돌산을 깨뜨려 사용한 것입니다. 돌이 모두 제거되자 밑에서 나온 땅은 그 지방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옥토였습니다. 돌 값은 돌 값대로 받고 밑에서 나온 옥토는 옥토대로 소유하게 되어 갑자기 부자가 되었다는 얘깁니다.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느 아버지가 두 아들에게 작은 돈을 주면서 온 방을 채우라고 했습니다. 한 아들은 건초더미를 가져다가 채웠습니다. 그런데 한 아들은 자신을 태워서 빛을 발하는 초 한 자루를 사서 밤에 온 방을 채웠습니다. 

우리 인생에 기회가 여러 번 있지 않습니다. 기회가 있을 때에 옥합을 깨시기 바랍니다. 거룩한 낭비를 통하여 향유 냄새가 온 집안에 가득 차게 만드시기를 바랍니다. 거룩한 낭비를 통하여 향유 냄새가 온 교회에 가득 차게 만드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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