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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를 위하여 싸우실 하나님 (느 4: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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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위하여 싸우실 하나님 (느 4:7-20)


느헤미야의 영도 하에 예루살렘 성벽을 다시 쌓는 공사는 주변 족속의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중단되지 않고 계속 진행되었습니다. 유다 백성이 마음 들여 일을 하였기 때문에 예루살렘 전체를 두르는 성벽이 중간에 끊어진 데 없이 다 연결되어 그 높이가 절반까지 쌓여 올라가자(느4:6) 주변의 대적들이 화가 났습니다. 왜냐하면 유다 백성은 결코 견고한 성을 쌓을 수 없을 것이라며 비웃어(느4:2-3) 그들이 사기와 자신감을 잃고 공사를 포기하게 만들려 한 자기들의 계략이 먹혀들어가지 않았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다에 적대적인 족속들은 예루살렘 성의 건축을 막을 다른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것은 예루살렘으로 몰려가서 공격하고 공사현장을 뒤집어놓으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7-8절에 기록되기를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아스돗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이 중수되어 그 허물어진 틈이 메꾸어져 간다 함을 듣고 심히 분노하여 다 함께 꾀하기를 예루살렘으로 가서 치고 그 곳을 요란하게 하자 하기로” 합니다. 그들은 유다 백성을 기습하여 도륙하고 페르시아 왕에게는 유다 백성이 왕에게 반역을 일으켰으므로 그리 했다고 보고를 올리면 그만이고 그러면 페르시아 왕은 성벽 건축을 중단시키는 조서를 내릴지 모른다는 계산을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전에 에스라의 지도 하에 유다 백성이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할 때도 그런 모함과 고발로 왕이 조서를 내려 성전 건축이 한 때 중단된 역사(스4:7-24)를 알고 있던 산발랏과 그 일당은 자기들도 그런 식으로 예루살렘 성벽 건축공사를 중단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유다 백성 또한 그 역사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다 백성은 그때처럼 이번 예루살렘 성벽 쌓는 공사도 중단될 수 있으리라는 불안감 때문에 공사의 의욕을 상실할 수 있었고 대적들은 그것을 노렸던 것입니다. 유다는 사면이 적으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북쪽에는 사마리아가, 동쪽에는 암몬 족속이, 남쪽에는 아라비아 사람들이, 그리고 서쪽에는 옛 블레셋이 여전히 남아있었습니다. 아라비아 사람들이 가세한 것은 유다 민족이 회복되고 안정되면 자기들이 장악하고 있던 상권을 빼앗기게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옛날 앗수르에 점령당한 이래로 블레셋 족속의 영토는 별도의 주가 되었고 아스돗이라 불리고 있었습니다. 산발랏은 그들까지 반유다 진영의 새 동맹세력으로 끌어들였던 것입니다. 

산발랏을 비롯한 대적들의 계략은 어느 정도 효력을 발휘한 것 같습니다. 이들의 영향으로 용감했던 유다 백성의 기가 꺾이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본문 10절을 보면 유다 사람들이 실제로 말하기를 “흙 무더기가 아직도 많거늘 짐을 나르는 자의 힘이 다 빠졌으니 우리가 성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벅찬 공사노역에 지쳐있었을 유다 백성에게 겁을 주고 내부분열을 일으키려는 대적들의 책동은 끈질기게 계속된 것 같습니다. 

그들은 그들과 인접하여 살고 있는 유다 백성들 사이에 예루살렘의 유다 백성이 미처 알지 못할 때 그들의 눈에 띄지 않게 기습적으로 공격을 해서 그들을 도륙하고 성벽 공사를 못하게 할 것이라는 소문을 퍼뜨린 것입니다. 그 때문에 그 소문을 들은 유다 백성이 예루살렘을 지키며 성벽을 쌓고 있던 동족들을 염려하여 그들에게 열 차례나 찾아와 대적들이 공격하기 전에 공사를 내려놓고 자기네들에게 오라고 권면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예루살렘 내부의 유다 백성을 유약하게 만들고 예루살렘 성 수호의 의지와 단결심을 와해시키려는 공작이 상당히 먹혀들어갔던 것입니다. 

본문 11-12절의 기록을 보면 “우리의 원수들은 이르기를 ‘그들이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가 그들 가운데 달려 들어가서 살륙하여 역사를 그치게 하리라.` 하고 그 원수들의 근처에 거주하는 유다 사람들도 그 각처에서 와서 열 번이나 우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우리에게로 와야 하리라.` 하기로” 합니다. 

이렇게 내부의 동요를 일으키는 대적들에 맞서 느헤미야는 먼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주야로 파수꾼을 배치하여 경비를 강화했습니다. 본문 9절을 보면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들로 말미암아 파수꾼을 두어 주야로 방비하는데” 합니다. 또 적의 공격에 가장 취약할 것이라 여겨지는 지점에 방어력을 증강시켰습니다. 본문 13절에 “내가 성벽 뒤의 낮고 넓은 곳에 백성이 그들의 종족을 따라 칼과 창과 활을 가지고 서 있게 하고” 합니다. 

공사인력을 줄여가며 성벽방어에 힘을 기울인 것입니다. 그리고는 느헤미야 자신이 상황을 점검하고 온 백성을 안심시키며 하나님을 의지하여 담대하게 싸울 것을 독려했습니다. 본문 14절을 봅니다: “내가 돌아본 후에 일어나서 귀족들과 민장들과 남은 백성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 하였느니라.” 느헤미야는 유다 백성에게서 적들에 대한 불안감을 없이하려고 “크신” 하나님 즉 자기 백성의 편에 계시고 그 적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인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자 예루살렘의 유다 백성이 성벽 건축공사를 포기하기는커녕 경비를 강화하고 공격에 맞서 싸울 대비를 한다는 정보가 대적들에게 흘러들어갔고 유다 백성의 철벽경계로 기습을 감행할 수 없게 된 그들은 무력도발 계획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께서 적들의 공격계획을 미리 알려주셔서 그들의 음모가 수포로 돌아가게 하신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렇게 전투준비를 강화했던 예루살렘의 유다 주민들은 다시 성벽 쌓는 일에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본문 15절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대적이 우리가 그들의 의도를 눈치챘다 함을 들으니라. 하나님이 그들의 꾀를 폐하셨으므로 우리가 다 성에 돌아와서 각각 일하였는데” 합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한시도 경계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일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방비에 만전을 기했습니다. 무장도 강화했습니다. 본문 16절을 보면 “그 때로부터 내 수하 사람들의 절반은 일하고 절반은 갑옷을 입고 창과 방패와 활을 가졌고 민장은 유다 온 족속의 뒤에 있었으며” 합니다. 

앞선 13절에서는 “칼과 창과 활을 가지고 서 있게” 했다고 했는데 16절의 언급에서는 갑옷과 방패가 보충되었음을 봅니다. 무장을 강화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 17-23절의 기록은 예루살렘 성을 수호하려는 느헤미야와 그를 좇는 유다 백성의 의지가 얼마나 결연해졌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성을 건축하는 자와 짐을 나르는 자는 다 각각 한 손으로 일을 하며 한 손에는 병기를 잡았는데 건축하는 자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건축하며 나팔 부는 자는 내 곁에 섰었느니라. 

내가 귀족들과 민장들과 남은 백성에게 이르기를 ‘이 공사는 크고 넓으므로 우리가 성에서 떨어져 거리가 먼즉 너희는 어디서든지 나팔 소리를 듣거든 그리로 모여서 우리에게로 나아오라.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하였느니라. 우리가 이같이 공사하는데 무리의 절반은 동틀 때부터 별이 나기까지 창을 잡았으며 그 때에 내가 또 백성에게 말하기를 ‘사람마다 그 종자와 함께 예루살렘 안에서 잘지니 밤에는 우리를 위하여 파수하겠고 낮에는 일하리라.` 하고 나나 내 형제들이나 종자들이나 나를 따라 파수하는 사람들이나 우리가 다 우리의 옷을 벗지 아니하였으며 물을 길으러 갈 때에도 각각 병기를 잡았느니라.” 

20절에서 느헤미야는 백성과 지도자들에게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했는데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의 역사 속에서 거듭 거듭 경험하며 확인한 사실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그 역사를 기억하고 그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의지할 것을 다짐한 것입니다. 나라는 망하고 많은 백성이 타국에 끌려갔으며 땅은 다른 족속들에게 빼앗겼던 유다 민족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유다를 멸망시킨 바벨론이 페르시아에게 망하고 새 패권국가가 된 페르시아에 의해 유다는 광복을 얻었으며 잃었던 조국 땅을 되찾고 신앙생활의 자유를 돌려받았으며 예루살렘 성전과 성벽을 다시 건축하여 민족공동체의 재건에 나설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역사적이고 범국민적인 사역은 유다 민족의 부활을 우려하는 주변 이방 족속들의 견제와 방해를 받아 여러 차례 위기와 좌절을 겪기도 했지만 여러 뛰어난 지도자들과 그들을 신뢰하고 한 마음으로 협력한 백성에 의해 착실하게 진행되었던 것입니다. 

이 유다 민족의 광복과 국가재건의 역사는 우리 민족과 대한민국의 광복과 재건의 역사와 너무나도 흡사한 것입니다. 우리도 나라를 잃었었습니다. 남녀 백성이 전장으로 노역장으로 끌려가 일본제국을 위한 희생을 강요당했습니다. 교회도 신사참배를 강요당하며 모진 박해를 받아 숱한 순교자를 냈습니다. 그러나 일본이 미국에게 무조건항복을 하고 미국의 통치 하에 들어감으로써 우리는 광복을 얻었습니다. 땅도 되찾고 국권도 찾았습니다. 신앙의 자유도 되찾았습니다. 우리의 국회가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며 출범을 했습니다. 벌거숭이와 같은 상태에서 새 출발을 한 대한민국은 하나님께서 건져주시고 지켜주셔서 공산화의 위기를 넘겼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조금씩 국가재건과 국토개발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갈수록 가속화하며 경제발전을 이루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눈부시게 발전하는 나라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하계올림픽, 월드컵경기,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이어 동계올림픽까지 유치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건 기적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룬 기적이 아니고 하나님이 이루어주신 기적이라고 우리는 믿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더 하나님께 충성해야 하는 나라입니다. 

우리나라가 안정을 되찾고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는 것 때문에 질시하고 불안해하며 견제하고 방해하려는 세력들이 있는 것도 포로기 후 유다 민족의 재건의 역사와 흡사합니다. 중국의 동북공정의 숨은 야욕은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바입니다. 우리와 인접한 중국은 경제적으로나 외교적으로나 군사적으로 갈수록 팽창하며 무례하고 위협적인 존재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항공모함까지 진수시키며 군사력의 증강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언젠가는 북쪽으로는 백두산을 중심한 국경분쟁과 남쪽 끝에서는 이어도를 둘러싼 영토분쟁으로 우리와 다툴 가능성이 있는 나라입니다. 일본은 어떠합니까?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해오던 그들이 이제는 노골적으로 그들의 역사교과서와 국방백서를 통해 독도를 일본의 영토라고 명시하는 일을 감행하는가 하면 국회의원들이 자기네 땅을 방문하겠다며 입국을 감행하려 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과거 일본제국의 침략주의 근성을 뻔뻔스럽게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독도를 둘러싼 한일 간의 분쟁과 충돌이 계속 빚어진다면 언젠가는 양국군 사이의 무력대치와 충돌까지도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을 것입니다. 그때 세계 제2위의 해군력을 자랑하는 일본 해상자위대와 우리 해군의 대결은 처음부터 그 결말이 불 보듯 훤한 것입니다.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세계 제2,3위를 다투는 나라들을 상대로 나라를 지켜야 하는 우리의 입장은 불안하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가 의지할 힘은 느헤미야가 가졌던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하는 믿음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밖에 안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위해 싸우시고 우리를 지켜주셔야만 우리는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 잘 믿는 나라와 국민이 되어야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역사의 위기의 고비고비에서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를 지켜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그 은혜에 순종하는 믿음과 충성된 삶으로 응답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실하고 충성된 주의 백성이 될 때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그러셨던 것과 같이 우리를 위해 싸워주실 것입니다. 그 어느 나라도 우리를 넘보지 못하게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유다 민족과 우리 민족의 역사적 상황의 유사성 때문에 그들이 어떻게 중요한 난관을 극복했는가 하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곧바로 소중한 교훈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느헤미야와 같은 지도자가 있어야 하며 그를 신뢰하고 따르는 국민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지도자들이 진정으로 나라와 국민을 사랑하며 헌신적인 지도자가 되게 하시고 국민은 그를 신뢰하고 힘껏 협력하는 나라가 되어 온 국민이 행복하고 이 나라가 세계평화에 크게 기여할 수 있게 해주실 것을 날마다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광복 66주년을 맞으며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 다짐하고 실천해야 할 일이라고 믿습니다. (이수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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