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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앙인의 회복탄력성(4) : 기다림의 능력 (애 3: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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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회복탄력성(4) : 기다림의 능력 (애 3:19-33)

오늘은 신앙인의 회복탄력성 네 번째로 오늘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기다림의 능력” 대하여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학문적인 용어로는 “자기 조절 능력”입니다. 기다릴 줄 아는 사람들은 자기 조절 능력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예레미야는 심각한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유다나라가 어느 날 바벨론에게 망하였습니다. 얼마나 처절한 고통이겠습니까? 수많은 사람이 죽고 재산을 빼앗기고 노예가 되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나라를 살리기 위해 무척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유다 나라가 바벨론에게 망해 버렸습니다. 그는 20여세에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아 평생 독신으로 살며 나라를 살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일을 하다가 백성들의 멸시와 박해를 받았습니다. 매국노라고 오해를 받았습니다. 그가 전하는 말씀을 불태움 당했습니다. 거슬리는 말을 한다고 옥에 가두어 버렸습니다(렘37:15). 한때 옥에서 풀려났지만 다시 채포되어 구타당하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는 눈물을 흐리며 미친 사람처럼 멍에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회개하라고 하나님께 돌아 오라고 그렇지 않으면 나라가 망한다”고 눈물로 왕과 지도자들과 백성들에게 외쳤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가 바벨론에게 망해버렸습니다. 이 때 그의 고백을 보십시오. 

25절 26절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보고 잠잠히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절망적 상황 속에서도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보고 잠잠히 기다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신앙인으로 회복탄력성이 있는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기다리는 능력, 인내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어떻게 기다려야 할까요?

1. 회복탄력성이 있는 신앙인은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기다려야 합니다.(19-24)

예레미야는 나라가 망해 버렸는데도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기다립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이것을 내 마음 속에 담아 두었더니 소망이 생겼답니다. 이것이 무엇이겠습니까? 
22절부터 24절까지를 보십시오.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절망적 상황에서도 소망을 품을 수 있는 것은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입니다. 23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믿을 수 있는 분이십니다. 언약한 것 이루시는 하나님이시다는 것입니다. 지금 당하는 것은 과정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결국 회복시켜 주시는 하나님이다는 것입니다. 

24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소유의 최고 가치이고 하나님이 소망이라는 것입니다. 잃어 버린 재산이 문제가 아닙니다. 지위나 명예가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만 계시면 얼마든지 회복되고 소망가운데 일어설 수 있기 때문에 이제는 하나님만 바라보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마음에 가득 담아 두니까 소망이 생깁니다. 

예레미야가 당한 현실은 어떻습니까? 
19절을 보세요.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즘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입니까? 예레미야가 당한 상황을 보십시오. 민족의 고난과 자신의 고난을 일체화시켜 표현하고 있습니다. 

(1) 심각한 고난에 처한 것입니다. ① 어둠 가운데 처했습니다. ②잠시가 아니라 죽은 지 오랜 자 같게 오랫동안 흑암에 거하게 하시고(6) ③흑암 속에 가만히 두신 것만 아니라 종일토록 자주 치시고 ④화살로 허리를 맞추시고(12,13) 힘을 쓸 수 없다는 것입니다. ⑤조약돌로 이를 꺾으시니 먹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⑥그의 살과 가죽이 쇠하며 뼈가 꺾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심각한 육신적 고난에 처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게 합니다. 그런데 이 고난을 피할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2)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없는 절박한 상황입니다. ①쓴 것으로 배불리시고 쑥으로 취하게 하시고(15), ②고통과 수고로 쌓아 그를 에우시되(5), ③그를 둘러 싸서 나가지 못하게 사슬을 무겁게 하시고(7), ④쌓되 다듬은 돌로 쌓기 때문에 무너뜨릴 수도 없다고 했습니다(9). 절망적 상황입니다. 희망이 없습니다. 

(3)그런데 그렇게 의지했던 하나님마저도 기도의 응답마저 하지 않고 도리어 맹수같이 대하십니다. ① 기도를 물리칩니다(8), ② 도리어 하나님은 그에게 곰과 사자로 대해 주십니다(10,11). 

(4)백성들은 그를 조롱을 합니다(14). 

(5) 평강과 복을 잊어버립니다(17). 

(6) 절망에 빠집니다(18-20). 소망을 잃어버립니다. 나라가 망했으니 무슨 소망이 있겠습니까? 

땅을 바라보고 산 삶의 결과입니다. 이 땅의 모든 것을 잃어 버린다해도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기다리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어떤 어려움이 와도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기다려야 합니다. 역사의 주관자는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이 대단한 것 같지만 우리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합니다. 어려움을 당할수록 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은 감정 조절력이 강합니다. 감정 조절력은 압박과 스트레스 상황에서 평온함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능적 고정성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회복탄력성이 강한 사람은 닥친 고난과 역경을 고정관념으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능동적으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책상 위에 있는 성냥 한 갑, 양초 하나, 압정 한 상자로 양초에 불을 붙이고 촛물이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라고 하면 기능적 고정성을 극복하는 사람은 쉽게 압정으로 벽에 상자를 박고 그 상자에 촛불을 켠다고 합니다. 사고의 틀을 바꾸는 것입니다. 인간끼리 일이 아니고 자연의 일만이 아니고 힘의 원리만의 문제가 아니고 배후에 결국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고 삶의 구체적인 영역에 하나님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어려움을 당하면 땅에 소망을 두지 말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는 싸인으로 알고 어려울수록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회복되어야 합니다. 캘리포니아의 주지사였던 스탠퍼드는 매우 부자였습니다. 대부분 돈많은 사람이 그렇듯 신앙인으로 바람직한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무늬만 신앙인이었답니다. 그는 아홉 살 된 아들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고자 이탈리아로 데려갔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그곳에서 병에 걸려 죽었습니다. 그는 좌절과 실망을 안고 캘리포니아로 돌아왔습니다. 어려움 가운데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습니다. 『이제 나의 꿈은 재로 변했다. 그래서 나는 캘리포니아의 모든 아이들을 내 아이로 만들기로 했다』 그는 스탠퍼드 대학을 설립한 후 2천 2백만 달러를 기부금으로 바쳤습니다. 그가 시련가운데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새롭게 일어섰기 때문에 오늘의 명문 스탠 퍼드대학가 만들어 진 것입니다. 


2. 회복탄력성이 있는 신앙인은 인내함으로 기다려야 합니다(25-26).

26절을 보십시오. 기다리되 어떻게 기다리라고 말씀합니까?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회복주실 것을 기대하고 인내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학문적 용어로 말하면 충동 통제력을 가지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자신의 충동을을 잘 통제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25절을 보십시오. 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다는 것입니다. 선한 것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기다릴 때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회복시켜주시고 복을 주실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충동을 통제하며 인내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다윗은 수많은 고통과 어려움을 당하였지만 충동을 참으며 인내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대를 가지고 기다렸습니다. 그래서 결국 선군이 되었습니다. 요셉도 억울한 고통을 당하였지만 충동을 통제하며 인내함으로 참고 기다렸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그를 국무총리가 되게 하였습니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월터 미셸 박사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머시멜로 실험'을 했습니다. "머시멜로"는 미국인들이 즐겨먹는 부드러운 캔디랍니다. 실험에 참가한 네 살배기 아이들에게 달콤한 머시멜로 과자를 하나씩 나누어주며 15분 간 머시멜로 과자를 먹지 않고 참으면, 상으로 한 개를 더 주겠다는 제안을 하였습니다. 

그 결과 실험에 참가한 아이들 중 3분의 1은 15분을 참지 못한 채 머시멜로를 먹어치웠고, 3분의 2는 끝까지 기다림으로써 상을 받았습니다. 14년 후 당시 마시멜로의 유혹을 참아낸 아이들은 스트레스를 효과적으로 다룰 줄 아는 정신력과 함께 사회성이 뛰어난 청소년들로 성장해 있었습니다. 

반면 눈앞에 머시멜로를 먹어치운 아이들은 쉽게 짜증을 내고 사소한 일에도 곧잘 싸움에 말려들었습니다. 두 그룹은 학업 성적에서도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마시멜로를 먼저 먹어 치운 그룹보다 끝까지 참았던 그룹이 대학수학능력 시험에서 평균 210점이나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답니다. 자신의 충동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은 때로 지능보다 더 중요하다고 합니다. 

이 자기 조절능력은 30-50%는 유전적 요인에 의해 결정되지만 50-70%는 꾸준하고도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 얼마든지 향상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2008년 EBS 다큐멘터리 아이의 사생활 4부에서 우리 나라 국민중 자기 고유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의 다중지능을 조사했답니다. 국내 최초로 심장이식수술에 성공한 최고의 외과의사인 송명근 의사는 논리-수학지능, 자연지능, 자기 이해지능이 높았답니다. 

2007년 제 35회 로잔 국제 발레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한 발레리나 박세은 씨는 신체운동지능, 대인관계지능, 자기 이해지능 상대적으로 높았답니다. 

1999년 올해의 디자이너 상을 수상해서 유럽에서도 널리 알려진 패션디자이너 이상봉씨는 시각-공간지능, 언어지능, 자기 이해 지능이 높았답니다. 

2007년 제 22회 신인골든디스크 상을 수상한 가수 윤하씨는 음악지능, 언어지능, 자기 이해지능이 높았답니다. 자기 분야에 뛰어난 업적을 남긴 사람은 각각 해당 분야와 관련되는 지능과 함께 모두 자기 이해 지능이 높았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면 어떤 분야에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특별한 재능만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발적으로 끝까지 참고 견디는 인내력이 있어야 합니다. 단순한 충동억제력이 아닙니다. 

충동성은 주로 계획성 없이 어떤 일을 수행하거나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서 행동하려는 성향을 말합니다. 충동 통제력은 자신의 동기를 스스로 부여하고 조절하려는 성향을 말합니다. 자율성을 바탕으로 오히려 고통을 즐기는 능력 혹은 고통의 과정을 즐거움으로 승화시키는 마음의 습관입니다. 사람을 움직이는 기본적인 두 가지 동기는 부족함을 채우려는 결핍동기와 보나 나은 자기 모습을 위해 노력하는 성장 동기인데 충동 통제력은 결핍동기보다는 성장 동기와 관계 있는 것입니다. 

충동통제력은 자신의 보다 나은 모습을 위해 즐거운 마음으로 꾸준히 노력하는 성장지향적인 자기 조절능력입니다. 조급증에 시달리지 말아야 합니다. 씨가 꽃이 되기까지는 기다려야 합니다. 아이는 하루아침에 세상에 나오지 않습니다. 곤충에 속하는 매미도 여름 한철을 노래하기 위해 애벌레로 7년을 기다립니다.

세계의 최고의 갑부 작가가 된 조앤 롤링은 해리포터를 출판하기 위해 출판사의 문을 두드렸지만 12개 출판사로부터 거절을 당했습니다. 그가 기다리지 못하고 원고를 불태워 버리고 포기했다면 오늘날 그녀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는 소설의 작가 <마가렛 미첼>은 신문 기자였지만 사고로 다리를 절게 되어 무려 10년 동안 병상에서 소설을 썼습니다. 책을 내기 위해 3년 동안 무려 13개 출판사를 찾아 다녔지만 아무도 받아 주지 않았습니다. 그가 거기에서 기다리지 못하고 포기했다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이 땅에 태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뿌리」를 쓴 알렉스 헤일리는 8년 동안 1백 번이 넘는 불합격 통지서를 받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기다렸습니다. 나무 한 그루 제대로 자라려면 50년 100년 기다려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25년을, 모세는 40년을 기다렸습니다. 

명작은 기다림의 산물입니다. 베토벤은 최소한 하나의 곡을 열두 번 이상 다시 썼다고 합니다. 하이든은 천지창조를 8백 번이나 작품을 써본 후에야 만들어 냈다고 합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그의 걸작 최후의 만찬을 8년 동안 무려 2천 번이나 스케치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즐겨 먹는 꿀 한 숟가락은 꿀벌이 4천 2백 번이나 꽃을 왕복하며 얻은 것이라고 합니다. 영어사전 웹스터를 집필한 웹스터는 36년 동안 밤낮으로 이 일을 하여 이 사전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신앙인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재림을 기다리며 지치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인은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기다리며 인내해야 합니다. 능력 밖의 일,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일을 만날 때 성급하게 포기하거나 억지를 부려 서두르지 말아야 합니다. 삶의 과정 속에서 다가오는 고난과의 관계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문제에 직면했을 때 인내함으로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기다려야 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

3. 회복탄력성이 있는 신앙인은 기대를 가지고 순종함으로 기다려야 합니다(27-33).

우리가 고난에 처할 때 하나님의 본심은 무엇입니까? 33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미워하여 고난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으로 밖에 교훈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바벨론 포로로 밖에 교훈할 수밖에 없는 상태에 있기 때문입니다. 말로 해서 안 듣기 때문입니다. 

더 비참한 길로 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지옥의 형벌에 들어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더 비참한 인생살이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자들을 철저히 징계하셔도 그들을 일시적으로 고통스럽게 하신다 할지라도 근본적으로 그들을 향한 품고 계신 하나님의 선하신 마음은 절대 불변하십니다. 징계를 통해 더욱 성숙해 지는 것입니다. 징계는 택한 백성을 향한 영적 각성을 위한 일시적인 수단에 불과합니다. 

이런 것을 학문적으로 말하면 원인 분석력이 강한 사람입니다. 자기 조절능력이 강한 사람은 어려움이 다가 오면 자신이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파악하여 대처방안을 찾아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원인을 정확하게 분석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차를 주차장에 세워놓았는데 누가 극고 갔습니다. 사건은 끝났습니다. 해석만 남았습니다. 회복탄력성이 약한 사람은 왜 나에게만 이런 재수 없는 일이 생길까 여기 세워둔 내가 잘못이지(개인성)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회복 탄력성이 강한 사람은 차를 긁고 그냥 가다니 양심도 없는 나쁜 사람이구만, 이런 일은 누구나 다 당하는 법(비 개인성)이라고 생각합니다. 회복탄력성이 약한 사람은 왜 내게는 늘 이런 재수 없는 일이 일어날까(영속성)라고 하지만 회복탄력성이 강한 사람은 오늘은 어쩌다 운이 나쁜 날이구만(일시성)이라고 생각합니다. 회복 탄력성이 약한 사람은 왜 나는 매사 이런 운이 없을까(보편성)라고 하지만 회복탄력성이 강한 사람은 주차와 관련해서는 내가 운이 나쁘구나(특수성)라고 생각합니다. 해석의 문제입니다. 

예레미야를 보십시오. 왜 어려움을 당했다고 생각합니까? 1절을 보세요.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지금 당한 어려움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27절을 보십시오. 젊었을 때 멍에라는 말은 고난은 그것이 최종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고난을 통하여 이루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말입니다. 3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영원히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32절을 보십시오. 긍휼히 여겨 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합니까?

29절을 보십시오. 티끌은 진흙이나 먼지를 말합니다. 입을 티끌에 댄다는 말은 티끌이 입에 닿을 정도로 하나님께 머리를 숙여 몸과 마음을 모두 완전하게 하나님께 복종하라는 말입니다. 마치 벙어리와 같이 입을 다물고 자신에게 내려진 재앙에 대하여 항의하거나 반박하지 않도록 자신을 억제하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칼빈) 

고통을 받을 때 순종해야 합니다. 그 때 고통은 열매를 맺게 하는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신앙의 인물을 보십시오. 모세, 아브라함, 다윗, 욥, 요셉, 바울 이들이 이 고난의 간을 건너면서 배운 것들이 무엇이겠습니까? 순종입니다. 고난의 과정을 불평과 원망속에서 보낼 것이 아니라 그것을 훈련의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나의 유익을 위해 주었다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롬5:3,4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련은 성장의 법칙이요, 우리의 인격은 이 세계의 폭풍우와 긴장 속에서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서양 격언에 "냇물에서 잔잔한 돌들을 치워버린다면 냇물은 노래를 잃어버린다."고 했습니다. 

시성 단테는 사랑하는 애인 베아뜨리체와 사랑의 파탄이 생기지 않았다면 저 유명한 단테의 "신곡"이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모짜르트는 가난과 굶주림과 죽음의 그림자가 위협하는 아래서 불멸의 작품 "진흥곡"이 나왔으며, 헬렌켈러의 눈, 귀, 입, 삼중고의 신체의 불구가 아니었다면 새 교육가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31세에 죽기까지 피아노한대 없이 가난한 사람이었던 슈베르트였지만 '아베마리아'와 같은 유명한 곡을 남겼습니다. 눈을 잃은 후에 실락원이라는 대작을 쓴 밀턴, 귀머거리가 된 뒤에 9번 교향곡을 쓴 베토벤, 증기기관의 발명가로서 불구였던 왓트 등은 모두 고난을 통하여 대성하였던 인물들입니다. 미국의 시인 라이스 여사는 '고난이야말로 변장된 축복'이러고 노래하였습니다. 고난은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 자신을 바라보도록, 의지하도록 하는 축복의 기회입니다. 인생은 고난을 통해서 영글게 되어 있습니다. 고난은 삶을 힘있게 해줍니다. 인생의 맛을 더해 줍니다. 의미를 부여해 줍니다. 

예수님의 고난을 보십시오. 지금까지 태어난 수많은 사람들 중에 외양간에서 태어난 사람있습니까? 태어나자마자 잔인한 헤롯왕의 칼날을 피하여 피난생활을 하였습니다. 시골 나사렛사람으로서 가난한 목수의 일을 하였습니다. 머리 둘 곳도 없는 무주택자였습니다. 결혼 한번 못한 노총각으로 33세에 그 무서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것도 자기 제자에 의해 30냥에 팔렸습니다. 수제자라고 하는 베드로는 그를 배신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라(시편 126 : 5)

어느 가수의 노래처럼 쨍하고 해뜰 날이 돌아오는 것입니다. 고난은 때때고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암은 아픔이 있다면 암으로 죽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죽음의 위기에 다가올 때까지 아픔이 없기 때문에 문제인 것입니다. 아픔을 좋은 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고난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30) 

하나님은 우리를 영원히 버리지 않습니다. 잠깐 근심하게 하나 하나님의 풍부한 자비대로 긍휼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징계를 하는 것은 그것으로 말미암아 죄를 버리게 하는 것입니다. 고난당한 현실에만 집착하지 말고 약속하신 미래의 회복을 소망하고 현재의 고난을 인내해야 합니다. 인생이 고생하고 근심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본심이 아닙니다. 고난의 과정을 통해 우리의 인격을 훈련시키고 결국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합니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벧전 1:7)“

어떤 상황이 다가와도 회복탄력성이 있는 신앙인은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기다려야 합니다.(19-24) 회복탄력성이 있는 신앙인은 인내함으로 기다려야 합니다(25-26).

회복탄력성이 있는 신앙인은 기대를 가지고 순종함으로 기다려야 합니다(27-33).
(김필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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