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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그네로 다시 오신 하나님 (창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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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로 다시 오신 하나님’.com 

 “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날이 뜨거울 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아 있다가 2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서 있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3이르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시옵고 4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에서 쉬소서 5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상쾌하게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당신들이 종에게 오셨음이니이다  그들이 이르되 네 말대로 그리하라 6아브라함이 급히 장막으로 가서 사라에게 이르되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 하고 7아브라함이 또 가축 떼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잡아 하인에게 주니 그가 급히 요리한지라 8아브라함이 엉긴 젖과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들 앞에 차려 놓고 나무 아래에 모셔 서매 그들이 먹으니라 9그들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대답하되 장막에 있나이다 10그가 이르시되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11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에게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는지라 12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13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14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15사라가 두려워서 부인하여 이르되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이르시되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창 18:1-15)

오늘 창18장의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찾아오시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그네의 모습으로 아브라함을 찾아오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식으로 아브라함을 찾아오신 적은 없었습니다.  바로 앞장인 17장을 보면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창17;1) 이렇게 항상 자신을 여호와라고 소개하시면서 그를 찾아 오셨는데... 이번에는 좀 다른 것이지요. 성경에는 세 사람이라고 하였는데... 이 중에 누가 여호와이신지, 천사가 두명 따라온 것인지, 어떤 학자들은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을 말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본문에서 궁금하게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왜 나타나셨는가? 그리고 평소와는 다르게 왜 나그네가 되셔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오늘 본문을 보면서 일단은 히브리서 13장에 나오는 말씀을 생각합니다.  (히13:1-2)‘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2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히브리서의 이 말씀은 본문의 아브라함을 생각하며 권하는 말씀입니다. 성도여러분, 우리는 형제를 사랑하고, 손님 대접하는 것을 소중한 것으로 여겨야 합니다. 이것은 크리스챤인 우리들이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다가  천사를 대접하고 하나님을 대접하는 대박을 터트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대접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당연히 어려운 사람을 정성을 다하여 대접하여야 합니다. (마태25:34-40)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 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35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40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는 말씀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특히 어려운 사람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알려주십니다. 

그러면 성도여러분, 오늘의 본문은 나그네를 대접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대접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이야기입니까?  그러면 이것으로 오늘의 설교말씀이 다 끝났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까? ‘나도 아브라함처럼 나그네를 잘 대접해야 하겠다. 그러다 하나님을 대접하는 놀라운 일을 겪을지 누가 알겠는가?  그리고 평소에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보여야 하겠다. 그것이 곧 예수님을 대접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이것은 옳은 말이며, 중요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렇게만 오늘의 말씀을 읽을 수가 있을까요?   아브라함과 오늘 성경을 읽는 우리에게 이런 교훈을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다른 때와는 다르게 자신을 나그네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의도하셨던 다른 의도는 없는 것일까요? 
  
한 가지 더 생각할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찾아오신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를 다시 찾아 오셨다는 것입니다. 17장을 보면 아브라함이 99세가 되었을 때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찾아 오셨습니다. 이것은 아브람이 이스마엘을 낳고 13년 후에 다시 찾아오신 것입니다.  13년 후에 오신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몇 가지를 분명하게 언약을 하셨습니다. 그 언약의 증거로 첫 번째는 이름을 바꾸게 하십니다.  

(5,15절)“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15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사라라 하라” 아브람은 아브라함으로, 사래는 사라로 이름을 바꾸심으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될 것을 언약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라에게 분명히 언약을 하십니다.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16절)
 
그리고 이러한 언약의 증거로 두 번째는 할례(割禮)를 받게 하십니다.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10절)  이렇게 언약의 말씀을 하신 하나님께서는 하늘로 다시 올라가십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온 집안사람들에게 할례를 행합니다. “그 날에 아브라함과 그 아들 이스마엘이 할례를 받았고 27그 집의 모든 남자 곧 집에서 태어난 자와 돈으로 이방 사람에게서 사온 자가 다 그와 함께 할례를 받았더라”(26-27절) 성도여러분,  이제 모든 준비가 정말 다 끝났습니다. 이삭이 태어나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하나님은 18장에서 다시 아브라함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창세기 17장과 18장 사이에 얼마나 되는 시간적인 간격이 있는지... 그것을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또 아브라함을 찾아 오셨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17장에서 하나님은 사라가 아들을 낳게 되는 시기를 ‘내년 이맘 때’라고 하셨습니다.(17:21) 

그런데... 18장에서도 하나님은 거듭해서 이삭이 태어날 시간을 ‘다음해 이맘 때’라고 말씀하십니다.(10절) 이런 것을 보면 정말 17장과 18장 사이에는 시간의 차이가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17장에서 아브라함을 찾아오신 후 얼마 되지 않아서 18장에서 다시 그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욱 궁금해집니다. 하나님께서 왜 아브라함을 이렇게 금방 또 다시 찾아 오셨을까?  어떤 때에는 한 십여 년 이상을 침묵하시면서 아브라함을 그냥 내버려 두시는 것처럼 그렇게 보였던 시간도 있었는데... 이번에는 불과 한 두 달 남짓한 시간에 다시 그를 찾아 오셨습니다.  그것도 나그네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두 가지 궁금증...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빨리 아브라함을 찾아 오셨을까? 그리고 왜 나그네가 되어서 오셨을까? 이러한 궁금함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하나님과는 또 다른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고... 새로운 은혜를 경험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지면서 여러분과 함께 생각하려고 합니다. 

성도여러분, 성경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시, 그리고 급하게 아브라함을 찾아오실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다시 급하게 오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성경에 잘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창세기 17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가 하나님과 맺었던 땅에 대한 약속과, 후손에 대한 약속을 다시금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비로소 그에게 ‘아브라함’과 ‘사라’라고 하는... 믿음의 조상에 걸 맞는 이름도 지어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아브라함을 비롯한 모든 남자들에게 할례를 행하도록 하셨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세상의 다른 모든 사람들과는 다른... 아주 특별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언약을 들은 아브라함과 사래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우리는 성경에서 그들의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창17장 17-19절에 잘 나타나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18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아뢰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모든 언약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웃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물론 그는 하나님을 무시한 것은 아닙니다. 단지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미 있는 아브라함의 아들이자 하갈의 아들인 이스마엘이나 복을 받기를 원하는 기도를 합니다.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아뢰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마음입니다.   그는 99세가 된 자기나,  89세인 사라가 아이를 가진다는 것을 도저히 상식적으로 믿고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아브라함에 대하여 하나님이 대답을 하십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19절) 하나님께서는 분명하게 사라를 통하여 아이가 있을 것이고 장차 태어날 그 아이의 이름은 ‘이삭’이라고 그 이름까지 분명히 말씀을 하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우리는 18장에서 사라의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창18;9-12)“그들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대답하되 장막에 있나이다 10그가 이르시되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11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에게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는지라 12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아브라함과 사라는 17장에서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할례도 행하였지만 여.전.히. 그 말씀을 믿고 받아들이기는 어려웠습니다.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이것이 17장에서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들은 사라의 솔직한 생각이요, 솔직한 반응이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특별한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자기들이 특별한 사람이 된다는 것을 믿고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의 상식으로는 말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도여러분, 너무 시간이 오래 지나가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화려하고 창대한 미래를 말씀하고 계시지만... 이제는 그런 말씀조차도 아브라함과 사라의 가슴에 와 닿지를 않습니다.   새로운 이름을 가졌다는 것과,  할례를 행하여서 자기들이 남다른 존재라는 것을 몸에 새기게 되는 일도...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니까 하기는 하지만... 그것 뿐입니다. 그냥 하라니까 하는 의식일 뿐입니다.  

너무 시간이 오래 지나가버렸고, 아브라함과 사라는 너무나 늙어 버렸습니다. 오랜 나그네살이에, 오랜 인생살이에 지쳐버려서.. 모든 희망을 다 단념해 버리고... 단지 이스마엘이나 바라보면서 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찌 이런 아브라함과 사라의 마음을 모르시겠습니까? 이런 아브라함을 두고 하늘로 올라가시기는 하셨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다시 아브라함을 찾아오신 이유가 아니겠습니까? 
 
다시 아브라함에게 믿음을 불러일으키시기 위해서... 처음에 그가 하나님의 말씀 하나만 붙잡고 믿음의 발걸음을 걷기 시작했을 때의 아브라함으로 되돌아가게 하기 위해서... 이제 늙고 지치고... 희망조차 사라져버린 아브라함,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믿음이 생기지 않는 아브라함과 사라를 다시 붙잡아 주시고... 다시 일으켜 세우시기 위해서 다시 아브라함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본문의 주제는 희망(希望),이며 변화(變化)며,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시각(視覺)입니다.  아브라함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이는 젊지만, 또 모태신앙이지만 자기에게 특별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믿음이 없는 사람,  아무리 예배를 참석하고 말씀을 들어도 감동이 없는 사람들에게 희망(希望)과 변화(變化)와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시각(視覺)주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하게 언약을 하십니다.  ‘다음해 이맘때에, 내가 반드시 너를 다시 찾아오겠다. 그 때에 너의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10절) 장막 뒤에서 그들의 대화를 엿듣던 사라는 그 말을 믿지 않습니다. ‘나는 기력이 다 쇠진하였고, 나의 남편도 늙었는데, 어찌 나에게 그런 즐거운 일이 있으랴! 하고, 속으로 웃으면서 중얼거렸다.’(12절)  

사라는 얼마 전에 오셔서 언약을 주시고, 할례를 주신 하나님,  이제 다시 오셔서 말씀하시는데도 또 속으로 웃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나님이 또 하시는구만’ 하면서  ‘아 예. 예. 알겠습니다. 아 예. 아멘. 아멘입니다.’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라에게 하나님께서는 다시 분명히 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14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15사라가 두려워서 부인하여 이르되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이르시되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창18;13-15) 

성도여러분, 하나님께서 사라와 말싸움, 자존심 싸움을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사람을 통해서 일어납니다. 그래서 사람이 먼저 준비되어야 합니다. ‘이삭’을 낳을 사람은 하나님이 아닌 사라 본인 아닙니까? ‘이삭’의 어머니가 될 사라가 믿음의 사람으로 준비되어져야 하기 때문에, 사라가 먼저 입술로 시인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정말 감동스러운 진리를 발견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을 다시금 알게 됩니다. 우리하나님은 한 번 선택하시고, 믿음의 세계로 초대한 사람은 결코 포기하거나 그냥 내버려 두시는 분이 결코 아닙니다.  지금 아브라함이나 사라나 다 지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얼마나 무력하고 무능한 사람들인지... 자기들의 한계를 잘 알기에...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어떤 약속을 하여도 이제는 믿을 수가 없게 되어 버리고 말았을 때...  하나님은 그들이 다시 믿음에 이르도록... 그리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과 후손에 대한 복을 받을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도록 다시 말씀하시고 다시 믿음을 일깨우십니다.  이런 모든 행위들이 다 시들어 가는 아브라함과 사라의 믿음을 다시 일깨우기 위한 하나님의 열심(熱心)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이러한 믿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거듭해서 우리를 찾아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주실 땅과 후손들에 대한 희망으로 충만하여서 신나게 믿음 생활을 하였는데... 이제는 그렇지를 못합니다. 그렇다고 과거로 옛날로 되돌아가자니... 이미 그것도 아닙니다.  

앞으로 나갈 믿음도 없고, 되돌아 갈 수도 없고... 그래서 그냥 그렇게 이곳에 마지못해서 머물러 있는 존재가 되고 말았는데... 하나님께서 찾아오십니다. 여전히 약속(約束)은 유효하다고... 우리들에게는 얼마든지 가능성이 있다고...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 자신이 보장한다고...그렇게 말씀하시면서 다시금 우리를 믿음과 희망이 가득한 세계로 초대하십니다.  그리고 언약하신 대로 사라에게서 ‘이삭’이 태어납니다.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특별한 사람으로, 말씀의 주인공으로, 땅과 후손이라는 복의 주인공으로 만드십니다.  

저는 특히 사라에게 하신 말씀에서 큰 감동을 받습니다. ‘다음해 이맘때에, 내가 반드시 너를 다시 찾아오겠다. 그 때에 너의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10절) 잘 아시다시피 아이는 열 달을 어머니 뱃속에 있습니다. 사라는 믿지 못했지만 이미 사라에게서는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다 기도를 합니다. 어떨 때는 정말 간절하게 기도를 할 때가 있습니다.  

어떤 일은 정말 정말 꼭 하나님께서 응답을 해주셨으면 하고 간절하게 기도를 하다가 아예 포기를 하기도 합니다. ‘에이 나한테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나겠어. 나에게는 안 되는 일이야’ 합니다. 사라가 그렇습니다. 이제까지 얼마나 얼마나 사라가 아이를 잉태하기를 바랐습니까? 그런데 89세가 된 지금까지 그 일이 안 이루어집니다. 지치고 지쳐서 다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의 역사는 시작이 된 것입니다. 사라가 자기 몸의 변화를 느끼면서 얼마나 감격을 하였겠습니까?  

이렇게 보면... 우리가 두 번째로 생각해야할 문제... 하나님께서 왜 하필 나그네가 되셨을까? 하는 문제에 대한 해답도 보입니다.  성도여러분,  오늘의 이야기 속에서는 아브라함은 한 곳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고... 하나님은 누군가가 쉴 곳과 먹을거리를 마련해 주지 않으면 안 되는 나그네가 되셨습니다. 그런데... 사실 나그네의 원조는 아브라함입니다. 

성경은 아브라함을 말할 때마다 나그네라고 이야기합니다. (신명기26:5)‘내 조상은 떠돌아다니던 아람 사람으로서...’ 이런 대목이 있는 데 이것은 바로 아브라함의 이야기입니다.  히브리서에서도 아브라함은 영원한 나그네로 고백되어지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히브리서 11:9)  

오늘 말씀을 보아도 우리는 나그네로서의 아브라함을 만날 수 있습니다. 아직도 그가 훌륭하고 견고하게 기초를 둔 저택이 아니라 장막에서 생활 하고 있다는 것... 그것은 그가 항상 이 세상에서는 떠돌이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여 줍니다. 그런데... 오늘 아브라함을 찾아오신 하나님께서 바로 나그네가 되셨으니... 이러한 하나님의 모습이 아직도 나그네 길 위에 서 있는 아브라함에게는 얼마나 커다란 위로와 격려가 되는 것일까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서로를 깊이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남자가 중한 병에 걸려서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너무 큰 슬픔에 여자는 눈물도 흘리지를 못했습니다.  여자도 환자였기에 남자의 장례식에도 갈 수가 없었습니다. 여자는 왜 자기 같은 사람은 여전히 살아있고 그 착하고 좋은 사람이 먼저 가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고 분노마저 생겼습니다.  두 사람의 사이를 아는 많은 사람들이 여자를 찾아와서 위로를 했습니다. 그 사람들의 위로는 따뜻한 것이었고, 가식도 아니었지만 여자는 그 위로가 마음에 와 닿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남자의 어머니가 여자의 병원으로 찾아왔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얼굴을 보고 울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세상에서 함께 울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이 분뿐이다.  이 어머니만큼은 예외다.’ 하면서 울었습니다. 일본의 여류작가 미우라 아야꼬(삼포능자)씨의 이야기입니다.  
 
나그네로 나타나신 하나님을 보는 아브라함의 마음이 바로 이랬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별다른 위로의 말씀을 하시지 않습니다. 그냥 나그네의 모습으로 나타나십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얼마든지 읽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부터는 힘들고 어려운 중에서도 기쁨과 감동을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도 나그네셨는데... 하나님께서 앞서서 가신 길을 지금 내가 걷고 있는데... 나그네이신 하나님만 생각하면 힘이 나고... 배가 부르고... 갈증이 사라지고... 하나님만 생각하면 이렇게 남다르게 나그네의 길을 걸어간다는 것이 힘들고 어려운 것만은 아닙니다. 

성도여러분, 정말 지쳐본 적이 있습니까? 정말로 희망이 없고 낙담이 되어 아무런 기대도 아무런 소망도 품을 수 없어서 죽지는 못하고 그냥 그냥 하루를 보내는 삶을 경험해본 적이 있으십니까?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어떻게 무어라고 힘을 주실까요? 우리 하나님은 예수님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십니다. 혹시 너무 너무 외로우십니까?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하나님에게서조차 외면을 받으실 만큼 혼자이셨습니다.

혹시 너무 너무 아프십니까? 예수님은 채찍에 맞아 피를 흘리신 후에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너무 너무 가난하십니까?  예수님은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눅9;58) 하셨습니다. 그리고 40일을 굶기도 하셨습니다.  나그네가 되어서 아브라함을 찾아오신 하나님! 그 하나님은 십자가를 지시는 예수님의 모습으로 오신 하나님과 같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모든 고통과 어려움을 잘 알고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서 결코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 혼자서만 힘들고 어려운 길을 걷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그네가 되셔서 우리가 가는 길에 함께 하고 계시다는 것... 이것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끝으로 하나님께서 본문을 통해 우리들에게 주시는 영원한 말씀이 있습니다. 아마 하나님은 이 말씀을 하시려고 오늘 나그네가 되어서 우리를 찾아오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14절)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라를 향하여 아주 단호하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사라는 여전히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어찌 나에게 그런 즐거운 일이 있으랴!’ 자신과 남편 아브라함의 처지를 생각해보면 사라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 것이지요. 모든 생명의 징조가 사라져버린 그들이 어떻게 아들을 낳을 수가 있다는 말인지... 그냥 어처구니없는 웃음만 나올 뿐입니다. 이렇게 믿지 못하고 있는 사라를 향하여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이것인 것이지요.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여기에서 우리는 두 가지를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이 행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아들을 낳는 것은 당연히 아브라함과 사라의 몫이지요. 하지만, 이것을 가능하게 하시는 분... 그들 속에서 하나의 생명이 태어나도록 하시는 분! 그 분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것! 이것을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비단 이렇게 아기를 낳는 일 뿐일까요?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를 오늘까지 이르도록 하신 분! 그 분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우리가 도무지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 ‘나의 인생에 어떻게 그런 즐거운 일이 있겠어? 말도 안 돼. 절대 불가능해’ 이렇게 어렵다고 생각하는 모든 일... 그것을 능히 이루시는 분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들을 향하여서도 하나님은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말씀하시면서 우리들을 다시금 믿음의 세계로 초대하십니다.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우리가 여기까지 오는 동안의 모든 일들... 그것은 잘 보이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손길과 인도하심이 있기에 이루어진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간절히 바라고 희망하는 것... 그 바람이 너무나 소중한 것이어서 ‘내 생전에 그런 좋은 일이 있을 리가 있나...’ 하면서 그렇게 포기할 수밖에 없는 꿈과 희망들... 그것을 이루어 주시는 분! 그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너무 오래 믿어서, 너무 나이가 들어버려서, 모태신앙으로 오히려 아무 일도 생기리라고는 기대도 안하고, 앞으로 나가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뒤로 돌아갈 수도 없어서 그냥 그대로 어정쩡 서있는 우리에게 또 다시 찾아오셔서 우리를 변화시키고, 언약을  이루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만난 창18장의 하나님을 저와 여러분들도 다 만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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