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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롬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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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롬 12:1-2)


1-11장은 예수님을 믿는 것은 무엇인가? 교리를 말씀한다. 신앙을 말씀한다. 
12-16장은 예수님을 믿으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윤리를 말씀한다. 생활을 말씀한다. 
신앙은 있는 데 생활이 없다든지, 생활은 있는데 신앙은 없다든지 그러면 신앙생활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교리는 잘 아는데, 윤리가 부족하면 신앙생활 잘하는 게 아니다. 윤리는 있는데 교리가 부족해도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게 아니다. 신앙생활에서 둘의 균형과 조화가 꼭 필요하다. 

오늘 말씀은 윤리의 서론 부분이다. ‘그러므로’ 라는 말로 시작한다. 1-11장의 결론이다. 
죄인인 우리가 심판대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 
죄인인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영원히 죽어야 할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 ‘그러므로’ 

‘그러므로 형제들아’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사람은 형제들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을 ‘형제들’이라고 부른다. 그냥 듣기 좋으라고 부르는 이름이 아니다. 실제로 형제가 된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동일한 자녀들이 되었으니 형제라고 부르는 것이 맞다. 영적인 가족, 영원한 가족, 하나님의 가족이 된 것이다. 
국적이 달라도, 피부색이 달라도, 언어가 달라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모두 다 형제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형제의 입장에서 권고하고 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명령하지 않는다. 지시하지 않는다. 왜? 형제이니까! 그래서 권고한다. 
어떤 마음으로 권고하는가? 아버지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권고한다. 사랑의 마음으로 권고한다.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권고한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권고한다. 

교회 안에서 목사가 가져야할 마음이다. 교회 안에서 리더들이 가져야할 마음이다. 직분자들이 가져야할 마음이다. 
권고하는 사람이 조금만 방심하면 권고대신 지적한다. 비판한다. 책망한다. 
그러면 그 권고를 받는 사람은 권고대신 상처를 받는다. 힘을 얻는 대신 시험에 든다. 

동생이 잘 못했다. 그런데 형이 동생을 비판한다. 책망한다. 그러면 그걸 보는 부모 마음이 어떤가? 잘못한 동생보다 형이 더 못마땅하다. 그래서 형을 야단친다. 
만약 형이 동생에게 자비로운 말로 권고를 하는 걸 본다면 어떨까? 말할 것도 없이 마음이 기쁠 것이다. 고마울 것이다. 네가 형답구나! 신뢰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이 그러실 것이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너희 몸을 제물로 드리라. 

1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먼저 몸을 드리라고 말씀한다. 무슨 말씀인가? 말 그대로 몸을 드리는 것이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주고, 입으로 말하고, 손발로 행동하는 것이다. 
몸을 드리는 것은 우리 몸으로 사는 삶을 드리는 것이다. 생활을 드리는 것이다. 

가정에서 우리 몸으로 생활을 하는 것이다. 내가 기뻐하는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다. 가정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도록 생활을 하는 것이다. 직장에서 우리 몸으로 생활을 하는 것이다. 내가 기뻐하는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다. 직장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도록 생활을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교회에서도 우리 몸으로 생활을 하는 것이다.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도록 몸으로 생활을 하는 것이다. 

삶으로서의 예배를 드리라는 것이다. 주일예배, 셀 예배, 가정예배 매우귀중하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이기 때문이다. 그 예배 중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가정생활, 직장생활, 교회생활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가정에서 계신다. 
하나님은 교회에도 계신다. 하나님은 직장에도 거기에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디서 누구에게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이다. 
골3:20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마25:40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45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제물로 드릴 때, 제물은 자기가 무얼 받으려고 드리지 않는다. 제물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이다. 
*구약의 제물은 제물을 바치는 사람을 위해 드려졌다. 그 사람의 죄를 위해 희생되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 제단에 드려졌다. 내 죄를 위해 희생되신 것이다. 

주님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의 생활이 제물이 되기를 원하신다. 제물로 살기를 기뻐하신다. 
주님은 가정에서 제물이 될 남편을, 아내를 찾으신다. 누가? 당신이? 아니 바로 내가! 
주님은 직장에서 제물로 직장생활할 성도를 찾으신다. 제물로 사업할 성도를 찾고 계신다. 
주님은 우리 교회에서 제물로 희생하며 봉사할 사람을 찾고 계신다. 
그를 보시면서 주님은 기뻐하신다. 네가 진정한 내 종이구나! 나를 본받는 제자구나!! 

이런 신앙생활을 ‘영적 예배’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 합당한 예배라는 뜻이다. 
우리가 삶으로 드리는 예배인 것이다. 어떻게 하면 삶으로 드리는 예배자가 될 수 있는가? 


세상을 본받지 말라. 

우선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말씀한다. 2절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예수님을 믿으면 곧장 천국으로 불러 가시는가? 아니다. 그냥 세상에서 살게 하신다. 
여전히 같은 세상, 같은 사람들, 같은 일들 속에서 살게 하신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하신다. 
우리는 이 세대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이 시대의 풍조를 따라 살지 말라는 말이다. 이 시대의 유행을 따라가지 말라는 말이다. 
세상의 트렌드에 따라 살지 말라는 말이다. 엡4:22-24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왜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하는가? 

요일2:15-16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이 시대의 유행을 따라가면 하나님을 따가 가기가 어렵다. 
돈을 따라가면 하나님 못 따라간다. 예배도 멀어지고, 기도도 멀어지고, 봉사도 멀어진다. 
욕심을 따라가면 하나님 못 따라간다. 제물이 못된다. 섬김지도 못한다. 희생하지도 않는다. 
세상재미를 따라가면 하나님 못 따라간다. 세상이 하나님보다 더 즐거움을 줄거라고 믿는다. 하나님을 가까이 따라가면 세상재미를 다 빼앗길거라고 두려워한다. 
세상을 따라가면 갈수록 그 사람은 점점 더 하나님과 멀어지게 된다. 그래서 세상을 본받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세상과 담 쌓고 살라는 말씀은 아니다. 예수님도 세상에 오셨다. 세상에 사셨다. 
밥 먹고 옷 입고 사람들 만나고 생활을 하셨다. 그러나 세상을 본받지는 않으셨다. 
성육신하셨으나 세속화되지는 않으셨다. 오히려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내셨다. 
우리는 세상에서 산다. 세상 사람들처럼 먹고 자고 결혼하고 일하고 살아간다. 
그러나 세상을 본받지는 말라고 하신다. 

그러면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변화를 받아야 한다. 

2절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늘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한다. 왜? 늘 마음에 때가 끼기 때문이다. 
날마다 샤워를 한다. 아침저녁으로 세수한다. 하루에도 몇 번 손 씻는다. 왜? 더러워지니까. 
날마다 십자가의 보혈로 샤워를 하고 세수를 해야 한다. 마음의 씻음을 받아야 한다. 
날마다 속옷을 갈아입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입어야 한다. 날마다 화장을 하듯이 성령님이 주시는 소원으로 마음을 화장해야 한다. 사랑으로 겸손으로 화장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한다. 늘 새롭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변화가 되기 힘들다. 변화는 고사하고 변질되고 만다. 

그 위에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 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분별해야 한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하지 못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세상이 기뻐하는 것을 따라간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따라간다. 
세상 중심적인 사람, 나 중심적인 사람이 되어간다. 변화가 아니라 변질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답답해하시는 사람이 되고 만다. 


맺는 말 

시1:1-3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가는 시냇가에 심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하나님은 우리를 복 있는 사람으로 살게 하시려고 세상에서 불러 내셨다. 
그래서 우리에게 세상을 본 받는 사람이 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오히려 세상에서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이 되라고 말씀하신다. 
그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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