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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언어 장애인을 고치신 예수님 (마 9:3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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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장애인을 고치신 예수님 (마 9:32-34)

여러분! 낙인을 찍는다는 말을 아십니까? 원래 낙인(烙印)은 말의 엉덩이에 찍었던 불도장을 말합니다. 누구의 소유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 말이 점차 사람들에게 사용될 때는 씻기 어려운 불명예스러운 이름이나 평판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낙인이 찍혔다고 할 때는 주로 편견이나 오해에 의해서 잘못된 평판을 가지게 된 경우를 의미합니다. 낙인은 편견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게 됩니다. 

편견은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어떤 사람이나 사물에 대해서 객관적이지 않고 주관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고 그 주관적인 견해가 객관성을 해치게 되는 경우를 편견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심한 편견을 가지고 낙인을 찍었다는 말이 가능해 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는 이런 편견으로 인해서 잘못된 낙인을 찍는 일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한 번 낙인을 찍어 놓으면 그것을 지우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애를 써야 합니다. 늘 나의 판단이나 시각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지나치게 확정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것을 자제해야 합니다. 

특히 그것이 어떤 사람에 관한 것일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우리 말 속담에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뭐 좋은 의미로 사용된 것 같아 보이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좋은 쪽으로 본다면 그러므로 함부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편견 때문에 잘못된 낙인을 찍어 놓고 너무나 명백한 기적 앞에서도 귀신의 왕을 힘입었다는 강변을 늘어놓는 이상한 사람들을 만납니다. 우리는 이미 여러 가지 사건들을 통해서 이 사람들이 객관성을 상실했다는 증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설교를 마치시고 가버나움에 도착했을 때에 첫 번째 문둥병을 고쳐주셨습니다. 그 이후에 베드로 장모에 열병을 비롯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치료하신 후에 열 번째 귀신들려서 말을 못하는 사람을 고쳐주신 사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두 소경을 집에서 고쳐주었을 때에 일반 백성들이나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메시아라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었습니다. 

이때에 사람들이 예수님께 어떤 병자를 데리고 왔습니까? 귀신이 들려서 벙어리 된 사람을 예수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벙어리 된 사람]이란 귀가 멀었기 때문에 말을 못하는 증세가 난타난 사람입니다. 이 질병에 원인을 귀신이 들렸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현대 의학에서는 귀신들림에 대하여 부정합니다. 그 이유는 과학적인 근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와 반대로 모든 질병은 귀신 들림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베뢰아 김기동 목사의 귀신론입니다. 그는 모든 질병은 귀신이 가져다준다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모든 사람이 120살까지 살도록 창조하셨는데 그 이전에 예수님을 믿지 않고 죽으면 남은 기간을 귀신이 되어서 후손들에게 질병을 가져다준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질병을 고칠 때에 귀신과 연관이 있다고 하지만 모든 질병이 귀신들림에서 온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땅의 모든 질병이 귀신들림이 원인이라고 한다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것이 없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성령님이 내주하는 성전이기 때문에 귀신이 들어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대로라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감기에도 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도 암에 걸리고 감기에 걸립니다. 따라서 이 땅의 모든 질병이 다 귀신들림에 의한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벙어리 된 사람'을 고친 사건을 통하여 제자들에게 교훈하시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이 벙어리 된 사람이 질병에 걸린 원인은 그 배후에 귀신임을 알아내는 영적 통찰력이 소유한 메시아라고 자신을 알리고자 하는 의도였습니다. 

이사야는 이런 능력을 소유하신 예수님이 오시면 "그 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사 35:5-6)고 예언하였습니다. 

이사야가 예언했던 그 때가 언제입니까? 메시아가 오실 때입니다. 그러므로 벙어리가 말하게 되는 이 놀라운 기적은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메시아의 현현(顯現)을 확고하게 보여주는 표적이며 증거입니다.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고 '벙어리 된 사람'이 고침을 받았을 때에 일반백성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이 사건을 바라본 사람들이 놀라면서 "이런 일들은 이스라엘에서 처음 보는 일이다"고 말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에서 말씀을 마치시고 내려오실 때부터 문둥병자를 고치신 사건을 시작으로 해서 귀신이 들어서 벙어리 된 사람까지 고쳐주신 사건을 목격한 일반 백성들이 나타냈던 반응입니다. 

일반백성들이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을 본때가 없다"는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선지자들도 이와 같은 이적을 행한 일이 없었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쳐주실 때에 아무대가를 요구하지 않고 고쳐주셨습니다. 이런 이유에서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을 본 때가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가난한 서민들이었기 때문에 질병을 고쳐 주셨기 때문에 어떤 선지자들보다도 탁월한 분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쫓아 다녔습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질병을 고쳐주신 사건을 보면서 일반백성들이 생각했던 예수님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그 질문에 해답은 오병이어 사건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건너편에 산에 오르실 때에 사람들이 모든 병자를 데리고 구름 같이 모였습니다. 이 모든 사람들을 치료하시는 동안에 저녁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집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집에 가도 먹을 떡이 없어 굶주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녁때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집에 가지 않고 예수님만 바라보고 앉아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를 가지고 축사하신 후에 오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그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을 보고 어떤 행동을 하였습니까? 예수님께서 요 6:26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라고 잘못을 지적하신 후에 27절에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 일하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쳐주셨을 때에 바리새인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바리새인들은 "그는 귀신의 두목의 힘을 빌어서 귀신을 내쫓는다"하고 말하였습니다. 이 사건과 유사한 사건이 12:24에서 발생했을 때에 "바리새인들은 듣고 이가 귀신의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기적들을 보면서 귀신의 왕 타령을 하고 있는 일단의 사람들을 만납니다. 성경은 이 사람들이 바리새인들이라고 구체적인 신분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귀신의 왕 바알세불이라는 말은 10:25절에서 주님이 사용하십니다. 

그리고 다시 12:22절 이하에 귀신들려 눈멀고 벙어리 된 사람을 치유하시는 장면에서 등장하는데 이 때는 오늘과 비슷한 상황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듣고 이가 귀신의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마12:24절)그랬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서 행하신 치유사역을 보았을 때에 이런 반응을 보였던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기가 싫다는 의미입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메시아는 골리앗을 물맷돌로 물리친 다윗과 같은 정치적인 메시아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병든 사람을 고쳐주신 능력은 자신들이 그 동안 그려왔던 메시아와는 전혀 다른 메시아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이적을 귀신놀음으로 치부해 버렸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메시아는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이 생각하고 있는 틀 안에 들어오지 않는 메시아는 아무리 놀라운 이적과 기사를 보여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귀신의 왕이라고 폄하(貶下)하는 말을 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이렇게 파렴치한 행동을 가능하게 했던 이유는 그들에게 메시아에 대한 편견(偏見)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다윗과 같은 메시아가 나타나서 로마를 물리치고 새로운 나라를 건설을 하는 정치적인 메시아로 생각하였습니다. 

우리들도 어떤 편견을 가지고 예수님께서 베푸셨던 이적들을 바라보면 바리새인보다 훨씬 유치하고 부끄러운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이 바리새인들은 도덕적으로는 자타가 공인하는 거룩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바리새인들에게 잘못했다고 지적 할 때에 그들은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자기 스스로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의 지적을 못 견뎌합니다. 스스로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착각에 빠지기 때문에 이러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서 문둥병자를 시작으로 해서 벙어리 된 사람까지 고쳐 주셨습니다. 그 이적을 바라보았던 두 분류에 사람이 있습니다. 한 분류는 일반백성들로서 예수님을 육신에 먹을 것을 해결해 주는 메시아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억지로 잡아서 임금을 삼고자 하였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그 당시에 종교 지도자였던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메시아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생각했던 메시아는 다윗과 같은 정치적인 메시아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베푸신 이적을 보고 귀신놀음이라고 치부하였습니다. 

우리들도 예수님에 대하여 편견을 가지고 있다면 일반백성들이나 바리새인들과 같은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푸신 이적들을 바라보면서 일반백성들이나 바리새인들과 같이 편견을 버릴 때에 예수님을 바르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성도들이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는 올바른 자세입니다. 이런 우리들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저와 여러분도 얼마든지 이런 낙인, 편견에 사로잡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십니까? 여기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있는 그대로 느끼고 받아들일 수 있는 순수함을 상실해 버려서는 안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참으로 많은 것들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나의 많은 기득권들을 내려놓을 준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기득권을 가지려는 노력을 포기해야합니다. 가난한 자의 자리에서 가난한 자의 사고방식을 견지할 수 있어야하겠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비로소 주님에게 모든 것을 맡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를 만드셨기에 우리 몸의 고장난 것(모든 병)을 고치시는 분이십니다. 낙인과 편견을 버리고 참된 믿음으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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