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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질적인 성장 요소(2) (행 2:4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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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적인 성장 요소(2) (행 2:43-47)  

우리는 지난 주에 교회의 질적 성장 요소로 세 가지를 생각하였다. 가르침이 있는 교회, 친교가 있는 교회, 기도에 힘쓰는 교회가 성장한다는 내용이었다. 오늘 우리는 계속해서 그 질적 성장 요소를 찾아보려 한다. 

성장과 성숙, 사실 이것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 성장과 성숙은 균형의 문제지 성장이 성숙을 무시하고 성숙이 성장을 외면해서도 안된다. 양적 성장에 뒤따르는 질적 성숙의 모델은 예수님이시다. 눅2:52을 보라. 예수는 지혜가 자라나고 또 키가 자라났다. 즉 성숙과 성장이 함께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셨다. 즉 성장과 성숙이 무엇을 향하는가의 문제다. 하나님과 사람의 사랑으로 둘러싸이는 자라남이라는 것이다. 우리 교회도, 개인의 신앙도 이 예수님의 모습이어야 한다. 성장과 성숙이 밸런스가 잘 유지되는 신앙이 될 때 더욱 구원받는 사람의 숫자가 날마다 더해갈 것이다. 성장과 성숙이 이뤄지지 않기에 세상이 교회를 업신여긴다. 행2:47의 말씀처럼 온 백성이 칭송하는 교회로 되기 위해 초대 교회가 지녔던 성장 요소는 무엇인가?
  

1. 경외감을 지녀야 한다. (행2:43)

행2:43을 보면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라고 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두려움이란 재난에 대한 두려움, 실패에 대한 두려움, 저주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다. 본문의 두려움은 하나님을 존경하기에, 하나님을 살아계신 거룩한 분으로 공경하기에 하나님 앞에서 느끼는 거룩의 감정이다. 즉 떨리는 마음, 존경의 마음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올 때 바로 이 경외감을 지니고 나와야 한다. 

나는 다 알고 계신,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두려움, 이 경외감이 있으면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도용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지 않는다.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게 예배하는 자가 된다. 전5:1을 보면 “너는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 조심함으로 발을 움직인다는 것은 하나님의 전이라는 경외감으로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교회의 사도들의 영적 권세를 볼 때 경외감을 가진 것이다. 교회의 사도들은 권위가 있었다. 하나님의 성령이 함께 하는 사도들은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들이지만 각 사람들에게 권세가 있었다. 예수의 이름으로 외칠 때 말대로 열매가 맺는 권세가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사람의 표식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경외감을 가졌다.

경외감, 그것은 믿음과 겸손에서 온다. 체험과 확신에서 온다. 되어진 일들이 사람의 솜씨가 아니라 하나님의 방식이라는 것을 느끼는 자에게 주어진다. 매사가 하나님의 흔적이라고 말하는 자에게 주어진다. 이제 경외감 없는 신앙 생활을 놓고 자기 점검을 하여 태도를 바꾸자.
  

2. 표적이 따라와야 한다. (행2:43下)

행2:43下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라고 하였다. 이 시대는 무엇이든지 공개되는 시대다. 베일이 없고 감춰둘 것이 없다. 그래서 교회 생활에 대한 경외감도 잃어버렸지만 하나님의 기사와 표적 또한 비웃는 시대가 되었다. 과학과 의학을 앞세우는 인본주의는 기사와 표적을 버리도록 만들고 있다. 그래도 하나님은 기적을 일으키는 하나님이시다. 보혜사 성령은 지금도 기적으로 역사하시는 분이시다. 표적은 말씀을 말씀되게 하는 증거다. 

막16:20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 표적이 없는 말씀은 확실한 증거가 결여된다. 표적이 따를 때 말씀이 확실하게 된다. 히2:4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 표적과 기사는 하나님이 말씀 증거를 위해 자신이 사용하시는 도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표적이 나타나야 한다. 그것도 많이 나타나야 한다. 
  
① 사도행전 교회의 표적은 치유의 표적이었다.

세계 3위 교회이며 재적 성도 145,000명인 아르헨티나의 미래비전교회, 담임자인 오바 캬브레라 목사는 치유사역자이다. 기도로 치유하는데 치과적 치료가 나타나는 교회다. 치아 2개가 치료되었다는 것은 간증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 치유가 말씀이 말씀되게 한다. 우리 교회도 “기도해주세요. 어깨가 나았어요. 허리가 나았어요.”하는데 사도행전적 표적이 많이 있으면 신앙의 태도가 새로워진다.

② 사도행전의 표적은 교회를 지키는 표적이었다.

거짓과 위선으로 성령을 속일 때 치시고 넘어지게 하는 심판의 표적이었다. 이 모든 것은 성령의 역사요 주께서 일하는 것이다. 어떤 목적의 표적이든지 표적이 있으면 말씀이 어찌 확실하게 증거되지 않겠는가? 
  

3.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 (행2:44)

행2:44~45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크리스챤들은 동서남북으로 넌크리스챤 세계에 둘러싸여 있었다. 예루살렘 교회는 원시 기독교다. 체제나 조직이 없이 성령 받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처음 크리스챤들은 이 모든 물건을 고용으로 썼다. 우리는 지금도 물건을 서오 통용한다면 보통 친밀한 사이가 아니다. 또 물질을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었다. 원시 기독교 교회의 처음 모습은 사랑으로 드리고 나누는 교회였다. 누가 누구의 것을 빼앗아서 분배하는 것이 아니다. 너의 필요성을 위해 나의 재물을 팔아서 내어놓을 수 있었다. 공동체였다. 

사실 지금도 우리는 사랑의 교회로 가야 한다. 다만 주의 재림이 목전에 있다고 믿었던 그들과 우리는 다른 교회 시대를 지내고 있기에 그래서 꼭 물건을 다 팔고 재산을 다 내어놓아야 되는 시대를 사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금 이 시대도 필요에 따라, 쓰임에 따라 자발적으로 드리고 내어놓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우리 교회는 예배당을 지을 때 물질을 드렸다. 땅을 팔아서 바친 사람, 집을 팔아서 바친 사람, 물론 드리지 못한 이도 있었다. 그러나 각자의 분량대로 드렸다. 이 일은 계속되어야 한다. 다른 성도가 드리느냐, 못 드리느냐의 문제가 아니고 나는 감동의 힘에 의해 집을 내어놓는다. 주님의 사역을 위해 물질을 드린다. 땅을 내어놓고 감추어 두었던 보화를 내어놓는다. 피아노를 사다 놓고 오르겐을 사다 놓고 봉헌한다. 자원함으로 필요한 것을 채우고 헌신한다. 이 일이 계속되어 드리는 역사가 있는 교회, 바치는 손길이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4. 모이기에 힘써야 한다. (행2:46)

행2: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이 시대는 모이기를 패하는 시대다. 교회가 어떤 모임을 주선해도 “바쁜 사람들을 왜 모이라고 하는가”라며 불평한다. 초대 교회는 날마다 모였다. 모이는 일에 마음을 같이 하였다. 예루살렘 교회의 모임은 두 유형이었다. 성전에 모이는 모임, 집에서 모이는 모임, 이 두 개의 모임을 하루도 빼놓지 않았다. 

우리는 일주일에 주일 예배를 위해서 교회로 모인다. 또 CM의 모임을 위해서 집으로 모인다. 이 모임을 위해 힘써야 한다. 집에서 모이는 모임 시 떡을 떼고 음식을 나누는 것은 꼭 필요한 것이다. 사람이 마음의 문을 열고 가까워지는 것은 떡을 뗄 때이다. 밥상에 둘러 앉아, 찻잔 앞에 둘러 앉아 음식을 나눌 때 정이 생긴다. 나눠 먹을 때 인심이 솟는다. 성도는 집에서 모이는 모임이 중요하다. 

여기서 ‘집에서’란 말의 헬라어는 「가타 오이콘」이라고 씌여 있다. 이 전치사 ‘가타’는 선택의 의미로 보면 ‘어떤 집들 중에서 한 집’을 뜻하고 장소의 의미로 보면 ‘집, 가정의 모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3천명의 성도들이 집에서 떡을 떼는 것은 철저히 지역 모임이고 가정 모임인 것이다. 성도들이 흩어져 나가 가정에서의 모임, 이것이 초대 교회 성장의 비결이다. 가정에서의 모임, 이것이 속회 모임의 기초인 것이다. 교회에서 3천명이 모였으면 그 3천명이 흩어져 집에서 순전한 마음으로 모이는 것이다. 지역으로 그룹을 이루어 모이는 것이다. 이 모임이 크리스챤의 영적 전쟁의 진지이다. 적을 무너뜨리는 진지, 불의와 어둠을 무너뜨리는 진지이다. 

교회는 가장 크게 성장해야 하지만 교회는 또한 가장 작게 성장해야 된다는 릭 워렌의 말은 집에서 모이는 모임의 회복을 뜻하는 것이다. 그 모임이 든든하게 세워져 사탄을 막고 죄를 깨뜨리고 떠내려가는 영혼을 건지고 돌보는 작은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집에서 모이는 모임에서 죄를 이긴 승리의 개선가를 부르고 하나님을 찬미하게 되면 교회의 모임에서 찬송 소리는 감사와 기쁨이 담긴 새 노래로 올려지게 될 것이다. 

히10: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모이는 교회, 경외감을 지닌 성도, 기사와 표적이 경험되고 내 것을, 내 재물을 내어놓는 봉헌이 있는 곳에는 성숙이 온다. 온 백성이 칭송하는 성도가 되고 교회가 된다. 이제 성도들의 자기 점검이 요구된다. 우리의 마음은 어떠한가? 

행2:46上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행2:46下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라고 하였다. 오늘 말씀을 받는 성도들의 마음, 그것이 중요하다. 태도, 반응, 결단이 중요하다. 같이 한 마음, 순전한 마음으로 이 말씀을 받아 질적 성장 요소들을 내 것으로 체질화하자. 그대로 살기로 마음 먹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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