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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죽게 되면 죽겠습니다 (에 4: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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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게 되면 죽겠습니다 (에 4:13-17)
  

오늘 읽은 구약의 말씀은 에스더가 민족을 구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에스더가 나라와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서 몸을 던지는 모습입니다. 원래 에스더(Esther)라는 이름은 별이라는 뜻입니다. 그의 부모가 딸을 향한 기대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에스더 부모는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갈 때 그 대열에 함께 갔습니다. 나중에 해방이 되어 모두들 고국으로 돌아갔지만 에스더 부모는 돌아가지 않고 바벨론의 어느 지방도시에 거주했습니다. 

에스더의 아버지는 베냐민 지파의 아비하일이었고 유대명으로는 하닷사였습니다. 그런데 에스더의 부모는 일찍 사망하여 에스더는 고아로 자랐습니다. 그래서 외삼촌인 모르드개가 에스더를 입양하여 양녀로 키웠습니다. 당시 바사왕 아하수에로는 즉위 3년차에 자신의 부귀와 왕위의 권세를 과시하기 위해서 7일간 잔치를 배설했습니다. 

그런데 7일째 되던 날 왕은 왕후를 불렀습니다. 왕후가 참 아름다웠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왕후가 왕명을 거부하고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왕은 이에 대노하였습니다. 그 순간을 성경이 소개하기를 마음에서 불붙는 것 같았다(1:12)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때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대신들에게 자문을 구하였는데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왕후를 폐위하소서, 일반인에게 이 사실이 알려지면 모든 여인들이 남편을 무시할까 두렵습니다”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왕은 왕후를 폐위하고 새로 왕후를 간택하게 되었는데 그 때 간택된 왕후가 바로 에스더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에스더가 왕후가 된지 5년 후에 내각수반인 하만이 유대인들을 밉게 보고 학살하려고 왕의 승낙을 받아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의 우두머리인 모르드개부터 죽이려고 50규빗 즉 24m 높이의 장대를 세웠는데 그때 에스더가 왕에게 탄원하여 유대인 학살 예정일인 12월 13일에 오히려 하만과 그 가족들이 장대에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본문 속에서 에스더는 아주 요긴한 때에 등장하여 아주 요긴하게 사용된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민족을 구원해 내는 에스더의 몇 가지 자질을 보게 됩니다. 

미모 

하나님은 에스더의 미모도 활용하셨습니다. 에스더는 탁월한 미모를 갖고 있었습니다. 미모는 하늘의 복입니다. 에스더는 그 미모로 대제국의 왕의 마음을 사로잡아 마침내 왕후가 되었습니다. 문헌에 의하면 왕후감을 찾기 위해 당시 바사제국이 다스렸던 인도에서 구스까지 127개 지방 고을에서 찾았다고 합니다. 즉 오늘의 이집트에서 수단까지 아주 넓은 지역에서 미녀들을 선발하였는데 에스더가 뽑힌 것입니다. 미모는 하늘이 주는 선물이고 은혜입니다. 

그런데 그 미모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우선 얼굴의 미모가 있습니다. 얼굴의 미모는 참 부러움의 대상입니다. 개중에는 깎아놓은 듯한 인형같은 미모의 소유자도 있습니다. 이것은 하늘이 주는 선물입니다. 그런가 하면 마음의 미모도 있습니다. 이 마음의 미모는 얼굴의 미모보다 더 고급스런 미모입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잘 몰라주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향기가 나는 것이 이 마음의 미모입니다. 얼굴의 미모는 생명이 짧습니다. 

그래서 화무십일홍이라고 했습니다. 배우들을 보십시오. 젊었을 때 얼마나 미모가 뛰어났습니까? 그런데 나이를 먹은 후에는 다 변해 버립니다. 그래서 배우들이 나이가 들면 밖으로 나오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의 미모는 세월이 갈수록 빛이 납니다. 그래서 미모를 가꾸어야 하듯이 마음도 더 가꾸어야 합니다. 그래야 오래 갑니다. 이처럼 얼굴의 미모보다 마음의 미모는 더 빛을 발합니다. 에스더는 타고난 미모로 어느 날 왕후가 되었지만 그는 미모만이 아니라 마음의 미모를 겸비하여 결국 민족을 구원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유대민족을 구원하는데 그의 미모까지 사용하셨습니다. 

의지 

에스더는 미모뿐 아니라 그 속에 굳은 의지와 결단력이 들어 있었습니다. 에스더는 “별”이라는 이름의 뜻처럼 결국 민족의 별이 되었습니다. 이 에스더 이야기 중에 삼촌 모르드개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당시 총리격인 하만은 모르드개가 고분고분하지 않자 그의 민족인 유대인들을 몰살시키는 무서운 흉계를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모르드개는 그 사실을 알고 급히 에스더에게 알리면서 “네가 왕에게 알려 구명하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그 방법밖에 없습니다. 이제는 에스더가 나설 때입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에스더는 주저했습니다. 왕이 부르기 전에 그 면전에 나가면 당시는 위법이었고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에스더는 처음에 완곡하게 거절하였습니다. 본래 사람은 본성적으로 자신에게 불리한 일은 하지 않으려는 속성이 있습니다. 에스더도 기적같이 왕비의 자리까지 올라왔는데 왜 스스로 화를 자초하겠습니까? 그래서 못하겠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그때 모르드개가 아주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이 말이 모든 신앙인들의 신앙고백이기도 합니다. 하나님 앞에 서 있는 모든 신앙인들이 이 말을 마음에 새겨야 하는 말입니다. “네가 왕후가 되었다고 혼자 살 수 있다 생각하지 말라, 네가 침묵한다면 하나님은 다른 방법을 통해서라도 백성을 구원하실 것이다, 그러나 그 후에 너는 망하리라, 네가 왕후가 된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어떻게 아느냐(4:14).” 참 등골을 오싹하게 하는 말입니다. 사람에게는 각각 사명이 다 있습니다. 

사람이 태어날 때 모두에게 주어진 사명이 있습니다. 그 사명은 일생에 단 한번 올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작은 사명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작은 사명들은 내가 볼 때는 작은 것 같지만 하나님 편에서 보면 결코 작은 것이 아닙니다. 사명은 작거나 크거나 소중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내가 그 사명을 회피한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그 일을 포기하시지는 않으십니다. 그 사명을 다른 사람을 통해서라도 이루실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만일 이 사람들이 소리 지르지 아니하면 돌들이 소리 지를 것(눅19:40)”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에스더가 가야 할 길은 무엇일까요? 그때 에스더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여러분 같으면 그때 어떻게 하겠습니까? 지금 주어진 자리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숨죽이고 있을 것입니까? 아니면 내 자리를 내 던지고서라도 몰살당할 위기에 처한 내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서 나서겠습니까? 성경은 지금 옛날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나에게 묻고 있습니다. 여기 에스더가 처한 환경은 곧 지금 내가 처한 환경입니다. 지금 에스더가 취하여야 할 결단은 곧 나의 결단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질문합니다. “너 같으면 그런 때에 어떻게 하겠느냐?” “네가 왕후가 된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지금 에스더는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그 많은 여인 중에서 왕후가 된 이유가 무엇인가? 왜 그것이 나였는가? 내가 재수가 좋아서 당첨된 것인가? 내가 예뻐서 왕후로 간택 받은 것인가? 이처럼 사람은 살면서 항상 물어야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존재하는가, 하나님은 왜 나를 부르셨는가, 내가 지금 할 일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지금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가, 하나님은 왜 나에게 이같은 은혜를 주시는가를 물을 수 있어야 합니다. 엄숙한 물음입니다. 

그때 에스더가 모르드개의 말을 듣고 깊이 생각했습니다. “나를 지금 왕후로 삼으신 것은 이 학살위기에 처한 내 민족을 살리게 하려 함이 아닌가.” 에스더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결단이 임박했다는 증거입니다. 에스더는 지금 자기가 어떤 결단을내려야 할지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때 에스더는 마지막도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폐위된 왕후는 왕이 부름에 나가지 않았다고 폐위되었는데 나는 왕이 부르지도 않았는데도 그 앞에 나아가면 어떤 위험이 닥칠까?”, 그 순간 에스더는 자신의 사느냐 죽느냐 하는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마침내 에스더가 결단을 내리게 됩니다. 다 내려놓기로 작정합니다. 마음을 비우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내가 죽으면 죽으리라”고 결심합니다. 

사람이 무서운 것은 이러한 결단 때문입니다. 사람이 모든 것을 내 던지기로, 비우기로, 부정하기로, 죽기로 결심하면 그 순간 아주 무서운 존재로 변하게 됩니다. 그래서 에스더는 그렇게 기도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왕의 마음을 감동시켜 주시는 방법밖에 없다,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을 살리시기 위해서 나를 지금 왕후로 삼으셨다면 하나님은 나도 살리시고 백성도 살리시리라.” 그래서 마침내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고 결단을 내린 것입니다. 모든 뜻을 하나님께 맡기기로 했습니다. 죽고 사는 문제를 하나님께 맡긴 것입니다. 그리고 모르드개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수산성에 사는 모든 유대인들을 모이게 해서 3일동안 금식을 시키소서, 나도 하녀들과 금식하겠습니다, 죽으면 죽으리이다.” 

믿음 

에스더는 의지도 좋고 미모도 좋지만 이 일은 결국 하나님이 함께 하셔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 문제는 단지 의지나 미모로 풀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에스더는 금식하면 미모가 망가지는데도 “지금은 미모로 왕의 마음을 감동시킬 때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야 한다.”는 믿음이 우선하여 금식에 더 무게를 두고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하나님께서 에스더를 지켜주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3일간 물도 마시지 않고 철두철미하게 금식을 했지만 에스더의 얼굴을 더 빛나게 해 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화장발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더 빛나는 미모를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3일간 금식해도 다른 여인들 보다 더 아름다움으로 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얼굴에 발라야 합니다. 그래서 결국 왕 앞에 나타난 에스더의 모습을 본 왕은 왜 나왔느냐 하고 눈을 부릅뜬 것이 아니라 더욱 사랑스럽게 여겨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고 약속까지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에스더로 하여금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은혜를 입게 하셨습니다. 빽 중에서 이 빽이 가장 소중한 빽입니다. 그런데 이 일이 있고 나서 500년 후에 똑같이 말한 왕이 하나 있습니다. 

그 왕이 갈릴리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입니다. 그는 자신의 생일날 찬치를 베풀었습니다. 그 잔치 중에 의붓딸 살로메가 나와 춤을 추니까 흐뭇해진 이 멍청한 왕은 “뭘 원하느냐,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아하수에로 왕은 진정 사랑에서 한 말이지만 헤롯의 경우는 객기에서 한 멍청한 말입니다. 그 결과 에스더는 아하수에로 왕을 통해 민족을 구원하였지만 살로메는 헤롯을 통해 요한의 목을 베게 하였습니다. 

여기 에스더서에는 중요한 메시지가 하나가 있습니다. 에스더서에는 하나님이라는 이름이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에스더서의 이야기를 보면 그 속에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것이 에스더서의 특징입니다. 에스더서에서 하나님은 보이지는 않지만 배후에서 세심하게 일하시는 모습이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는 보이는 하나님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살아있는 신앙인의 참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개입은 에스더가 왕후로 뽑히는 과정에서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왕비를 뽑는 궁녀 헤개의 눈에 에스더가 돋보이게 하셨습니다. 

2장 9절을 보면 “헤개가 에스더를 보고 은혜를 베풀었다”고 했습니다. “은혜”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헤세드”라는 말입니다. 헤세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 속에 들어 있는 사랑”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이 일에 하나님이 개입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모르드개의 등장에서도 나타납니다. 그는 에스더의 외삼촌으로 에스더의 부모가 일찍 사망하자 에스더를 자기 양녀로 양육해 온 사람이었습니다. 이 모르드개에게는 아주 뜨거운 철학이 있었고 민족애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르드개는 그 민족애를 에스더에게 가르치고 심어주었습니다. 또한 모르드개는 담대했습니다. 

하만이 당시 나라의 제 2인자였음에도 괘념치 않고 하나님 백성으로서 자존심을 지켰고 유대인의 체면을 중시하였고 중심을 지켰습니다. 그러다 미움을 당하여 민족이 학살당하는 위기에 불을 댕겼지만 그는 당시 왕을 암살하려는 일당을 적발하여 왕의 안전을 지키는 공로를 세웠습니다. 모두 배후에서 하나님께서 그런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세 번째는 아하수에로 왕입니다. 아하수에로 왕은 에스더에게 남다른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에스더에게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이렇게 가장 좋은 빽이 바로 하나님의 빽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은총을 입는 길이 최고의 빽입니다. 

유대민족이 몰살 위기에 처했을 때 현실은 암담했고 모두 절망에 빠졌습니다. 상대가 나라의 제 2인자인 하만으로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상대였습니다. 자칫 유대민족 모두가 몰살당할 위기에 처한 것이었습니다. 그때 모르드개와 에스더는 분연히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민족을 위해서 목숨을 던졌습니다. 위기의 때에는 누군가가 일어나야 합니다. 그때 일어나는 사람이 진정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평소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의 말은 다 믿을 수가 없습니다. 평소에 좋은 믿음도 다 믿을 수가 없습니다. 고난을 겪어 봐야 알 수 있습니다. 고난 때에도 좋은 믿음이 진짜 좋은 믿음입니다. 

평소 나라를 염려하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위기 때 보아야 합니다. 그때 진정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납니다. 결국 에스더와 모르드개가 반전의 드라마를 연출했습니다. 하만으로 하여금 민족의 운명이 바람 앞에 촛불 같이 되었을 때 에스더와 모르드개는 금식을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죽으면 죽으리라”고 자기를 던졌습니다. 그때 금식이 형식적이었겠습니까? 얼마나 진지하였겠습니까? 그때 모든 유대인들은 하나도 빠지지 않고 금식에 참여하였을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은 때로 위기나 다급함이나 고난을 겪어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진정한 금식도 해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내 현실 앞에 하나님이 어떻게 개입하시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 결과 하나님이 에스더의 기도와 유다백성들의 눈물의 금식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래서 9장22절에서는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주인이시고 지금도 그 역사를 주관하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운명의 주인이시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인생에 깊이 개입하시고 운영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뿐 아니라 나라의 미래도 섭리하십니다. 우리나라의 지난날을 되돌아보면 순전히 하나님의 섭리였음을 우리는 에스더서를 통해서 알게 됩니다. 

나라를 사랑합시다. 이것은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라가 건강하고 잘 되어야 백성이 평안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그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나라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에스더와 모르드개를 통해서 받는 메시지입니다. (이정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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